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소비하는 산책
성인이 되어 일이라는 것을 시작하고 6년 차 무렵부터, 나는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과연 즐거울 수 있는 영역인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재미’라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겠으나, 나에게 회사에서 느끼는 재미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직접 해낼 수 있다는 것에서 오는 재미였다. 상상으로만 꿈꾸던 그 ‘일’을 직접 내 머리와 손을 거쳐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쁨.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 ‘재미’의 세 번째 의미. ‘좋은 성과나 보람’ 그에 적합한 감정이었다. 물론 옆자리 동료나 상사와의 관계,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웃게 만들고 울게도 했지만, 그런 것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것이었고. 나를 지탱해 주던 진짜 재미는 일을 통해 느끼는 성과, 만족감, 자부심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6년 차에 접어들면서는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일을 대하는 내 태도는 권태로웠고, 흔히 말하는 번아웃이 일상을 덮었다. 익숙해져 이골이 난 일에 새로운 재미랄게 없었고, 회사 생활은 더 이상 재미와는 무관한 것이 되어버렸다. 회사에 있는 8시간 중 숨통이 트이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의무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공적인 시간. 나는 매일 점심시간을 기다렸다.
점심을 먹고 나면 커피를 마시러 카페에 들르는 것은 일종의 루틴처럼 정해진 코스였다. 커피 한 잔 들고 정오쯤의 햇볕을 쬐며 회사 주변을 걸었다.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서 하던 그 산책이, 회사에 재미가 떨어질 무렵부터 꽤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딱히 새로울 일이 아닌데도 그랬다. 일 생각은 좀 하지 말자, 마음먹으니 보이는 게 많아졌다. 회사 근처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6년 만에 회사 직원이 종종 사다 주던 쿠키 집의 위치를 알게 됐다. 아직도 여기를 몰랐냐는 동료의 타박은 덤으로 따라왔다. 매일 회사 주변을 샅샅이 산책하며 나는 회사 동네를 알아갔다. ‘회사 동네’라니. 심적으로 가까워지기 힘든 ‘회사’와 정겨움의 대명사 격인 ‘동네’를 나란히 같이 쓰는 것이 어쩐지 이질적이었지만, 매일 같이 걷는 산책길이 ‘회사 주변’인 것보다는 ‘회사 동네’인 편이 더 나았다.
회사 동네를 산책하면서 옆 건물 화단에 핀 꽃은 건물 주인이 아니라 근처 사는 할머니가 심어둔 것이라는 사실을, 회사 건물 뒤에는 까만색 고양이가 다니는 후미진 작은 공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도 매일 같은 시간에 나와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라던가, 몇 년을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카페가 세 군데는 된다던가,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작은 떡집에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이 다녀간다는 것들 따위를 새로 알았다. 점심시간에도 밀린 업무를 위해 적당히 걷다 들어갔던 때에는 몰랐던 것들. 나는 일과의 권태기를 끝내기 위해 일과 헤어져야 할지, 관계 개선을 위해 좀 더 노력해야 할지를 고민하며 한동안 점심 산책을 길게 이어갔다.
산책이 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며 나는 일과의 관계를 개선해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매일 같은 길을 6년이나 걸었지만, 이제야 처음 본 장면들이 있는 것처럼, 이제는 흥미가 다 떨어져 버린 일에도 어쩌면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얼굴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산책이 내게 새로운 풍경을 보여준 것처럼, 6년 동안 부대끼며 지지고 볶아온 일에도 어딘가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장면이 숨어있지는 않을까, 있다면 어딘가에 다시 시작할만한 재미가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그 마음. 그 마음으로 나는 나의 재미였던 그 ‘일’과 다시 잘 지내보기로 했다. 그래도 영 재미가 없으면, 그때는 쿨하게 보내주자고 마음 먹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