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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그 너머의 삶

왜 우리는 돈을 좇는가, 그리고 왜 그걸 내려놓아야 하는가

by sonobol





서론: 돈 버는 이유, 그 끝없는 질문


"사람들은 왜 돈을 버는가?"

이 질문은 세상의 모든 이들이 한 번쯤 던져본 적이 있을 터. 요즘처럼 경제가 불안정하고, 소셜 미디어가 성공을 '화려한 쇼'로 포장하는 시대에, 이 물음은 더 날카로워진다. 나는 최근 한 지인의 긴 에세이를 읽으며 이 질문을 다시 곱씹게 됐다. 그는 40대 중반, 퇴사 후 2년째 글쓰기 삶을 사는 사람이다. "돈 더 많이 벌어서 뭐 하나"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는 그는, 어릴 적부터 매일 밤 글을 쓰며 살아왔다. 15살에 글쓰기의 재미를 깨달은 이래, 25년째 그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직장 다니던 30대에는 돈 생각에 사로잡혔지만, 이제는 "글 쓰는 삶"이 진짜 욕망이라고 고백한다. 한강변 아파트나 명품, 해외 별장 같은 '돈의 상징'은 그에게 별 매력이 없다. 오히려 "돈이 많아도 하고 싶은 건 글쓰기"라며, 이미 그 삶을 살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에세이는 단순한 개인 회상이 아니다. 우리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국에서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지 오래다. 2024년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20~30대 중 65%가 "경제적 성공이 인생의 핵심"이라고 답했다. 돈을 벌면 안정과 자유가 따라온다는 믿음은 보편적이지만, 그 뒤에 숨은 공허함은? 지인의 말처럼,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묻는 순간, 많은 이들이 멈칫한다. 이 칼럼에서 나는 이 질문을 풀어가며, 돈 버는 이유를 세 가지 층위로 나눠 보겠다.

생존의 필요성, 사회적 압력, 그리고 그 너머의 진짜 욕망. 그리고 40대 '불혹'의 나이에서 깨닫는 삶의 단순함을 통해, 왜 우리는 돈을 내려놓고 '하고 싶은 삶'으로 직행해야 하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1장: 돈의 기본 역할 – 생존과 안전망, 피할 수 없는 출발점


돈 버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처럼, 기본적인 생리적·안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상위 욕구는 꿈도 꾸기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2025년 기준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약 7억 명이 하루 2달러 미만으로 버티고 있다. 한국에서도 비정규직 비율이 30%를 넘고, 청년 실업률이 7%대(통계청, 2025년 상반기)를 기록하는 현실에서, 돈은 '안전망' 그 자체다. 집세, 밥값, 의료비 – 이게 없으면 꿈은 사치가 된다.


지인의 에세이에서도 이 부분이 드러난다. 30대 직장 생활 중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 한다. 출퇴근 버스 안에서, 점심시간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 "어느 로펌은 얼마 준다더라, 어느 동네 아파트는 얼마라더라" – 돈은 일상이 됐다. 이는 개인적 경험이 아니다. OECD 국가 중 한국의 노동시간은 여전히 최상위권(연평균 1,900시간 이상)으로, '워라밸'이 아닌 '돈 벌기'가 삶의 중심이다. 돈이 없으면 가족을 부양할 수 없고, 노후를 준비할 수 없다. 2025년 국민연금 고갈 우려가 현실화되면서, 개인 퇴직연금 가입률이 50%를 넘었지만, 여전히 '돈 걱정'은 40대 이상의 70%가 공통으로 꼽는 스트레스 요인(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다.


하지만 이 '생존 모드'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지인은 퇴사 후 2년, "돈은 돈대로 번다"면서도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에 가는" 정도로 만족한다고 한다. 돈이 많아지면 여행을 더 다니고 싶지만, "여행 너무 많이 하면 글 쓸 시간이 줄어"라는 생각이 더 크다. 여기서 핵심은, 안전망이 쳐진 후 돈이 '추가 옵션'이 된다는 점이다. 돈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생존을 위한 돈 버는 행위는 필수지만, 그것이 삶 전체를 지배하면 우리는 '챙겨진 노예'가 된다.


2장: 사회적 압력 – 비교와 자랑의 쳇바퀴, 행복의 함정


돈 버는 두 번째 이유는, '남들보다 더' 있기 위해서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의 '사회적 비교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아를 평가한다. 소셜 미디어 시대에 이 비교는 가속화됐다. 인스타그램에서 한강뷰 아파트 스토리를 보거나, 페이스북에서 해외 별장 사진을 마주할 때, "나도 저렇게 살아야 해"라는 압박이 밀려온다. 지인의 에세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돈 많이 벌어서 남들한테 돈 자랑하는 걸 인생의 중요한 기쁨이라 생각한다"는 지적이 딱 들어맞는다. 돈이 생기면 곧장 명품을 걸치고, 차를 바꾸고, 아파트를 사서 동네를 자랑한다.


한국 사회에서 이 현상은 더 뚜렷하다. '신분 상승'의 상징으로 돈이 작용하는 문화 때문이다. 2024년 KB금융그룹 리서치에 따르면, 20대 중 55%가 "부모님보다 더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해 돈을 번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자랑 문화'는 행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헤도닉 트레드밀(쾌락의 쳇바퀴)' 현상처럼, 더 비싼 걸 사도 만족은 일시적이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시계를 사면 기쁨이 3개월 지속되지만, 다음 달엔 2억 원짜리를 탐낸다. 하버드 대학의 80년 장기 연구(Grant Study)에서도, 장기적 행복의 핵심은 '관계와 목적의식'이지 돈이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지인은 이 함정을 피했다. "나는 굳이 자랑을 한다면, 내가 열심히 읽고 쓴 것들로 자랑하고 싶다"는 말처럼, 어릴 적 어머니와 동생, 친구들에게 A4 용지로 인쇄한 소설을 보여주던 그 순수함을 유지한다. "내가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를 썼어, 어때? 재밌어?" – 이런 자랑이 진짜 기쁨이다. 직장 동료들의 "외제차 뭐가 멋지다더라" 대화에서 벗어나, 그는 "돈 생각"의 굴레를 벗었다. 퇴사 후 삶은 "복잡하지 않다. 적당히 먹고 읽고 쓰는 데 삶을 더 쓰고 싶다"는 심플함으로 채워졌다.


이 챕터에서 배울 점은, 돈 자랑이 '외부 중심'의 삶이라면, 진짜 자랑은 '내부 중심'이라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우리를 비교하게 만드는 시대에, 'FOMO(Fear Of Missing Out)'를 극복하는 건 용기다. 돈을 버는 게 남들 시선이 아니라, 나의 평화를 위한 도구로 전환될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3장: 돈 너머의 욕망 – 글쓰기처럼, 진짜 재미를 쫓는 삶


돈 버는 세 번째 이유는, 자유와 선택을 위해서다. 돈이 많아지면 "먹고 싶은 걸 먹고, 가고 싶은 곳에 여행 갈 수 있다"는 지인의 말처럼,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자유의 크기는 돈 액수와 비례하지 않는다. 억만장자 워런 버핏은 여전히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사 먹고, 빌 게이츠는 독서와 자선에 시간을 쏟는다. 왜? 돈이 주는 자유는 '무엇을 선택할지'에 달려 있다.


지인의 삶이 좋은 예다. 15살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게임도, 영화도 아니라 글쓰기"를 깨달은 그는, 입시 끝난 후 낮엔 게임, 밤엔 소설을 썼다. 20대는 "언젠가 평생 글만 쓰며 살 수 있길" 바라며 작가 수업에 바쳤다. 30대 직장 생활은 돈의 압박이었지만, 퇴사 후 그는 "원하던 삶을 살고 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삶이 아니라, 글 쓰는 삶"이라고 한다. 매일 밤 글 쓰는 습관, 25년의 연속성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이 '진짜 욕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겐 여행, 누군가에겐 예술, 누군가에겐 가족 시간일 수 있다. 하지만 공통점은 '시간'이다. 돈이 많아도 시간은 한정적이다. 지인은 "여행을 너무 많이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 글 쓸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이는 '기회비용'의 깨달음이다. 돈 버는 데 시간을 쏟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밀려난다. 반대로, 하고 싶은 걸 우선하면 돈은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지인의 경우, 글쓰기 블로그나 에세이 집필로 소소한 수입이 생겼다. "억지로 하는 출퇴근을 없애고 나니, 삶에 대한 생각이 아주 심플해진다."


현대 심리학에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플로우(flow)' 이론처럼, 몰입하는 활동(글쓰기처럼)이 진짜 행복을 준다. 돈은 외부 보상, 플로우는 내부 만족이다. 2025년 글로벌 웰빙 보고서(갤럽)에서, "재정적 안정"보다 "일상적 목적의식"이 행복 지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나왔다. 돈 너머의 욕망을 직시할 때, 우리는 '부의 함정'에서 벗어난다.


4장: 불혹의 나이, 삶의 직시와 후회 없는 선택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어야 한다는데" – 지인의 에세이에서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다. 전통적으로 불혹(不惑)은 '홀리지 않음'을 뜻하지만, 그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재해석한다. 40대에 이르면, "이 삶 저 삶 좋아 보이는 대로 무작정 홀리고 다닐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삶 하나 알게 된 걸 그대로 살아버려야 한다."


인생 반쯤 살았을 때, 후회는 '하지 않은 것'에서 온다. 하버드 연구에서 80세 이상 노인들이 꼽은 최대 후회는 "가족과 더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하고 싶은 걸 더 추구했어야 했다"였다. 돈 버는 데 매달린 삶은, 죽을 때 "돈은 많지만 공허했다"는 탄식을 낳는다. 지인은 "인생도 반쯤 살았고, 그간 애쓴 만큼, 나머지 반쯤은 이제 얼마 안 남았다고 믿고 원하는 삶으로 곧장 들어가야 한다"라고 한다. "하고 싶은 걸 오늘 하지 못하면, 내일 죽을 때 후회한다."


이 깨달음은 사회 비판으로 이어진다. 한국의 '996 문화'(아침 9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 6일 근무)가 젊은이들을 지치게 하는 현실에서, 40대가 '불혹'이 되려면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살고 싶은 삶을 정확히 직시하고, 살고 싶은 바로 그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한다." 지인의 글쓰기처럼, 작은 습관부터 시작하라. 오늘 한 페이지 쓰기, 한 권 읽기 – 그게 후회 없는 삶의 씨앗이다.


불혹은 홀리지 않음이 아니라, '홀림의 대상'을 바꾸는 거다. 돈의 홀림에서, 욕망의 홀림으로.


결론: 오늘, 하고 싶은 삶으로 직행하라


"사람들은 왜 돈을 버는가?" – 생존을 위해, 남들보다 더 되기 위해, 자유를 위해. 하지만 지인의 에세이처럼, 돈 너머에 진짜 재미가 있다. 글쓰기, 읽기, 나누기 – 그런 삶이 우리를 채운다. 40대 불혹의 문턱에서, 나는 묻는다. 당신의 '글쓰기'는 무엇인가? 여행? 그림? 산책? 돈 자랑 대신, 그걸 자랑하라. "내가 이렇게 재밌는 걸 했어, 어때?"


삶은 짧다. 돈은 도구일 뿐, 목적이 아니다. 오늘, 출퇴근의 굴레를 내려놓고, 하고 싶은 걸 쫓아라. 후회 없는 반생 후반을 위해. 당신의 다음 챕터가, 세상을 더 재밌게 만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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