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다크히어로는 왜 보기 싫을까

by 이건해

보통 누구에게나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물에서 도저히 참고 보지 못하는 요소, 소재 등이 존재하는데, 나는 이게 ‘병원 생활’이었다. 어머니가 입원을 반복하던 시기를 거치면서 병원에서 환자가 괴로워하는 모습은 가급적 보고 싶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과는 약간 다른 맥락에서 도저히 참고 보기 힘든 요소가 또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다. 바로 ‘청춘 다크히어로’다. 뭔 얼어죽을 흑염룡 따위를 찾는 허구의 중2병(실제 사춘기의 저항적 경향과 별 관련이 없는 '캐릭터 속성'이다)도 이제 그럭저럭 넘기는데, 이건 도저히 못 봐주겠다. 잘 보던 모 애니메이션에서 갑자기 이게 튀어나와서 어찌나 괴로웠던지 운동하면서 보다 말고 한참 뒤로 건너뛸 지경이었다. 이런 류의 ‘인정받지 못하는 멋진 나’에 대한 판타지야 원래 다양한 법이라지만 이것만큼은 사절이다.


아무튼 이 ‘청춘 다크히어로와 그 서사’란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렇다.

다크히어로는 학교라는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존재다. (쉽게 말하면 ‘아싸’)다.

인간적이든 성애적이든 호감을 가진 히로인(십중팔구 여성)이 빌런(사회 주류, ‘인싸’)에 의해 위기에 처한다.

빌런을 징벌하여 히로인을 구원하는데, 이때 택하는 방법이 사회에서 용인하지 않는 방법이다.

다크히어로의 선행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는 오히려 사회 시스템에 의해 불이익을 당한다.


대강 느낌이 오셨는지? 요컨대 ‘그녀가 행복하다면 나는 괜찮아’류의 감성과 슈퍼히어로 서사를 학교로 옮겨놓고, 일본 애니 주류인 ‘남달리 영리해서 달관한 염세적 비주류’ 남주인공을 세팅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인기를 얻는 것은 아마도 서브컬처 향유자가 자신의 비주류성을 합리화하고 주류 문화와 그 향유자를 나쁘거나 어리석은 것으로 깎아내리려 하는 현상, 심리와 맞아떨어진 측면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바람직하다고 볼 수야 없겠으나, 근절해야 할 흐름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더 보고 싶지는 않다.


이건 아마 내가 이 비슷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봐왔고, 자신의 비주류성에 도취될 나이를 지난 탓이 아닐까…… 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사실 요 서사에서 배경만 바꾸면 평범한 헐리웃 다크히어로와 크게 다르지도 않고, 이것과 엇비슷한데 느낌이 괜찮은 경우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batman-1126127_1920.jpg 우리가 다크히어로를 더 뜨겁게 좋아하는 건, 노력과 선행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근데 배트맨도 따라하진 말라고 했다.



그래서 열심히 궁리해 보니 다크히어로물이 좀 괜찮아지려면 꼭 필요한 요소들이 있는 듯싶어서 쭉 정리했다.


다크히어로가 아웃사이더라서 친구가 적거나 비주류 인간이어도 ‘좋은 사람’임을 증명해서 시청자가 호감을 가져야 한다: 극단적인 예로 사람을 죽이는 게 취미라 하더라도 최소한 비맞는 고양이를 구해주거나 이웃집 소녀가 잘못 구운 쿠키를 맛있게 먹어주는 등의 선행을 해야 시청자가 다크히어로의 시련에 안타까워하게 된다.

빌런이 진짜 나쁜 놈이어야 한다: 누가 봐도 이 자식은 구제할 길이 없는 인간 쓰레기여야 한다. 게다가 사회 시스템이 적절히 작동해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을 이용하는 놈이어야 한다. 구멍가게에서 과자 몇 봉지를 훔친다거나 빌려간 책을 돌려주지 않는 정도면 다크히어로가 나서서 불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는 데에 정당성이 떨어진다.

응징이 철저해야 한다: 철저한 응징의 목적은 빌런에 의해 피해가 또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궁극적으로는 빌런을 죽여버리는 것이 제일인데, 학교가 배경이면 대체로 약간의 폭력이나 빌런의 전학으로 끝나기 마련이라 태생적으로 뒷맛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다.

히로인이 행복해질 전망이 보여야 한다: 다크히어로가 그 고생을 했는데 히로인의 삶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만사 다 허사다. 극단적인 예로 히로인을 마약의 구렁텅이에 빠트린 빌런을 잡아족치고 마약 농장을 불살랐는데 히로인은 또 약을 찾아 뒷골목을 헤메이면 이야기의 의미가 없다. 히로인은 다크히어로의 존재조차 모르더라도 히로인의 삶은 장애물이 사라진 덕에 한 단계 발전해야 한다.

다크히어로가 내면적 보상을 얻어야 한다: 외면적(=금전적) 보상뿐이면 다크히어로의 선의가 진정성을 잃는다. 치사하고 더럽지만 다크히어로가 다 그렇다. 부수익으로 약간의 수익을 거두는 것도 가능하긴 하지만 부수익이 너무 커도 안 되고, 진정한 보상은 역시 내면적인 만족감,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보람이어야 한다. 사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도 알아주지 못해서 내면적 보상을 얻지 못하고 괜한 짓을 했다고 후회하면 시청자는 그가 같은 상황에서 또다시 시련에 맞서리라는 확신을 얻을 수 없다.


대강 이 정도인데, 그동안 본 ‘청춘 다크히어로’중 찝찝했던 것들은 반드시 이중에서 뭔가 하나 이상이 빠져 있다. 다크히어로가 애초에 좀 싫은 놈이었거나 응징이 시원찮거나 히로인의 삶이 딱히 발전하지 않는 식이다.


물론 공식을 다 따르면 똑같은 이야기만 나오게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테고, 거기에도 일리는 있다. 공식에서 벗어났기에 더욱 참신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것이다.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일에 별 보람도 없이 개고생을 해야 진정한 청춘의 다크히어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기야 청춘이란 남이 보기에 왜 그런 짓을 하나 싶은 일에 열광하고 분노하기 쉬운 시기니까 그럴 법도 하지만, ‘보람없는 개고생’이 요체가 된다면 그건 ‘히어로'가 아니라 ‘청춘의 다크’가 더 맞는 설명이리라.


단언하는데, 나는 청춘은 좋지만 다크는 싫다. 청춘을 다뤘다면 그 시절의 미숙한 어둠이나 요상하게 비대해진 자아가 아니라 약간의 헛발질 끝에 새콤달콤한 행복을 누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건 내가 너무 늙고 지쳤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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