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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멘탈리스트 Aug 11. 2023

내가 먼저 따듯해도 괜찮아

일상화된 공포에 대한 고찰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내가 살던 집은 꽤 한적한 지하철 종점역이었다. 하루는 미국인 집주인아주머니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꽤 늦은 시간이어서 그랬는지 길에는 사람하나 없었고 그날따라 거리가 평소보다 더 어둡게 느껴졌다. 


"와, 길에 아무도 없네 무섭다!"라고 말하는데 집주인아주머니가 거의 동시에 

"와, 길에 아무도 없네 다행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길에 아무도 없는데 왜 무서워?"라고 내게 반문하셨다. 


그러고는 한참 그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긴 이야기 끝에 도달한 결론을 요약하자면 한국 혹은 동양에서의 공포의 대상은 주로 초자연적인 현상, 즉 귀신같은 것들이고 서양, 특히 미국에서의 공포의 대상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였다. 


 그 당시로서는 공포를 느끼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밌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요즈음의 뉴스를 보면서 그때의 대화가 다시금 떠오르면서 그 문화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최근 뉴스에서, 적어도 우리나라 뉴스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일들이 꽤 자주 일어나고 있다. 처음 신림 묻지마 사건 때는 크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러나 적나라한 CCTV화면들이 공개되고, 2주도 안되어서 서현역 칼부림 같은 모방범죄나 그 뒤를 따르는 모방 범죄 예고들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지 종잡을 수도, 어디까지 가는 건지 상상하기도 싫은 일들이 점차 일상이 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이상하고 좋지 않은 기분이었다.

이러한 일들의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 거시적이고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도대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실 이러한 극단적인 사건들은 그래도 아직 많지는 않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공포스러운 상황들은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술자리 다툼, 운전 중 시비, 점원과 손님의 언쟁 등 일상 도처에 분쟁이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 원인이야 수천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손해 보는 기분'을 참지 못하는 마음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여러 가지 권리나 혜택들이 커지는 풍요롭고 좋은 세상과 동시에 권리에 대한 기대는 그것보다 더욱 커져버렸다. 


 나의 권리가 상대방으로부터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우리는 마치, 권리의 총합이 정해져 있어서 내가 가지지 않으면 남이 내게서 빼앗아 가는 것처럼 행동하고 생각한다. 사실 상대도 그렇게 공격적으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나 스스로가 지레 그런 '혹시 그럴 가능성'때문에 선제적으로 나도 더 공격적으로 이기적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들 사회에 나와서는 친구 사귀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아무래도 어릴 적 비슷한 환경에서의 친구들은 상대에 대한 가치평가 없이 자연스레 서로를 알아가며 친해지는 반면에 사회에서는 그간의 산전수전의 경험으로 먼저 방어적인 기제가 작동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면 먼저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기꺼이 내어준 친구에게는 나도 마음이 스르르 열렸던 것 같다. 더 걷잡을 수 없는 사회가 되기 전에 나부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내가 먼저 따듯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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