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 '킹콩'의 디지털 방생기(放生記)

호텔 로비에 갇힌 돌하르방을 AI로 고향에 돌려보내다

by 김형수

화려한 호텔 로비에 들어섰을 때였습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낯익으면서도 매우 낯선 존재, 바로 형형색색의 드라이플라워로 온몸을 치장한 거대한 돌하르방이었습니다.


천장을 수놓은 듯 하늘거리는 꽃잎 패턴의 장식들 아래, 꽃으로 뒤덮인 모습은 분명 아름다웠습니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죠. 하지만 저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거대한 야생의 킹콩이 화려한 뉴욕 무대 위로 끌려나와 구경거리가 된 장면이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거친 숨결을 간직한 저 돌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제 기억 속 돌하르방의 원형은 이와 같은 모습입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거친 해풍을 온몸으로 맞으며 묵묵히 서 있는 검은빛 현무암. 제주의 흙과 바람, 그리고 그 땅의 지난한 역사를 함께 견뎌온 그 투박하고 묵직한 질감이야말로 그의 진짜 얼굴입니다. 그런 돌하르방이 매끈한 대리석 바닥 위에서 본래의 거친 피부를 꽃으로 가린 채 서 있는 모습은, 화려해서 오히려 더 쓸쓸해 보였습니다. 낯선 문명 한가운데 던져진 킹콩의 슬픈 눈망울처럼 말입니다.


그 녀석을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습니다. 물론 물리적으로 저 무거운 석상을 들어 옮길 수는 없는 노릇이죠. 대신 저는 제가 가진 가장 현대적인 도구를 꺼내 들었습니다. 바로 ‘생성형 AI’였습니다.

영화 속 킹콩은 결국 빌딩 아래로 추락하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지만, 저는 이 '제주판 킹콩'에게 다른 결말을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명령어를 입력했습니다.


"호텔 로비에 있는 꽃 장식 돌하르방을 제주의 자연 속 현무암 돌담 옆으로 옮겨 주세요."


잠시 후, AI는 제 상상을 눈앞의 현실로 구현해냈습니다.


디지털 공간에 방생(放生)된 돌하르방은 이제 제주의 푸른 들판과 낮은 돌담을 배경으로 서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여전히 화려한 ‘꽃 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는 못한 셈이죠. 문명을 경험한 킹콩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다 해도, 더 이상 예전의 순수한 야수일 수는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한결 편안해 보입니다. 검은 현무암 돌담과 대조를 이루는 알록달록한 모습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전통이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호텔 로비의 화려함 속에 박제되어 있던 돌하르방을 기술의 힘을 빌려 고향인 제주의 자연 품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비록 디지털 세상 속 일이었지만, 마치 킹콩을 스컬 아일랜드로 무사히 돌려보낸 영화감독이 된 듯한 작은 안도감이 밀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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