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최고의 영화, 매드 맥스
매드 맥스가 나온다 나온다 할 때는 사실 별로 볼 생각이 없었습니다. 배경이 포스트 아포칼립스로, 황량한 사막에서 모두 허덕이는 가운데 힘쎈놈이 지배한다는 구도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전 지구적인 재앙을 다루었다면 폐허가 된 도시에서 살아가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워낙 명작이라는 얘길 많이 듣다 보니 안 보고 넘어갈 수는 없겠더군요. 그래서 봤습니다.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무조건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요는 취향을 바꿔놓을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었다는 뜻이죠.
매드맥스에 줄거리 따윈 필요없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스토리 자체는 간단했습니다. 임모탄 조가 통치하는 도시인 시타델에서 퓨리오사가 거래용 워리그를 타고 옆 도시로 출발하지만, 사실은 잡혀있던 브리더들을 탈출시키는 게 목적이었고, 이것을 뒤늦게 알아챈 임모탄과 정예부대가 추격하는데, 그 와중에 생포되어 피주머니로 쓰이던 맥스가 살려고 하다 보니 별 수 없이 퓨리오사와 함께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워보이 눅스도 합류하죠. 그래서 고생 끝에 퓨리오사의 고향인 동쪽 땅에 도착해 부발리니 동족들을 만나지만, 안타깝게도 녹지는 이미 황폐화된 뒤였습니다. 부발리니 동족들도 거의 다 죽었죠. 퓨리오사는 절망하지만 다음날 더 먼 어딘가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혼자 떠나려던 맥스가 퓨리오사를 설득하죠. 아무것도 없을 게 뻔한 곳으로 가기보다는 빈집이 된 시타델을 탈환하자는 겁니다. 그리하여 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고, 대추격전 끝에 임모탄을 처치하는데 성공하고 시타델에 입성하고야 맙니다.
써놓고 보니 파랑새 같은 얘기군요. 그런데 이렇게 스토리가 단순한데도 매드맥스가 굉장했던 것은 판에 박힌 헐리웃 액션 영화 공식들을 여러가지 내다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영화 평론가는 아니니까 이걸 사조까지 따져가며 쓸 재주는 없고, 그냥 좋았던 부분 얘기나 해보죠.
솔직히 말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친듯이 달리는 이 영화의 플롯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평범한 헐리웃 영화처럼 생각해 보죠.
일단 임모탄의 압제와 착취, 그리고 브리더의 수난이 꽤 길게 나와야 할 겁니다. 그걸 보고 퓨리오사는 임모탄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고, 그러면서도 혁혁한 공을 세워 사령관까지 오릅니다. 그러다 탈출의 때가 되죠. 패권 다툼으로 동쪽으로 가는 길의 세력이 약화되었든지 최악의 건기가 찾아와 길이 열렸다든지 하겠죠. 잡혀온 맥스가 그런 정보를 줄 수도 있구요. 그래서 철저한 탈출 계획을 세운 뒤에 아슬아슬하게 탈출합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의 반이 지나고, 여기서부터 추격전이 시작되겠죠.
그런데 이 영화는 이런 평범한 기승전결은 내다버리고 그냥 시작부터 클라이막스로 내달립니다. 일단 시선을 사로잡고 템포를 늦추는 것도 아니라 거의 그 템포 그대로 가죠. 그래서 압축도가 어마어마한데도 그 안에서 전후 내용은 다 알만합니다. 전반적인 구조 자체가 미친 것 같아요.
플롯에서 클라이막스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던져버렸듯이 이 영화는 서정적인 감동을 추구하려는 대화 장면이나 설명도 최소화 되었습니다. 그나마 가장 평범한 부분이 눅스와 케이퍼블이 나누는 대화 정도였죠. 무성영화에 가깝다고들 하는데, 정말 대사를 아예 빼버리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입니다. 어떻게 하면 영화를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상상도 안 될 지경이에요. 매드맥스의 세계관과 캐릭터들에는 상당히 치밀하고 많은 설정이 붙어 있는 만큼 대사를 넣자면 끝이 없을 겁니다. 길게 분위기를 잡을만한 장면도 꽤 있었구요. 몇 가지만 상상 해보죠.
일단 퓨리오사가 이방인인 맥스에게 친절하게 설정을 설명할 수 있었죠.
“어머니의 우유? 그게 뭐지? 모유 말인가?"
“그래, 가축처럼 인간의 젖을 짜서 모은 거야. 꼭 필요하지만 역겨운 음료지. 저주받을 임모탄 같으니!"
“먹을 수만 있으면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누가 잡혀있든 내 알 바 아니지."
“궁금한 게 있는데, 저 미친놈들이 왜 자꾸 입에다 스프레이를 뿌리는 거지?"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을 숭배하니까 그런 거야. 저걸 쓰고 영웅적으로 죽으면 발할라에 갈 수 있다고 믿지. 임모탄이 그렇게 가르쳤어."
“당신도 그렇게 믿나?"
“내가 죽을 때 알게 될 거야."
“그게 뭐지?"
“니트로 옥시사이드야. 이걸 흡기구에 뿌리면 폭발적으로 가속하지. 까딱하면 정말 폭발하지만."
“죽는 것보단 터지는 게 낫겠군."
이런 대사들을 넣으려면 수도 없이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설정이 흥미로울 부분도 보여주기만 하고 넘어갑니다.
게다가 다시 떠나기를 결심하는 밤에 퓨리오사가 맥스에게 얘기 좀 하자고 했을 때, 전 좀 더 얘기가 길 줄 알았습니다. 절망 속에서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면서 할 얘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미안하지만 그 팔은 어떻게 된 거지?"
“이거? 별 거 아냐. 예전에 록 라이더 세력이 더 컸을 때, 전쟁이 일어났지. 거기서 임모탄을 쏘려는 샷건을 대신 맞았어. 임모탄은 팔을 자르고 비참하게 살지 그대로 편하게 죽을지 선택하라고 했지. 그리고…"
“팔을 잘랐군."
“그래, 임모탄이 직접 잘랐어."
“정말 갈 거야?"
“그래."
“혼자선 오래 못 버틸 텐데."
“그럼 더 좋지."
이런 얘기도 하자면 끝이 없죠. 하지만 전혀 없습니다. 아주 간단히 용건만 얘기하죠. 잔재미가 필요 없기도 하고, 그들이 할만한 얘기들이 대부분 대사 없이도 설명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정말 감탄스럽죠.
혹독한 상황에서 거친 싸움을 함께 하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봐도 좋을 일인데, 퓨리오사와 맥스 사이에는 그런 게 전혀 없습니다. 애초에 성별이 중요하지도 않고, 그딴 싹이 틀 것 같다는 생각 자체가 들질 않아요. 헐리웃이라면 아주 당연하게 의심으로 시작한 두 사람이 신뢰를 넘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잘 되는가 싶다가 오밤중에 뭔가를 계기로 서로의 약점을 맹비난해서 헤어졌겠죠.
“당신이 스플렌디드를 버렸어!"
“그러지 않았으면 모두 죽었겠지! 어쩔 수 없었어! 그게 내 방식이야!"
“그것 참 대단한 방식이군, 그런 식으로 비겁하게 동료를 한 명씩 버려가면서 살아왔겠지."
“난 동료 같은 거 없어. 그럼 동료 없이는 못 사는 사령관님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꿈속의 낙원을 찾아서 재미난 여행 떠나시라구."
뭐 이런 식으로요. 그랬다가 떠나던 맥스가 짐꾸러미에서 퓨리오사의 메시지 같은 걸 발견하고 “이런 멍청이!” 하고 되돌아가 악당들 몇을 잡고 화해하고, 시타델에 돌아온 마지막에는 타오르는 사막의 석양을 배경으로 마지막 키스를 하고 떠나고… 이런 게 정석이죠. 하지만 매드맥스에서는 그런 식으로 뻔한 구도를 끼워 넣는 대신 제 갈길만 열심히 갑니다. 정말 한결같고 올곧은 영화예요.
매드맥스가 의도하지 않은 페미니즘이 잘 구현된 영화라는 이야기가 많고, 저도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만, 의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권력 구조로부터 여성 전사 퓨리오사가 출산 도구로 여겨지는 브리더들을 데리고 탈출해서, 모계 사회로 보이는 부발리니의 땅을 향해 갔다가 그런 낙원이 이미 파괴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존 사회의 권력 구조를 파괴한다는 내용이 별 의도 없이 그냥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만들어졌다면 정말 기적같은 일이겠죠. 전 이 구조가 치밀하게 계획되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착유기를 부착하고 가축처럼 젖을 짜는 여성들, 정조대를 버리고 신체의 자유를 얻는 여성들, 죽은 산모의 아기를 꺼내서 아들이냐고 묻고 안타까워 하는 남성들, 이런 것들 모두 그냥 넣어볼만 해서 넣은 것은 아니겠죠. 전부 물론 정말 별 의도 없이 만들어졌다면 그건 그것대로 대단히 멋집니다만.
아무튼 여성이 이만큼 터프하게 성별적 특성이나 약점에 대한 언급 없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전 에일리언 2 이후로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퓨리오사를 보는 시선에는 ‘여자인데 저걸 어쩜 좋아…’ 나 ‘여자치곤 대단하군’ 하는 느낌이 전혀 없어요. 그녀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오로지 부발리니 할머니들 뿐입니다. 심지어 그녀들도 퓨리오사를 성별로 구분한다기보다는 그냥 동족으로 알아볼 뿐이죠. 이걸 보면 영화에서 여성에게 성별적 역할을 부여한다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합니다.
최약자로 등장하는 브리더들이 그나마 고전적인 ‘지킴의 대상인 여성’의 역할로 나오는데, 그녀들도 잘 보면 각자 성장해서 자기 할 일을 멋지게 수행합니다. 퓨리오사를 자기 몸으로 막아주기도 하고, 무기 보유 현황도 체크하고, 심지어 전반에 탈출을 포기하고 도망가려던 인물도 후반에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차에 올라올 수 있게 도와주죠. 정말이지 철저합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만약에 퓨리오사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퓨리오 같은 이름으로)이고, 아주 마초적인 배우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예를 들어 전성기의 실베스타 스탤론이 나왔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한창 잘 나가는 크리스 햄스워스가 나왔다면? 퓨리오와 스플렌디드가 금단의 사랑에 빠져 스플렌디드가 임신하고, 그 때문에 탈출하고, 임모탄은 불륜과 배반에 분노하여 추격하고… 뭐 그런 내용이 됐을 법하군요. 보기는 더 멋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 그냥 흔하고 잘 만든 액션 영화로 끝났을 거고, 약자의 대반격과 체제 전복을 통한 자유 획득이라는 짜릿함은 별로 없었겠죠.
거대 개조차량이 황폐한 사막을 내달리는 금속과 불꽃의 향연에 할머니들을 출연시킬 생각을 하는 감독이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조지 밀러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살아가며 백발 백중의 저격 실력을 갖춘 전투 할머니들이 나오죠. 그리고 포스트 아포칼립스판 유목민족으로 보이는 이 부발리니 할머니들은 할머니지만 브리더들을 만났을 때 빼고는 늙은 척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 영화에서 자주 그렇듯이 비뚤어진 괴팍함을 캐릭터로 내세우지도 않고 신비로운 동양적 지혜를 설파하지도 않아요.
“먼 곳에서 이방인이 불의 전차를 타고 빛나는 여인들과 함께 찾아오면 해가 뜨는 동쪽으로 가야 하리라. 어머니께서 늘 그렇게 말씀하셨지."
이런 소리나
“이 똥물에 튀겨 죽일 놈의 임모탄 새끼들! 거기 꼼짝말고 있어! 내가 워리그를 몰고가서…"
이런 소리를 했다면 부발리니 할머니들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을 겁니다. 이들은 할머니임을 별로 주장하지 않아요. 퓨리오사가 여성임을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노쇠한 만큼 전사들과 육탄전으로 싸울 때는 분명 밀리긴 하지만 이들은 각자 한 몫을 합니다. 장전할 탄환을 입에 물고 거칠게 총질을 하고 개머리판으로 전사들을 두들겨 팹니다. 배우들도 평소에는 죽어가거나 치매에 걸린 역할만 하다가 이런 기회가 와서 붙잡았다고 하던데, 촬영하면서 참 신났을 것 같아요. 보는 쪽도 신났구요.
그런데 사실 제가 부발리니 할머니들에게 반해버린 건 그 오토바이 때문입니다. 유목민족처럼 무늬가 촘촘한 담요 같은 걸 잔뜩 둘러놓았는데, 그런 섬세한 디테일로 초월적인 현실성을 부여했다는 게 너무 멋지더군요. 사막에서 오토바이 타고 저격하는 할머니가 있다면 정말 그럴 것 같잖아요.
맥스의 멋짐은 그가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압제자 임모탄이 나쁜놈이라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약자를 도와야 한다는 정의감이나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처음에는 그냥 워리그를 빼앗아서 도망칠 생각만 합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자유였죠. 오프닝에서 당장 죽을지도 모르는데 허공의 갈고리에 뛰어오르는 것도 그렇고, 퓨리오사가 자기들을 태워달라고 설득할 때 고민하다가도 입마개를 떼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바로 승낙하는 걸 봐도 그가 원하는 건 자유였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 의식이 점점 그를 괴롭히고, 결국은 동쪽으로 떠나는 퓨리오사 일행에게 최선의 선택지를 제시하고 설득해서 시타델을 탈환하죠. 그런 다음 또다시 떠납니다. 그는 잃어버린 집을 그리워하고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부채의식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방황자로 보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는 올곧은 신념과 정의감으로 뭉친 나그네 캐릭터들과는 다른 매력을 보여주더군요.
게다가 맥스가 딱히 강력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도 멋집니다. 켄시로처럼 조무래기를 한 방에 쓰러뜨릴만큼 강력한 근력이나 무공을 지닌 것도 아니고 백발백중의 명사수도 아니죠. 흔한 요즘 액션 영화들처럼 편한 마음으로 앉아서 팝콘을 먹으며 주인공의 강함을 감상하게 하는 캐릭터가 아닙니다. 약간 날래고 판단이 정확하고 의지가 좀 강할 뿐이죠. 물론 무기농장 보스를 처치한 과정이 보이지 않아서 맥스가 제법 센 게 아닌가 의심이 남긴 합니다만, 그가 돌아올 때 무기와 눅스 신발과 아마도 지긋지긋할 수혈용 튜브를 챙겨오는 장면 덕에 그런 판단력 쪽이 더 강조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맥스의 멋짐은 스플렌디드에게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일 때도, 마지막에 인사 없이 떠날 때도 아니라 바로 퓨리오사에게 저격총을 넘겨줄 때 극에 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딱 세 발에서 두 발 실패하고 한 발 남은 걸 퓨리오사에게 양보하죠. 과자 봉지 뜯을 때도 절대 남에게 안 넘기는 남자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위대한 양보고, 깔끔한 역할 분할이죠.
영화를 보면서 흥미로웠던 부분 중 하나는 악한 자들은 대개 약자라 그걸 보완하는 기구를 부착하고 있고, 선한 자들은 강자인데 구속하는 기구를 부착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임모탄은 병에 찌든 몸을 갑옷으로 가리고 호흡기를 장착하고, 같이 출정한 아들 역시 호흡기와 튜브를 달고 있죠. 시타델에 남겨진 아들은 뭘 달고 있진 않지만 혼자선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악의 세력에 있었던 퓨리오사는 한 팔에 의수를 달고 있었죠. 한편 건강한 브리더들은 정조대를 차고 있었고, 맥스는 입마개를 하고 수혈 튜브가 꽂힌 채 쇠사슬로 묶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사실 약한 강자들이 건강한 약자들을 억압한다는 기묘하게 역전된 구조는 퍽 흥미로웠습니다.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 아라키 히로히코는 ‘악함은 약함에서 나온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말도 떠오르더군요. 물론 아라키 선생님의 말은 마음의 약함에 대한 이야기라 딱 맞지 않긴 합니다만.
아무튼, 이 구조는 임모탄이 죽는 역전의 순간에 가장 돋보이는데, 퓨리오사는 임모탄을 처치할 때 두 사람의 부착물을 한꺼번에 떼어내는 방법을 쓰죠. 심지어 임모탄이 세뇌시킨 임모탄 숭배 종교에서 마지막 순간에 쓰는 대사 ‘날 기억해’ 까지 들려줍니다. 그리고 임모탄은 죽고 퓨리오사는 살죠. 한쪽은 의수고 한쪽은 호흡기 마스크니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말은 없긴 합니다만, 약함의 보강물을 잃은 퓨리오사가 죽다 살아나는 것을 보면 의수가 보강물인 동시에 구속구이기도 했던 게 아닌가, 칼을 놓고 쟁기를 든다는 의미가 아닌가하고 멋대로 끼워맞추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맥스가 초반에 자신을 착취하는 도구로 등장했던 수혈 튜브를 써서 퓨리오사를 살리는 장면도 도구의 성격이 역전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쾌감이 있었죠. 그리고 이후로는 압제자의 강력한 힘을 상징했던 차량이 자유의 선봉이 되었고, 임모탄은 자신의 권력뿐만 아니라 시체마저 해체되었고, 모유를 생산하던 여성들은 권력의 근원이었던 물을 나눠주었고, 기계의 부품처럼 일하던 꼬마 워보이는 레버를 움직여 자의로 퓨리오사 일행을 끌어올립니다. 정말 이렇게 촘촘하게 역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영화도 드물어요.
극의 긴장감을 높이는 데에 음악이 지대한 공헌을 한 만큼 드푸 워리어- 불꽃의 기타맨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씬스틸러 씬스틸러 하는데 정말 이만한 씬스틸러가 또 있을까요. 진격중이면 그야말로 전혀 쉬지 않고 불꽃을 쏘아대며 기타를 치는 모습은 정말 혼을 빼놓더군요. 게다가 매달려서 자다가도 번쩍 일어나자마자 연주를 시작하는 모습, 그리고 맥스에게 빼앗긴 기타를 되찾자마자 보복도 하지 않고 기타를 치는 모습은 그야말로 광기의 결정체였습니다. 이 영화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그가 죽을 때는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크레이지 아티스트였죠. 후속작에는 또 어떤 아티스트가 등장할지 기대됩니다.
길게 썼습니다만, 매드맥스는 생각을 하고 보든 안 하고 보든 무서울 정도로 재미있다는 점이 가장 멋지죠. ‘이야기 하지 말고 보여줘라’ 라는 격언을 잘 따른 명작입니다. 세기의 걸작으로 불려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보관 가능한 매체가 나오면 뭘로든 사놓고 두고두고 볼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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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가 입마개를 떼어내려고 야스리로 긁어대는 장면에서 날아라 슈퍼보드의 손오공이 생각났습니다. 그러고 보니 날아라 슈퍼보드도 상당히 포스트 아포칼립스적인 작품이었군요. 몬스터 트럭으로 사막을 질주하는 승려, 고문기구를 착용하고 호버보드를 타며 쌍절곤을 휘두르는 원숭이, 바주카포를 쏘는 선글라스 돼지, 폭발 해머를 쓰고 독나방을 뿜어내는 괴물, 철을 장악한 지배자...
2015.06.03.
-후기
매드 맥스는 공인된 2015년 최고의 영화라 이제와서 후기를 올려봤자 새로울 것도 없을 거고 오히려 틀린 부분이 나오겠습니다만(예를 들어 퓨리오사가 임모탄을 처치하며 하는 원어 대사는 종교적으로 하는 것과 다른 대사였습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에 올려봅니다. 아무튼 촬영 비화부터 캐스팅, 특수 효과 등등 얘기하자면 끝이 없는 영화죠. 이만큼 별 생각 없이 봐도 재미있고 뜯어봐도 재미있는 작품이 얼마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