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해도 다른 것을 보여준 라스트 제다이

by 이건해

열정적인 스타워즈 팬은 아니지만, 스타워즈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에 꽤 들떴습니다. 깨어난 포스와 로그원을 워낙 재미있게 봐서 기대가 컸죠. 하지만 개봉하고 나니 어쩐지 평이 크게 갈리더군요. 돈도 시간도 없는지라 평이 갈리는 영화는 그냥 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스타워즈니까 평타는 칠 거라는 생각이 들어 결국은 봤습니다.

그리고 감상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분명 열광할 만한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의문이 남는 부분이 많더군요.


star-wars-the-last-jedi-2017.jpeg 가히 감동과 실망의 도가니탕

(이하 스포일러 포함)


라스트 제다이는 파트를 셋으로 나눠 진행하다 후반에서 합치는 방식이었으니, 이 파트별로 쓰겠습니다.


1. 레이와 루크

(1)무협지와 개그

레이가 동맹군의 희망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찾아가는 부분이 전편에 이어졌는데, 루크는 당연하게도 레이를 반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카일로 렌을 만들어버리고 절망했으니 어쩔 수 없는 전개지만, 벽지에 숨어서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는 천하 고수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 모습은 너무 식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요하게 가르침을 달라는 주인공,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조금씩 얘기하며 아주 짤막한 가르침만 주는 은둔 고수…… 포스란 무엇이냐! 포스는 그런 것이 아니야! 포스란 삼라만상의….. 이런 식이었죠. 고전적이라 좋기도 했지만, 너무나 전형적이라 이건 웃어야 할지 진지하게 봐야 할지 헷갈리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특히 나뭇가지 개그나 알 수 없는 조류 개그는 캐릭터 성격에 맞게 들어간 개그라기보다는 요즘 추세(마블)에 맞춰서 쉬어가자고 굳이 넣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2)포스의 엉뚱한 레퍼토리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포스나 운명 따위가 주요 사건을 자꾸 끌고 가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져서 석연치 않기도 했습니다. 몰입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불완전연소랄까요? 재미는 있는데 주인공이 다음에 어떻게 행동할지 손에 땀을 쥐는 맛이 덜했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탔다기보다는 구경하는 것 같았다고 하면 좋을 것 같군요.


일반적으로 좋은 이야기는 거역할 수 없는 사건이 개입하더라도 거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사건을 인물이 어떻게 대하는지, 사건 이후로 인물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조명하는 게 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라스트 제다이에서 레이와 카일로는 어쩐지 ‘포스가 연결’ 했다는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자꾸만 우주를 뛰어넘은 교감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놀라서 광선총을 쏘기도 하고, 반라일 때(카일로가) 연결되어 민망해하기도 하죠. 물론 이야기 자체야 재미있었지만, 갑자기 장르가 혼선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화상 통신이 일상화된 시대에 회선 오류로 시도 때도 없이 통화를 하게 된 두 남녀, 처음에는 싫었으나 서서히 서로에게 끌리기 시작하는데…’ 같은 로맨틱 코미디가 뜬금없이 끼어들었다고 할까요. 포스가 어떠한 작용을 했기 때문에, 아니면 두 사람이 사실 한 핏줄이기 때문에 자꾸 교감하게 된 것이라는 식의 설명이라도 있길 기대했는데, 암만 기다려도 나오지 않아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건담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극한의 전투 상황에 놓인 캐릭터들이 진정한 영혼의 교감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이때 보통 알몸으로 나오죠) 그런 영향을 받았나 싶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저로서는 다른 장르 레퍼토리를 스타워즈에서 보자니 영 받아들이기 힘들더군요.



(3)형이상학 공간

레이가 포스의 어둠인지, 아니면 내면의 심상 공간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공간에 들어가서 초현실적 체험을 하는 부분도 어째 영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습니다. 본체보다 늦게 움직이는 무한한 거울상은 보기에 재미있기도 했고 하루키 소설에서 등장하는 ‘우물’ 적인 맛이 나기도 했지만, 대체 무슨 사건으로 받아들어야 할지 해석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뭔가 영화 ‘큐브’의 초차원적 공간인지…… 차라리 새까만 옷을 입은 레이가 나타나서 ‘나는 너야’ 같은 소리를 했거나, ‘몰랐어? 넌 버려진 자식이야’ 하고 잊어버린 기억을 보여줬으면 편했겠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으로 불가사의한 부분이었습니다. 레이가 그토록 기다렸던 진실은 카일로가 ‘야, 너 버려진 거 알잖아’ 하고 대사로 넘어갔구요. 그렇다면 그 공동은 과연 무엇이었길래 귀중한 플레이타임을 그만큼 차지했던 걸까요?



(4)맥빠지는 보스전

이후에 레이가 카일로를 갱생시키려고 찾아가서 스노크를 만나게 된 파트도 재미있으면서도 어쩐지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레이가 스노크의 엄청난 힘에 맥을 못추고 당하는 것까지야 익숙했지만, 루크와 달리 사부에게서 정식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제다이로 눈뜬 것도 아닌 레이가 과연 무엇을 믿고 적진 한가운데 뛰어들었던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물론, 루크도 비슷한 짓을 하긴 했지만, 루크는 자신이 다스 베이더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데다가 최고의 스승에게 수련을 받아서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죠. 그래서 그 믿음이 위험해졌을 때 가슴 졸이며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레이는 엄청난 공력을 제어할 줄 모르는 상태로 분통터져서 하산한 제자 같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이야기상으로는 레이가 근본은 없지만 엄청난 포스를 지닌 야생마 같은 존재고, 카일로와 포스로 연결되어 그 선한 마음을 감지할 수 있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그 압도적인 포스가 본 영화의 이전 단계에서 감탄할 만한 활약상으로 드러나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그런 활약은 전편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게다가 카일로와의 정신교감이 영 석연치 않아서 자신의 포스와 카일로를 믿고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간다는 비장한 맛이 느껴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이 때문에 주인공이 적군 보스에게 잡혀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장면에서도 이를 어쩌나 싶은 위기감보다는 ‘그야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 싶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마 비슷한 장면을 이미 예전작에서 봐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카일로가 보스를 배신하고 레이를 구하는데, 드디어 카일로가 선한 편으로 돌아왔나 싶은 지점에서 뜬금없이 자기와 함께 우주를 정복하자고 레이를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작의 방식을 뒤엎는 놀라운 전개인 것만은 분명했지만, 카일로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시점에서도 강짜를 부리는 것인지 기억나지 않아 당혹했습니다. 보통은 이런 반전을 넣으면 두 주인공이 손잡을 수 없는 이유를 짧게라도 보여주곤 하는데 말이죠.


보통 이럴 때는 제3자가 끼어들거나 누군가 치명적인 말 실수를 해서 두 캐릭터의 해결되지 않은 내면적 문제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시빌 워’에서는 토니가 말 한 마디 잘못하는 통에(과도하게 통제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마지못해 돌아서려던 캡틴이 화를 내고 갈라섰습니다. 이런 장면이 있으면 캐릭터의 성격과 갈등의 근본 원인을 더 강조하게 되어 개연성도 확보되고 관객도 ‘아, 저것만 아니었으면!’ 하고 발을 동동 구르게 되는데, 라스트 제다이는 이런 맥락이나 신호가 없이 흘러가서 ‘대체 왜 또?’하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 카일로가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 레이 혼자 빠져나간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음 장면으로 빨리 진행하기 위해 최소한의 장면만 선별해 넣은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그나저나 카일로 렌의 나약함을 꿰뚫어보던 슈프림 리더가 카일로의 배신으로 죽는 장면도 참으로 맥빠지는 것이었습니다. 원래부터 직책에 비해 비중이 크지 않은 악당이긴 했지만, 어딜 봐도 강해 보이는 친위대를 대기시키고 옥좌에 앉아서 주인공을 쥐락펴락 하는 절대악을, 고작 라이트 세이버 원격 조종으로 한 방에 죽여버릴 줄이야……. 너무 간단히 끝나는 것 같아서 슈프림 리더가 ‘얕보지 마라!’ 하고 상반신만으로 덤벼든다는 전개를 기대했는데 그러지는 않더군요. 덕분에 반박자 빠르게 빌런을 제거해 버린 것 같았습니다. 참신한 클리셰 파괴라고 한다면 그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일반적인 클리셰 장면을 생각해보면 어떤 단계가 빠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통은 이런 장면에서 주인공이 기지를 발휘할 만한 여지를 주고, 이것을 적이 간파하게 해서 긴장감을 높이기 마련이죠. 그런 다음에 주인공이 앞에 암시되었지만 관객이 잊고 있던 힌트를 써서 역전하거나, 뜻밖의 조력자가 나타나는 방식입니다. 예를 들면 적에게 제압당한 주인공이 총을 집으려 하지만 적이 이를 걷어차서 멀리 치워버리고,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지지만 주인공은 앞서 나왔던 만년필의 잉크를 뿌려 적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식입니다. 그런데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주인공은 아무런 기지도 발휘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했고, 주인공의 적인지 아닌지 애매한 인물이 별 난관 없이 적을 쓰러뜨립니다. 그래서 기발하긴 한데 뭔가 비어보이는 느낌이 들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클리셰라면 클리셰지만 저는 이것을 위기 상황의 기승전결에서 ‘전’이 빠진 모습으로 느꼈습니다. 어째 적 보스가 안전불감증으로 죽는 걸 본 기분이랄까요? 스노크가 애초에 어리석었던 것도 아니고, 우주에서 가장 강한 것처럼 보이는 데다 카일로의 심리까지 꿰뚫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어울리지 않는 죽음을 맞이한 것 같아 대단히 아쉬웠습니다.



2. 포와 사령부


(1)레아와 포스

이야기의 큰 틀은 동맹군이 제국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얘기였죠. 동맹군 영웅이라 할 수 있는 포 다메론은 이 과정에서 명령을 듣지 않고 활약해서 공도 세우지만 많은 부하를 잃기도 하고 강등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어쩐지 계속 쫓아오는 제국군 때문에 함교가 대파되어 수장인 레아를 잃기 직전까지 갔죠.

여기서 잠시, 우주공간으로 튕겨나간 레아가 포스의 조화로 살아나는 장면 역시 제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물론 레아가 살아난다는 사실 자체야 반가웠지만, 또다시 이 중요한 부분이 포스의 신비로 해결된다는 점은 참으로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카일로 때문에 살아난 것도 아니고(심지어 카일로의 망설임이 나왔는데 레아의 생존과 별로 연관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거룩한 희생이나 레아 본인의 기지나 불굴의 의지로 살아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새 시리즈의 주제라면 포스의 위대한 기적은 점점 덜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지? 레아 역시 엄청난 포스의 소유자라는 설정이 있긴 하지만 그 힘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 것도 아니라서, 뜬금 없게도 슈퍼맨이 우주공간에서 부활하는 장면을 연상케 했습니다. 모든 것이 이렇게 포스의 운명대로 흘러간다면 인물들의 노력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2)홀도와 포

아무튼 제국군의 추격으로 동맹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고, 핀과 로즈는 제국군을 뿌리칠 방법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대단히 빠르게 알아내며, 포는 이 유일해 보이는 방법을 수행하고자 하나 꽉 막힌 사령관이 말을 들어먹지 않아 반란을 일으키지만, 이후에 사령관에게 다른 계획이 있었음을 알고 크게 뉘우치게 됩니다.

요는 몇몇의 희생이나 과감한 영웅적 행위가 정답이 아니라는 교훈을 준 셈인데, 이 이야기를 하는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레아가 의식불명이 된 후 지휘권을 이어받은 홀도와 포의 대결 구도는 고전적인 양상, 즉 꽉 막힌 데다 자기 목숨만 챙기려 드는 악하고 무능하고 자기 치장에 열심인 지휘관과 배짱있고 영웅심이 넘치는 부하의 구도로 잘 짜여져 있었습니다. 로그원에서도 이런 우유부단한 지휘관들을 거역한 영웅들이 희망을 지켜낸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시 깨어난 레아가 꿋꿋이 혼자 싸우는 포를 만나서 혼자 잘 버텼다고 권선징악적인 처분을 내릴 것처럼 진행되었죠. 그런데 여기서 클리셰를 깨버렸습니다. 레아와 홀도는 원래 안전한 탈출 계획을 갖고 있었고, 포의 영웅적 행위는 일탈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리죠. 이것 자체는 관객의 편견을 깨부수는 놀라운 전개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전개와 주제의 변화는 예전 동맹군의 가치관을 생각하면 뭔가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 규율이 약하고 자유롭고 수평적이며 다양한 종족이 모여있는 동맹군의 장점은 위기 상황에서도 병사 몇 명의 아이디어나 돌발 행동을 받아들여 수직적으로 통솔되는 제국군을 거꾸러뜨리는 유연한 대응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다양성을 자랑하는 미국적 가치의 표현처럼 보였죠. 그런데 이제와서 갑자기 그런 돌발 행동은 옳지 않으니 더 올바른 리더십, 대붕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니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리즈니까 새로운 주제를 들고 오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누군가의 희생으로 평화를 얻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말을 하면서 '개인의 의견을 묵살하지만 사실은 큰 뜻을 품은 리더'에게 감복하는 전개가 되어야 했는지는 의문이 남습니다. 심지어 위기 상황에서 홀도가 영웅적 자기 희생까지 벌이는데......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천하를 논하는 방식이 아닌지?


그리고 리더들이 품고 있던 큰 계획이라는 것도 황당무계한 것이었죠. 근처에 있는 행성에 예전에 쓰던 기지가 있으니 거기로 대피해서 원군을 기다리자는 것인데, 그 방법이 무슨 양동작전도 아니고 해킹을 하는 것도 아니고 태양풍 따위의 기회를 틈타는 것도 아니라, 아무 속임수도 없이 그냥 탈출하면 제국군이 큰 함선만 신경쓰고 작은 탈출선은 신경쓰지 않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절했다 깨어난 포가 그 말을 듣고 길길이 날뛰거나 절충안 따위를 제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동의하더군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제국군은 당연히 얼씨구나 탈출선을 박살내기 시작했고, 홀도는 카미카제 어택으로 동맹군의 마지막 희망을 지켜냈으니...... 저로서는 도무지 영문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드로이드에게 가속 추진을 맡겨놓고 재빨리 탈출하자는 식이었으면 그나마 의미가 있는 작전이었겠습니다만.



3. 핀과 로즈


(1)딱히 안 해도 되는 모험

한편 핀과 로즈는 제국군의 보안을 뚫고 침입해서 추적장치를 꺼버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보안을 무력화할 수 있는 '마스터 코드 브레이커'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카지노에서 그를 발견하지만 주차 위반으로 체포되어 투옥되고, 여기서 자기도 제국군 보안을 뚫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코드 브레이커와 함께 감옥을 탈출해서 제국군 함선에 잠입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발각되고, 코드 브레이커가 배신해서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는데, 이때 홀도의 자폭으로 간신히 살아남아 전투를 벌입니다. 여기서 핀은 예전 상관이던 파스마를 처치하고 BB8의 도움으로 동맹군이 숨은 광산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합니다.


위의 두 파트는 다소 무거운 내용을 다루고 있으므로 이 부분이 가장 경쾌하고 재미난 활극이 이루어지는 셈인데, 근본적인 문제는 동맹군이 제대로 된 의사소통을 하지 않고 제각각 다른 계획을 시행한 탓에 이 모험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핀과 로즈가 제국군까지 침투한 덕에 대단한 비밀을 알아 오거나, 아슬아슬하게 레이를 구출하거나, 아니면 중요한 내적 성장이라도 이뤘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핀이 상관을 처치한 것 외에는 별 수확이 없었죠. 물론 파스마가 핀의 정체성을 억압하고 있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존재라는 구도이긴 했지만, 이 전개가 맛깔나게 보이기에는 핀의 성장에 대한 서사가 본 영화 안에서 그리 강조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루크가 성장하느라 다룰 시간이 모자라기도 했죠.



(2)최고의 플레이어는 BB8


게다가 코드 브레이커를 찾고 감옥을 탈출해서 제국군에 잠입하는 일련의 활극이 손에 땀을 쥐도록 재미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멋진 곳이라느니, 멋져 보이지만 착취당하는 동물들이 불쌍하다느니 하는 얘기를 하더니, 막상 뭔가 첩보물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을 때 주차위반으로 잡혀가는 것은 현실적이면서도 참으로 맥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제임스 본드 같은 첩보물을 패러디해서 비튼 개그같기도 한데 웃으라는 것 같지는 않아서 요상한 느낌이었죠. 그래서 투옥된 감옥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로 탈출하느냐면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쩐지 거기 있던 코드 브레이커가 자기가 가겠다고 멋대로 문을 열고, 위협이 되어야 할 경비병들은 BB8이 일망타진합니다. 그 뒤에는 경마장 같은 곳에서 착취당하는 아이를 설득해서 외계생명체를 타고, 그 무리와 함께 건물을 관통하며 난장판을 벌이는 질주 씬이 호쾌하게 이어지긴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핀과 로즈는 눈에 띄는 활약은 해보지 못하고 이리저리 잡혀갔다가 남들이 깔아주는 길만 따라서 뛰어다닌 셈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활극에서는 각 캐릭터가 가진 개성을 각자 드러내서 뭔가 엇나가는 듯 하면서도 용케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합니다. 예를 들면 다혈질에 주먹이 먼저 나가는 캐릭터가 경비를 대뜸 기절시키는 통에 일이 꼬이지만, 남의 물건 훔치는 버릇이 있는 캐릭터가 얼결에 훔친 옷에 탈출구 열쇠가 들어 있었다든가 하는 식으로 캐릭터의 성격이 사건에 영향을 주면서 관객이 캐릭터에 애착을 갖는 게 정석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가장 경쾌하고 재미나야 할 이 부분에서는 누구의 성격이 이렇기 때문에 전개가 이렇게 되었다는 느낌을 별로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국군 함선에 잠입해서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제국군 옷을 입고 중요 시설로 잠입하는 동안 아무 난관도 극복하지 않았고, 따라서 이 캐릭터라 역시 이런 활약을 하는구나 싶은 재미를 느낄 구석이 없었습니다. 제국군 드로이드에게 발각되었다는 암시가 나왔을 때는 분명 어떤 위기가 닥쳐와서 BB8이든 누구든 활약을 하겠구나 기대가 되었지만 곧바로 들키는 전개로 진행되었죠. 가만 보면 뭐가 재미있을 만한 것이 나올라치면 맥이 끊겨버리는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코드브레이커가 배신을 하는 것도 어째 이도저도 아닌 느낌이 강했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괴짜 용병 느낌을 풍기긴 했지만 무슨 열망을 가졌는지, 무엇이 목적인지, 왜 그렇게 대단한 인물인지 짐작할 수 없고 그냥 알쏭달쏭할 뿐이라 배신을 했는데도 감정적인 동요를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되든 상관 없는 캐릭터로 느껴진 셈인데, 그런 한편으로 제국군이 군사조직의 보안을 뚫고 들어온 이 위험분자를 사살하지 않았다는 점도, 그 최후가 어떻게 됐는지 보이지 않은 것도 의아합니다. 다음에 또 나오는 걸까요?


핀과 로즈가 처형당할 위기에서 벗어나서 탈출하는 과정은 그나마 액션 활극을 보여주었지만, 이 역시 깨어난 포스에서 볼 수 있었던 수준은 아니라 불굴의 의지나 저항 정신 같은 캐릭터의 매력을 드러내기에는 약간 심심했습니다. 특히 처형 위기에서 벗어난 것도 우연이고 탈출하게 된 것도 BB8 덕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친구들이 굳이 이런 모험을 해야 했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죠.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BB8만 양산하면 우주 정복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이 말은 거꾸로 생각해보면 인간들이 역할을 다 빼앗겼다는 뜻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 스타워즈에서도 일어나고 있던 것이죠.



(3)로즈의 미스터리


핀과 로즈의 파트는 이들이 헛수고를 하고 동맹군이 숨은 광산으로 귀환한 뒤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국군의 공성병기를 알아본 핀이 그것을 꼭 파괴해야 한다고 알려줘서 다같이 스피너를 타고 돌진하는 장면이 나왔죠. 아름답고 신비한 붉은 사막지대를 질주하며 적군의 공성병기와 맞서 싸우는 모습은 스타워즈에서만 볼 수 있는 오싹한 웅장함이 느껴져서 대단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전보다 성장한 포는 무리한 작전을 포기하고 핀에게 철수를 명하는데, 핀은 포가 그랬듯이 물러나려 하지 않고 자폭을 각오합니다. 이것을 로즈가 들이박아 말리죠. 멋있으면서도 주제도 잘 살아서 참 좋은 전개라고 감탄했습니다. 여기서도 추진기를 켜놓은 상태로 스피너에서 뛰어내릴 수는 없었나 의문은 들었습니다만…….


아무튼 결정적인 문제는 의식을 잃으려는 로즈가 저지른 행위였습니다. 자기들의 목적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것이라는 대사에서는 약간 놀라긴 했지만 동료애나 가족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분명 자신이 지키지 못한 언니를 생각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로즈가 핀에게 키스를 하더군요. 이 부분을 아예 개그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던데, 저는 도저히 개그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개그가 들어갈 맥락도 아니었고, 미국 영화에서 전형적인 미인이 아닌 동양계 여자가 고백하고 키스하는 씬을 웃음거리로 썼다면 그것도 참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진지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러자니 핀이 그녀의 목걸이를 소중한 거리고 챙겨준 것 말고는 감정이 생길 여지가 없더군요. 아름다운 카지노의 발코니에서 제국군의 착취에 대해 얘기했던 게 그리 로맨틱하지도 않았구요. 즉, 로즈는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키우고 있었던 셈인데, 핀이 모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관객인 저도 전혀 짐작할 길이 없었으니 핀처럼 당황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전작에서 로맨스의 요소가 없었기 때문에 신작에서도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 있을 리가 없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장면에서 느낀 감정은 배트맨과 슈퍼맨이 갑자기 화해하는 모습을 볼 때와 흡사할 지경이었습니다.


라스트 제다이에서 로즈의 역할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전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시리즈가 혈통을 따르는 연대기였던 데 비해 주인공 레이가 아무 연고 없는 능력자고, 그 파트너인 핀이 흑인에 탈주병이라는 것도 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었죠. 하지만 레이는 압도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데다가 또다시 핏줄과 포스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로 가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메신저가 필요했던 게 아닌가 추측합니다. 그래서 본드걸 같은 전형적 서구 미인이 아닌 배우를 일반 병사로 설정해서 핀과 함께 활약하게 만들었다는 게 제 추측입니다. 그런데 이런 캐릭터가 뜬금없이 사랑 얘기를 꺼내면 그동안 보여줬던 메시지가 사랑이라는 강력한 동기에 희석되지 않을까요?


한층 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이로 인해 레이-핀-로즈가 묘한 삼각관계 같은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깨어난 포스에서 레이와 핀이 연애 구도로 넘어가지 않고 강한 동료의식으로 연대한 것으로 느껴져 좋았는데, 이제 로즈 때문에 로즈랑 이어지는 것보다는 레이랑 이어지는 게 맥락이 잘 맞지 않나, 그런데 레이는 카일로랑 야밤에 채팅하고 은근히 썸씽이 있는 것 같던데…... 하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 것이죠. 정말이지 로즈의 고백이 꼭 필요했던 것인지?



4.전설과 도주


(1)전설의 환상

공성병기 파괴가 실패한 이후로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홀연히 나타나서 관객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전설중의 전설이 돌아와서 제국군의 총공세에도 까딱하지 않고 버티고 선 모습은 짜릿한 전율을 선사하는 것이었죠. 이어서 자신이 한 순간의 실수로 잃게 된 제자 카일로와 일기토를 벌이기 시작해서, 오비완과 아나킨이 벌였던 것 이상으로 엄청난 결투를 기대하게끔 합니다. 가히 세기의 대결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결투가 될 것 같았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상은 달랐습니다. 아나킨은 머나먼 행성에서 좌선하며 자신의 영상만을 투사하고 있었던 것이죠. 당연히 싸움이 될 턱이 없었고, 루크는 카일로가 자신을 분노한 채 죽여봐야 소용없다, 자신은 마지막 제다이가 아니다, 등등 좋은 말을 하고 영상 투사를 마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은거한 행성에서 두 개의 태양을 보며 우화등선합니다.


이러한 전개 역시 예전작과 같은 구도를 취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나가 클리셰를 파괴했는데, 대단히 멋지고 아름답긴 했습니다. 제국군의 공격을 막고 카일로와 대면은 하지만 검을 맞대진 않는다는 결정은 현명하기도 했고, 중국 고사에서 약속을 지킬 수 없어 자결한 뒤 영혼으로 찾아갔다는 얘기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이어서 루크가 젊은 시절의 고향에서 봤던 것처럼 두 개의 태양을 보며 우화등선 하는 모습은, 팬이라면 정말 눈물이 줄줄 흐를 만한 것이었죠. 어쩌면 루크가 자신의 고향처럼 태양이 둘 있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서 은거한 게 아닐까 생각하면 착잡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머리가 식은 뒤에 돌이켜 보면, 이것은 참신하고 멋진 전개였던 동시에 맥빠지는 전개이기도 했습니다. 루크가 제국군의 일점사에도 까딱 없는 모습까지 보여줘서 그가 젊을 때 이상으로 엄청난 힘을 갖게 된 듯한 착각을 일으켜 놓고(동시에 실물이 아니라는 힌트이기도 했지만), 이렇다 할 결투 없이 끝난 셈이니까요. 루크가 등장한다는 얘기를 들은 순간부터 그의 초월적 활약을 기대해온 사람들에게는 이만한 실망도 없었을 겁니다. 저는 닥터 스트레인지가 생각나더군요. 시공을 초월하는 마법을 사용한대서 천지를 뒤집고 빌딩을 집어던지며 피를 증발 시킬 정도로 어마어마한 마법 대결이 벌어질 줄 알았더니, 실상은 빌딩을 왜곡하고 그 위에서 주먹다짐을 벌이고 기발한 꼼수로 적을 물리치는 전개였죠. 닥터 스트레인지의 전개가 매우 참신한 동시에 기대보다 심심했던 것처럼 라스트 제다이의 마지막 결투도 대단히 참신한 동시에 기대를 완전히 배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결투가 끝난 뒤에는 포스는 바위를 들어올리는 게 아니라고 배운 레이가 바위를 치워서 동맹군을 탈출시키고, 전작에서 좋은 콤비였던 핀과 레이가 한 작품이 다 지나서야 간신히 해후합니다. 그리고 정말 한줌 남은 사람들과 함께 우주선에 올라, 핀이 로즈 때문에 뭔가 좀 켕기는 듯한 묘한 느낌으로 끝이 나죠. 나름대로 정비가 잘 되어서 희망이 보였던 깨어난 포스에 비하면 불가사의할 정도로 암담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었습니다. 3부작 구성이면 망할 타이밍이긴 하지만, 레아가 연락해도 누구하나 돕지 않던 동맹군과 힘을 합쳐 반격에 나설 수 있긴 할지 걱정스럽더군요.



5.정리


영화가 전반적으로 그런 방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존의 구도를 재현하는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확 꺾어서 뒤통수를 치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맞는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수련회에서 목사님이 올라와서 ‘여러분 로봇 만화 좋아하시죠? 지금 보여드릴게요!’ 하길래 다같이 열광했더니, 정작 몇 분 후에는 에반게리온이나 다간을 보여주며 ‘로봇이 로봇을 먹고 동물이 기도를 하는 이런 만화는 성경에 어긋나니 보면 안 됩니다’ 하더군요. 라스트 제다이를 보면서 그때 느꼈던 기분과 흡사한 기분을 맛보는 순간이 종종 있었습니다. ‘예전에 이런 전개 좋아했지? 유감!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하는 느낌이랄까요. 시대가 바뀐 것이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깨어난 포스에서 세대가 멋지게 교체되는 모습을 봤죠. 로그원에서 수많은 영웅의 희생으로 소중한 희망을 얻었다는 것도 감동적으로 잘 봤습니다. 그런데 예전 주인공까지 데리고 나와서 옛날 느낌을 잔뜩 기대하게 구도를 잡아놓고 그걸 매번 두드려 깨니 참신하다 싶으면서도 이럴 거면 애초부터 그냥 참신하게 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큰 틀을 놓고 보면 라스트 제다이 전체의 흐름이 클리셰를 깨서 특출나게 재미있게 되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제국군에 쫓기는 동맹군이 완전히 박살나면서 광산에 숨었다가 딱 한 줌만 남아서 구사일생으로 도망친다는 내용인데, 그 안에서 그나마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을 한 것은 레이, 루크, 카일로 뿐이었던 것 같거든요. 정작 평범한 시민 영웅이라고 할 수 있을 핀과 로즈는 뭐 사러 심부름 나갔다가 몇 군데 돌아다닌 끝에 허탕치고 왔더니 애초에 필요도 없는 심부름이었다는 전개가 되어 BB8의 영웅성만 더 높아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라스트 제다이는 스타워즈 고유의 웅장한 함대전과 얽히고설킨 인물간의 갈등이 매력적인 영화였습니다. 격한 감동을 느낄 만한 부분도 제법 있었죠. 루크가 팔콘에 다시 올라서 레아의 영상을 다시 보는 부분도 루크의 말마따나 비겁할 정도로 향수를 자극하더군요. 그리고 제다이 따위 다 끝장나야 한다던 루크가 막상 제다이 경전이 붍탈 상황이 되자 지극히 당황하고, 그런 제자를 보며 요다가 껄껄 웃는 장면은 정말 최고의 팬서비스였습니다. 요다의 움직임을 굳이 그 옛날의 인형처럼 재현했다는 게 오싹할 정도로 감격스러웠죠.


결과적으로 라스트 제다이는 재미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 엄청나게 재미있었다고 하기는 그렇고, 기대를 크게 벗어나긴 했는데 절대 빼먹어선 안 될 정도로 팬 서비스가 충실한, 들쭉날쭉한 작품으로 제 마음속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복잡한 작품도 오랜만이군요. 아무튼, 속편에서는 더 멋지고 재미있는 신세대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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