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제3의 눈을 뜨다: 관찰자의 발견
지독한 소음 속에 갇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던 그 무렵,
유튜브에서 들려온 한 문장은 마른땅에 떨어지는 벼락같은 구원이었다.
“우리의 무의식에 물음표로 질문해 보세요.
‘난 왜 이렇게 행복하지?’”
질문을 던지면 무의식은 어떻게든 답을 찾아낸다는 원리.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 내 머릿속을 괴롭히던
그 끔찍한 비난과 과거의 목소리들이
바로 내 ‘무의식’이라는 낡은 컴퓨터가 돌리고 있는
자동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
나는 나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낯설고도 경이로운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안에서 쉼 없이,
아주 자동으로 올라오던 그 불길한 생각들의 실체가 말이다.
“넌 할 수 없어.”
“꿈 깨, 현실적인 기준으로 보면 이렇게 해야만 해.”
내면의 목소리는 집요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할 때마다
“네가 감히?”라며 비아냥거렸고,
조금이라도 숨을 쉬려 하면
“현실을 봐, 지금 네 처지에 그게 말이 돼?”
라며 차가운 잣대를 들이밀었다.
그 목소리들 속에는 날카로운 생각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뒤엉켜 있던 눅눅한 감정들도 함께 섞여 있었다.
내가 얼마나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져 있었는지,
솟구쳐 올라오는 답답함을
얼마나 애써 누르며 살아왔는지 눈치챈 순간,
나는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동안 나는 이 오물 같은 생각들을
‘나의 진심’ 혹은 ‘현대인의 합리적인 사고’라고
착각하며 소중히 품고 살았던 것이다.
나는 이제 나를 세 가지로 나누어 정의하기로 했다.
무의식(세탁물 속의 쓰레기): “넌 못해”, “현실을 봐”라고 속삭이는 자동 프로그램. 수십 년간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대라는 환경에서 수집된 낡은 데이터일 뿐, 나의 본질이 아니다.
상위자아(세탁소 주인): 어지럽게 돌아가는 세탁기 밖에서, 통 안의 빨랫감들이 어떻게 뒤엉켜 있는지 묵묵히 지켜보는 관찰자. “아, 지금 내 안에서 ‘할 수 없다’는 얼룩이 올라오고 있구나”라고 담담하게 알아차리는 ‘진짜 나’의 시선이다.
육체(세탁기): 이 모든 소용돌이를 담아내고 있는 그릇. 명치가 답답하고 심장이 뛰는 것은 세탁기가 과부하를 견디며 내보내는 신호였다.
관찰자의 눈을 뜨자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내 무의식이라는 세탁물에서 분노라는 얼룩이 빠져나오고 있음’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내 안의 소음은 여전했지만,
적어도 그 소음이 ‘나’는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숨통이 트였다.
나는 더 이상 그 무의식의 목소리에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 함께 엉엉 울며 돌아가는 대신,
세탁기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차분히 지켜보는 주인이 되기로 했다.
내 안에 엉겨 붙은 낡은 생각의 쓰레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분류하고,
기꺼이 버리기로 굳게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