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카오산로드
일상은 조용하고 시끄러운 소음들과 생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삶,
그리고 그들과 함께 잠시 머무르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
그곳은 카오산로드라 불린다.
생을 이어가는 그들에게는 이 거리의 장면들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잠시나마 이 곳의 역사나 문화들,
그리고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통해서 태국 아니 방콕도 아닌 카오산로드를 본다면
나는 카오산이 이런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카오산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드러내는 시간은 오후 5시
그 전에는 분명 조용히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3월에도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인 이 곳에서 한낮에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그늘진 바에 슬금슬금 들어가서 그들의 삶으로 스며드는 것,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는 일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과의 비행거리 6시간, 시차는 -2시간
이 -2시간 차이가 중요하다. 태국이 축구를 사랑하더라.
대부분의 가게에서 하루 종일 축구를 상영한다. 프리미어리그를 한국보다 두 시간 일찍 볼 수 있으니까
낮동안은 저녁에 보지 못한 중계를 보면 되고
밤에는 축구를 좋아하는 여러 사람들과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보면 된다.
얼마나 멋진 거리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하루 종일 맥주 마시며 축구를 보는 일이라니.
아마 다음에 방콕에 온다면 온 시간을 이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오후 5시에 가까워지면 그 날 저녁의 생을 이어가기 위한 사람들은 거리 밖에서부터 여행자들을 각자의 매장으로 들어오게 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지만
정작 여행자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그 전의 치열한 경쟁과는 다른 느낌의 여유로움으로 음식을 준비한다.
본격적으로 여유로워져야 할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다.
그곳은 주문을 받는 직원도, 여행자도 서두름이 전혀 없다.
바쁘고 무거운 삶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지 않던가?
언젠가부터 여행을 떠나면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사는 법을 따라 하고 싶고,
그 나라의 유명한 작가나 글 쓰는 사람들을 따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마 유명 SNS의 영향이 클 거다. 그런 있어 보이는 사진들의 한 컷 정도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이라서.
나는 그런 사진 하나에, 글 한 문장에 마음이 잘 흔들리는 사람이라서.
아니, 굳이 그 사람들을 따라 하지 않아도 복잡한 코스나 그 주변의 중요한 여행지는 모두 가서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몸이 힘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에도 계획의 괴로움이 있다면 무의미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교통계획은 중요하고, 지하철 노선도는 필수다. 숙소는 가야 하니까.
그 나라의 문화를 더 이해하고 뭔가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계획이 없고 아무 생각 없이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았다.
여행을 빠른 시간 내에 많이 보고 느끼고 즐기고 싶지만, 일상과 특별함 없는 시간과 마찬가지로 흘러가면 뭔가 억울할 것 같다. 물론 많이 걷고, 많이 보고, 많은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가면 유적지도 보고 박물관도 보고, 사람들이 가서 찍었던 유명한 곳을 간다.
사진 한 장이 주는 즐거움이 여행의 동기가 되서부터였다.
삿포로의 눈 오는 풍경은 아직도 직접 못 봤다.
7월의 라벤더 밭, 하코다테 야경, 교토 옛 거리, 오사카 거리 등은 다행히 봤다.
생각보다 좋았던 곳도 있고, 잊을 수 없는 기억도 존재하는 소중한 보물 같은 기억이 되는 곳이 그렇게 많지 않은 해외여행의 기억 속에 있다. 모두 무계획으로 어렵게 간 곳이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런 기록들은 다른 사람들의 글과 사진이 아니라 직접 경험함으로써 나의 사진과 글이 되는 것이 좋았다.
모두가 같은 곳에서 같은 구도의 사진이 의미가 있을까.
내가 내린 답은 아주 다행히도 여행사진은 우연한 기회에 아주 우연히도 의미를 갖는다.
자신의 사진과 글이 의미를 갖게 되는 시간까지 생각보다 많은 경험을 겪게 된다.
내가 어떤 길을 걸었고, 어떤 것을 먹었고, 이 곳을 도착하기까지 얼만큼 힘들었는지 자신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한 장에도 많은 이야기가 녹아 있다는 것을 글쓰기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꽤 놀라운 일이다.
그게 바로 글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그리고 여유 있게 안을 파고 들어가는 기억 속의 여행을.
여행을 가고 나서 다시 여행을 가는 과정들 속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녹아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시간까지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도.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운전석이 오른쪽인 국가를 여행했다. 일본과 런던 그리고 태국
그 외는 홍콩을 갔지만 기억나는 건 맛없는 음식과 몇몇의 사진뿐이다.
세 나라의 공통점이 또 하나 있다. 그건 왕을 모시는 국가인데, 왕을 모시는 국가에서는 운전석을 오른쪽에 둔다고 한다. 그래서 거리에는 일본차들이 많다. 그런데 일본인 관광객이나, 일본어는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카오산로드에는 태극기가 걸려 있고, 거리에는 에어컨 빵빵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해외를 나갈 때마다 찾게 되는 한국의 기록들,
그것이 나의 존재이고 내가 태어난 나라임을 증명해주는 나의 말들과 한글들이 있다.
인간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많은 국가가 생겨나고, 그들은 그들의 독자적인 문화를 구축해 나갔다.
지리의 이유도 있고, 기후의 영향도 있어서 서양인이랑 달랐을 것이고 동북아시아와도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인류는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잡았을 것이고, 비슷한 시기에 농사를 지었고, 불교를 종교로 믿고 따르며 왕이 생기고, 전쟁을 하며 세력을 키웠을 것이다.
태국 또한 찬란했던 문화를 지닌 왕조국가라고 한다. 여기서 찬란 했던은 과거형이며, 역사 속에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옛 수도의 고대 유물들뿐이다. 역사의 많은 국가들은 가장 번성하던 시기를 거친 후에 멸망했다.
그래서 번성한 시기의 화려한 유물로 현재에 후손들은 고대를 기억한다.
태국도 그런 나라 중 일부였다. 동남아 아니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유일하게 독립을 유지하던 나라, 태국의 역사는 현재를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가진 역사 속에 살아가는 방콕의 사람들과 많은 여행자들이 자유롭게 그들의 땅에서
그들의 역사로부터,
그들의 현재로부터,
오늘의 일상으로부터,
조금은 더 여유롭게 더 있어 보이게
그리고 다시 복귀하면 그때의 여유를 그리워하며
여행을 추억할 것이고
또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