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Nov 23. 2016

안경은 불편하기만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안경을 써왔으므로 안경이 딱히 불편하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지만, 내 몸이 아닌 것을 얼굴에 걸치고 다닌다는 것은 사실 대단히 거추장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자신이 쓴 안경이 얼마나 무거운지 아는 분이 있는지? 전자담배라는 취미 때문에 전자저울을 보유한 나는 정확히 알고 있다. 20.47그램이다. 대단치 않은 것 같아도 상당한 무게다. 조그만 물약병 한 통 분량의 물을 코와 귀에 얹고 생활하는 셈이다. 이 생활을 몇 년만 하면 얼굴이 눌려서 안경을 쓰지 않은 모습이 어색해진다. 끔찍하기도 하지. 각종 허구(주로 만화, 애니메이션)에서는 매일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다니던 소년/소녀가 안경을 벗고 살짝 옷을 갈아입은 것만으로 엄청난 미소년/미소녀가 되곤 하는데, 이건 사실 안경이 아니라 머리 모양과 패션의 문제로 보는 게 맞다. 


아무튼 무게도 무게지만 안경이 커버하는 시야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도 문제다. 기껏해야 정면의 시력만 보정해주니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시야의 50퍼센트 정도가 아닐까? 당연히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빠르게 확인해야 하는 스포츠, 운전 등에 적합하지 않다.


렌즈가 더러움에 취약한 것은 물론이고, 기온차에 취약하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라면이나 우동처럼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음식을 먹을 때는 안경을 벗든지, 아니면 김이 식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어느쪽도 식사를 완전히 즐기는데 좋지 않다. 물론 눈이 적당히 나쁜 사람이라면 안경을 벗는다고 딱히 문제 될 건 없겠지만, 나처럼 -10디옵터를 넘어가는 고도근시자라면 당장 젓가락으로 집은 게 뭔지도 모를 판이니, 이래저래 식사의 질이 약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초점 렌즈니 몇 중 압축이니 하는 것들이 계속 쏟아지는데 왜 김서림 방지 렌즈는 보급되지 않는 것인지?


안경을 벗을 수 없어서 곤란한 상황하면 역시 목욕탕도 빼놓을 수 없다. 씻으려면 안경을 벗는 게 당연한데 그럴 수가 없다! 당장 면도할 때도 거울에 코를 박을 정도로 가까이서 해야 할 지경이니, 안 그래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데다 어두침침한 목욕탕 안을 맨눈으로 다니다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는 그냥 알몸에 안경만 걸치고 들어가게 되었는데, 참으로 남 보여주기 부끄러운 꼬락서니가 아닐 수 없다. '저 사람, 안경을 쓰고 들어왔어, 변태 아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물에 들어갈 때마다 안경을 벗어서 어딘가에 잘 놓아야 하니, 번거롭고 마음도 편치 않다. 꼭 그래서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도 있고 해서 목욕탕도 잘 가지 않게 되었다.


잘 때는 안경을 벗어야 한다는 점도 은근히 곤란하다. 요즘처럼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 보면서 시간을 죽이다 잠드는 때에는 특히나 깨어보면 안경이 보이지 않아 난감하기 짝이 없다. 눈이 보여야 안경을 찾을 텐데, 눈이 보이려면 안경을 써야 한다니?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있나. 이 끔찍한 상황을 탈출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시력이 멀쩡한 누군가를 부른다. 혹은 안경을 쓴다. 그래서 형은 종종 아침에 나를 불러 안경 수색을 의뢰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도 영 귀찮다 싶어 눈이 안 보여도 찾을 수 있는 자리에 예전 안경을 하나 보관하고 있다가 긴급 상황에 착용한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잘 보이는 자리에 떨어진 안경을 주워서 한숨을 쉬고는 바꿔 끼는 것이다. 흔히 '안경' 하면 학구적인 이미지의 아이콘 같은 것으로 여겨지지만, 안경을 쓰고 안경을 찾는 꼬락서니에는 해학적인 느낌마저 감돌고 있다. 


게다가 안경은 패션적으로 치명적인 문제마저 안고 있다. 물론 안경을 써도 되고 안 써도 되는 시점에는 그때그때 이미지를 바꿀 수 있어 대단히 전문적이고 멋진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안경 없이 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라면 기껏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안경을 바꿔끼는 것 뿐이다. 나는 옷에 따라 안경을 바꿔 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나름대로 로망을 갖고 있는데, 고도 근시라면 이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10만원이 넘어가는 안경을 두 개나 맞추는 것도 무시무시한 일인데, 심지어 나는 그렇게 맞춘 안경을 계속 쓸 수도 없는 상황이다. 눈이 계속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성인이 되면 시력 약화가 멈춘다고들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 눈은 쉬지않고 불철주야 나빠지고 있다. 예전에 맞춘 콘택트 렌즈도 무용지물이 된 상황에서 안경을 둘이나 맞춘다는 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짓이다. 이래서야 도수를 넣은 선글라스조차 만들 수 없다. 생활 습관이 엉망이라 이 모양인지?


책 읽는 대신  야외에서 노는 게 시력 저하를 막는 길이라는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눈이 나빠지는 건 흔히들 '책을 많이 봐서'라고 하는데,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빛을 덜 쬐서'라고 한다. 어둠속에 사는 종족의 눈이 나빠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음, 그렇다면 눈이 점점 나빠지면서 초음파를 들을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더듬이에서 빛을 뿜어 먹이를 유인할 수 있게 되는 게 아닐까 기대해볼 법도 하지만, 아직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지도, 더듬이가 돋아나지도 않았다. 여러모로 불공평한 세상이다. 


각설하고 시력 보정의 방법으로는 안경 말고 콘택트 렌즈도 널리 사랑받고 있고, 나 역시 하드 렌즈를 두 번이나 맞춰 봤지만 몇 번 사용하지 못했다. 넣고 빼는 것까지는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눈동자가 가려운 이물감도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8시간도 가지 못해 눈이 마르고 빨갛게 되어 곤란했다. 렌즈를 빼서 보관할 케이스와 안경까지 다 들고 다니자면 슬슬 뭐하러 렌즈를 쓰는지 알 수 없을 판이다. 그래도 렌즈를 고집할 이유가 하나 있다면 '나도 그럭저럭 멋은 내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 정도가 있겠는데, 불운하게도 그때 내 주변에는 안경을 벗었다고 훨씬 낫다고 해 주는 사람이 있긴커녕 "렌즈는 뭐하러 했냐? 잘 생겨지는 것도 아닌데"라고 독설을 내뱉는 사람 뿐이었으므로, 콘택트 렌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쓸모없고 수고로운 낭비가 되고 말았다. 그건 그렇고, 누가 큰 돈을 들여 돌이킬 수 없는 뭔가를 저질렀다면 빈말로라도 잘했다고 해주거나 모른척하는 게 상식입니다. 정말이지.


아무튼 안경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는 라식이나 라섹 수술도 남긴 했다. 하지만 일단 눈을 뜬 채로 수술을 받는 것도 무서울 뿐더러, 수술 한 방에 심학규처럼 깔끔하게 '보인다!'하고 일어나지 못하고 꽤 오랫동안 안정을 취하고, 그 후로도 선글라스를 쓰고 안약을 넣어야 한다는 걸 견딜 수 없어서 수술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판판이 놀던 시절이었다면 또 모를까 눈이 빠지게 보고 읽어야 할 게 많은 요즘에는 그런 손해를 감수할 수도 없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면허를 따기 힘들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물론 그 이전에 수술할 돈도 없지만. 그 돈이 있으면 그냥 여행이나 가고 말겠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일본 라디오 방송에서 뽑은 놀라운 발명품 중에 '끼고 자면 눈이 좋아지는 렌즈'가 있었다. 요는 렌즈를 끼고 자면 렌즈가 눈을 압박해서 그걸 빼고도 하룻동안 시력이 보정된다는 것이다. 확실히 불편하게 렌즈를 끼고 다니는 것보다 압도적으로 편리한 물건이다. 하지만 이게 그토록 대단한 성능을 자랑한다면 쓰지 않는 사람이 없을 테니, 찾아보지 않아도 보정 가능한 시력에 한계가 있으리라는 것은 뻔한 일이다. -10 디옵터를 가장 저렴하고 간단하게 보정할수 있는 것은 역시 안경 뿐인 모양이다. 알파고가 인간을 제패하고 불가사의한 반영구 동력이 나사에 의해 인정받기까지 하는 세상인데 안경에 한해선 기술 발전이 너무 느린 것 아닌지? 벗길 게 하나 더 많아서 좋으니 어쩌니 하는 허구도 아닌 현실 속에서 나는 언제까지 안경을 쓰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후기


예전에 친구들과 동해에 놀러갔다가 안경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해에서 서울까지 안경 없이 돌아왔는데... 빛무리만 돌아다니는 거리에서 정말 잘도 살아남았군요. 지금 생각해도 오싹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말 소중한 것은 놓지 말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