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 파 4홀. 이전 3홀에서 승부가 나지 않아 고스란히 스킨이 이월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부장은 이번 홀이 잃은 돈을 만회할 절호의 기회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전에 버디를 한 기억이 있는 홀이라 더욱 자신이 있었다. 자신 있게 친 티샷은 페어웨이 한복판에 떨어졌다. 오잘공이다. “홀까지 남은 거리는 90야드, 백 핀입니다.” 캐디의 목소리도 꾀꼬리같이 들린다. 그는 평소에 자신 있는 무기, 52도 웨지를 휘둘렀다. 손에 느껴진 감각이 짜릿한 걸 보아 굳샷이다. 그런데 깃대를 향해 똑바로 날아가던 볼은 갑자기 높이 바운드되더니 그린 뒤 오비 구역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린 바로 뒤에 있던 스프링 쿨러 덮개에 공이 맞은 것이다. “90야드라며?” 김부장은 캐디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잘 친 샷이 오비가 나버리자 김부장은 그야말로 뚜껑이 열려 버렸다. 캐디가 거리를 잘못 알려줘서 잘 친 샷이 오비가 났다고 생각하니 분이 풀리지 않았다. 드롭을 하고 친 샷은 뒤땅이 나버려 그린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결국 그 홀에서 김부장은 양파를 했고, 이후의 홀들은 어떻게 지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김부장은 그날 생애 최악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위의 김부장의 경우는 분노가 골프 수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분노 등 여러 정서가 스포츠 수행에 큰 영향을 준다고 믿고 있다. 그중 부정적 정서의 대표격인 분노는 스포츠 상황에서 수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화가 나면 일단 맥박이 빨라지고, 어떤 것을 부수거나 발로 차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는 우리의 몸속에 카테콜라민(Catecolamine)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다량 방출되어 격렬한 행동을 일으키는 에너지를 분출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신피질 신경계가 자극을 받아 언제라도 행동을 일으킬 수 있도록 근육에 긴장상태를 유발한다. 이는 진화심리학적으로 볼 때 인간의 생존과 관련하여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분노의 긍정적 기능은 골프 상황에서는 그리 많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근육이 긴장되게 되어 자연스러운 스윙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화가 나면 주의범위가 좁아진다. 그러면 상황을 전체적인 맥락에서 판단하기 어렵다. 스윙을 하기 전 제반 상황을 판단하고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골프 경기에서는 이러한 주의의 협소화는 매우 큰 손실이다. 따라서 분노를 제대로 조절하는 방법을 습득하는 것은 중요하다.
PGA의 슈퍼스타 타이거 우즈는 오랜 기간 뛰어난 기량과 더불어 다이내믹한 제스처로 구름 관중을 몰고 다녔다. 그는 경기 중 멋진 샷이 나올 때면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며 포효하여, 갤러리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고 갔다. 하지만, 그는 화가 나는 상황에서는 화를 참지 않고, 욕을 하기도 하고, 골프채로 잔디를 심하게 내리치거나 클럽을 집어던지곤 했다. 분노상황에서 그의 이러한 행동은 도덕적 판단을 배제했을 때, 골프 수행에 도움이 되는 행동일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반응이 약간 폭발적인 수준이라 할지라도 분노를 방출하는 것이 내면화시키는 것보다 낫다고 여긴다. ‘분노를 발산하라.’는 이야기는 공격 행동을 통해 정서적 방출, 즉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심리학자들의 몇몇 실험 연구에 따르면 분노 표출은 불안이나 죄책감을 유발하지 않는 조건에서 일시적으로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라운드 중 화가 나는 상황에서 동반자와 캐디가 모르게, 욕을 한다던지, 클럽을 잔디에 내리치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분노를 조절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볼 때, 분노 표출은 분노 자체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못할뿐더러 추후에 더 큰 분노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개인주의 성향의 문화권에서 분노를 표출하도록 권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비해, 우리나라처럼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분노 표출 행동은 조화로운 집단을 위협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라운드 중에 클럽을 잔디에 내리치는 것을 동반자들이 보았을 때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 결과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면 분노를 조절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스포츠 심리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 번째는 ‘기다림’이다. 기다리면 분노와 관련된 생리적 각성 수준은 저절로 감소한다. 그렇다면 충분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만으로도 분노는 결국 감소하기 마련이다. 이는 분노를 느끼면서도 억제하는 것과는 다르다. 분노 표현의 지나친 억제는 나중에 더 강한 표현을 일으킬 수 있으며, 정서적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대다수 의견이다. 이러한 기다림을 도와주는 방법이 호흡을 통한 이완 기법이다. 화가 치밀어 오를 때에는 심호흡을 한다. 이때 먼저 코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을 하도록 해본다. 그 호흡의 온도, 속도, 강도 등을 자세히 느끼고 관찰한다. 그다음에 그 호흡이 기도, 가슴, 배로 전달되고 다시 코를 통해 나가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한다. 김부장은 오비를 확인하고 화가 날 때 다음 샷을 하기 직전 10여 초간만 이러한 호흡을 했어야 했다.
두 번째, 화가 났던 상황에 대한 생각을 바꿔서 분노를 조절하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정이 외부의 사람이나 사건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재화된 비합리적인 사고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따라 분노가 사라질 수도 증폭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김부장이 오비의 원인을 자꾸 캐디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노를 증가시킬 뿐이다. 설령 캐디가 거리를 잘못 불러준 것이 맞더라도 결국에는 그 거리를 받아들이고 샷을 한 것은 골퍼 본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린 뒤쪽에 바짝 붙어있는 오비 구역을 확인하지 않은 것도 궁극적으로는 골퍼 책임이니까 말이다. 이럴 때는 캐디를 용서하고 다음 샷을 평소처럼 하려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다. 용서는 분노를 포함한 부적 정서와 교감신경계의 각성 수준을 낮추는 기능을 한다고 심리학자들은 주장한다. 일단 캐디를 용서한 후, 다음 홀로 이동하는 카트 안에서, 캐디에게 메시지가 감정적으로 전달되지 않도록 부드러운 목소리 톤으로, 캐디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완곡한 표현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건설적인 분노 대처법이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건설적인 주장에 의한 분노 대처법’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쯤에서 항상 나오는 소리. 이러한 분노조절 기법은 평소에 훈련을 해야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다. 분노는 통제 가능한 감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란 놈은 라운드 중 불시에 우리에게 찾아와 우리를 깊은 수렁으로 끌고 간다. 이 수렁에 빠지기 전, 자신이 분노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위의 분노조절법을 사용하려면 평소에 분노상황에서의 훈련이 필히 필요한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화가 치밀어 오는 순간 위의 두 가지 분노 조절 방법을 떠올리고 적용해보길 추천한다. 생활기술과 동시에 골프멘탈기술을 동시에 얻는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