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리스본에 울려 퍼진 K팝 함성

격세지감의 시대

by sonobol






리스본 MEO 아레나를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한국 K-POP 아이돌들이 열정적인 무대를 펼치고 있다 (2025년 9월).


유럽을 달군 K-POP의 대항해 시대


얼마 전 KBS 뮤직뱅크 월드투어 특별 편 ‘뮤직뱅크 in 리스본’ 방송에서, 포르투갈 리스본의 공연장이 열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배우 박보검과 그룹 아이브(IVE)의 장원영이 진행을 맡고, 에이티즈, 르세라핌, 라이즈, 태민, 제로베이스원 등 K-POP 스타들이 총출동한 이 무대는 그야말로 “K팝 대항해 시대”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현지 젊은 팬들은 한국의 보이그룹과 걸그룹이 등장할 때마다 귀청이 터질 듯 환호했고, 떼창으로 한국어 가사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한국 아이돌의 노래에 유럽 청년들이 열광하는 이 장면은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격세지감이다.


KBS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뮤직뱅크 월드투어는 2011년 도쿄돔 첫 해외 공연을 시작으로 칠레, 베를린, 파리, 멕시코, 마드리드 등을 거쳐 2025년 리스본까지 14개국을 항해하며 전 세계에 K-POP의 깃발을 꽂았다. 이제 한국의 대중음악은 “세계의 공용어”가 되었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으며, 세계 각국의 하늘 아래 울려 퍼진 한국 음악의 함성은 단순한 공연을 넘어 ‘문화의 연결선’ 역할을 하고 있다. 포르투갈에서도 개최된 이번 공연은 파리, 베를린, 마드리드 등 유럽 주요 도시들에 이어 리스본까지 K-POP의 무대가 확장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말 그대로 K-POP이 전 세계 바다를 향해 출항한 대항해 시대가 현실이 된 것이다.


타고르의 ‘동방의 등불’, 그리고 현실이 된 예언


유럽인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이 이국의 공연장을 보며, 문득 20세기 초 인도의 시인 타고르(R. Tagore)가 남긴 시구가 떠올랐다. 식민지 치하 한국을 위로하며 쓴 시 「동방의 등불」에서, 타고르는 이렇게 노래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당시만 해도 이 구절은 억압받는 작은 나라에 건네는 시인의 희망사항처럼 보였지만, 지금 우리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마치 이 동방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세상을 밝히는 모습과도 같다. 한때 “등불이 다시 켜지는 날이 오면 온 세상을 밝히리라”라고 노래했던 그 예언은,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쓴 한류와 K-POP의 열풍으로 어느 정도 이루어진 셈이다. 타고르의 시에 감명받으며 자랐던 세대로서는, 한국의 젊은 가수들이 유럽 무대에서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 관객과 함께 노래하는 장면이 실현될 줄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불과 수십 년 전만 해도 세계 무대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떨치는 한국의 모습을 예견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의 대한민국 – “지지리도 못살았다”


1970~8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나라였다. 필자가 학창 시절이었던 1983년경,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1,800~2,000달러 수준으로 선진국은커녕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뒤처진 편이었다. “지지리도 못살았다”는 표현 그대로, 당시 한국은 가난과 산업화 초기의 어려움 속에 있었다. 대중문화도 서구의 것을 모방하거나 수입하는 단계여서, 청소년이 즐겨 듣던 음악 역시 미국이나 영국의 팝송이 주류였다. 지금 K-POP 아이돌들이 빌보드 차트에서 이름을 올리고 유럽 투어를 다니는 현실은, 40년 전 팝송을 라디오로 들으며 자랐던 세대에게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 1960년대 이후 정부의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과 근면한 노동력 덕분에 연 8~12%대의 고속 성장을 이루었고, 1980년대에는 비로소 저소득국에서 중간소득국 정도로 올라섰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체감 생활수준은 여전히 높지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컸다. “과연 이렇게 발전해서 언젠가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이 두각을 나타낼 것이라고 믿는 이는 드물었다.


아버지의 도전과 한강의 기적 체험


1983년 무렵 지인의 아버지는 작은 건축 하청업을 하시며 근근이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당시 살림형편은 대구에서도 손꼽히는 달동네 빈민가에 겨우 비닐장판을 깔아 지내는 수준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형편이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기술 좋은 아버지가 직접 돈을 빌려 집을 지어 팔면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며 적극 권하셨다. 하지만 아버지는 “집 지어놨다가 안 팔리면 어떡하나” 하며 빚내는 일을 극구 꺼리셨다. 성장 가능성이 불투명한 한국 경제에서, 무리한 투자로 건물을 올렸다가 자칫 팔리지 않으면 파산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였다. 실제로 개발도상국이 중간 단계에서 정체되는 “중진국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었으니, 어찌 보면 지인 아버지의 신중함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고, 부동산 경기와 도시 개발도 활황을 이루었다.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몇몇 분들은 과감히 빚을 내어 주택을 지어 팔면서 큰돈을 벌기 시작했다. 한국이 눈부시게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위험을 감수한 사람들이 과실을 얻은 것이다. 남들이 부를 쌓는 것을 지켜본 지인 아버지는 뒤늦게 결심을 굳혔다. “나도 한번 크게 해 보자.” 마침내 1980년대 후반부터 아버지는 직접 주택을 짓고 분양하는 사업에 뛰어들었다. 다행히 시류를 잘 타면서 사업은 번창했고, 우리 집 형편도 눈뜨고 못 볼 가난뱅이에서 단숨에 “남부럽지 않은” 삶으로 올라섰다. 몇 년 사이 고급 승용차에 운전기사까지 둘 정도로 살림이 펴졌으니, 가족 모두가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을 몸소 체험한 셈이다.


이렇듯 한국 경제는 1960~90년대 불과 한 세대 만에 후진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했다. 1962년 1인당 GDP가 고작 100달러 남짓이던 나라가 1989년에는 5,400달러를 넘어서고, 2000년대 중반에는 2만 달러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배경에는 정부의 수출지향 정책, 근로자의 희생과 교육열, 그리고 부족한 자본을 메워 준 외국 자본과 기술의 유입 등이 있었다. 특히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모두가 한마음으로 노력한 결과, 대한민국은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압축 성장을 이룩했다. 아버지 세대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눈부신 발전이 현실이 된 것이다.


외환위기의 그늘 – 영광에서 좌절로


하지만 경제 성장의 길이 항상 장밋빛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 말, 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고가 한국을 덮치며 기적 같은 성장에도 큰 시련이 닥쳤다. 기업들은 달러 부채를 갚지 못해 연쇄 도산 위기에 몰렸고, 한국 원화는 투기 세력의 공격으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결국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해야 했고, 약 584억 달러 규모의 긴급 자금을 지원받는 대가로 혹독한 구조조정과 긴축을 받아들여야 했다. 1998년 한 해 동안 한국 경제는 평균 –6.7%의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뼈아픈 후퇴를 겪었다. 수많은 기업들이 무너졌고, 대우그룹같이 굴지의 재벌도 부채에 짓눌려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다. 거리에는 실직자들이 넘쳐났으며, “IMF 시대”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국민 모두가 긴 터널을 지나야 했다.


지인의 아버지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환위기 직전 경주 지역에서 진행하던 큰 건축 프로젝트가 사기를 당해 좌초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가 부도 사태까지 터지면서 부동산 경기는 급랭했고, 아버지의 사업은 회복불능 지경에 이르렀다. 한때 인생의 정점을 누리며 여유를 찾았던 가장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이후 아버지는 오랫동안 뜻하지 않은 좌절과 상실감 속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성공과 실패, 부와 빈곤이 롤러코스터처럼 교차한 아버지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극적인 단면이기도 하다. 동시에,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한 개인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했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나라? – 인구 절벽의 경고


돌이켜보면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믿을 수 없을 만큼 발전했지만, 앞으로도 영원히 번영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 특히 최근 인구 절벽과 사회적 갈등의 문제는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명 남짓으로 전 세계 최저 수준이며, 인구는 이미 정점에 이른 뒤 감소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3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는 0.72명으로 또다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이는 인구 유지에 필요한 2.1명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이며, 이 추세대로라면 현재 5,100만 명 수준인 인구가 금세기 말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사실상 “국가 소멸”에 대한 우려마저 제기되는 심각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한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저출산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경력 단절 등에 대한 대책이 미흡한 가운데,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땜질식 지원책만 내놓고 있다. 출생아 수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이민 정책 확대나 개방적 사회 분위기 조성에도 걸림돌이 많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단일민족과 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이민자 유입에 매우 신중했고, 아직도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 가정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남아 있다. 한편으로는 자본시장이나 산업 분야에서 외국 자본의 영향을 경계하며 배척하려는 정서도 일부 존재한다.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의 일부 세력은 외국인과 외국 자본이 한국을 잠식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개방 정책에 반대하고, 좌우 진영의 일부 포퓰리스트들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곤 한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산업화 시기에도 그랬듯 앞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유지하려면 해외의 인재와 자본을 끌어들이는 개방과 포용 전략이 필수적이다.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내수 침체를 극복하려면, 이민자와 다문화 가정을 사회 일원으로 포용하고 글로벌 투자도 환영하는 방향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언젠가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해 “한때 아시아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나라가 어느 순간 불가사의하게 사라졌다” 고 기록할지 모른다. 그것은 결코 과장이 아닌, 0.7의 출산율이 던지는 냉혹한 경고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주요 과제


인구 절벽: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 지속로 인한 장기적 인구 감소와 고령화 가속화


노동력 부족: 젊은 층의 감소와 3D 업종 기피로 농축산업·제조업 등 일부 분야 인력난 (외국인 노동자 의존)


사회적 폐쇄성: 이민자와 다문화 가정에 대한 낮은 포용성, 외국 자본 유치에 대한 경계 심리 등이 혁신과 성장의 걸림돌


정치적 극단주의: 극우·극좌 일부 세력이 반(反) 외국인 정서를 자극하며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듦


이러한 난제들을 풀지 못한다면,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지난 세기의 성취가 무색하게 한국은 다시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 문화콘텐츠 강국이라는 현재의 위상도 머지않아 과거형이 될지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대한민국이 새로운 결단과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모두가 합심하여 빈곤을 탈출했듯이, 이제는 인구절벽 시대에 대비한 제2의 기적이 요구된다. 그 기적은 더 이상 “빨리, 많이”의 성장 신화가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방향이어야 할 것이다.


행복의 샘터 – 과거와 미래를 잇는 희망의 노래


화려한 K-POP 스타들이 세계 무대를 휩쓰는 지금도, 필자의 마음 한편에는 부모 세대의 소박한 노래가 깊은 울림으로 남아 있다. 1964년 발표된 박재란・이양일 선생의 〈행복의 샘터〉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즐겨 흥얼거리시던 곡이다. “심심산골 외로이 피어있는 한 송이 들꽃처럼 살더라도, 그곳이 나의 행복의 샘터”라는 노랫말처럼, 비록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처지에서도 서로를 위하며 작은 행복을 찾겠다는 다짐이 담긴 노래다. 필자의 아버지 어머니 세대는 그 어려운 시절을 이런 노래와 함께 이겨냈을 것이다.


아이브의 경쾌한 히트곡 〈I AM〉이나 BTS의 세계적 명곡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부모님 세대의 정서가 깃든 옛 가요가 더욱 크게 마음에 와닿는다. 행복의 샘터를 듣노라면 “함께라면 어디든 행복의 터전이 된다”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듯하여 뭉클하다. 이것이 바로 선배 세대가 우리에게 물려준 희망의 유산일 것이다.


한국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뤄냈고, 이제는 문화로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행복의 샘터를 노래하던 시절부터 내려온 긍정과 희망, 노력과 연대의 정신이 흐르고 있다. K-POP을 통해 동방의 등불을 밝히고 있는 지금의 우리는, 동시에 그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나가야 할 책무를 지닌다. 선배들이 그랬듯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서로를 배려하며, 현실을 직시하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밝을 것이다.


앞으로도 리스본의 밤하늘을 수놓은 K-POP의 함성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함성 뒤에는, 보이지 않게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수많은 “행복의 샘터”들이 존재한다. 과거의 등불과 현재의 함성이 만나 밝히는 길을 따라, 부디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미래로 힘차게 항해해 나가길 기대해 본다.





참고 자료: 한국 경제사 및 인구 문제 관련 다큐 및 보도 자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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