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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ngFei Jun 14. 2024

말의 힘, 행동의 힘

우연한 기회에 커리어 코칭을 받다

나는 사실 심리 상담, 코칭 같은 거 별로 믿지 않았다.

나는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은 굉장히 유명한 커리어 코치의 어씨스턴트 롤 면접이었다. 캐나다에 있는, 정신의학분야까지 섭렵한, 전체 상담사 중 1%에 속하는 분의 어씨스턴트라니, 커리어 코칭이 나에게 맞는지, 내가 스스로 센터를 차리고 내 걸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였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분이 자기 센터를 차리고 일이 많아지면서 그만두게 되어 그 후임을 찾고 있었고 나는 그게 더 매력적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데 반전이었다. 그 전임자가 될 수도 있던 그분은 내가 그 롤을 택하기에 아까운 커리어를 갖고 있고, 나와의 인터뷰 끝에 너의 능력에 맞는 다른 잡을 찾아라. 너는 어딜 가도 잘 해낼 수 있는 능력과 마인드를 갖고 있다. 난 지난 몇 년간 수없이 이력서를 냈고 올봄에만도 50건이 넘는 이력서를 냈는데 소식이 없다고 전했다. 그녀는, 본인이 운영하는 커리어 센터에서 한 달에 한 명에게 봉사차원의 무료 커리어 코칭을 해주는데 이번달에 너가 해볼래? 어 나 할래!


그렇게 커리어 코칭을 처음 받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두 가지 질문지를 주며 생각해 보고 면담을 하자고 했다.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5년 혹은 10년 후 내 모습은 어떠할거 같은가. 난 첫 질문에서부터 할 말이 없었다. 왜냐면 난… 정말이지 별생각 없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진짜 문제는 사실 난 내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른다는. 내 또래의 한국 사람들이라면 많이들 공감할. 나이 40 중반이 되도록 내가 뭘 잘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궁극적으로 내가 이루고 싶은 혹은 되고 싶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 내 안에 없었다. 어릴 때는 누군가가 꿈이 뭐냐 목표가 뭐냐 그런 질문들을 자주 받았기 때문에 그냥 대충 둘러대며 사람들이 잘 어울린다고 얘기해 준 아나운서 기자 이런 걸로 둘러댔었다. 하지만 그냥 대학만 보고 달려온 내 학창 시절에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리가 만무했고 대학교 때는 그런 목표가 없어 방황하다가 남들처럼 영어공부 토익 토플 그런 점수를 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사회에 나가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준비랄까. 회사를 다니면서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원치 않는 공부는 계속했다. 공부는 들여다보고 싶지도 않지만 주변 모두가 MBA를 준비하기도 했고 일이 하기 싫어 나를 업그레이드시켜야겠다는 좋은 명분하에 놀고 싶었다. 그러다가 홍콩으로 가면서 환경의 변화를 원했던 나는 공부 따위는 단박에 접었다.


그러고는, 나이가 들면서 피곤한 삶이 싫었고 그냥 나에게 지금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다 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거라는 믿음과 정말 그렇게 살아왔다. 물론 계획하고 목표 있는 삶을 설계하며 살아온 사람들과 속도의 차이나 방향성의 차이는 있다. 나는 우왕좌왕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돌아갈지 모르지만 그런 경험을 소중히 생각했고 그저 그 과정을 즐기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왔다. 결과보다는, 결과에 치중된 삶을 살면 얼마나 피곤하고, 내 인생 자체가, 매일이 행복하지 않을 걸 경험해서 알기 때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계획 없이 중구난방 선택한 듯 보이는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 하나로 합쳐져 무릎을 탁 치며 이래서 내가 그동안 이 모든 걸 해왔구나! 하는 날이 올 거라고 믿으며. 믿기로.


그런 선상에서 나는 남들처럼 뚜렷한 목표나 대학원 석사 박사를 마치면 이런 걸 해야지 하는 게 없었다. 그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시작, 학교로 돌아간 게 좋았고 논문을 써가는 과정이 너무나, 정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절대적으로 아카데믹하고 딱딱하기만 한 논문을 내 성격대로 취향대로 재미있게 쓰고 싶었다. 아카데믹한 백그라운드를 바탕으로 나는 나와 내 주변인들의 삶을 소설책 읽듯이 써 내려갔고 심사해 주신 교수님들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잘 쓴 논문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우수 논문상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수도 없이 들었던 정말 듣기 싫었던 졸업하고 뭐 할 건데?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나는 그런 특별한 목표 없이 비싼 인문학 강의를 듣는 중이었고 이걸로 나중에 뭘 해보겠다기보다는 그냥 재밌으니까? 하고 싶었으니까 그냥 내가 재밌는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어떤 교수님은 기대하는 답이 정해진 분도 있었다. 첫 수업에서 자기소개하는 날 졸업하고 무엇을 하고 싶으냐의 질문에 기다리는 정답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이미 나를 숨이 막혀왔다. 그런 정해진 답을 가지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은 나와 맞지 않음으로 바로 드랍했다. 한국의 틀에 박힌 교육인지 사람들의 마인드인지 전형적인 틀에 박힌 사고가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열린 마음의 지도교수님과 친구를 만났고, 그렇게 2년의 과정을 알차게 즐겼다. 여하튼 난 과정을 즐기는 사람이고 그럼 반드시는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결과 또한 좋을 거라 믿는 사람이었고, 그저 오늘을 충실히 즐겁게 살자는 사람이었다.


다시 돌아와서,

면담하는 날. 코치에게 내 생각을 거침없이 얘기했다.

코치가 간파한 게 뭔지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문제인 알을 깨고 나오는 것. 나를 둘러싼 단단한 벽을 뚫고 나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것. 그것을 할 수 있도록 북돋아주었다. 나에게 내 준 아주 간단한 숙제. 내가 평소라면 하지 않을, 나를 깨고 나올 어떤 행동을 해보라는 것. 아주 간단한 예로 내가 평소 입지 않을 옷을 산다던가 하는.


그 결과는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왔다. 평소의 나라면 하지 않을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일이 어떤 라이프 체인지를 불러일으키는지.


나는 취미가 도자기 만드는 거다. 한 4년 정도 해왔고 나는 그곳에서 나 혼자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걸 좋아한다. 나 혼자만의 고요한 힐링타임이랄까. 그날도 그랬다. 그러다 워싱베이에서 스튜디오 오너와 스몰토크를 하게 됐다. 순간 가슴이 콩당콩당 뛰며 이건 기회다! 스튜디오에서 파트타임 선생님을 하고 싶다고 어필해 보자! 어떤 알을 깨고 나와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보니 평소라면 조용히 내 할거나 하고 말았을 텐데 커리어 코치 덕분에 용기내고 있었던 거다. 그 계기로 두 달 후 나에게 파트타임 인스트럭터의 기회가 왔다. 그리고 나는 포터 커뮤니티가 생겼고 그룹 전시회도 참여하게 되었다.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그저 기적 같은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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