한국 최고의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부산행' 감상
소문의 ‘부산행’을 봤습니다. 한국 최고의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였죠. 한국에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가 얼마 없긴 합니다만.
그런데 미리 알고 보긴 했지만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습니다. 기존 한국영화의 감동 제조 방식을 좋아한다면 멋진 재난 영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걸 싫어하는 쪽이라면 영화가 점점 취향을 벗어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거라구요. 저는 씁쓸하게도 후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감상은, 상당부분 영화의 아쉬움에 대해 이야기할 겁니다. 스포일러가 마구 들어갈 거구요. 그러니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거나, 혹은 부산행을 이미 아주 재미있게 봤고, 자신이 즐겁게 본 영화가 비판당하는 걸 보고 불쾌감을 느끼기 쉬운 분께는 이 감상을 권하지 않습니다.
1. 스토리
어느 생물학 실험 기업에서 뭔가가 누출되고, 이 때문에 한국에 좀비가 등장합니다. 기본 설정은 아주 간단하죠. 이 과정을 좀 보여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그 대신 구제역처럼 방역을 하고, 운전자가 불평을 하고, 좀비로 인한 난동을 ‘무력 폭동’이라고 보도하며 시민은 안전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장면이 들어갔습니다. 그러면서 곳곳에서 연기가 솟아나는 도시를 비춰주죠. 대단히 로컬라이징이 잘 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왕이면 폭동의 배후세력을 조사하는 중이라는 말도 들어갔으면 더할 나위가 없었겠어요.
아무튼 배경에서 방역 이외의 부분은 천천히 등장하고 이야기는 이혼한(듯한) 펀드매니저인 석우(공유)를 주인공으로 해서 시작합니다. 죽도록 바쁜 사람이고, 아내(혹은 전처)는 부산에 있고, 딸 수안(김수안)은 자신의 생일에 엄마를 만나러 부산에 혼자서라도 내려가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석우는 수안과 함께 부산행 KTX에 오르죠. 그리고 고등학교 야구부, 출산을 앞둔 부부인 상화(마동석)와 성경(정유미) , 버스회사 사장(김의성) 등 주요 인물이 모두 탄 이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감염된 여성이 뛰어오릅니다. 그리고 열차는 끔찍한 지옥으로 변하기 시작하죠.
하지만 장비의 환생 같은 상화와, 이기적이지만 머리가 잘 돌아가는 석우의 활약으로 일단 안전을 확보하는 데 성공합니다. 좀비들이 문을 열지 못한다는 점, 그리고 먹이가 보이지 않으면 날뛰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한 거죠. 그런 상태에서 일단 대전까지 갑니다. 전국이 난리통이라 거기서 내려서 군대의 보호격리조치를 받게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한편 정보를 미리 알아낸 석우는 딸과 따로 빠져나가려 하죠. 그런데, 대전에 배치된 군인들도 모두 감염된 상태라 역에서 내려가다 공격 받고, 결국 다시 열차를 타고 부산까지 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는 과정에서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열차의 여러 칸을 점거한 좀비들을 피해 어떻게 가족을 지키는가가 가장 재미난 볼거리로 제시됩니다.
하지만 액션을 발판삼아 멋지게 해피엔딩으로 달려갈 것 같던 이 이야기는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구렁텅이로 떨어집니다.
2. 기막힌 좀비물
솔직히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정말 감탄스러울 정도였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기존 좀비물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들도 깜짝 놀랄만큼 잘 만들었다 싶었습니다. 추세에 맞게 민첩계 좀비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기괴하게 몸을 꺾어대며 먹이를 찾고 뛰어다니는 모습은 여느 좀비 영화 이상으로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자아냈습니다. 게다가 열차라는 환경과 좀비들의 설정도 잘 맞아떨어져, 게임 ‘라스트 오브 어스’ 에서 느꼈던 게임적 재미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문을 열지 못하므로 일단 문을 넘어가면 안전해진다.
-먹이가 보이지 않으면 잠잠해지므로 시야에서 벗어나면 안전해진다.
-어두워지면 소리에 반응하므로 터널을 이용하고, 소리로 유인하면 회피가 수월하다.
이런 속성을 간파하고 이용해서 위기를 극복하는 부분은 좀비물의 백미죠. 그리고 무작정 부딪쳐 싸울 수밖에 없는 액션 파트도 상화의 활약으로 다른 좀비물에서 잘 볼 수 없는 시원스러움을 선사했습니다. 좀비여럿을 순수한 힘으로 압도해 버리는 캐릭터는 뜻밖에 잘 나오지 않으니까요. 좀비를 집어다 ‘천장에' 패대기치는 장면은 처음 봤습니다. 물론 이런 액션이 주는 아니었고, 파워 캐릭터가 대체로 그렇듯이 ‘난 상관말고 먼저 가! 00를 부탁한다!’로 소모되어 버린 점은 무척 아쉽습니다만, 클리셰를 착실하게 밟아가는 모습을 감상하는 것도 그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합니다.
3. 장면적 멋짐과 메타포
연상호 감독은 원래 애니메이션 감독이었죠. 그래서 그런지 이 장면은 다른 좀비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멋진 장면이다 싶은 부분이 꽤 눈에 띄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후반부에서 달려가는 열차에 좀비 하나가 매달리고, 그 좀비에 다른 좀비가 매달리길 반복해서 부채꼴 모양으로 거대한 좀비 사슬이 만들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칸다타와 거미줄’ 얘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었죠. 지옥에 떨어진 악인 칸다타가 일생동안 딱 한 번 거미를 구해주는 선행을 했기에 부처가 거미줄을 내려주고,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리기에 칸다타가 사람들을 떨구다 거미줄이 끊어져 다시 지옥에 떨어진다는 이야기인데, 그런 메타포를 좀비 영화에서 스펙타클하고 알기 쉬운 장면으로 볼 수 있어 대단히 감격스러웠습니다. 이것은 ‘악’에 대해서 전작들에서 다뤄온 연상호 감독의 역량이기도 하고 집착이기도 하겠죠. 극 내내 이 주제가 다뤄지긴 합니다만, 가장 강렬하게 표현된 건 바로 여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 칸다타의 자리에 있던 석우는 좀비들을 떨궈내는 데 성공하지만 결국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죠. 물론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매달린 좀비들을 구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만.
고교 야구부 파트가 끝장나는 부분도 무척 멋졌습니다. 대전역에서 친구들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은 영국(최우식)은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자기를 당당히 좋아하는 응원단장 진희(안소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마지막에 가서 어이없이 그녀를 잃고 그녀의 손에, 아니 입에 목숨을 내던지죠. 어처구니 없음과, 그리고 어째 어색한 연기와는 별개로 하드보일드한 맛이 나는 구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월호를 연상할 수밖에 없는 구도로 설정한 이 파트를 꼭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내야만 했는지는 의문이 남네요.
4. 치를 떨게 만드는 악역
버스회사 사장은 초반부터 후반까지 시종일관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거침없이 주변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죽이는 악역으로 나오는데, 이 캐릭터가 끌고 나가는 긴장의 힘이 대단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나쁜 놈인가, 초반에 조금이라도 설정해주면 좋았을 것 같긴 하지만 이 얘기는 결국 마지막에 털어놓더군요. 그 이유란 ‘엄마’ 였습니다. 엄마 때문에 몇 번이고 주변사람들을 버리고 달아나고, 격리하고, 미끼로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던 겁니다. 글쎄요, 이 부분은 잘 모르겠군요. 아주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럴법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극한 상황에서 이기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체로 뼛속까지 악한 악인이 아니라 우리처럼 평범하고 살고 싶고, 힘들면 엄마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이니까요. 극의 중후반을 이끌어오다시피 한, 그리고 매번 상황을 악화시킨 대악역이 마지막 대치 상황에서 엄마를 찾는 부분이 좀비 아포칼립스 영화 ‘부산행’의 차별점일 겁니다. 하지만 이건 분명 장단점이 있는 차별점이었죠.
5. 복선이 없는 사고들
슬슬 불평을 할때가 됐군요. 다른 분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전 영화가 뒤로 갈 수록 점점 길게 늘어진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습니다. 슬슬 정리가 되나 싶으면 뭔가 뜬금없이 터져서 피로감이 느껴졌습니다. 이건 아마 복선이 덜 깔려서 그런 것 같더군요. 아니면 제가 깔려 있는 복선을 놓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상황을 크게 반전시키는 사건을 위해서는 앞쪽에 복선을 까는 게 보통인데, 부산행에서는 그 흔적을 찾기가 좀 어려웠습니다. 혹은 있더라도 활용되는 방법이 어색했죠. 가령 '머리에 천을 뒤집어 씌웠더니 좀비가 잠잠해지더라’라는 정보는 인물들에게 별로 유효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 복선에 가장 가까이 있던 석우가 아니라 상화가 그것을 지적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이고 맙소사, 영화의 극초반부에 나왔던 수안의 ‘아빠가 없어서 부르지 못한 노래’는 마지막 장면에서 터널을 통과하다 사살당하기 직전에 별 이유도 없이 튀어나와 극적으로 수안과 성경을 구합니다. 아니, 왜 거기서 노래를 부르죠? 애가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려면, 그것도 그렇게 의미가 깊은 노래를 불러 기적을 일으키려면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석우가 바보같이 부르다 말고 그러지 말라, 아빠가 늘 보고 있다, 그런 언급을 하긴 합니다만, 터널에서 대뜸 노래를 부르려면
‘우리 아빠 죽었어요?’
‘아냐, 수안이 아빠는 늘 보고 계셔’
처럼 알기 쉬운 격발 장치가 들어가거나, 아니면 ‘수안이는 무서우면 노래를 부른다’ 같은 얘기라도 들어갔어야 하는 게 아닌지?
또, 생존자의 반수 이상을 죽여버리는 ‘장치’였던 할머니 자매의 우애 역시 퍽 어색했습니다. 둘이 갈라져서 생사도 알 수 없게 되었다가 다시 만나 우애로 인해 파멸을 맞이한다는 점은 참 좋습니다만, ‘그러게 왜 그렇게 남한테 양보만 하고 고생만 했수’ 하는 얘기가 들어가더군요. 그래서 언니를 고생시킨 추악한 인간놈들을 모두 죽여버린다구요? 이건 신파를 섞느라 생긴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득력을 갖기엔 준비가 살짝 모자랐던 것 같아요.
후반부에서 열차를 갈아타는 부분 역시 어째 뜬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여러 사람 죽이는 원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폭주 열차의 충돌인데, 이 열차의 등장을 암시하는 대목이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잘 되어가는 도중에 갑자기 불타는 열차가 달려와 와장창 박살내는 모습은 어째 이말년 만화가 떠오르더군요.
6. 아빠, 일어나!
저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절대 쓰면 안 되는 대사로
1. 아빠, 일어나!
2.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를 뽑습니다. 2는 많이 아실 거고, 1은 악몽같은 영화 ‘클레멘타인’에서 귀청을 때리는 대사라 그렇죠. 그러니 클레멘타인을 보지 않았을 대부분의 관객에게는 아련하게 심금을 울리는 대사로 들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 지난날의 악몽이 되살아나더군요. 솔직히 두 번 다시 한국 영화에서 ‘어린 딸’이 울면서 “아빠,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이 개인적인 문제를 치워두더라도 중후반부터 이어지는 신파의 대홍수는 굉장히 당혹스러울 지경이었습니다. 영화의 중반까지를 보면 충분히 헐리웃 풍의 좀비 아포칼립스 액션 영화를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같으니, 아마 이렇게 신파와 감동을 넣는 편이 흥행으로 직결되는 대중적 취향이라고 판단한 것이겠죠. 그리고 그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제 개인적 취향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이 신파의 조합은 대단히 뻔하고, 색다른 지점이 거의 없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오히려 삐끗하면 기막힌 개그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대단히 잘 싸우는 육체파 캐릭터의 투혼과 희생도 그렇고, 정말 너무나 알기 쉬운 ‘지켜야 하는 존재’인 임산부, 어린 딸의 존재 자체도 그렇고, 죽어가며 아들에게 전화하는 엄마도, 늙은 자매도 그렇고, 아빠를 위해 부르는 노래도 그렇고, 대뜸 들어간 대사 ‘아빠가 그렇지, 인정 못받지만 희생하는 거’도 그렇죠.
특히 이 신파의 절정이 대폭발하는 것은 감염된 석우가 죽기 전 딸의 탄생을 회상하는 장면이었습니다. 갑자기 파스텔톤의 뽀송뽀송한 CF세계가 펼쳐지죠. 출연료 때문인지 엄마는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만, 어쨌든 누군가는 이걸 ‘분유 광고’라고 부르시더군요. 정말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분유 광고로밖에 보이지 않을 장면이 퍽 긴 시간 나와서 관객의 혼을, 혹은 눈물을 쏙 빼놓습니다. 이건 자막으로 ‘관객은 여기서 운다’라고 쏴주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나마 색다른 감동을 찾을 수 있었던 지점이라면 아까도 적었던 ‘악역의 엄마 찾기’가 있었고, 그리고 '진희와 영국’의 관계가 있었습니다. 진희는 대놓고 넌 내가 좋아하는 걸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영국은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마음이 정해지지 않은 건지 제대로 대답하지 않죠. 운동부 남학생과 교복치마를 살랑거리는 치어리더라는 설정은 정말 뻔하지만 그 관계를 뻔하지 않게 만들고 비극으로 내던졌다는 점이 무척 좋았습니다.
7. 단순 장치와 트로피로서의 여성들
이 영화에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불만을 토하지 않을 수 없군요. 솔직히 말해서 ‘부산행’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이랄 게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일은 모조리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가 싹 처리하죠. 승무원 중에 여자도 있고 남자도 있었는데 여자는 초반에 물려 좀비가 되고, 후반까지 비정한 결정을 내려가며 살아남는 건 남자 승무원입니다. 그리고 어린 딸 수안은 초반에 돌아다니며 열차 상황을 비추는 카메라 같은 역할을 하긴 하지만 그 뒤로는 줄곧 지켜야 할 존재고, 울면서 노래하는 것 말곤 아무 일도 하지 않죠. 임신부로 나오는 성경도 유리문에 신문지를 바르는 모습으로 뭔가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긴 했는데, 그 뒤론 도망다니거나 남편을 부르거나 수안을 달래주고 부산으로 데려가는 것 말고는 역할이 없어요.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연령대인 진희도 바보같이 영국만 찾고 ‘아저씨가 뭐라고 좀 해주세요’ 따위 아무짝에도 도움이 안 되는 소리만 하고 뛰어다니다 좀비가 되어 영국을 죽입니다. 할머니들이 가장 큰 일을 하긴 하는데, 그건 영 수긍할 수 없는 전개로 한 칸의 생존자를 다 죽이는 것이었죠. 벡델 테스트는 통과했을지 몰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이건 사실 여성주의적 관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냥 캐릭터의 제작이 너무나 안정적으로 기존의 구조를 따랐고, 분배를 충분히 하지 않은 거죠. 그 탓에 여성들은 거의 트로피로 느껴졌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게임에서 호위 퀘스트를 한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죠.
- 임신부를 구출하라 (경험치 100)
- 소녀를 구출하라 (경험치 70)
- 여고생을 구출하라 (경험치 50)
이렇게 점수가 매겨진 퀘스트가 있고, 게임중 등장하는 임신부, 소녀, 여고생들은 단순히 호위 대상으로 등장하는 NPC라 게임 진행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입니다. 콘솔보다 MMORPG쪽이 가깝겠군요. 아무튼 이 캐릭터가 어떤 활약을 할까? 하는 기대가 거의 되지 않았고, 간혹 되더라도 배신당했습니다.
굳이 이런 예를 들지 않더라도, ‘부산행’에서 소소하게 기대할 법한 역할 분배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확실합니다. 그냥 클리셰만 따라가도 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좀비의 속성을 알아내는 역할을 성경에게 줄 수도 있었고, 짐칸으로 올라간다는 발상을 떠올리는 걸 수안에게 줄 수도 있었겠죠. 진희는 기지를 발휘해서 좀비를 열차 바깥으로 떨어뜨리거나 자신을 방해하는 악당에게 한 방 먹여줄 수도,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영국의 손을 잡아 끌어올려 주거나, 야구배트를 주워서 던져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 너무 천편일률적이라 욕먹어도 싼 ‘남자는 몸을 쓰고 여자는 머리를 쓴다’류의 역할 분배조차 달성하지 못한 겁니다.
대신에 ‘부산행’이 착실하게 따라간 기존의 관습적 역할 분배는 ‘남자는 여자를 지킨다’, ‘비정한 악당은 남자’ 라는, 익숙하고 낙후된 강령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익숙한 만큼 안정적이라는 장점이 있긴 합니다만, 흥행작이 이렇게 안정적인 발판만 밟아나가선 ‘에일리언'처럼 멋있는 선례가 남을 수가 없습니다. 공유와 김의성 대신 전도연이나 염정아, 고두심이 들어갔어도 충분히 안정적이면서 멋있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런저런 불만을 늘어놓긴 했지만 부산행의 장단점은 완벽히 명백하게 갈리고, 단점은 대체로 의도되었거나 의도해서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부산행에서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은 쉽게 배우거나 흉내내기 힘든, 아주 빼어난 것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독이 애니메이션만 하다가 영화를 찍으니 너무 편하고 좋다고 즐거워했다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굉장한 작품들을 선보일지 기대되는군요.
덧: 마동석 님 너무 멋져요. 이 영화의 점수 반 이상은 상화를 위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영어 잘하시던데 솔로 무비 몇 개 찍고 헐리웃 가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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