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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03. 2017

마셔요, 초미세먼지

매일같이 온갖 악당이 난리를 치는 고담시 주민들은 왜 이사를 가지 않을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답은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히 알게 되었다. 직장, 집, 학교 등등 삶의 터전이 거기 있는 데다, 무엇보다 집값이 바닥을 쳤을 테니 도무지 이사를 갈 수 없는 것이리라. 고담시 주민들은 그곳에서 두 번째나 세 번째 사건이 터졌을 때 감을 잡고 떠났어야 했다. 하지만 곧 괜찮아지겠거니 기다리다가 결국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냥 살다 보니 테러 한 두건 일어나도 북한 미사일 발사 바라보는 한국인처럼 ‘뭐야, 또야?’할 정도로 무심해졌을지도 모른다. 천천히 가열되는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요즘 미세먼지 예보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대기질이 나쁘다는 말까지 듣는 상황이지만 그것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사람도 거의 없을 뿐더러, 애초에 마스크를 쓰는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다. 뉴스에서 연일 초미세먼지가 1급 발암물질인데 내일은 경보니까 실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둥 부지런히 떠들어댈 때는 그나마 나았지만, 한동안 오염도가 낮은 시기가 지속된 데다 대선까지 다가오니 이제 모두가 미세먼지 따위는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서관은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몇 시간째 ‘신선한' 바깥 공기로 환기하고 있다. 마치 미세먼지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시간선에 흘러들어온 기분이다.


하지만 마냥 탓할 수만도 없는 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는 눈에 선명히 보이는 것도 아니고 강렬한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닌데다 하늘은 늘 뿌얘서 뉴스로 확인하지 않으면 가늠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스마트폰으로 앱을 설치해서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자기가 마시고 있는 공기에 발암물질이 섞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어서 굳이 앱까지 설치하고 수시로 들여다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모양이다.


한편 나는 지금 대기 상태를 확인하는 앱을 세 가지나 깔아놓았다. Dusty, 미세미세, AirVisual이 그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세 가지 앱에서 전하는 정보가 전부 제각각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대기 상황을 다수결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에반게리온에서 캐스퍼, 발터자르, 메르키오르 세 대의 슈퍼컴퓨터가 분석한 결과를 참고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하지만 나머지 두 앱에서 끔찍한 상황이라고 하는 판인데 간혹 ‘쾌적’이라고 주장하는 게 어째 허황된 것 같아서 Dusty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다수결을 쓸 수 없게 된 셈인데, 그러면 어떻게 결정하느냐? 둘을 다 보고 더 낫다고 하는 쪽만 참고한다. 한 쪽이 심각, 한 쪽이 보통이라고 하면 흠, 보통인 것 같군, 하고 창문을 여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이게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국민들이 기분 나쁠까봐’ 기준을 낮춰서 설정한 국내 관계부서나 다름없는 짓이지만 어쩔수가 없다. 담배를 피우려면 창문을 열거나 밖에 나가야 하는데, 그러기 전에 이 정도면 바깥 공기를 마셔도 별 문제 없을 거라는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담배나 피우면서 대체 무슨 폐걱정을 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사실 폐를 망가뜨리는 생활 습관이 있기 때문에 더 민감한 것이다. 실컷 발암물질을 빨아들인 다음에 또 발암물질 섞인 공기로 숨을 돌리면 영 좋지 않을 것 아닌가? 적어도 발암물질을 마셔야 한다면 내가 선택한 것을 마시고 싶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꾸 핑계를 만들다 보니 결국은 만사가 귀찮아지게 되었다. 미세먼지가 심각할 때 담배 피우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니 ‘담배 좀 오래 피웠다고 생각하지’ 싶기도 하고, 

‘나쁨이면 뭐 어때, 종일 나다니는 것도 아닌데’하는 생각이 점점 확장되어 몇 시간씩 밖을 돌아다닐 일이 있어도 마스크를 따로 챙기지 않게 된다. 미세먼지 좀 마셨다고 다음날 당장 기침이 나고 머리가 깨지게 아픈 건 아니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인터스텔라’ 초반부에 나오는 것처럼 먼지 때문에 접시를 매번 엎어놓고 새로 닦아야 할 정도라면 이렇지 않았겠지. 그렇다고 그쪽이 낫다는 것도 아니지만.


2027년, 미세먼지를 뚫고 출근중인 한국인들(아님)


아무튼 다들 무감해지다 보니 정말 미세먼지 따위 누구 하나 신경쓰지 않는 것 같다. 특히 건물 안에 들어가면 그냥 그것만으로도 완전히 깔끔하고 안전한 곳에 들어온 것처럼 마음을 놓는 것 같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공기청정기가 가동되지 않는 곳은 깔끔이고 안전이고 없는 게 아닐까? 창문을 닫아 놓으면 분명 미세먼지의 유입은 차단될지 몰라도 환기가 되지 않는 실내 공기는 금방 탁해져서 건강에 해롭다. 그렇다고 환기를 하면 미세먼지가 들어온다. 이산화탄소와 발암물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니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에는 반드시 창문을 닫고 공기 정화기를 가동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공기 정화기도, 그것을 가동하는 것도 전부 다 돈인 반면 미세먼지에는 아무런 실감이 없기 때문에 그냥 유난 떠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창문을 여는 게 보통이다. 


마스크도 마찬가지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다는 말을 들으면 마스크를 쓰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쓰기는 귀찮다. 마스크란 본질적으로 귀찮은 물건이다. 모자처럼 머리에 덮어쓰는 것도 아니고 천으로 호흡기를 막아야 하는데, 이 천을 고정하는 방법이라는 게 대체로 귀에 끈을 걸거나 머리 뒤로 고무줄을 감는 것이다. 어느 방식이든지 나처럼 세 걸음 떼면 이어폰을 꽂는 인간에게는 고역일 수밖에 없다. 이어폰을 쓴 사람에게 마스크가 줄 수 있는 고통의 백미란, 역시 마스크를 쓸 때는 이어폰을 먼저 꽂았는데 뺄 때는 이어폰 부터 빼려다가 끈이 걸리는 것, 그리고 그게 싫어서 마스크부터 쓰고 이어폰을 꽂았는데 마스크부터 벗었다가 이어폰이 툭 빠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바보 같지만 꼭 이걸 헷갈린단 말이지. 그렇다고 마스크를 쓰기 위해 블루투스 이어폰을 사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이렇게 귀찮은 것도 짜증나는 마당에 아무 마스크나 쓸 수 없다는 것도 까다롭다. 초미세먼지는 정말 지극히 작은 입자라서 일반 마스크로는 걸러낼 수 없으니 방진 등급이 인증된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데, 이것은 또 일회용이다. 하루는 쓸 수 있다고 쳐도 하루밖에 못 쓰는 마스크를 계속해서 사들이는 것도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말 그대로 숨만 쉬는데 돈이 나가는 셈이니, 그냥 미세먼지고 뭐고 무시해버리는 게 속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일회용 방진마스크를 몇 달 째 계속 갖고 다니는데, 이건 이제 마스크라기보다는 그냥 나도 여차하면 호흡기를 보호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주는 부적이 된게 아닌가 싶다. 여차하면 더위에서 벗어 날 수 있다는 위안을 얻기 위해 오벨리스크처럼 모셔놓고 청소도 하지 않는 에어컨처럼.


그리하여 이래저래 결과적으로 초미세먼지의 실체없는 위협을 그야말로 공기처럼 받아들이고 있는데, 확실히 몸에 나쁘긴 나쁘다니 이삼십년 후에는 너도나도 폐가 상해서 어느 공기 좋은 시골로 요양을 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터널을 지나 눈덮인 마을에서 아름다운 처자를 만난다든지, 아니면 꿈만 같은 소울메이트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자기 할머니였다든지, 뭐 그런 일들도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창작물 속에서 폐병을 앓아 시골에 갔다가 운명의 상대를 만나는 사람은 어째서 이다지도 많단 말인가? 이것도 근현대 판타지의 틀이 아닐까?


하지만 미세먼지가 거국적으로 날아드는 이 상황은 거짓말 같지만 멀쩡한 현실이고, 개인의 질병도, 어느 한 지방의 문제도 아니다. 한국이라면 어딜 가도 터널을 빠져나가봐야 진국塵國이고 매드맥스일 따름이다. 정말이지 나중에 국가에서 무슨 소릴 할 지 알 수 없으니 돈이나 열심히 벌어야 하는 것일까……. 답답해서 도무지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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