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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골프 Sep 12. 2018

연장전의 심리학

박세리 선수

2006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 18번 홀에서 2 퍼트만 해도 쉽게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박세리는 3 퍼트를 해서 다 잡았던 2년 만의 우승의 기회를 연장전으로 미뤘다. 연장전은 다시 18번 홀에서 치러졌다. 3번 우드의 티샷이 다소 짧았던 박세리는 캐리 웹에 앞서 세컨드 샷을 하기 위해 핀까지 200여 야드를 남겨놓고 하이브리드 클럽을 빼들었다. 그린의 왼쪽과 뒤쪽은 해저드여서 샷이 조금이라도 길거나 왼쪽으로 날아가면 해저드에 빠지는 상황이었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핀을 직접 노리다가 해저드에 빠뜨려 더블보기를 만들거나, 안전하게 오른쪽을 공략해서 3 퍼트를 했던 홀이다. 해설자가 안전하게 오른쪽으로 쳐야 한다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그린 왼쪽 방향으로 샷을 날려 보냈다. 깃대를 향해 날아간 공은 기적과도 같이 홀에 가까이 붙으면서 그녀의 어퍼컷 세리머니를 만들어냈다. 이 샷은 한국 선수들에게 까칠한 해설가, 도티 페퍼에게 "She's back."이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골프 시합의 연장전은 서든데스로 치러진다. 이는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직결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 샷 한 샷의 중요성이 극을 달한다. 이러한 중요성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들고, 이는 압박감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압박감이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박세리는 압박감이 하늘을 찌르는 연장전에서 6전 6승을 기록했다. 연장불패인 것이다. 하지만 연장전에서 안타까울 정도로 성적이 안 좋은 선수들도 있다. 김인경은 5전 5패, 스테이시 루이스는 3전 3패이다. 이러한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도의 압박감 상황에서 김인경이나 스테이시 루이스 같은 선수는 자신의 능력보다 훨씬 못한 수행을 하고, 또한 박세리 같은 선수는 자신의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올린 것이다. 스포츠 심리학자는 압박감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치보다 훨씬 못한 운동 수행을 하는 것을 초킹(choking)이라 부르며, 이와 반대로 압박감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의 최대치를 발휘하는 것을 클러치(clutch performance)라 부른다.


    2015년 LPGA 투어 캐네디언 퍼시픽 위민스 오픈 연장전에 들어간 스테이시 루이스 선수의 몸과 머릿속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단 심장이 터질 듯이 펌프질 했을 것이며,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달음질을 했을 것이며, 온갖 걱정이 생겼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까지 실패했던 연장전의 기억으로 인한 걱정, 한국 선수들에게는 유독 졌던 안 좋은 기억으로 인한 걱정, 리디아 고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이번에도 지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 등. 일단 걱정이 생기면 자신이 논리적으로 맞다고 생각하는 일을 의식적으로 한다.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저절로 스윙이 그녀의 몸에 배어 있는 상태인데, 걱정은 몸에 배어 있는 스윙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다시 의식적으로 점검한다. 그러면 몸에 자동화되어 있던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무의식적으로 하던 젓가락질을 의식적으로 잘하려고 집중해보라. 의외로 젓가락질이 부자연스러워짐을 느낄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치이다. 이것을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지나친 분석에 의한 마비현상”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바로 초킹이다. 스테이시 루이스는 이미 경기를 먼저 끝내고 연습장에서 샷을 가다듬고 나온 상태였다. 아마도 그녀는 연습을 하는 동안 자신의 샷을 분석하였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연장전 상황에서도 계속 이어져 그녀의 스윙을 부자연스럽게 만들었고, 그녀는 4번의 샷 중 3번의 샷을 실패하였다. 경기가 끝난 후 루이스는 선두에 5타나 뒤에 있었기 때문에 연장에 간 것 자체로 잘 했다고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이 연장전 패배로 인해 스테이시 루이스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와 반대로 연장불패 박세리 선수는 연장전이라는 압박감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녀의 인터뷰에서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 박세리는 “연장전에 가면 더 편해진다.”라고 했다. 그녀는 연장전의 압박감을 매우 쉽게 단순하게 생각했다. 또한 여러 번의 연장전 승리의 경험은 그녀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자신감은 압박감 상황에서 특별히 중요하다. 스포츠 심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는 스트레스가 가져다주는 부정적 효과를 중화시킨다. 또한 이러한 자신감은 걱정이라는 놈이 자신의 동작을 부자연스럽게 하기 전에 지체 없이 동작을 하도록 도와준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이 NFL의 필드 골 자료를 분석한 결과, 특히 종료 시간이 3분이 채 남지 않았거나 연장전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편이 타임아웃을 요청한 경우 성공률이 떨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렇듯 압박감 상황에서 시간이 많다는 것은 역효과만 초래할 뿐이다. 자신의 움직임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구가 몸에 자동화된 움직임을 대신할 기회가 많아질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테이시 루이스가 압박감 상황에서 초킹이 아닌 클러치 수행을 하려면 어떤 연습이 필요할까? 불이 난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실전처럼 연습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것을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훈련”이라 부른다. 연습 상황이 실전과 비슷하면 비슷할수록 위기의 순간에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을 처리하는 능력이 향상된다. 즉, 연습과 실전의 차이를 줄이는 것이 관건인 것이다. 이는 현재 선수들에게도 많이 사용되는 훈련법이다. 예를 들어 1미터 숏퍼팅을 100번 연속할 때까지 연습하는 훈련법이 대표적이다. 100번 연속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실패를 하면 다시 처음부터 연습하는 것이다. 이러한 가벼운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연습도 스트레스 상황에 조금은 익숙해지게 만든다.


    하지만 압박감 상황에서의 초킹은 거의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스포츠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운동선수가 스트레스 때문에 무너지기 시작하면 이를 멈추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스테이시 루이스의 경우 연장전에서 첫 번째 샷을 실패했을 때, 아마도 자신이 실패했던 과거의 경험이나 자신이 실패를 했을 때 잃게 되는 것에 생각에 집중했을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동물이 우리에서 탈출하려다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뇌의 반응과 비슷하다. 이러한 뇌의 반응이 두 번째, 세 번째 샷도 실패를 가져왔다. 이때 스테이시 루이스는 더 이상의 초킹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는 것이 중요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순간 일단 “그만”이라고 소리를 쳤어야 했다. 그리고선 자신의 현재 기분을 캐디에게 솔직히 이야기하고, 다음 샷을 훌륭하게 마쳤을 본인을 상상했어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그녀는 자신의 스윙의 세부적인 부분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한 플레이나 우승과 관련된 키워드에 집중했어야 한다. 이를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전략적 집중”이라 칭한다. 이러한 전략적 집중이야말로 압박 상황에서 초킹이 생길 때 최고의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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