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맛이 좋지 않았던 스카이 캐슬

by 이건해

최근에 화제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다. 한국 드라마와는 거의 담을 쌓고 사는 나로서는 퍽 이례적인 일인 셈이다. 참고로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열심히 본 드라마는 세 작품이 있는데, 첫 번째가 파리의 연인이고 두 번째가 또 오해영이며, 세 번째가 스카이 캐슬이니 이만하면 통계적으로 따졌을 때 전부 인생작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아무튼 지나가면서 보다 보니 흥미가 생겨 정주행한 파리의 연인이나 연구 차원에서 살펴본 오해영과는 달리 스카이 캐슬은 사실상 그 소재와 전개가 놀라워서 빠져들었는데, 아직 보지도 않았고 딱히 관심도 없던 분들을 위해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 (이하 스포일러)


일단 시작부터 주인공으로 나오는 것은 상류층 주거지역 ‘스카이 캐슬’에 사는 한서진인데, 그녀는 딸 예서를 의대에 보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최고의 입시 코디네이터 김주영을 만나 거액에 예서의 코디를 의뢰한다. 그러나 이 김주영이 피도 눈물도 없이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인간이라 팰퍼틴처럼 아이의 정신을 지배하고 가정의 불화까지 부추겨 이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져 예서를 맡겨두기도 뭣하고 안 맡기기도 뭣한 상황에 빠지는데, 이때 무슨 공익광고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올바른 방침으로 아이를 교육하는 옛날 동창 이수임이 와서 그런 교육은 틀려먹었다며 입바른 소릴 하질 않나, 김주영에 대해 알아본다고 여기저기 들쑤시질 않나, 한서진의 숨겨진 과거를 폭로하질 않나……. 그런 한편으로 어머니를 잃고 비뚤어진 복수심과 인정 욕구를 품게 된 예서의 라이벌 혜나가 예서 동생의 입주 과외 선생이 되어 신경을 마구 긁어대는데, 여기서 한 술 더떠 살인사건까지 벌어져 입시고 뭐고 신경쓰기 힘든 난장판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나마 굵직한 부분으로 간단히 추려낸 것인데도 엉망진창이군. 실제로는 더 맹렬하게 개판이다.


간단한 줄거리로도 알 수 있지만, 이 작품의 빼어난 매력은 ‘입시’라는 한국 특유의 광기를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어 대단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 다른 나라라면 자식을 명문 의대에 보내기 위해 수십억을 쓰고도 모자라 온갖 흉악한 일까지 벌인다는 사실에 난색을 표할지도 모르겠지만(수십억이 있으면 그걸로 그냥 잘 살면 안되나), 한국에서는 그것도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입시가 ‘생명’이나 ‘사랑’처럼 원초적인 욕구의 영역에 닿아있는 것이다. 때문에 다른 작품이라면 분명 살인 청부업을 할 법한 모양의 ‘전문가’가 학생을 앉혀놓고 귓가에 ‘너 자신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 따위 의미심장한 소리를 뇌까리거나 자기 뒤를 캐는 탐정을 눈물로 속여넘겨도 그럴듯한 모양이 만들어진다. 물론 클리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클리셰가 묘하게 변용된 이 장면들을 보고 도저히 웃지 않을 수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확실히 재미있었고, 시선을 잡아끌어 휘어잡는 매력도 있었다.


그러나 작품이라는 게 그런 매력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닌지라 문제점도 적진 않았다. 일단 세 명이나 되는 탐정 역할(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도 해도 좋겠다)이 나와서 악인의 뒤를 캐며 악행을 하나씩 밝혀내려 하고 악인은 이에 각각 재주좋게 대처한다는 하드보일드적인 전개로 흘러가는 초중반은 무척 좋았다. 그런데 가장 유능하고 선을 넘나드는 비뚤어진 탐정(이상한 놈)이었던 혜나가 어이없이 살해당한 뒤로는 맹렬하게 달려가긴 하지만 여기저기 나사를 마구 떨어뜨리며 굴러가는 느낌이 들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김주영의 뒤를 캐서 약점을 휘어잡으려는 것처럼 보이던 이수임(좋은 놈)은 아들 우주가 누명을 쓰고 잡혀가자 점차 힘을 잃고 애걸을 하는 등 사건 해결에 이렇다할 활약을 하지 못했고, 예서를 합격시키기 위해서라면 부처님도 예수님도 죽이고 악마와도 거래할 것처럼 보이던 한서진(나쁜 놈)은 뒤에 가서 죄책감과 불안감, 그리고 이대로는 파국만이 기다릴 거라는 사실을 깨우치고 양심에 따라 지극히 공익적인 행동을 해서 상황을 종료시킨다. 어쨌든 해결은 잘 됐으니까 그만 아니냐고 생각하기에는 어째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야기의 중심 인물들은 아니지만 총질을 해대고 저건 사람 새끼가 아니라느니 어쩌느니 하던 영재 아버지와 원래 갖고 있던 정신적 불안감에 어머니의 자살이라는 충격까지 더해져 김주영을 죽여버리겠다고 길길이 날뛰던 영재가 의외로 별일 없이 물러나서 나중에는 아주 사이좋은 부자가 되는 것도 뭔가 속은 것 같았다. 게다가 무슨 짓을 해서든 피라미드의 정점에 올라야 한다고 오싹한 교육관을 강요한 끝에(물론 여기에는 도저히 웃어넘길 수 없는 폭력도 동반되었다) 이혼을 선언당한 차민혁이 마지막에는 항복해서 행복한 가정의 일원으로 돌아간다는 부분도 그건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내내 권력 지향적인 인물로 살아가던 강준상이 있는 줄도 몰랐던 딸의 치료를 미뤄서 죽였다는 죄책감에 착의샤워와 면도를 거쳐 세상에서 가장 바른 사람으로 거듭나서 책이라도 낼 것처럼 바르고 고운말의 융단폭격을 선보이는 것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는데, 이것도 인물의 입체성이라고 보고 넘어가야 하는지 영 모르겠다.


요컨대 마음에 드는 전개를 따라간 인물이 단 한 명도 없는 셈인데, 내가 바란 전개는 훨씬 흉악하고 끔찍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플롯을 짜놓지야 않았지만 쿠엔틴 타란티노식의 처참한 파국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가령 이수임이 김주영의 약점을 쥐고 경천동지할 협박을 시작하려 하는데 딸의 의대 진학을 절대 포기하지 못하는 한서진이 달려들어 나이프 배틀을 벌인 끝에 이수임을 살해한다든가, 이 모습을 예서가 우연히 목격하고 충격받아 본토 약쟁이 조선생에게 마약을 받아 복용하기 시작한다든가, 폐인이 된 예서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황치영 뿐인데 그가 부탁을 들어줄 리가 없으므로 진희와의 불륜을 포착하여 협박한다든가, 혜나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테트로토톡신B로 죽은 척하고 있다가 나타나 진상을 밝힌다든가, 경찰과의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자살을 택한 김주영을 충직한 조선생이 구해내지만 뿌리깊은 원한을 지우지 못한 영재 애비가 조선생을 사살하고 영재가 김주영을 찔러 죽인다든가...... 아, 폭력을 행사하려는 차민혁을 가족들이 피라미드로 때려 죽이고 콘크리트 피라미드로 만들어 유기하는 것을 빠트렸군.


그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내 취향이 너무 요상한 게 아닐까 걱정되기도 했는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인터넷을 둘러보니 뜬금없이 공익광고적인 전개로 달려가는 이야기 전개에 실망한 사람이 한둘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앞 내용을 버리고 이런 식으로 끝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분노하고 낙담했고, 여자들과 아이들이 스카이캐슬을 불태우며 빠져나와야 했다는 평도 있었다. 확실히 이것도 만족스러운 결말이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장고처럼 뭔가 신나게 없애버리든지, 아니면 너도 나도 끈끈히 감겨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악에 빠져든다는 총체적 파멸로 끝나야 아귀가 맞는 것이었다.


room-1288438_1280.jpg 화려하지만 사실은 추악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그리는 듯했으나, 결말은 그냥 돈이 최고고 공교육 쓸모없다는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며칠 전에 어머니가 사흘에 걸쳐서 20화를 모조리 정주행하는 동안 박장대소하기도 하고 눈물을 훔치기도 하면서 끝까지 아주 재미있게 보시는 모습을 보니, 이것은 이것대로 어쩔 수 없이 안정적으로 선택된 결말이 아니었나 싶기도 했다. 쿠엔틴 타란티노식 결말이 시원스러울 것은 확실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드라마 관습과 질서에서 너무나 크게 벗어나는 것이라 드라마를 즐기는 기성 세대에게 께름직한 충격을 주게 되지 않았을까? 드라마의 제1 목적을 엔터테인먼트라고 생각한다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매번 잘난 척하고 권위를 내세우며 폭력을 행사하는, 이혼 말고 전혀 답이 없어 보이는 남편이라도 철저한 응징을 당해 평생 뉘우치며 살거나 자살하는 모습 보다는 술김에 항복하고 울며 겨자먹기로라도 가족에 맞춰 어색한 춤을 추며 살게 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더 온건하고 ‘뒷맛이 개운한’ 결말이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계층 의식에 쫓겨사는 차민혁이 항복한 것도 가족이 그리워서라기보다는 가족에게 버려진 한심한 가장으로 전락하는 것이 두려워서일 가능성이 크므로 이 거짓 행복이 오래 가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결말은 ‘그리고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되어야 하는데, 그 앞이 너무 과격하게 치고 나가서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던 것이 19, 20화였던 셈이다.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싶은 마음도 든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같은 작품이었다면 훨씬 더 과격하게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다만 그렇게 애써 납득하려 하면서도 역시 ‘하드보일드'와 ‘행복한 드라마 속의 일상’ 사이의 낙차는 정말이지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어떤 일이든 감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시험지 빼돌리셨던데, 학교에선 누가 도와주고 있어요?’ ‘넌 무서운 게 없니?’ 같은 살벌한 대사를 주고받던 작품에서 ‘아유, 착하다 우리 아들!’ ‘그럼요, 제가 누구 아들인데요?’ 식의 천편일률적으로 행복한 가정을 또 보여주질 않나, 서로를 범인으로 몰고 개싸움을 벌이던 사람들이 마지막엔 햇볕 좋은 자리에 앉아 보험 광고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식의 덕담을 주고받질 않나(하기야 돈이 그렇게 많으면 성적따위로 고민할 이유가 없긴하다)……. 다시 떠올려봐도 오싹하다. 그럴 시간에 이용 가치가 떨어졌다고 완전히 버려진 역할이나 다름없게 된 혜나를 비롯해서 어린 캐릭터들을 제대로 돌봐줬으면 좋았겠다. 아무리 캐릭터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강한 이입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라면 이야기를 전개시키는 도구 이상의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물론 시간상 취사 선택이 불가피했겠지만, 이 이야기가 성적과 사회적 성공이라는 기준으로 재단되는 사회의 안타까운 인간 군상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생각하면 역시 입맛이 영 개운치 않다. 안정적인 결말을 위해서라면 이야기와 인물은 어디까지 희생해도 좋은 것일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무엇을 상상해도 다른 것을 보여준 라스트 제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