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애벌빨래: 묵은 숨을 털어내고 내 선택의 얼룩을 마주하는 시간
내 안의 목소리들을 분리해 보기로 한 뒤,
나는 '명상'이라는 생소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가만히 앉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그 당연한 행위가,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졌다.
폐부 깊숙이 공기가 닿지 않았다.
가슴은 단단한 납덩이가 들어찬 듯 답답했고,
숨은 자꾸만 목구멍 근처에서 가쁘게 겉돌았다.
나는 그때야 알게 되었다.
평생을 '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아온 나는,
고작 숨 쉬는 것조차 '잘 해내야 하는 과제'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내 몸은 24시간 내내 긴장된 채 '수동 모드'로 통제되고 있었다.
긴장으로 굳어버린 흉곽을 억지로 열려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심스럽게 아랫배 깊숙한 곳으로 숨의 길을 내주었다.
뻣뻣하게 굳은 세탁물을 미지근한 물에 담가 불리듯,
내 몸의 긴장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 세탁소 주인의 팁: 조종사가 아닌 관찰자가 되세요.
명상은 숨을 억지로 뜯어고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저 숨이 더 깊게 들어간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지금 그대로의 거친 호흡, 얕은 호흡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입니다.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그저 문 앞에서 구경하는 주인처럼 바라만 보세요.
그렇게 조금씩 숨의 길이 터지자,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깊은숨이 몸 구석구석을 돌기 시작하면서,
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쓰레기들이
하나둘 물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억울했던 순간들,
나를 아프게 했던 사람들의 얼굴,
그때 삼켰던 비릿한 눈물들….
예전 같으면 그 기억의 불길에 휩쓸려
다시 화를 내거나 자책하며 타올랐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는 관찰자의 자리에 앉아 떠오르는 기억들을
가만히 바라보며 속삭였다.
"아, 내가 그때 정말 많이 아팠구나. 참느라 참 애썼구나."
타인이 아닌 내가 나를 처음으로 진심으로 알아주었을 때,
지독했던 결핍의 얼룩 위로 따뜻하고 맑은 위로의 물길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그 지독한 상황들이 왜 일어났을까를 되짚어보았을 때,
나는 불편한 진실 하나를 마주했다.
그 모든 고통의 순간 속에 나의 '선택'이 섞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의 가스라이팅에 휘둘린 것도,
부당한 대우를 참아준 것도,
결국 '상황을 망치고 싶지 않다'거나
'버림받고 싶지 않다'는 나의 선택이 만든 결과였다.
이것은 결코 자책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인생의 운전대를 다시 잡겠다는 서슬 퍼런 선언이었다.
누군가를 원망하며 영원한 '피해자'로 남는 대신,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자 비로소 힘이 생겼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이제는 내가 다시 거절하거나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
"아, 모든 게 내 선택의 결과였구나.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
인정과 따뜻한 위로가 만나자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토록 시끄럽던 머릿속 소음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이게 정말 되네?'라는 경이로움과 함께 의식은 점점 투명하게 확장되었고,
마침내 머릿속이 텅 비어버리는 지복(至福)의 순간에 닿았다.
찌든 때를 빼낸 옷감이 맑은 물속에서 하늘거리는 것처럼,
내 마음도 비로소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