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근원적인 질문: 나는 누구입니까?
지독했던 소음이 사라진 빈자리에는
낯설 만큼 투명한 고요가 고이기 시작했다.
세탁기의 거친 회전음이 멈추고 맑은 물이 정지된 순간,
나는 평생 단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던 질문 하나를 던졌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까?”
머릿속에서 논리적인 정답이 문장으로 들려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묵직하고도 따뜻한 ‘전율’이 밀려왔다.
그것은 머리가 아닌 영혼이 내보내는 공명이었다.
이 질문을 화두 삼아 명상을 이어가던 중,
나는 마침내 안개 너머의 진실 하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저 고통받기 위해,
혹은 누군가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인간의 삶’이라는 독특한 옷을 입고,
그 안에서 희로애락이라는 다양한 감정의 결을 체험하며
의식을 한 단계 상승시키기 위해 이곳에 잠시 머무는 고귀한 존재였다.
이 깨달음은 어떤 종교적 믿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다만 나를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닌
‘살아있는 존재’로 바라보는 거대한 관점의 이동이었다.
내가 나를 무엇이라 믿느냐에 따라
내 삶의 방향타는 완전히 다르게 꺾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평가나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내 안의 깊은 ‘신성’을 믿기 시작한 순간,
비로소 내 인생에는 흔들리지 않는 제대로 된 신념이 자리 잡았다.
그 믿음이 굳건해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가난의 얼룩이 밴 둘째 딸도 아니었고,
평생 빚이라는 무게에 허덕여야 하는 가련한 피해자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결코 못난 사람이 아님을,
오히려 온 우주의 사랑을 듬뿍 담고 있는
눈부시게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온몸으로 느꼈다.
신기하게도 나 자신을 향한
이 극진한 사랑의 시선은 곧장 타인에게로 흘러갔다.
내가 신성한 존재임을 아는 순간,
내 앞에 서 있는 상대 역시 나와 똑같은 빛을 품은 존재라는 사실이 보였다.
그의 거친 말투 뒤에 숨은 불안을 읽고,
그가 내보내는 에너지의 흐름을 느끼며,
나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담담하게
그를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된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형제들이라는 감각,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이제 우리는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지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보자.
혹시 마음 깊은 곳에서는 비명이 터져 나오는데,
겉으로는 “난 이제 괜찮아”라며 가짜 세제를 뿌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 대답이 정말 당신의 영혼이 말하는 진실인가,
아니면 상처를 다시 깊숙이 묻어버리기 위한 방어기제인가?
진정한 세탁은 가장 더러운 얼룩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나를 속이는 거짓 위로를 멈추고
내 안의 신성을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는 ‘본세탁’의 문을 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