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Yips Oop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탈골프 Jul 18. 2018

함부로 입스(Yips)라 부르지 마라

입스로 고생했던 Bernhard Langer

사회자 :  2008년 US오픈 우승 후 4년간 57개 대회에서 우승이 없었는데 나태해진 것입니까?

박인비 : 골프 용어로 입스라고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공을 칠 수가 없는 상황을 얘기를 하는 거예요. 퍼팅 입스가 올 수도 있고 샷 입스가 올 수도 있는데,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고, 내가 안 될 것 같다, 계속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까 정말 공을 치면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예요. 공이 앞으로 안 가고 옆으로만 가죠. 그런 입스가 너무 심해 가지고 다른 선수들은 두 번 만에 올리는데 저는 세 번 네 번 만에 올리니까 상대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럴 때는 코스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고, 골프 말고는 다른 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골프장은 도저히 못 가겠는 거예요.


    위의 인터뷰 내용은 박인비 선수가 오랜 슬럼프를 극복하고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고 난 얼마 후 TV의 한 토크쇼에 출연해서 했던 이야기이다. 그는 몇 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슬럼프의 원인을 입스(yips)라는 용어로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그가 말한 것은 입스가 아니다. 입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비단 그뿐만 아니라, 골프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골프 교습가나 일반 골퍼, 심지어는 스포츠 심리학자라 불리는 이들도 입스에 대해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정작 입스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이지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이 입스에 관해 말할 때 입스의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사람들은 골프에 관련해서 무언가 잘 안 되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입스라 부른다. 퍼팅 입스, 치핑 입스, 아이언 입스, 드라이버 입스, 심지어는 토털 입스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것은 입스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면서, 입스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일부 골프 전문가들에게 모든 책임이 있다.  그들에게 입스란 용어는 참으로 편리한 용어이다. 뭐든 안되면 입스라고 원인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에 의해 입스가 걸렸는지 그 메카니즘에 대해 어떤 심리학자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입스는 원인이 아니고 결과이다. 


    몇년 전 타이거 우즈가 어프로치 입스에 걸렸다면서 호들갑을 떨던 골프전문기자나 자칭 멘탈전문가들을 기억하는가? 그가 누구인가? 다른 것은 접어두더라도 멘탈능력에 관한한 세계 최강임을 인정받던 이이다. 그런 타이거 우즈가 입스에  걸려 경기를 포기할 정도라면 입스란 병은 불치의 병임에 틀림없다. 그 누구도 입스를 고칠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타이거 우즈는 그냥 부상이 있었을 뿐이고 실전감각이 떨어졌을 뿐이다. 타이거 우즈가 어떤 입스 치료를 받아 입스를 완치하고 80번째 PGA 우승을 이루었는지 누구도 얘기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입스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입스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한 까닭은 입스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만 제대로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TV의 골프 관련 프로그램에서 입스 해결책이라고 들고 나오는 골프 교습가들의 주장을 한번 들어보라. 그들은 결국에는 스윙 메커니즘이나 테크닉에 대해 이야기한다. “퍼팅 잘하는 법”에서 얘기한 내용이 그대로 “퍼팅 입스 해결하기”에서 얘기된다. 결론은 다시 잘 칠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란다. 진짜 입스 환자라면 아주 미치고 펄쩍 뛸 일이다.


    입스는 철저히 과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입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입스라는 현상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다음 두 가지로 정의한다. 첫 번째는 입스를 우리 몸의 신경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국소 근긴장 이상증(focal dystonia)으로 이해하는 입장이다. 여기에 따르면 입스에 걸린 사람은 특정 행위를 할 때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예를 들어, 퍼팅 임팩트를 하는 순간 팔이 통제되지 않고 갑자기 움찔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서 어떤 스포츠 심리학자는 이것을 “팔뚝에 일어난 딸꾹질”이라 비유한다. 따라서 단순히 잘 되던 퍼팅이 잘 안 된다는 이유로 입스라 부를 수 없다. 진짜 입스는 롱퍼팅에서는 생기지도 않으며, 발로 차도 넣을 수 있을 만큼 아주 짧은 거리에서 내 팔을 통제할 수 없어 퍼팅을 번번이 놓쳐야 입스라고 할 수 있다.


    이 입장에서 보면 치핑 입스, 드라이버 입스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국소 근긴장 이상증은 골프 스윙처럼 큰 동작에서는 발생하지 않고 미세하고 정교한 동작에서만 발생하기 때문이다. 국소 근긴장 이상에 의한 입스는 근육의 미세 조종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부분(기저핵)이 이상 동작을 일으켜 발생하기 때문에 입스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뇌에 입력된 특정 동작과 관련된 운동 기억을 깡그리 다시 포맷할 필요가 있다. 즉, 입스를 유발하는 기존 동작보다 더 강력한 신호가 될 때까지 다른 동작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퍼팅의 경우 가장 흔한 방법은 퍼팅 그립을 전통적인 리버스 오버랩 그립을 크로스 핸디드 그립으로 바꾸거나, 일반 퍼터를 롱퍼터 등으로 바꾸는 것이다. 심지어 아예 오른손잡이를 왼손잡이 자세로 퍼팅하게 바꾸기도 한다. 1985년,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마스터즈 토너먼트에서 우승하였고 현재 시니어 투어에서 활약 중인 베른하르트 랑거(Bernhard Langer)가 이러한 방법으로 입스 치료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다. 또한 약물치료도 한 방법이다. 그래서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입스를 focal dystonia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이 손댈 수 있는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입스에 대한 두 번째 입장은 입스를 극도의 불안이 가져온 불안장애의 일종인 초킹(choking)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에 스윙을 배울 때에는 의식적이고 기계적인 사고를 통해 동작을 익힌다. 그러다 수많은 연습을 통해 스윙이 익숙해지면 몸에 익어 의식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동작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문제는 극도로 긴장하는 상황이 되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던 동작을, 자신도 모르게 의식적으로 컨트롤하게 되면서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걸을 때 잘 걷다가도 새삼 발의 순서와 동작을 신경 쓰게 되면 갑자기 스텝이 꼬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초킹 상태가 되면 너무 불안한 나머지 어떤 동작을 할 때 마치 온몸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또 동작이 안되고 안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혀 동작을 주저하게 된다. 심지어 매우 짧은 퍼팅을 할 때조차도 너무 긴장을 해 근육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이 느껴진다. 입스를 초킹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드라이버 입스, 치핑 입스도 발생 가능하다. 다른 샷은 멀쩡한데 특정 상황(예를 들어 티잉 그라운드)에서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 유형의 입스 역시 스윙 메커니즘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연습을 많이 한다고 치유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오히려 연습으로 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입스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치료 방법은 첫째, 동작을 할 때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다. 보통 임팩트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긴장과 함께 클럽을 컨트롤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따라서 임팩트보다는 부드러운 테이크 어웨이, 훌륭한 피니시 자세, 또는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긴장 해소에 도움이 된다. 둘째, 연습 스윙을 편안한 느낌이 생길 때까지 하고 그 감이 없어지기 전에 빨리 본 스윙을 하라는 것이다. 즉, 자동화된 동작의 감각이 남아있을 때, 의식적인 통제가 나오기 전에 재빨리 종작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근육이 경직되고 그립의 압력이 높아질 공산이 크고 이것은 결국 입스 증상을 더 악화시킨다. 하지만 이상의 두 방법 모두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이며, 근본적으로는 평소에 심리기술 훈련을 통해 불안 조절 능력을 향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오랜기간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람들이 입스라 부르는 상황은 단순한 불안 장애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냥 몇 번의 실수로 특정 상황이 되면 불안이 심화되고, 이것은 나쁜 퍼포먼스로 이어지고 실패 기억이 강화되고 더욱더 큰 불안이 생기는 악순환을 겪는 것이다. 입스라 불리는 상황이라면 단순히 퍼포먼스가 좋지 않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특정 상황이 되면 온몸이 마비된 것 같은 상황이 되어야 한다. 필자는 단언하건대 이러한 경우는 많이 보지 못했다. 그러니 입스에 걸린 사람 50~100명을 대상으로 연구했다는 논문은 입스의 정의, 입스의 진단을 정확히 하지 못한 논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물론 우리나라에 입스 논문이 통틀어 몇 편 있지도 않고, 학위 논문이 아닌 학술지 입스 논문은 더더욱 거의 없다.(학위 논문은 동료 연구자의 검증을 충분히 거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은 그 내용에 대해 그렇게 신뢰하는 편은 아니다. 실제 입스에 대해 석사학위 논문을 쓴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대상자들을 만나볼 수 있냐고 묻기도 했다. 물론 거절당했다. 학술지의 경우도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공인된 경우가 아니면 그 신뢰도는 학위 논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단순한 불안 장애의 경우는 일반 심리학에서 사용하는 체계적 둔감화 방법이 의미가 있다. 두려워하는 상황에 서서히 낮은 강도부터 익숙해지게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러면 뱀이 나오는 비디오를 보여 준다던지, 모형 뱀을 만지게 해서 뱀을 두려워하는 증상을 점점 줄이는 것이다. 티샷이 두려우면 주변 환경을 실전처럼 만들어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훈련을 하면 서서히 압박감에 익숙해진다. 그러면 불안감을 초래하던 상황이 더 이상 낯설거나 두렵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상상 속에서 연습을 하는 심상 훈련법이 외국 논문에서 제시하는 거의 유일한 입스의 치료법이다.


   그러나 이 무서운 입스를 아마추어 골퍼들은 많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입스는 상급자에게만 발생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이 로우 핸디캐퍼이거나 전문선수가 아니라면 입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입스는 지나친 연습으로 특정 근육을 과사용하면서 생기는 경우이거나 이미 자동화된 동작이 엉클어지는 경우이기 때문이다. 일반 주말골퍼들이 퍼팅이 안 되거나 드라이버 티샷이 겁나는 것은 그냥 연습부족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불안, 넌 누구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