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 금융 소외 계층, 현금 의존 인구에 미치는 영향과 정책적 대응
서론: 피할 수 없는 디지털 전환과 새로운 사회적 과제
현대 사회는 디지털 기술 혁신을 기반으로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신용카드와 모바일 간편 결제(카카오페이, 삼성페이 등)가 일상화되고,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화폐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거래 효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불법 자금 흐름을 억제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오지만, 동시에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확대라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내포한다.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 이상이 은행 계좌를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고령층과 저소득층의 디지털 리터러시 부족이 금융 소외 문제를 심화시키고 있다.
현금 없는 사회의 전환 과정에서 특히 소상공인, 금융 소외 계층, 현금 의존 인구는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본 칼럼은 이들의 현실을 분석하고, 포용적 전환을 위한 정책적 대응 방안을 모색한다.
소상공인에게 미치는 영향: 효율성과 비용 부담의 양면성
소상공인들은 디지털 결제 확산으로 현금 관리 비용 절감, 위조지폐 위험 감소, 회계·세무 투명성 강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얻는다. 간편 결제를 선호하는 소비자층을 흡수해 매출 증대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수수료 부담은 영세 자영업자에게 큰 타격이다. 카드사 및 결제 플랫폼이 부과하는 평균 23%의 수수료는 연간 수백만 원의 추가 비용을 발생시키며, 박리다매 구조의 소규모 사업자에게 치명적이다. 유럽은 규제로 수수료를 0.20.3% 수준으로 제한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여기에 POS 단말기, QR 코드 리더기, 인터넷 연결 등 디지털 인프라 구축·유지 비용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농촌·전통시장 상인은 투자 여력이 부족하다. 현금 거래 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현금 결제를 거부하는 상점이 늘어나고, 이는 소상공인의 고객층 축소와 생존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결제 데이터가 플랫폼 기업에 집중되면서 데이터 종속성 문제가 발생해 소상공인의 자율성이 약화된다.
금융 소외 계층에게 미치는 영향: 포용의 기회와 새로운 배제
금융 소외 계층은 은행 계좌가 없거나(언뱅크드), 금융 서비스 접근이 부족한(언더뱅크드) 사람들이다. 이들은 주로 현금에 의존하며, 스마트폰과 인터넷 접근성이 낮아 디지털 금융 전환 과정에서 배제될 위험이 가장 크다.
긍정적으로는 디지털 화폐가 간편 계좌 개설, 소액 송금, 신용평가 개선 등 새로운 금융 포용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예컨대 중국의 알리페이는 모바일 결제를 통해 신용 제공 가능성을 크게 확대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디지털 리터러시 부족, 초기 비용 장벽(스마트폰 구입, 통신비), 해킹·보이스피싱 등 보안 취약성은 오히려 금융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 신용 이력이 없는 계층은 디지털 금융 데이터가 축적되어도 여전히 높은 이자율과 수수료에 직면한다. 더 나아가 모든 거래가 추적되는 환경은 프라이버시 침해와 감시 사회 우려를 낳는다.
현금 의존 인구의 취약성: 재난과 사회적 고립
현금 의존 인구는 고령층, 저소득층, 장애인, 농촌 주민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디지털 기술 활용이 어려워 현금 없는 매장에서 소비 활동 자체가 제한된다. 예컨대 한국 고령층의 30% 이상은 스마트폰 결제를 어려워하고, 미국 노인의 27%는 온라인 뱅킹을 사용하지 않는다.
현금은 단순한 지불 수단을 넘어 심리적 안정과 신뢰의 상징이다. 지갑 속 현금은 예산 관리와 지출 통제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따라서 현금 없는 사회가 확산되면 이들은 필수재 구매, 교통, 의료 이용 등 기본적 생활에서 배제될 위험이 크다.
또한 재난 상황에서 취약성이 드러난다. 정전, 해킹, 네트워크 장애로 디지털 결제가 불가능해지면 현금만이 유일한 대안이 된다. 2023년 발생한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 장애 사례처럼, 현금 없는 사회에서 현금 의존 인구는 생존 위협을 직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현금 사용 권리(right to cash)’ 보장 논의가 국제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포용적 전환을 위한 정책적 대응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불가피하지만, 포용적 시스템 설계 없이는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현금 수용 의무화
미국 일부 주와 같이 상점의 현금 거부를 금지하고, 교통·의료·공공요금 등 필수 서비스 영역에서 현금 결제를 의무화해야 한다. 최소한의 ‘현금 인프라’를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 안전망이 된다.
소상공인 지원 및 수수료 규제
유럽처럼 결제 수수료 상한을 규제해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 디지털 단말기 도입 비용 지원, 정산 주기 단축, 디지털 역량 교육 확대가 병행되어야 한다.
금융 포용 프로그램 강화와 CBDC 설계 혁신
언뱅크드 인구를 위한 공공 계좌 서비스, 우체국 뱅킹 확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필요하다. CBDC는 오프라인 결제 기능을 포함하고, 계좌 미보유자도 별도 인증만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프라이버시 보호 법제화가 필수적이다.
점진적 전환과 대체 수단 마련
고령층이 적응할 수 있도록 점진적 도입이 필요하다. 선불카드, 교통카드 등 단순 디지털 결제 수단을 병행해 사용 장벽을 낮추어야 하며, 공공 결제 인프라 구축으로 민간 독점을 방지해야 한다.
결론: 혁신과 포용의 균형
현금 없는 사회와 디지털 화폐 확산은 기술적 진보이자 사회적 전환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상공인, 금융 소외 계층, 현금 의존 인구가 배제된다면 사회적 갈등과 디지털 불평등이 심화된다.
따라서 정책 당국은 효율성과 포용성을 동시에 고려한 균형 잡힌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현금과 디지털 화폐가 병행되는 체제를 유지하고, 취약 계층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금융은 모두를 위한 포용적 시스템으로 설계되어야 하며, 이는 기술 발전의 진정한 가치이자 사회적 신뢰를 지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