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허락된 최고의 축복, 기록

인류는 기록에 의해서 발전하고 치유됐다.

by BlueDot

'딱딱', '딱딱'

저기 동굴의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빛에 의지한 채

지금으로부터 몇 만년 전의 현생 인류는 동굴의 벽에 무엇인가 부딪히고 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돌이다.

돌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가까이 가서 관찰해 봐야겠다.


그의 쪼그려 앉은 등 너머로 하얀 그림이 보인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보니 그것은 내가 본 적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소'였다.

거대한 몸집에 튼튼한 목을 지나 두 갈래의 뿔이 위엄을 내뿜고 있는 틀림없는 소다.


그는 왜 어두운 동굴에서 소를 그리고 있을까?

의문은 시선을 돌려 다른 동굴 몇 개를 더 둘러보고 나니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다른 몇 개의 동굴에서도 이처럼 동굴 벽에 그려진 그림이 발견됐는데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벽화에 그려진 그림에는 대개 동물이 등장하는데 모두 식용 가능한 동물이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둘러싸고 있고

이미 동물의 몸에는 화살이나 창이 꽂혀 있다.


이것은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그렇다. 그들은 동물 사냥에 성공하는 모습을 벽화에 그리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성공이 아니라 식용 가능한 동물의 개체 중에서도

덩치가 커서 많은 사람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아주 성공적인 사냥의 모습이다.


동굴의 벽에 동물의 모습, 그리고 사냥에 성공한 모습을 그린 이유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이미 그들은 한참 전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정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 순 있다.

첫 번째로 그들은 그림을 통해 그들의 염원을

표현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무기도 갖춰지지 않은 고대의 인류가

근밀도가 훨씬 높은 짐승을 사냥하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시대의 지구는 지금보다

생명이 넘쳐나는 시기가 아니었다.

인류의 뿐만 아니라 짐승의 수도

지금보다 현저히 적었기 때문에

덩치 큰 짐승을 만나는 것조차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인류는 살아남기 위해 사냥을 해야 했고 두려움과 이동의 고난을 이겨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매일 동물을 찾아 이동하는 것도 힘들고 사냥하는 것도 너무 힘들어.

언젠가 우리가 커다란 소를 보기 좋게 잡아서 한 동안 배고플 걱정 없이 지내봤으면...'

그러면서 그는 그 장면을 동굴의 벽에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림이 완성되자 그는 엄청난 희열에 휩싸인다.

'어? 이거 그림만 그렸는데도 정말로 저렇게 큰 소를 잡은 것만 같잖아?

이거 정말 기분 좋은데? 그리고 조만간 큰 소를 잡을 수만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인류는 수렵생활의 고난을 벽화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버텨냈을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종교적인 표현이다.

이 것은 첫 번째와 그 맥락을 같이하게 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하는 사냥으로 굶어 죽는 일원이 발생하게 된다.

이를 보다 못한 제사장이 그들이 바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 거기다가 주술을 행하거나 제를 지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눈 앞에 실현되도록 하는 일종의 의식을 위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이 밖에도 그들이 동굴에 벽화를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사정이 있겠으나 그들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남긴 흔적을 보고 '왜?'에 해당하는 질문을 현시대의 인류에게 스스로 물어 의미를 유추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남긴 흔적이 우리에게 주는 진실은 그들은 동굴에 살았고 동물을 사냥했고

그것들을 식량으로 삼았으며 단체 생활을 하고 도구를 사용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것으로 보아 정신적으로도 성숙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실은 우리 인류가 우리의 기원을 추적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옛날, 우리의 조상이 어떻게 살았었는지를 명확하게 알려준다.

선조들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그들 삶의 방식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발견되는 흔적들이 모이고 모여서 우리는 인류가 살아온 흐름을 알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인류가 수렵을 하고 채집을 하면서 살아가던 어느 날,

무리의 일원 중 똑똑한 누군가가 먹고 남은 씨를 땅에 뿌리면

거기서 또 똑같은 식물이 자라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사실을 안 이후로 인류는 더 이상 이동하지 않아도 됐고

그렇기 때문에 집을 짓고 한 곳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식물은 주기적으로 관리만 해주면 계속해서 자라기 때문에

위험한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게 됐다.

인류에게 비로소 농업혁명이 들이닥쳤다.


이제 주기적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식을 데리고 다닐 걱정이나 손에 들 수 있는 만큼 이상의

물건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인구가 늘어나고 다양한 도구가 늘어나면서 인류의 농업 기술은 점차 확장됐다.

인류에게 재산의 개념이 생긴 것이다.

누군가는 농사가 잘 돼서 재산이 많았고 누군가는 농사가 잘 안돼서 재산이 적었다.

하지만 이들도 먹고살아야 할 터인데 이미 사냥을 안 한 지 오래됐기 때문에

식량이 없다고 해서 다시 예전처럼 사냥을 할 수도 없다.

그래서 농사가 잘 된 집을 찾아가 사정을 하기로 한다.

"저... 이번에 저희 집이 농사가 잘 안돼서 그런데 몇 달치 먹을 밀을 빌릴 수 있을까요?

다음번에 농사가 잘 되면 그때 꼭 돌려드릴게요."

농사가 잘 된 집의 주인은 말한다.

"좋아요. 이번에 농사가 잘 돼서 밀이 남아요. 힘든 것 같으니 빌려 드릴게요.

그런데 나중에 당신이 내게서 밀을 빌려갔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잠깐 생각에 잠긴 농사를 망친 주인은 말한다.

"그럼 이렇게 하죠. 여기 흙으로 만든 점토 판에다가 이렇게 나뭇가지로 줄을 긋는 거예요.

이 줄이 밀을 나타내는 거고 줄이 그인 수가 제가 밀을 빌려간 양이되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제가 여기 줄이 그인 수만큼 밀을 돌려드리면 되는 거고요. 우리끼리의 약속이죠."

농사가 잘 된 집의 주인도 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밀을 빌려주고 점토 판에 줄 몇 개를 그어서 보관했다.

이렇게 재산이 등장하자 재산을 관리할 무엇인가 필요했다.


어느 날 농사가 잘 된 집의 주인은 산딸기가 너무 먹고 싶었다.

직접 산으로 따러가기에는 밭을 관리할 시간도 턱 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그때 밀을 빌려간 자의 집에 산딸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집에 찾아가 이렇게 말했다.

"산 딸기가 많다고 들었는데 산딸기를 좀

빌려주시겠어요?"

밀을 빌려간 자가 그 말을 듣고 답 했다.

"저희 집엔 산딸기가 아주 많아요.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산딸기를 드릴게요.

대신 저번에 제가 빌린 밀에서 돌려드려야

할 양을 산딸기만큼 빼주세요."

산딸기가 너무나도 먹고 싶었던 농부는 말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이번에도 저번처럼

점토판에다가 기록을 하자고요.

음... 그런데 밀도 줄로 표시하고 산딸기도 줄로 표시하면 서로를 어떻게 구분하죠?"

잠시 생각에 잠긴 밀을 빌려간 자가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밀의 모양을 비슷하게 그린 후

거기에 빌려간 만큼 줄을 긋고 또 산딸기의 모양을 비슷하게 그린 뒤 거기에 제가 드린 만큼 줄을 그어 표시를 하는 건 어때요?"


완성된 점토판을 본 산딸기가 먹고 싶은 자는 이번에도 타당했는지 그렇게 하자고 있다.

이제 인류는 소유한 재산으로 자신이 필요한 것으로 교환하는 능력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교환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표기할 수 있도록 문자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직까지의 문자는 단순한 그림의 형태로 사물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재산의 축적 또는 거래 행위 이상에는 관여하지 못했다.


이렇게 농경사회로 접어든 인류에게는 수렵생활에서는 상상도 못 할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안정화된 농경 기술로 점점 농사에 익숙해져 갔고 그 결과 잉여 식량이 발생하게 됐다.

결국 모두가 식량을 확보하는 일에 종사하지 않아도 구성원을 먹여 살릴 능력을 인류가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게 됐다.

누군가가 농사 지어 수확한 곡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매일 밤하늘에 뜨는 별을 연구하거나

밭의 크기를 정확하게 재어주거나 집을 더 튼튼하게 짓는 기술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더욱 번영해 수렵생활을 할 때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지구 상에 존재했다.


구성원과 재산이 늘어나면서 이를 관리하고

지켜주는 우두머리가 등장했으며

우두머리들을 관리하고 지켜주는

또 다른 우두머리가 등장했다.

몇 명에 불과했던 작은 구성원이 씨족이 되고

씨족이 커져 부족이 되고 결국 부족이 커져

국가가 됐다.

이것은 거치는 동안 인류는 많은 것들을 발명했는데 그중 가장 영향력이 있는 발명은 바로 문자였다.



막 농경사회가 시작됐을 무렵 단순한 그림을 통해 사물을 표현하고 기록했던 문자 체계가

점점 복잡해져 재산 전체를 표현하게 되고 구성원들 간에 지켜야 할 규율을 표현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엔 인간의 생각 일체를 문자만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문자가 체계적으로 자리 잡히면서 인류는 또 하나의 커다란 격변을 맞게 된다.

바로 역사시대의 시작이다.


드디어 인류는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게 됐다.

문자의 발명 이후로 인류는 그 이전의 어떤 시대보다도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지식의 축적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을 발견한 누군가는 그것을 모조리 문자로 기록을 했다.

그 기술을 아는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늑대에 물려 죽었다고 할 지라도

그가 남긴 기록을 보고 후대의 사람들은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새로운 지식을 추가로 적용해 더 신선한 기술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는 청동으로 만든 칼이 돌칼 보다도 훨씬 예리하고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것을 기록했고

누군가는 철로 만든 농기구가 농사를 짓는데 훨씬 더 유리하다는 것을 기록했다.

누군가는 군사적으로 유익한 전략을, 누군가는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기록했다.


문자를 가진 집단은 현세에서 후세로 그 후세는 또 그 후세로 지식을 전수하며

시대에 필요한 형태로 추가되고 변형됐다.


이런 행위는 역사시대의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는 결과적으로 문자가 주는 지식 축적의 축복 아래

지금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인류는 길고 긴 세월을 통해 기록을 발전시켜 왔다.

처음에는 염원에서 시작해서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서

또 언젠가는 더욱 강한 국가를 위해.


모든 것에는 본질이 있다.

본질이라 함은 가장 원초적인 모습이나 성질이다.

우리가 흔히 고전이라 부르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들은

인간 세상의 어떤 본질을 건드렸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남에도 도태되지 않고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다.


그렇다면 사실상 선사시대부터 이어져 온 기록의 본질은 무엇일까.

기록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기록의 본질은 생각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몇 만 년 전 옛날 인류가 동굴 속에서 벽에다가 끄적였던 그 그림.

그들이 우리에게 소를 사냥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그림을 그렸을까?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커다란 소를 멋지게 잡고 싶었던 것이다.

벽화를 통해 우리는 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들 삶의 방식과 그들이 바랐던 것을 알 수 있다.

문자는 점점 빠르게 인간에게 보급되어 인간이 바라는 형태로 표현됐다.

법령이 되기도 하고 신화가 되기도 하고 역사서가 되기도 하고 예언이 되기도 했다.

우리는 기록된 결과물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전달받고 내 가슴에 그것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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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작가들이 쓴 소설을 보고 인류는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용기를 낸다.

그리고 영감을 얻은 누군가도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출한다.

이런 선순환이 인류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더욱 행복함으로 가득 차게 한다.

우리는 기록의 수많은 목적 중 하나인

지식의 축적이 이룬 역사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류는 언제나 그래 왔듯,

불안하지 않은 시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고 노동할 걱정을 해야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기에

우리 인류를 달래준 것은 다름 아닌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널리 전파되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아주 치명적인 장점이 있다.


우리는 기록의 이 치명적인 장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생각의 표현인 기록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치유받을 수 있다.


기록.

그것이야말로 지구 상에 사는 생명체 중 유일하게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