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 이토록 힘들고 지치고 괴로운 결혼생활이라면
평범한 7월의 어느 하루였다. 잠을 설쳤던 것 같은데 두터운 암막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맹렬한 여름 볕의 기세에 8시 무렵 저절로 눈이 떠졌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다음 10분 정도 더 뒤척거리다가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고 안방에서 나왔다. 함께 사는 이의 직업 특성상 혼자 집을 지키는 때가 많았는데, 이 공간을 오롯이 내 마음대로 향유할 수 있는 그 시간들을 좋아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그 사람이 일을 나가면서 3박 4일을 혼자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고대하던 소풍을 가는 아이처럼 마음이 땅과 하늘 사이 어딘가를 둥둥 떠다녔다. 기대에 찬 설렘도, 곧 다가올 시간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 두 지점을 아슬아슬하게 줄 타며 그렇게 하루를 시작했다.
부부는 서로를 잘 아는 만큼, 상대가 어떤 지점에서 무너지는 지를 정확하게 파악해 그곳을 한치의 오차 없이 찌른다. 상담 선생님의 말마따나 우리는 서로를 무너뜨리기 위해 작정한 듯 사정없이 상대의 허점을 찌르고 또 찔렀다.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를 안기고, 다음날 울먹이며 미안하다, 잘못했다, 다신 그러지 말자고 말하는 시간이 반복, 또 반복되었다. 누군가는 이 지난한 싸움이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여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우리는, 아니 나는 아니었다. 도무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싸움도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부딪히자 미안하다는 말도, 앞으로 잘해보자는 말도,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도 전부 수증기처럼 공중에서 흩어져버렸다. 3박 4일 중 이틀은 침대와 소파에서 꼼짝 않고 있다가 사흘 째 되는 날 청소하러 서재에 들어갔는데, 책상 위에 편지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미 휘발돼 사라진 감정으로는 그 사람의 편지도 다만 흰 종이에 적힌 까만 글자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 이제 각자 갈 길 가는 게 좋겠어.
가슴속에, 머릿속에 분명 쏟아내고 싶은 말들이 많았던 것 같은데 막상 그 사람의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래도 다짜고짜 헤어지자고 할 순 없으니 여러 가지 이유를 대다가 나온 말이 이것이었다. 이제 각자 갈 길 가자. 당신과 나는 너무 다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다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만큼. 부부는 서로의 다름을 안고 살아가야 하지만, 우리에겐 이 다름이 점점 더 날카로운 모서리가 되는 것 같다. 그 모서리가 자꾸 나를, 당신을 찌르니 함께 있는 상태가 괴롭다. 마음 편히 살자. 결혼 생활이 우리에게 이토록 힘들고 지치고 괴로운 것이라면, 헤어져서 각자의 길을 가자.
아마 그때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의 이혼은 속전속결이었다. 2019년 가을에 식을 올렸는데 이듬해 여름 그 사람이 이혼 이야기를 꺼냈고, 다시 2021년 여름에 내가 이혼 이야기를 꺼냈으니 사실상 결정된 미래나 다름없었다. 내가 누구 좋자고 이혼을 해주느냐는 위악도, 사랑하니까 보내줄게라는 위선도 없이 우리는 무미건조하게, 덤덤이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남은 물건들을 어떻게 처분할지 의논할 때도, 법원에서 합의이혼 신청서를 접수할 때도, 한 달 간의 조정기간을 거쳐 최종 판결을 받고 구청에 이혼신고서를 제출할 때도 감정적 요동 따윈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엄마는 "넌 울지도 않네?"라고 의아해했다. 아빠는 "오히려 씩씩해서 보기 좋다"라고 했는데, 슬픔을 감추려고, 억지로 눈물을 참으려고, '이혼'이라는 실패 앞에서 부러 당차게 보이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내 마음이, 내 상태가 그랬다. 후련하다는 형용사는 밀려드는 공허함을 담지 못했고, 슬프고 괴롭다는 표현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하고 평온해진 마음과 어울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공허함과 평온함이 중첩된 상태였다.
작년 8월 최종 합의이혼 판결을 받고 반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공허함과 평온함이 공존하고 있다. 다행인 건 그 비율이 2:8 정도로 나는 꽤 많이 진정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이혼과 동시에 직장을 구했고 서울을 떠나 다시 오고 싶었던 일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이 한 몫했다. 작지만 충분한 나만의 공간에서 매일 눈을 뜨고 눈을 감는 모든 순간이 좋다.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음악이나 라디오를 틀고 커피 내리는 시간으로, 토스터기로 빵을 구울 때 방 안으로 스며드는 달콤한 냄새로 하루가 채워진다.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아직 어색하지만 이것만은 감히 확신을 갖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혼 후 내 삶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이 글은 이혼을 권장하는 글이 아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어서 이혼한 게 아니며, 이혼한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혼이 어떤 불행 혹은 어떤 굴레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순 있다. 우리는 이 선택이 우리에게 '최선'이라 생각하며 이 길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나는 만족스럽다. 물론 이 모든 과정과 시간을 견뎌내 현재의 결론으로 도달하기까지 절대 쉽지 않았다. 처음 상대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땐 그야말로 삶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주위의 모든 빛이 한꺼번에 소멸돼 혼자 덩그러니 어둠 속에 갇힌 것 같았으니까. 2020년 여름, 부부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마감을 한 달 앞둔 번역을 끝내고 오겠다는 말과 함께 도망치다시피 신혼집을 나왔다. 그리고 약속한 한 달이 다 되어갈 때, 그는 내가 지내는 곳으로 찾아와 말했다.
"우리 이혼하자."
(다음 글인 '당신의 마음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에서 내용이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