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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나나고양이 Nov 24. 2019

나폴리카페 <감브리누스>의 전통이 준 아릿함에 대해서

이탈리아 남부 식도락 기행의 기록

 

다락방 나의 작은 서재에서 글을 쓰는 비 오는 로마의 오후.


머리 위에 기울어진 긴 창 아래에 앉으니 내 바로 위에서 빗방울이 자꾸만 부서져 흘러내린다.

고개를 모니터에서 거두어 들어서 하나, 둘 흘러내리는 빗방울을 쳐다본다.

맥북 바로 옆에서 타오르는 바닐라 쿠키향 향초를 쳐다본다.

타오르는 촛불에는 눈을 그곳에서 띌 수 없게 만드는 봐도 봐도 빠져드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잉얼 잉얼 좌우로 움직이는 불. 나는 느끼지 못했는데 바람이 부는지 좌우로 부산히 흔들린다.

작은 촛불을 계속 쳐다보면 뽀얗게 기분이 붕 뜨고 따뜻해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고요히 앉아만 있는데 빗방울은 끊임없이 부서지듯 깨지고 있었고, 

촛불은 계속해서 흔들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더라.

온화한 가을 날씨의 로마. 그래도 낙엽이 진다.
어렸을 적 모스크바 공항에서 산 나의 애착 인형은 다락방 서재에 안착했다. 살짝 다락방 창문이 보인다.


혼자서 글을 쓰는 서재는 실내 공간이지만, 밖에 있는 그 어느 장소보다 나를 자연에 집중하게 해주는 공간이다.

한참을 계속이고 부서지는 빗방울을 바라보다가 글을 쓰기 위해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오늘 글을 쓰려는 곳은 이탈리아 남부의 도시 '나폴리'이다.

많은 이들이 나폴리에 대해서 글을 쓸 때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기도 한다.

워낙 많은 여행자들이 겁을 내는 도시이기도 하고 마피아 때문에 그런지 이상하게도 멀게 느껴지는 이 도시에 대해서 쉽사리 손이 가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나 또한 나폴리로의 여행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최대한 미뤄왔다.

그렇지만 이유는 정반대로

가장 특별하고 좋아한 여행이기에 함부로 쓰기가 싫어서 좋은 컨디션의 날로 뒤로 뒤로 미루어왔다.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디저트를 남겨뒀다가,

 뿌듯한 저녁식사로 포만감이 들었을 때,

 따뜻하게 데운 우유와 함께 마시는 것처럼

항상 작은 일상에서도 크레셴도와 클라이맥스가 적당히 있어야 재미있는 법!)


오늘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실내에서 자연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보니,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해준 도시 '나폴리'가 떠올랐고, 미끄러지듯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폴리는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만만한 여행 상대가 아니다.
나폴리의 오래된 고서를 판매하는 서점
나폴리 느낌이 풍기는 골목 구석의 사진

그 안에 너무나 많은 이야기보따리가 있다. 

그렇기에 주제 하나를 들고 가서,
이를 돋보기 삼아 자세히 도시를 들여다보며 곱씹어보고 
다시 오롯이 소화시키는 시간을 가진 후에야 
영양분을 얻을 수 있는 고난도 여행도시이다.


개인이 자연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게 선호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 문명이 없는 대자연의 공간에서 머물며 흠뻑 빠지는 경험을 선호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자연에서 익사이팅한 스포츠를 함으로써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것은  
'그 도시만의 향이 가득 담긴 식사'로 자연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뉠 텐데,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사는 '아침 식사'이다.


여행 내내 도시의 가장 도심부에서 있는 아름답고 고풍스러운 카페 '감브리누스(Gambrinus)'에서 

나폴리의 아침을 맞이했다.

바(Bar)에서 서서 좀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지만,

식도락 휴양 여행에서 전 세계 여행객들에 치이면서 향긋한 커피에 집중력을 흐릴 수는 없다.

여유롭게 테이블(Tavolo) 자리를 받아서 방에 들어가서 플레시비토 광장이 보이는 발코니 자리에 앉았다.

플레시비토 광장과 샤케라토와 나폴리 디저트로 달콤한 아침식사
카페 그릇마저도 역사가 그득그득해요

바가 아닌 룸으로 들어오면, 같은 가게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운 분위기에

앤틱 가구들에 둘러싸여서 로코코 시대를 떠올리는 고풍스러운 태도의 웨이터들에게 서빙을 받는다.

밖의 북새통의 공간과는 단절된 채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행 내내 아침 식사를 감브리누스에서 하고, 점심 식사 후에도 입가심 커피를 하러 바에 잠시 들렸다.

그러다 보니 금세 30년 이상 이곳에서 일해오신 바리스타 매니저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었다.


테이블 자리와 다르게 굉장히 붐비는 바에서 매니저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
마치 끊임없이 명마가 달리도록 당근과 채찍질을 오묘히 선사하는 마부처럼 
그는 젊은 바리스타들을 훌륭하게 지휘했다.


점심시간에는 룸이 아닌 부산한 바(Bar)자리에서 커피를 재빨리 마시고 자리를 떴다. 뒤에 매니저 할아버지. 앞에 젊은 바리스타.

30년이 넘는 경력의 베테랑 매니저가 바리스타에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벌써 6잔의 에스프레소를 준비했어. 그 나이에 그렇게 굼뜨면 어디에서도 너를 다신 안 받아줄 거야. 

빨리. 움직여!"


워낙 참견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그 바쁜 사람들 사이에서 매니저에게 멀리서 소리 지른다.

(이탈리아 종특인 것 같다. 나도 들이대는 편이지만 그는 더하다. 같이 다니면 가끔 조금 창피함.) 

"에에 그만해. 손님 많고 이 친구가 멋져서 손님들이 이렇게 몰리는 거잖아?"


그 사이에 눈빛을 교환한 남편과 혼나고 있던 (젊은 그리고 또한 아주 단정한) 바리스타는 말한다.

"두고 봐! 나는 곧 이 곳에서 반드시 탈출할 거야!"라고 외쳤지만 옅은 미소를 띠며,

누구보다도 더욱 빠르게 컵을 나르고, 주문을 받는다.


하하. 정말 영화 속의 광경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의 장면이 떠오른다.

반면 기계는 에스프레소 기계뿐인데,

수많은 바리스타들의 열정적이고 규칙적인 움직임과 

찻잔과 그릇 받침대가 부딪히는 소리가 전차 소리처럼 우렁차게 다가온다.


칙칙- 하고 에스프레소 기계의 훈기 빼는 소리를 시작으로 

매우 리드미컬하게 마치 모든 바리스타가 한 사람인 것처럼 일을 한다. 

서로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실은 아주 신나게 그들만의 세상에서 일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앞의 여사님에게 에스프레소는 언제 줄 예정이야. 여인의 지친 표정이 안 보여?"

"지금 전해주려고 손을 움직이는 중이니 좀 그만 닦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에에 말이 많아! 움직여! 네가 커피를 나르는 속도가 어떻게 내가 커피를 내리는 속도보다 느려?"


특유의 나폴리 사투리로 던지듯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 

그들의 진한 외양과 억양은
'이탈리아의 북부 지역보다 유난히 쓰고 진한 나폴리의 커피처럼'
그들만의 색깔이 있다.

대신 그 향이 진해서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것이 아닌
그 진한 향이 그들만의 리듬에 의해 명쾌하게 해석되어서
공간에 퍼져나가는 그런 매력이 있다.


이 카페를 구성하는 앤틱한 가구와 창 밖의 웅장한 궁전에 분명 나폴리의 역사가 깃들여져 있다.

하지만 30년째 커피를 한 카페에서 내리는 매니저에게도 살아있는 나폴리의 역사가 남아있다. 

그리고 그의 방식으로 일을 배워나가는 바리스타들에 의해서도 이 역사는 후대로 또 전해질 것이다.


과학만으로 효율적인 커피를 만들고, 한 때의 유행만으로 카페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이탈리안 스타일이 아니다.


이탈리안 스타일의 카페는 감브리누스처럼 당시에 현존했던 나폴리'사람들'에 의해서 

후대로 도시 나폴리의 '본성(nature)'이 깃든 커피의 맛과 

바리스타의 '태도(attitude)'를 그대로 전해주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은 장소를 풍유했던 당시의 모든 '존재'들이다. 

그것을 알고 나폴리 사람들은 후대에 장소만을 남겨주는 것이 아닌 

그 장소에 숨쉬었던 '존재'의 역사까지 전해주는 것이다.


현대의 사람에 의해 전해지는, 살아있는 그 역사를 눈 앞에서 느끼면서 조금 소름이 끼쳤다.

뭐랄까..역사의 향이 깃든 사람을 마주하니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나와 같은 또래인데 그와 내 사이에 있는 거리가 가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바리스타는 일하면서 움직임의 방식만으로도 
역사의 존재를 열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들은 역사의 본성(nature)에
부산스럽게 깃들여지는 것 같았다.
그곳에서 나는
어쩔 수 없는 제3의 관찰자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살아가는 방식에 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과거의 방식을 답습만 하는 것을 좋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전통이 되고 장인정신이 되는 것이다.


커피를 내리는 행위, 커피를 만드는 장소, 하나하나 사소한 것에서도 소중히 '무언가 멋진 것'을 만들어내서 그 특별함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 


생각해보면 왜 반드시 매 순간 진취적으로 변하여야 된다고 생각해왔었을까?

과거의 내 모습이 그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답습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 개개인은 자신만의 역사를 살아가고 가꾸어가는 장인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이런 개개인이 자신을 다루는 장인으로서 이 전통을 누군가에게 오롯이 전해주고 그것이 전해지는 것은 태초의 방식 외에 또다시 내가 이 땅을 떠나도 영원히 숨 쉴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아닐까.


감브리누스 카페 입구의 모습


진취적. 성장. 도 중요하지만 보존. 전통. 의 밸런스도 중요한 것 같다.

과거를 되돌아보니, 

이 양립하는 가치에 대해서 나도 귀띔을 하고 살았으면, 

조금 더 세상을 넓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아마 나와 비슷한 나이의 커피 바리스타를 바라보면서 묘한 존경심이 들었던 것 같다. 

아릿한 존경심.


이렇게 나폴리라는 도시의 자연과, 본성은 커피 한잔과 바리스타에 깃들여져 있다.

분명 숨 쉬고 있었다.

    

전통 방식의 디저트와 커피 그리고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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