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오래된 식당에 갔다. 그 식당은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때부터 하여 살아남은 식당 중 하나였다. 나는 그 식당의 존재를 물려받았고, 오랜만에 마주친 그 오래된 맛을 꽤나 즐겼다. 그 맛은 어떤 자극적인, 화려하지 않은 맛을 가지고 있었으며 겨우 걸을 나이에 처음 먹었던 그 맛은 지금도 그대로였다. 식당의 주인조차 나처럼 부모, 아니 조부모님에게부터 그 맛을 이어왔음에 틀림없을 것이며 그 안엔 맛뿐 아니라 그 가정, 아니 나라 역사의 한구석 어딘가에서 유의미하게 존재해왔을 것이다.
오래된 맛에 나를 되돌아보느라 신경 쓰지 못하였지만, 둘러본 그 식당 안에서의 나는, 가장 어렸다. 이미 사회 초년생의 나이를 훌쩍 넘어버린 나지만, 이곳에서는 가장 어렸다. 문득 식당의 사장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그 안에 막내라는 것은 더 이상 역사가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고, 포기없이 이런 어린 나에게도 음식을 대접해주니 말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메뉴판을 다시 보니 이제는 젊어진 사장의 노력이 꽤나 보였다. 사실 오래된 식당을 찾는 일이란, 메뉴판을 보지 않고 주문하는 것이 버릇이라지만, 사라질 수도 있는 것에 너무 무관심했던 듯 싶다.
나는 배가 무척 불렀음에도, 조심스레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였고 두려운 설렘으로 음식 나오길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된 곳에서 처음 마주한 음식은 과거의 것과 같이, 꽤나 슴슴해 보였다. 젓가락을 들어 맛본 그 음식은 옛것에 가까웠다. 새롭지만 새롭지 않았다. 이는 분명 사장이 포기하지 못하는 이 식당, 아니 오랜 시간 그 가족이 지켜온 맛임에 분명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맛이 이 공간에 나보다 더 어린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만들지는 의문이었다.
많은 생각들로 밥을 먹던 찰나, 아주 어린 커플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그 커플은 메뉴를 보며 고민을 했고, 나는 참견을 하고 싶은 폭포수와 같은 마음을 억누르는데 힘썼다. 커플은 오래된 메뉴가 아닌 새로운 메뉴를 주문하였다. 나는 속으로 탄성을 내질렀다. 그것이 오지랖이었는지, 이 식당에 대한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는 그것은 이미 엄청난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음식을 다 먹은 나는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계산대로 향했다. 사장은 내가 어릴 적 그랬듯 똑같이 밝게 인사를 건네어 주었다. 예전에는 조부모님끼리, 그 다음은 부모님끼리였겠지만 이제는 그 손자들끼리 그 인사를 건네받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시간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하며 그 위화감에 웃음을 지었다.
나는 민폐인 것을 알지만 조심스레 사장에게 계산은 내가 할 테니, 어린 커플을 위하여 내가 배웠던, 사장이 배웠던 가장 기본이 되는 그 음식을 대접해 줄 수 있겠냐 물었다. 사실 이는 그 어린 커플이 아닌, 나를 위한 이기심이었다. 나는 이 식당이 사라지기를 원치 않았기에, 어린 누군가들이 이 식당의 맛을 알아 더 널리 퍼뜨려 주기를 원했을 뿐이다. 그래야, 내 자식에게도 이 맛을 내 조부모처럼, 부모처럼 알려줄 수 있지 않겠는가.
사장은 먼저 어린 커플에게 물었고 어린 커플은 나를 보며 인사를 했다. 분명 그 어린 커플은 나를 기억하지는 못할지언정, 그 맛은 기억할 것임에 틀림없다. 나는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나온 그곳은 화려하고 새것 같이 보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간판들로 즐비했고, 나는 빛바랜 찬란함을 뒤로 한 채, 집으로 향했다.
이 글은 사실 클래식 남성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며, 다시 적힐 <옷의 본질>의 프롤로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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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네일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jang yun hee
07JUN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