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20세기 소녀」로 21세기 학생들과 나누는 미디어 이야기

by 김형수

어느 겨울, 비디오테이프 한 편이 도착한다.


보낸 사람도, 이유도 모른 채 재생 버튼을 누르면 1999년이 쏟아져 나온다. 영화 「20세기 소녀」는 그렇게 시작한다. 방우리 감독이 연출하고 김유정, 변우석, 박정우, 노윤서 등 젊은 배우들이 연기한 이 K-하이틴 영화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17세 소녀 보라가 절친 연두의 첫사랑을 이뤄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엉뚱한 사람에게 마음이 기울고, 오해가 쌓이고, 결국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 채 한 세기가 바뀐다.


단순한 이야기인데 자꾸 생각났다. 왜일까 곰곰이 따져보니, 서사 때문이 아니었다. 이 영화가 붙잡아 둔 것은 첫사랑의 줄거리가 아니라 첫사랑이 숨 쉬던 풍경이었다.


보라는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서야 했다. 마음을 전하려면 삐삐에 숫자를 눌러야 했고, 그 숫자를 해독하는 데 또 시간이 걸렸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같은 테이프에 손이 닿는 우연이 설렘이 되고, 학교 방송실의 마이크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복도 끝까지 퍼지는 것이 고백이 되는 시절이었다. 마음 한번 전하는 데 온몸을 써야 했던 시대. 그 느림과 불편함이 마음의 무게가 되던 시대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라떼는 말이야'가 입 안에서 맴돌았다. 1995년부터 멀티미디어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니, 영화 속 미디어 사물들은 내게 소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삐삐로 주말에 과제 피드백을 보내고, 연구실 자동응답기에 쌓인 학생들의 메시지를 월요일 아침마다 확인하던 기억. 그때 나도 생각을 담은 한마디, 연락 한 줄 전하는 데 온몸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수업 교재로 쓰고 있다. 21세기에 태어난 학생들에게 삐삐나 공중전화를 말로 설명해봐야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런데 보라가 공중전화 앞에서 숫자를 누르는 장면을 보여주면 표정이 달라진다. 신기해하다가, 불편해하다가, 어느 순간 조용해진다. 그 느림의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같다. 20세기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20세기의 감정을 이해하는 통로로, 이 영화는 내 마음에 쏙 드는 교재다.


그런데 이 영화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1999년이 아니라 그 바깥에 있다.


보라가 어른이 되어 찾아간 미디어아트 전시장. 벽과 천장과 바닥을 디지털 빛이 감싸는 몰입형 영상공간에 보라가 들어선다. 여기서 영화는 조용히 놀라운 일을 해낸다. 비디오테이프 안에 납작하게 눌려 있던 기억이 공간 전체로 부풀어 오르는 것이다.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있던 1999년의 마음이 사방으로 펼쳐지고, 보라는 그 빛 안에 서서 자신의 17세를 온몸으로 다시 만난다.

영화 장면 캡쳐

이 장면이 나를 사로잡은 이유가 있다. 영화 속 몰입영상은 컴퓨터 그래픽스로 만든 가상의 이미지가 아니다. 여러 대의 프로젝터가 실제 공간에 영상을 투사하는 프로젝션 매핑 — 오래전부터 내가 작업해 온 미디어아트 기법으로 연출한, 실재하는 공간이다. 그 공간에 들어서 본 사람은 안다. 빛에 둘러싸이는 순간 마음이 커지는 그 느낌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평소 영상을 보는 방식은 하나의 프레임 안에 갇혀 있다. 영화관 스크린이든 스마트폰 화면이든, 네모난 창 안에서 세상을 들여다본다. 보라의 1999년도 그랬다. TV 화면, 비디오테이프, 학교 방송실 모니터 — 모든 마음이 작은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그런데 미디어아트 전시장에서 그 프레임이 사라진다. 영상이 벽을 넘고 천장을 타고 바닥까지 흘러내리면서,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있다. 프레임이 사라지는 순간, 마음도 풀려난다.


「20세기 소녀」는 이 전환을 영화 한 편에 오롯이 담아 놓았다. 20세기의 작은 프레임들 — 삐삐, 공중전화, 비디오테이프 — 에 갇혀 있던 첫사랑이 21세기의 프레임 없는 공간에서 마침내 풀려나는 것. 기술의 흐름이 곧 마음의 흐름이 되는 이 구조가, 하이틴 영화라는 가벼운 외피 안에 들어 있다.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나 나는 현실에서 그 몰입영상 공간을 만들어 온 사람이다. 스크린 안에 갇힌 영상을 공간으로 꺼내는 작업을 수십 년간 해오면서, 프레임이 사라지는 순간 사람들의 표정이 바뀌는 것을 숱하게 보았다. 영화 속 보라의 표정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수업에서 이 장면을 보여줄 때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의 표정이 바뀐다. 1999년의 느림이 신기했던 눈이, 빛으로 가득 찬 공간 앞에서는 조용히 젖어든다. 그때 나는 안다. 이 학생들이 20세기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어떤 마음을 만난 것이라는 걸.


영화 같은 현실과 현실 같은 영화가 겹쳐지는 21세기, 이 흐름의 어느 시점에서든 '라떼는 말이야'라고 운을 뗄 수 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다만 한 가지. 삐삐에 숫자를 눌러 마음을 전하던 시절의 그 느림이, 때로는 그립다.


영화 장면 캡쳐


- 이 글은 2023년 1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게재한 글을 수정·보완하여 다시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