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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나 Jan 05. 2024

1인 기업가를 위한 브랜딩 디자이너가 된 이유

20년 차 광고디자이너에서 1인 기업가를 위한 브랜딩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20년간 국내 대기업의 광고 디자인을 해왔습니다. 약 2000여 종의 작업물을 디자인했습니다. 함께 일했던 주 광고주들은 시티은행, 신한은행, 굿모닝신한증권, jp모건, 삼성 등이었습니다. 전단, 리플릿, 팸플릿, 책자, 포스터, 신문, 배너 등등의 작업을 업으로 삼으며 일을 해왔습니다. 작게는 명함부터 크게는 와이드광고, 박람회 행사까지 인쇄물로 나오는 모든 작업물을 디자인했습니다. 제가 만든 작업물이 세상에 나오면 뿌듯했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미련하게 쉬지 않고 일만 했습니다. 그런 성실함 덕분에 스카우트돼 가며 더 좋은 직장으로 점차 옮겨졌지만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점점 지쳐갔습니다. 제가 마치 공장에서 일만 하는 로봇 같더라고요. 그 당시 사무실 마당에 감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물기 없이 푸석푸석하게 말라가는 모습이 꼭 저처럼 느껴졌습니다. 


디자인일이라고 하면 남들은 멋있어 보인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야근도 많았고 퇴근 무렵이면 갑작스럽게 생기는 일들에 저녁약속이 취소되는 일은 허다했습니다. 이 분야에 일하는 친구들은 그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어요. 정시에 퇴근하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디자인 일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


야근 때마다 먹던 자장면이 신물이 날 무렵이었습니다. 늦은 오후쯤, 거래처의 잦은 수정 전화에 지쳐있을 때 아빠한테 안부전화가 왔어요. 술을 거하게 드시고 딸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한 아빠의 전화를 짜증을 내며 받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집에서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을 때였고 집에 자주 가지도 못했습니다. 약주를 드시고 나니 딸이 보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 마음도 몰라주고 회사일에 대한 짜증을 아빠한테 화풀이하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그렇게 퉁퉁거리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빠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시게 되었고 낮의 짧았던 전화가 아빠와의 마지막 통화가 되었습니다.


저는 아빠의 전화를 그렇게 받았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회사를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게 회사 탓인 것 같았습니다. 사실 누구 탓도 아니었지만 그때는 그렇게 저의 죄책감을 덜고 싶었어요. 그리고 1년여를 방황했습니다.





1인 사업가가 되다


다시 디자인 회사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웠고 다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개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액세서리로 시작하다가 점차 범위를 넓혀 여성의류 쇼핑몰로 확장했습니다. 우당탕 좌충우돌 실수의 연속이었습니다. 처음 사입을 하러 밤시장에 갔더니 초짜라고 상인들은 제게 옷도 안 팔고 투명인간 취급하더라고요. 새벽녘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서러움에 복받쳐 울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야근하던 디자이너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초심자의 행운이 따라주었는지 노력에 비해 장사가 잘 되기도 했어요. 


쇼핑몰 사업이 조금씩 확장되다 보니 월 몇천 매출도 찍어보기도 했습니다. 온라인 광고로 천만 원을 써보기도 하고, 대형쇼핑몰에 입점판매를 위해 엠디들하고 미팅도 하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때는 판매에만 초점을 두다 보니 럭셔리 쉬크패션 스타일도 판매했다가 귀여운 아기자기한 캐릭터 상품도 팔았다가, 여름에는 섹시 콘셉트인 수영복도 판매했습니다. 팔릴 것 같으면 계속 스타일을 바꿔가며 판매를 했습니다. 





울고 싶은 1인 기업가


쇼핑몰 사업은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습니다. 광고디자인 회사 다닐 때보다 잠을 더 못 자고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이 끊기기에 회사 다닐 때보다 더 치열했어요. 1인 사업을 하려면 슈퍼맨 또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합니다. 물건을 사입하고 제품을 촬영하고,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주문관리부터 배송, 고객상담, 광고 돌리고 택배포장도 해야 합니다. 택배 아저씨는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작업하다가 상품포장하다가 정신없이 하루가 후딱 지나갑니다. 


다크서클은 기본 옵션에 걸어 다니는 좀비 같은 1인 사업가의 생활은 5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결국 빚을 잔뜩 지고서야 사업을 접었습니다.





사업을 통해 얻은 3가지 


1인 사업가로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제가 깨달은 3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 콘셉트가 없는 브랜드는 힘이 없다는 것

제가 쇼핑몰을 처음 시작할 때 초창기 마음은 디자인을 해봤기 때문에 상세페이지 작업 등 어느 정도의 자신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디자인만으로는 힘이 없습니다. 아무리 디자인이 예뻐도 콘셉트가 없다면 앙꼬 빠진 붕어빵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저는 브랜드 중심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 일을 했는데도 정작 제 브랜드는 콘셉트도 없이 판매에만 급급했습니다. 장사를 하다 보면 자기 브랜드의 콘셉트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콘셉트가 없는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사업의 브랜딩화에 실패했습니다. 



둘째, 1인 기업가는 너무 힘들다는 것.

1부터 100까지 혼자 다하는 1인 사업은 너무 힘들다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고, 체력의 한계를 겪게 되고 모든 것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일을 하던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설령 알바를 구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1인 기업가는 오늘도 웁니다. 



셋째, 기획부터 세일즈까지 다 해본 경험이 생겼다는 것. 

사업을 해보지 않았다면 저는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업을 하다 보니 기획부터 세일즈까지 자연스레 경험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이론상의 공부가 아닌 찐 공부가 되었습니다. 무엇을 팔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자연스레 상품 기획력을 갖추게 되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사줄까 하는 고민으로 판매를 높이는 상세페이지를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사업은 실패했지만 얻은 것들은 참 귀했습니다. 





새로운 시작, 브랜딩 디자인


쇼핑몰 사업을 그만두고 새롭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디지털튜터를 해볼까? 책서평으로 인플루언서가 돼 볼까? 블로그를 열심히 써서 파워블로거가 돼 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다 퍼스널 브랜드를 만들면 돈이 된다기에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워가며 고민하다 보니 제가 가야 할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브랜드는 내가 좋아하는 일, 했던 일에서 찾아야 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좋아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자신과의 오랜 질문을 통해 제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제가 가장 오랜 시간 해왔던 디자인일이었습니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브랜딩에 힘을 실어주는 브랜딩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습니다. 쇼핑몰 사업을 통해 브랜딩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을 그만두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으려고 방황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배우고 헤매고 다녔지만 사실 제 열정은 디자인에 있었습니다. 죄책감으로 피해 다녔지만 돌아 돌아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었습니다. 멀리 있을 것 같던 파랑새가 알고 보니 가까운데 있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오랜 경력으로 쌓은 디자인 기술, 핵심콘셉트를 뽑아 시각화해 주는 제가 가진 능력을 누구를 위해 쓰며 살아야 할까? 제 브랜드 타깃은 당연히 일인다역하는 슈퍼맨들, 1인 기업가였습니다. 제가 직접 해봤고 그분들의 하루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혼자 발을 동동 구르는 1인 기업가 사장들이 못 보는 부분을 터치해 주고 알려주고 싶었어요. 저는 1인 기업가들의 브랜드에 디자인 브랜딩을 통해 핵심가치를 높여주는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졌습니다. 


이런 오랜 고민과 경험을 통해 대기업을 위해 일하던 광고디자이너가 1인 기업가를 위한 브랜딩 디자이너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브랜드 성장을 지원하는 브랜딩디자인 미나랩을 오픈하고 1년이 지났습니다. 1인 기업가들의 브랜딩디자인 작업을 하며 '함께 성장하기'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일하면서 얻은 인사이트와 필요한 정보들을 더 나누며 브랜딩 디자이너로 단단히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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