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왓챠피디아 캘린더 채우기에 재미를 들였다. 거의 매일 부지런히 뭔가를 보고 별점을 매기고 있다. 꽤나 신중하게, 상대적으로 또 절대적으로 비교해 가며 점수를 준다. 그러다 발견한 내 별점 분포의 큰 특징은, 4점 이후 그래프가 급격하게 확 꺾인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작품들에 3-4점까지는 후하게 주지만, 4.5점이나 5점은 아주아주 드물었다.
늘 ‘최고의,’ ‘인생의’ 같은 질문이 어려웠다. 그런데 하필 취업 면접의 단골 질문이기도 했다. 인생작이 뭐예요?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정확히 대답하기를 피하는 방법을 택하곤 했다. “아, 최근에 제가 이런 좋은 작품을 봤는데요~”하는 식의 다른 길로 대답을 틀었다.
최상급의 찬사가 어려운 이유. 사실 나는 알고 있다. 밑천이 드러날까 두려우니까. 물론 언젠가 나타날 완벽한 작품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자는 마음도 조금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최고를 꼽고 나면 아무리 많은 작품을 봤어도 그 이상인 건 없는 거니까, 쉽게 단정 지어질 거라는 걱정이 단단히 박혀있다. 좋아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표현하는 타인을 역으로 내가 그렇게 단정 짓기도 여러 번이었다. 이 사람은 이 작품이 인생작이구나, 난 그거 보다 더 재밌는 게 많던데, 같은 멋 부리고 싶은 좀 야비한 마음.
꽤 괜찮았어, 볼 만했어, 정도의 평을 하고 나면 언제든 그 미지근한 온도 뒤에 숨을 수 있을 것 같은 안전한 기분이 들었다. 심사를 할 일이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후한 쪽보다는 박한 쪽으로 기울곤 했다. ‘이게 재밌어?’ 같은 질문에 답을 하는 건, 그 작품이 별로인 이유를 대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으니까.
그럼에도 늘 좋아하는 것들을 잘 모으고 추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몇 년 전부터 ‘올해의 탑 10’ 정도로 퉁친 애정을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만점짜리 작품은 단 한 편도 없었다가 며칠 전, 여러 번 곱씹어도 늘 좋은 영화 <애프터썬>을 그 명예의 전당에 올려 주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내 안의 만점 영화를 늘리는 일. 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아 많이 보고 이왕 좋아할 거라면 이리저리 재지 말고 왕창 좋아하기. 그렇게 좋아해 버릇해야 더 좋은 것들이 나에게 올 거라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