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식 파티의 수렵채집적 즐거움이란
요즘은 분식이 자기 관리를 포기한 지옥의 음식 취급을 받지만,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시절까지도 걸핏하면 분식을 먹었다. 학원 친구들, 학교 친구들이 모여서 적당히 뭐 맛있는 거 먹고 싶을 때 분식을 먹자고 하면 대체로 찬동하는 사람이 서너 명은 나왔던 것이다. 다들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고 체중과 체성분 따위를 관리하는 지금으로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기야 그때는 젊은 것도 모자라서 당연한 생활의 일부로 하루에 만 걸음 남짓 걸어다녔으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튼 분식집에 갔던 사람이 돌아오면 다같이 환호작약한 뒤 책상 위에 봉지를 찢어 펼쳐놓고 소금을 쏟아놓으며 젓가락을 나눈다. 그러곤 떡볶이와 순대, 튀김 따위를 집어먹고 맛을 견주기도 했는데, 이 일련의 과정은 사냥에서 돌아온 동료들을 맞이하고 다같이 나눠 먹는 수렵채집 시대의 정경 같은 느낌도 들었다. 개인을 위한 메뉴가 없고 모두 공유하는 음식인 동시에 종류가 다양한 탓이리라. 심지어 튀김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 무작위적인 구석도 있다. 이런 음식을 나눠 먹는 일은 확실히 개인 메뉴를 각자 먹는 것에 비해 분주한 재미가 있다. 비싸든 싸든 이런 것이 바로 파티다.
나는 상당한 수준의 편식가로 어디 가서든 남의 식성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먹잇감이 될 자신이 있을 정도인데, 이렇게 벌인 분식 파티에서는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 순대의 간을 퍽퍽하다는 이유로 비교적 덜 먹는 정도다. 분식 순대로 흔히 쓰이는 당면 순대도 좋아한다. 탱글탱글하면서 고유의 독특한 풍미가 늘 만족스럽다. 순대를 찍어먹는 소스나 조미료가 지방마다 다르다는데, 나는 순대를 서울에서 배운 터라 고춧가루가 섞인 소금이 가장 익숙하다. 쌈장도 시도해봤지만 그건 아무래도 피순대에 더 잘 맞는 듯하다. 부속도 가리지 않는다. 특히 허파의 야들야들하면서 적당히 쫄깃한 식감은 다른 음식에선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순대를 살 때면 부속도 많이 달라고 하는데, 그러면 보통 정량으로 취급되는 것보다 더 많이 받는 것 같다. 부속을 다양하게 먹는 쪽이 소수파라 부속은 남아도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튀김 중에선 야채 튀김과 김말이를 선호한다. 맛있기는 오징어 튀김이 정말 맛있지만, 오징어 튀김은 옷을 입고 있는 게 반 이하일 지경이라는 문제가 있다.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다 보면 튀김옷이 분리되어 떠돌아다니는 게 다소 성가시다. 오징어는 본질적으로 튀김옷을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모양이다.
야채 튀김은 몇가지 야채를 길게 썰어 모은 것에 튀김옷을 입혀 튀긴 것일 텐데, 균일한 공정으로 만든 게 아닌 탓인지 각각의 맛도 각 부분의 맛도 다르다. 나처럼 불확실한 보상에 평생 중독된 사람으로서는 애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맛이다. 한편 야채에 속하긴 하나 별도로 취급되는 고추 튀김은 선호하진 않는 편이다. 아삭한 맛 속에 숨은 풍성한 고기맛은 좋은데 풋고추 특유의 풀비린내가 약간 거슬리는 탓이다. 아마 이 풀비린내를 꺼리는 감각이 내 편식의 근간에 있지 않을까 싶다.
김말이는 당면이 들어간 만큼 순대와 엇비슷한 식감인데, 먹어보면 미약한 바삭함과 김의 개운함 속에서 탱글하면서 약간 달게 느껴지는 부드러움이 있다. 아마 기름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김말이의 맛은 하나하나가 다양한 맛의 코스 요리처럼 작동하지만, 빠르게 많이 먹다 보면 금방 느끼해진다. 남용해선 안 되는 맛이다.
그나저나 이렇게 분식을 먹을 때 빼놓으면 안 되는 메인 디쉬가 무엇일까? 나는 압도적으로 떡볶이가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튀김이나 순대는 경우에 따라 포기할 수 있지만 떡볶이가 없으면 어째 식사라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떡은 배를 든든히 채워주는 밥 역할을, 국물은 다른 음식을 담가 먹을 소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히 매콤하면서 은근히 꾸덕함이 있는 국물은 담그는 것이 무엇이 되었든 칼칼한 새 생명을 준다. 스튁스 강에 담가지기 전의 아킬레스와 담가진 후의 아킬레스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떡은 쫀득한 쌀떡이 씹는 맛이 있어 즐겁지만, 사실 맥없고 부드러운 밀떡이 종종 그리워지기도 한다. 어릴 때 학교 앞에서 팔던 떡볶이는 대개 이런 밀떡이었던 터라 심층 심리에 밀떡의 연한 식감이 새겨져 있다. 어쨌거나 밀이든 쌀이든 떡이 주는 포만감과 매콤한 국물의 개운한 각성은 언제나 분식 파티의 중심축으로 작동한다.
분식을 먹는 테이블에서 없을 때도 제법 있지만 그러면 아쉬워지는 게 바로 오뎅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오뎅 국물이 있어야 한다. 따뜻한 국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식사라고 인정하는 고전적 밥상의 애호가도 아닌데 분식을 먹을 때는 오뎅 국물이 있어야 속이 시원하다. 이것저것 골고루 먹다가도 결국은 갑갑해지는 목을 시원하게 뚫어주려면 뜨끈뜨끈한 오뎅 국물을 마셔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떡볶이와 오뎅국물 둘 중 하나는 맵지 않아야 지속적으로 먹을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쥬시쿨이 진화 작업에 동원되어야 하는데, 요즘은 쥬시쿨까지 구비한 파티를 열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사진을 보면서 글을 쓰자니 대체로 입맛도 없고 먹는 것도 귀찮아하는 나조차 군침이 돈다. 분식 파티에는 그만한 매력이 있다. 고급 식재료를 잔뜩 써서 만든 산해진미만 가득한 뷔페로도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즐거움이 분식 파티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분식 세트를 혼자 먹겠냐면 답은 ‘아니요’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그것은 파티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식 파티의 즐거움은 분식인 동시에 파티일 때만 성립한다. 밀가루 음식을 탐닉하는 일에 죄악감을 느끼게 된 요즘은 특히 남과 함께해야 순수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원래 나쁜짓은 공범이 있어야 죄의식을 잊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건강한 위장과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할 텐데, 과연 20대의 해로운 식사를 80대에도 같이 먹어줄 사람이 남아있을지,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지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