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세탁분류- 잠재 돼버린 경험들

1-4. 찢어진 옷감, 대물림된 가난

by 정경

아버지는 예고 없이 떠나셨고,

우리에겐 슬퍼할 시간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집 한 채와

그 집보다 훨씬 거대한 빚더미였다.

상속을 포기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지함은 우리 가족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꿈 많던 대학생 언니는

책 대신 가계부를 들었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는 교복 대신 작업복을 입어야 했다.

대학이라는 꿈은 사치였다.

친구들이 수능 공부할 때

나는 사회라는 거친 바다에 내던져져

생존의 언어를 익혔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20대와 30대는

오직 '버티는 것'이 목표였다.

내 인생이라는 옷감은

여기저기 해지고 찢겨 나갔지만,

기워 입을 여유조차 없었다.


가난의 얼룩은 이미 내 피부처럼 고착되어,

나는 평생 이렇게 얼룩진 채로 살아가야 하는

팔자인 줄로만 알았다.

"도대체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일까? “

마흔셋, 우울증과 공황장애는 날 집어삼켜

더 이상 버틸 수 없음을 직감하며


내 안에서 터져 나온 이 처절한 질문이

세탁소의 문을 두드리는

첫 번째 노크가 될 줄은 그때의 나는 몰랐다.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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