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나를 죽이러 온 나의 구원자 (ADHD 청소년의 학창詩(시)절)
그러곤 며칠이 지나 다시 현수의 부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기 너머로 불안정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 결국 죽었어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나는 일요일 오전, 그날 하루의 시작을 위해 근처 카페에서 일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햇살은 찬란했고 눈이 부셨지만 그 햇살을 마다하고 싶지 않아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길가의 강아지는 지나가며 꼬리를 흔들고 왈왈 짖어댔고 카페의 주문소리, 벨소리, 사람들의 대화소리가 가득했지만 어떤 것도 평온함을 깨지 않는 어울리는 소란스러움이었다.
그때였다. 이 소란스러움 속 유일한 소음이 쨍하게 울려대기 시작했다. 내 휴대폰이었다. 이상한 예감. 평소보다 훨씬 그 전화의 진동이 커다랗게 울렸다. 살펴보니 핸드폰 액정에 현수 부모님의 이름이 보였다. 이 분들은 나에게 전화를 하지 않는다.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일상적이지 않은 부모님의 전화가 일상의 균열을 내며 기묘한 불편감을 주었다.
"여보세요."
나는 그대로 노트북도 팽개친 채 카페 앞 작은 공터를 하염없이 빙글빙글 거닐며 통화를 했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나도 모르게 눈에 잠깐 힘을 주게도 됐고 그러다가 다시 무의식적으로 공원을 빙글빙글 돌았다.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부모님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이제야 좀... 나아졌다 생각을 했는데.. 왜... 우리 애한테 이런 일이...”
언제나 마음을 졸여왔던, 그럼에도 사랑에 마지않아 내 성질대로 한번 소리 지르지 못한 이 가엾은 어른이 한번 더 무너질 것이 걱정이 되었다. 언제나 그랬다. 아이는 언제나 이 부모에게 항상 마음에 드리워진 어두운 음영이었다. 한고비를 지나면 그다음 고비마저 가파른 그런 사이였다.
통화를 끝마치고 나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리에 털썩 앉자 흐릿한 장면이 떠오른다.
현수 부모님의 얼굴이다. 곧 먹먹한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진다.
“다 현수 덕이예요.”
부모는 원체 원리원칙 주의자였다. 소박하게 책임을 다 하며 살면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렇지만 그 안에는 소통이 부족하고 고지식하며 원리 원칙 예의 준수로 인해 타인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묵인하고 감정적이며 불안정한 모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완성한 데에는 그 만한 원가족의 사정이 있다. 부모세대로부터 이어지는 사랑의 방식이 비겁하거나 폭력적일 경우 아픈 부모가 완성된다. 현수의 부모님은 그렇게 살아가는 과정동안 꽤나 아팠고 그 아픔을 알아봐 하나의 가정을 꾸렸으며 아프게 태어난 현수를 품에 안게 되었다. 우리는 처음 만나 이 모든 버거움을 어떻게 감당할지부터 함께 이야기 나눠야 했다.
그런 현수의 부모는 그들의 각오대로 변화했다. 물론 그들의 생각보단 훨씬 긴긴 시간이 흘렀지만 말이다.
사춘기의 정점인 현수에게는 여전히 '이랬다 저랬다' 열받게 하는 부모겠지만 그들은 현수를 애정과 미안함 그리고 소중함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늘 약간 겁먹고 조심스러웠다.
그런 그들은 자신들이 깨지고 부딪히며 인간적으로 변모한 모든 과정이 다 현수 덕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아이 덕분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며, 현수가 아니라면 굳이 노력하지 않았었을 거라며 자신들의 변화를 언급했다.
‘너 때문에 잘 살아가던 우리의 삶이 무너졌다.’ 라며 엉엉 울던 부모는
'너 덕분에 모든 감내의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라며 자부심으로 눈을 빛내는 어른이 되었다.
내게 존경스러운 부모이자 함께 고군분투하며 세상을 살아간 동지인 이 부모의 목소리가 선하다.
그리고 이내 절망스러웠던 휴대폰 너머의 목소리도 웅웅 거린다.
'..... 결국 죽었어요.'
...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서웠다. 세상이 무너지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생각보다 현수는 멀끔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정황을 전하는 아이는 달달 다리를 떨다가 침묵을 이어가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다 상황의 나열 끝에 나직이 말을 뱉었다.
“내가 곁에 있어 줬더라면...”
사망한 누군가를 곁에 둔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망한 그의 자의라면 깊은 관계를 했던 누군가는 영문모를 타살을 당하게 된다. 현수는 자책하고 자책하고 시간을 돌리고 싶어 했다.
“처음이었는데.. 처음....”
동그랗게 몸을 감싸는 형태의 라탄 의자에 앉아 옹송그린 아이의 등을 바라본다. 축 늘어져 있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차라리 몰랐다면....”
가장 아름답고 행복했을 마음을 나눠준 첫 여자친구와 너무 빠른 작별을 나눠버린 아이는 그 짧은 사이 천국을 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졌다. 현수말처럼 차라리 몰랐더라면.. 어땠을까..
나는 너무 빠른 위로로 현수의 굽은 등이 억지로 펴지길 바라지 않았다. 현수의 시간을 존중하는 것이 나의 최선임을 알고 있었다. 같이 긴 긴 침묵. 그러나 이날 현수는 울지 않았다. 다만 괴로워했다.
"내일 학교에 가기 싫어요."
현수는 여전히 몸을 수그린 채로 말을 했다. 나 역시 현수의 등 위로 답변을 보냈다.
"그러니? 그럼 사정을 전달해 보자. 충분히 가능할 거야."
현수는 아무것도 답변하지 않았다.
"학교에 가면 어떨 것 같아서 그래?"
"이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신경 쓰여요."
현수는 고개를 들었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말을 꺼내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응. 그거 참 난감하겠다. 우리 이제 졸업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려움은 없을 거야. 다만, 현수가 요즘은 학교 가는 게 좋다고 했잖아. 수업도 없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이 시간이 좋다고. 너무 적어서 아쉽다고도 했고."
"끄덕"
"현수가 현수한테 조금 여유를 주면 좋겠어. 지금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건 너무 자연스럽고, 현수는 어떤 감정이든 의논하고 표현할 친구가 이젠 있으니까. 친구가 너를 난처하게 하면 그걸 그대로 표현해도 좋아. 하지만 그것 자체를 지금 하고 싶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는 것도 괜찮아. 현수 마음을 잘 돌봐줄 수 있는 방법이면 다 괜찮아 현수야."
"선생님"
"응?"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넌 어떻게 생각해?"
".. 별 의미 없어요. 이젠"
"왜?"
"나한테 맨날 나쁜 일만 일어나니까. 계속 이럴 거면 뭐 하러 살아요"
"계속 불행할까 봐 그게 걱정되는 거구나..."
현수는 고개를 푹 떨궜다.
"현수야. 계속 불행하고 힘들 수 있다고 하면 너 어떻게 할래?"
현수는 고개를 든다.
현수는 나의 진지하고 무거운 표정을 보며 망설이고 있다.
그러곤 일그러진 표정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개 같을 거 같은데요.."
그런 현수의 모습을 보며 내심 반가운 웃음이 내적으로 피어난다.
현수의 분노를 보며 안타깝고 또 동시에 그 삶을 향한 열정이 내게 닿았다.
나는 현수의 질문이 불안하지 않았다.
"현수야. 선생님도 너처럼 나의 선생님이 있었다고 이야기했던 거 기억나?"
"끄덕"
"나의 첫 번째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내가 선생님에게 이렇게 질문했어.
'제 삶이 지금처럼 불행할까요? 저는 그렇다면 이제 다 끝낼 생각으로 왔어요. 마지막 확인을 하고 싶어서요'"
나는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타들어가는 절망.
불행을 피해 도망가다가 이제 더 이상 피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목도했을 때 멈춰서 그 불행을 마주 보는 절망.
그렇게 절망을 마주하고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되었던가.
"일단, 나는 오늘까진 잘 살았다고 생각해."
현수는 생각에 빠진 듯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으나 몸은 의자에 붙여 똑바르게 앉아 있었다.
"너무 힘들었던 그날. 그 뒤로 어떤 때는 무척 행복했고, 어떨 때는 그전보다 더 불행한 기분도 들었어. 게다가 그때 누릴 수 없는 걸 지금은 당연하게 하고 있어."
"..."
"음.. 현수를 보면 지금은 현수 곁에 친구도 생겼고, 인기도 있고, 공부는 좀 더 해야겠지만..."
"아.."
나는 미소 지었다.
"네가 선택해 오고 노력한 건 꽤나 그럴싸하잖아. 앞으론 더 그럴싸하지 않을까?"
현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침통. 멍. 수긍. 응시.
그리고 끄덕임.
".......
내일 학교는 갈래요."
현수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현수가 떠나고 난 뒤 창문을 보니 뉘엿거리던 해가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 아래 희미한 가로등만이 보인다.
네온사인 전등 없는 시골에서는 어둠이라고 칭하기도 어려운 도시의 밤 풍경은
그럼에도 온전한 어둠이다. 어둠 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일 밝을 찬란함은 빛이 되는 것이다.
극단의 끝에서 언제나 새로운 극이 시작되므로 그 끝의 지점을 명명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 고통은 훗날 현수에게 어떻게 기억이 될까.
그리고 나에게는 어떠할까.
한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위해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유토피아 일까.
또는 구원의 끝단으로 절망을 선사해야 할까.
하지만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
구원도 절망도 죽음도...
그럼 나는 어떻게 지금으로 당도했던가.
무엇을 선택해왔나..
[그냥 죽긴 억울하니까 딱 하나만 더 해보고 그러고 하자. 유작이니 최선을 다해서..]
나는 과거의 나의 그날을 죽음으로 선택하고 부제로 구원이라 칭하겠다.
현수의 훗날 일기장은 어떠한 기록으로 남게 될지.. 좀 더 살아서 확인해 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