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심층분석] AI와 스테이블코인

새로운 권력의 인프라를 구축하다. 어떤 인프라 위에서 살아갈 것인가?

by sonobol




서문: 문명의 운영체제가 바뀌고 있다.


우리는 지금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목격하는 것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기저를 이루는 ‘운영체제(Operating System)’ 자체가 근본적으로 재설계되는 역사적 변곡점의 한가운데 서 있다. 과거 증기기관이 물리적 힘의 한계를, 인터넷이 정보 유통의 지리적 한계를 무너뜨렸다면, 이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의 융합은 가치(Value)와 의사결정(Decision-making)의 구조를 재편하며 새로운 디지털 질서의 토대를 놓고 있다.
AI는 더 이상 인간의 작업을 보조하는 도구가 아니다. 기업의 내부 프로세스, 국가의 안보 전략, 나아가 물리적 세계를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자율적 의사결정 인프라'로 진화하고 있다. 동시에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암호화폐를 넘어, 달러 패권의 디지털 확장, 실물자산(RWA)의 유동화, 그리고 글로벌 금융 시스템의 혈맥 역할을 하는 '가치 전송 인프라'로 거듭나고 있다.
이 두 개의 거대한 기술 인프라는 개별적으로 발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수렴하고 있다. 바로, 프로토콜 기반의 새로운 경제 및 사회 질서 구축이다. AI가 내리는 판단과 분석을 기반으로, 스테이블코인이 국경 없이 즉각적으로 가치를 이전하고 계약을 집행하는 세상.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미래의 청사진이다.
본 심층 분석 칼럼은 글로벌 및 국내의 최신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풍부하게 더하여 확장한 결과물이다. 팔란티어와 빅테크의 AI 전략, 서클(Circle)과 미국 정부의 달러 디지털화 야망, 한국의 CBDC 실험과 민간의 도전, 그리고 블랙록(BlackRock)과 같은 거대 금융기관이 이끄는 융합의 현장을 입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AI 산업혁명 +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인프라가 어떻게 세상을 재편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명확히 드러내고자 한다.
이 글을 통해 독자들은 "어떤 코인을 사야 하는가"라는 단편적인 질문에서 벗어나, "미래 사회의 인프라는 어떻게 설계되고 있으며,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라는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1부. 생성형 AI의 산업 재편: '인터페이스'를 넘어 '제어 인프라'로


2022년 말, OpenAI의 ChatGPT가 촉발한 생성형 AI 열풍은 초기에는 ‘더 똑똑해진 챗봇’,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UI)’ 정도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불과 2년 여가 지난 2025년 현재, AI는 스크린 속 대화 상대를 넘어 기업의 핵심 업무 프로세스와 물리적 세계를 직접 통제하는 ‘제어 인프라(Control Infrastructure)’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의 최전선에는 팔란티어,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기업들이 있다.


사례 1: 팔란티어(Palantir)의 '실력주의 펠로우십' - 고용과 업무의 기준을 바꾸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 및 AI 플랫폼 기업 팔란티어는 오사마 빈 라덴 추적에 기여한 기술로 명성을 얻은, 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기업 중 하나다. 이들의 핵심 경쟁력은 단순히 뛰어난 AI 모델이 아니라, 국방, 정보기관, 대기업 등 복잡하고 민감한 조직의 모든 데이터를 하나의 플랫폼(AIP, Artificial Intelligence Platform)으로 통합하고, 그 위에서 AI가 실시간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최적의 행동 방침을 제안하는 능력에 있다.
2025년 6월, 팔란티어가 발표한 ‘실력주의 펠로우십(Meritocratic Fellowship)’ 프로그램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교 졸업자 이상이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며, 선발된 인원에게는 실리콘밸리 최고 수준의 AI 플랫폼 운용 및 개발 훈련을 제공한다. 이는 기존의 ‘명문대 학위 → IT 기업 입사’라는 엘리트 공식을 정면으로 파괴하는 행보다. 팔란티어가 원하는 인재는 학술적 배경이 뛰어난 연구자가 아니라, 자사의 AI 플랫폼 위에서 실제 데이터를 다루고, 복잡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 오퍼레이터(Operator)’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심대하다. AI가 고도화될수록, 인간의 역할은 AI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용자’에서, AI가 구축한 거대한 인프라 내에서 특정 역할을 수행하는 ‘운용자’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팔란티어의 기술은 이미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적군의 동향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포격 좌표를 제안하고, 대형 병원에서는 환자의 의료 기록, 실시간 생체 신호, 유전체 데이터를 종합해 최적의 치료법을 의사에게 권고한다. 정부 기관에서는 이 AI 플랫폼을 통해 재난 예측, 공급망 관리, 예산 집행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결국, 팔란티어의 사례는 생성형 AI가 단순한 생산성 도구를 넘어, 한 조직의 두뇌와 신경망 역할을 하는 중앙 제어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대학 학위’라는 과거의 신호가 ‘AI 플랫폼 활용 능력’이라는 실무 역량으로 대체되는 고용 시장의 재편은 이미 시작되었다.


사례 2: 아마존 AWS의 Bedrock vs 마이크로소프트 Azure OpenAI - 인프라 전쟁의 서막


일반 대중에게는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나 OpenAI의 ChatGPT가 AI의 전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AI 산업의 진짜 전쟁은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이 아닌, 그 기반이 되는 클라우드 인프라(IaaS/PaaS)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의 핵심 플레이어는 단연 아마존 웹 서비스(AWS)와 마이크로소프트(MS)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penAI와의 독점적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을 선점했다. 이들의 전략은 명확하다. 자사의 클라우드 플랫폼 Azure 위에서 OpenAI의 최신 모델(GPT-4, GPT-5 등)을 독점적으로 제공하고, 이를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등 전 세계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오피스 제품군과 윈도 운영체제에 ‘코파일럿(Copilot)’ 형태로 깊숙이 통합하는 것이다. 이는 AI를 개별 소프트웨어(SaaS)로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존 생태계 전체를 AI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사용자를 록인(Lock-in)하려는 전략이다. MS의 제품을 쓰는 기업은 자연스럽게 Azure AI의 인프라 위에 종속된다.
이에 맞서는 아마존 AWS의 전략은 ‘개방형 제국’이다. AWS는 2024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확장한 ‘베드록(Bedrock)’ 서비스를 통해 이러한 MS의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베드록의 핵심 철학은 ‘선택의 자유’다. AWS 고객들은 OpenAI의 경쟁사인 앤트로픽(Anthropic, 클로드 모델), 코히어(Cohere), 스태빌리티 AI(StabilityAI) 등 다양한 최고의 AI 모델들을 마치 레고 블록처럼 자유롭게 선택하고 조합하여 자사의 비즈니스에 맞는 맞춤형 AI를 구축할 수 있다. AWS는 특정 모델을 밀어주는 대신, 이 모든 모델이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AI 모델의 수도관’ 역할을 자처한다. 기업들은 베드록 API를 통해 자신들의 데이터로 원하는 모델을 미세조정(Fine-tuning)하여, 세상에 없는 고유의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이 두 거인의 경쟁에서 주목해야 할 공통점은 명확하다. 이들은 더 이상 AI를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자신만의 AI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기반 시설(Infrastructure)을 제공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AI가 일회성 서비스가 아니라, 전기나 인터넷처럼 기업 활동에 필수적인 유틸리티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1부 시사점: AI, 세상을 제어하는 보이지 않는 손


팔란티어의 사례가 AI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장악하는 ‘두뇌’의 역할을 보여준다면, AWS와 MS의 경쟁은 그 두뇌가 작동하기 위한 ‘신경망’과 ‘에너지원’을 누가 공급할 것인가의 싸움이다. 이들의 전략을 종합해 보면, 생성형 AI의 본질은 ‘사용자 인터페이스 혁신’이 아니라 ‘산업 및 사회 제어 인프라 구축’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AI는 이제 기업의 ERP(전사적 자원 관리), SCM(공급망 관리) 시스템 깊숙이 침투하여 재고를 예측하고 물류를 최적화한다. 스마트 팩토리에서는 생산 라인의 로봇들을 지휘하고, 금융 기관에서는 수조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알고리즘을 감독한다. 즉, AI는 인간과의 대화를 넘어, 기업의 내부 업무 프로세스와 물리적 세계의 기계들을 직접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이 강력한 제어 인프라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새로운 가치 교환 및 저장 수단이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스테이블코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2부. 스테이블코인의 실전 활용: '디지털 달러'를 넘어 '글로벌 정책 수단'으로


AI가 새로운 산업 질서의 ‘두뇌’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두뇌의 명령에 따라 가치를 실어 나르는 ‘혈액’이다. 초기 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 시장의 변동성을 피하기 위한 ‘디지털 현금’ 정도로 여겨졌지만, 이제 그 위상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격상되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의 영향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고, 막대한 규모의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위로 끌어올리며, 나아가 지정학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례 3: 서클(Circle)과 USDC - 미국 국채와 달러 패권을 동시에 강화하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인 USDC를 발행하는 서클(Circle)의 비즈니스 모델은 스테이블코인의 새로운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5년 6월 기준, USDC의 준비금(Reserve)은 약 350억 달러에 달하며, 이 중 80% 이상이 미국 단기 국채 및 이를 편입한 단기 MMF(머니마켓펀드)에 예치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자산 보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전 세계의 개인과 기업이 USDC를 구매하고 보유할 때마다, 그 자금은 월스트리트의 심장부로 흘러 들어가 미국 정부의 든든한 자금줄, 즉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USDC의 글로벌 유통은 곧 미국 국채에 대한 글로벌 수요를 견인하는 강력한 메커니즘이다. 미국 정부는 막대한 재정 적자를 국채 발행으로 메우고 있는데, 스테이블코인이 이 수요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서클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과의 협력을 통해, 블랙록의 온체인 미국 국채 펀드(예: BUIDL 펀드)를 USDC 준비금의 일부로 편입하기 시작했다. 이는 전통 금융의 거인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국채를 토큰화하고, 디지털 네이티브 기업인 서클이 이를 활용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완벽한 공생 관계다.
결과적으로 USDC는 두 가지 놀라운 효과를 동시에 창출한다. 첫째, 달러를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레일 위에 올려 전 세계로 24시간 365일 실시간 전송 가능하게 만들어 달러의 유통망을 혁신한다. 둘째,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미국 국채 수요를 창출하여 미국의 재정 안정과 금융 패권에 기여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결제 수단을 넘어, 미국의 핵심 이익을 대변하는 강력한 금융 정책 도구가 되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사례 4: 트럼프 진영의 'USD1' 지지 - 디지털 달러의 주도권을 잡아라


스테이블코인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커지자, 미국의 정치권도 이 이슈를 핵심 의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2025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은 'USD1'이라는 새로운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상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큰 파장을 일으켰다. USD1은 미국의 기존 은행 시스템과 긴밀하게 연계하여, 규제 준수와 투명성을 강조하는 보수적 성향의 디지털 달러를 표방한다.
이 움직임의 배경에는 디지털 달러의 미래를 누가 주도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샅바 싸움이 있다. 현재 디지털 달러의 미래는 크게 세 가지 경로로 나뉜다.
* 연방준비제도(Fed) 중심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정부가 직접 발행하고 통제하는 모델.
* 서클(USDC) 등 핀테크 기업 중심의 민간 스테이블코인: 혁신을 주도하지만 규제 리스크가 존재.
* 은행 중심의 민간 스테이블코인(USD1 구상 등): 기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한 모델.
트럼프 진영이 은행 중심의 USD1 모델을 지지하는 것은, CBDC가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빅 브라더’ 리스크(정부의 과도한 금융 통제 및 사찰)를 경계하고, 동시에 기존 은행 시스템의 기득권을 보호하며 미국 내 보수층의 신뢰를 얻으려는 다목적 포석이다. ‘자국민 신뢰 회복’과 ‘결제 수단 간소화’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본질은 미래 디지털 금융의 표준을 정부가 아닌, 규제받는 민간(특히 전통 은행)이 주도해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는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기술 이슈를 넘어, 국가의 통화 주권과 개인의 금융 자유라는 철학적,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섰음을 의미한다.


사례 5: 부동산·채권의 실물자산 토큰화(RWA) - 5조 달러 시장의 서막


스테이블코인의 진정한 파괴력은 실물자산 토큰화(RWA, Real World Asset Tokenization)와 결합될 때 극대화된다. RWA는 말 그대로 부동산, 미술품, 채권, 사모펀드 지분 등 비유동적인 실물 자산을 블록체인 위에서 거래 가능한 디지털 토큰으로 ‘잘게 쪼개는’ 기술이다.
홍콩, 싱가포르, 아부다비 등 글로벌 금융 허브들은 이미 RWA를 미래 먹거리로 점찍고 관련 규제를 정비하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예를 들어, 홍콩에서는 수천억 원짜리 상업용 빌딩의 소유권을 10만 개의 토큰으로 분할하여, 소액 투자자들이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해 단돈 100달러로도 해당 빌딩의 지분을 구매할 수 있게 하는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는 과거 거액 자산가들의 전유물이던 우량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대중에게 열어주는 혁신이다.
이러한 RWA 시장의 폭발적 성장 가능성은 세계 최대 금융 기관들의 전망에서도 확인된다. 미국 시티그룹(Citigroup)은 2025년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2027년까지 RWA 토큰화 시장 규모가 최소 5조 달러(약 6,900조 원)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더욱 낙관적으로 2030년까지 16조 달러 규모를 전망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블록체인 위로 올라온 이 수많은 토큰화된 자산들은 무엇으로 거래되는가?" 그 답이 바로 스테이블코인이다. 토큰화된 부동산이나 채권을 거래하는 데 전통적인 은행 송금(느리고, 비싸고, 영업시간의 제약이 있음)을 사용할 수는 없다. 블록체인이라는 디지털 장터에서는 그 장터의 기축통화인 스테이블코인(빠르고, 저렴하며, 24시간 거래 가능)이 필수적이다.



2부 시사점: 스테이블코인, 달러 제국의 새로운 포장지


결론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더 이상 암호화폐 시장의 보조 수단이 아니다. 이는 달러화의 글로벌 유통망을 현대화하고(Circle), 미국 국채의 디지털 수요처를 창출하며(BlackRock 협력), 미래 디지털 자산 시장(RWA)의 핵심 결제 및 청산 인프라 역할을 수행하는 다목적 정책 수단으로 진화했다. 미국 정치권의 논쟁은 이 강력한 도구의 통제권을 누가 가질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다.
AI가 세상을 분석하고 제어하는 두뇌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두뇌의 명령을 실물 경제와 자산 시장 곳곳에 전달하고 집행하는 피와 같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포장지를 통해 21세기에도 달러 패권을 유지하려는 거대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3부. 한국의 사례: '통제된 혁신'의 딜레마


글로벌 무대에서 AI와 스테이블코인이 융합하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는 동안, 세계 최고 수준의 IT 인프라와 결제 시스템을 갖춘 한국은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한국의 상황은 한마디로 '기회와 우려 속 통제된 혁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통화 정책의 안정성과 금융 시스템 리스크 관리를 최우선으로 두면서,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공공 영역을 중심으로 블록체인 기술과 '공공용 스테이블코인'의 가능성을 활발히 탐색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례 6: 한국은행-금융위의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 동시 테스트


한국의 접근 방식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민간 스테이블코인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에서 드러난다. 2024년 하반기, 한국은행은 금융위원회 및 금융감독원과 공동으로 '도매형 CBDC(Wholesale CBDC)' 기반의 디지털 토큰 발행 및 유통 시범 테스트를 개시했다.
이 테스트의 핵심은 한국은행이 시중은행(KB국민, 신한, NH농협 등)에 '도매형 CBDC'라는 일종의 디지털 중앙은행 예금을 제공하면, 시중은행들은 이를 담보로 자신들의 고객(개인 및 기업)이 사용할 수 있는 '예금 토큰(Deposit Token)'을 발행하는 구조다. 이 예금 토큰은 사실상 원화와 1:1 가치가 연동되는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동일한 역할을 한다.
이는 미국처럼 민간 핀테크 기업이 주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앙은행과 기존 대형 은행이 생태계의 중심을 잡는 '관 주도형' 모델이다. 당국이 이런 방식을 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시중은행의 예금을 기반으로 하므로 대규모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예금자보호법 등 기존의 금융 안정 장치 안에서 통제할 수 있다. 둘째, 모든 거래가 규제 당국이 감독하는 은행 시스템 내에서 이루어지므로 자금세탁방지(AML) 의무를 준수하기 용이하다.
결국 한국은행의 테스트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용어 대신 '예금 토큰'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민간의 무분별한 발행은 억제하되 그 기능적 효용성(프로그래머블 결제, 즉시 정산 등)은 국가가 통제하는 틀 안에서 수용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스테이블코인과 CBDC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사실상의 '국가 공인 스테이블코인' 모델을 실험하고 있는 셈이다.


사례 7: 신한은행의 '블록체인 기반 정책예산 지급 시범'


공공 영역에서의 스테이블코인 활용 가능성은 정책 자금 집행에서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2025년 상반기, 신한은행은 경기도의 한 지역청과 협력하여 블록체인 기반의 기초연금 지급 실험을 수행했다. 이 실험은 단순히 연금을 계좌 이체하는 것을 넘어, '프로그래머블 머니(Programmable Money)'의 개념을 도입했다.
구체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연금 수급자에게 지급된 디지털 원화(예금 토큰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에는 특정 조건이 내장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이 자금은 지자체가 지정한 지역 내 소상공인 가맹점(예: 동네 식당, 약국, 전통시장)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된다. 또한, 유흥업소나 대형 마트에서는 결제가 차단되며, 일정 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으면 자동 소멸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프로그래머블 스테이블코인'은 정책 집행의 효율성과 투명성을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정부나 지자체는 보조금이 본래의 목적(지역 경제 활성화, 취약 계층 지원 등)에 맞게 사용되는지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검증할 수 있다. 예산의 누수나 부정 수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신한은행의 시범 사업은 스테이블코인이 단순 결제를 넘어, 정밀한 타겟팅이 가능한 차세대 공공 재정 인프라로 활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사례 8: 업비트의 '코리아 스테이블' 제안 - 민간의 야심


정부와 은행권이 '통제된 혁신'을 추구하는 동안, 민간에서는 보다 과감한 청사진이 제시되기도 했다. 2025년 3월,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 나무는 'KRW 고정형 스테이블코인(가칭 코리아 스테이블)' 구상안을 발표했다.
이 구상의 핵심은, 100% 실제 원화 예치금과 안전자산인 대한민국 국채를 담보로 하여 투명하게 운영되는 민간 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자는 것이다. 두 나무는 이러한 스테이블코인이 탄생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 기반의 USDC나 위안화 기반의 디지털 위안(e-CNY)과 경쟁하며 아시아권에서 원화의 디지털 영향력을 확대하는 기축 통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 주도 모델에 대한 민간의 도전장이자, 한국도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문제 제기다. 업비트의 제안은, 규제 리스크와 시장 변동성에 대한 우려로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주저하는 동안 글로벌 표준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반영한다. 즉, 금융 안정도 중요하지만, 미래 디지털 경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인프라 수출'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3부 시사점: 기로에 선 한국, '안전'과 '기회' 사이


한국의 사례들을 종합하면, 한국은 '통화 주권'과 '금융 안정'이라는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스테이블코인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결제 인프라(신용카드, 간편 결제)를 이미 보유하고 있어, 민간 스테이블코인 도입의 시급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현실도 반영된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보수적인 접근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리스크를 내포한다. 글로벌 빅테크와 금융기관들이 AI와 스테이블코인을 융합해 국경 없는 디지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동안, 우리는 국내용 '갈라파고스' 시스템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결국 한국은 딜레마에 빠져있다. 공공용 프로그래머블 스테이블코인 실험(신한은행 사례)을 통해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는 적극적이지만, 이것이 민간의 혁신과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통제된 혁신'이 '고립된 혁신'으로 끝나지 않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고민이 시급한 시점이다.


4부. 글로벌 기업의 융합 전략: AI × Web3 × RWA, 하나의 운영체제로


지금까지 우리는 AI, 스테이블코인, RWA라는 각각의 기술 트렌드를 개별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미래는 이 기술들이 각자 따로 움직이는 세상이 아니다. 이미 글로벌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은 이 세 가지 요소를 하나의 거대한 '경제 운영체계(Economic Operating System)'로 엮어내는 융합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AI가 지능적인 판단을 내리면, 스테이블코인이 그 판단을 실행할 자금을 옮기고, RWA가 투자와 거래의 대상을 제공하는 유기적인 시스템이 탄생하고 있다.


사례 9: 블랙록(BlackRock)의 AI 엔진과 스테이블코인 포트폴리오의 통합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이러한 융합의 정점에 서 있다. 블랙록의 심장부에는 '알라딘(Aladdin)'이라는 전설적인 AI 기반 금융 리스크 관리 및 포트폴리오 분석 엔진이 있다. 알라딘은 전 세계 금융 시장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여 수조 달러에 달하는 자산의 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리스크를 관리한다.
2025년, 블랙록은 이 알라딘 시스템을 한 단계 더 진화시킨 '알라딘-X(Aladdin-X)'를 통해, 자사의 국채 기반 스테이블코인 및 토큰화 펀드(BUIDL)와 연동되는 포트폴리오 관리 기능을 출시했다. 이 서비스의 작동 방식은 다음과 같다.


* 자금 예치: 고액 자산가나 기관 투자자는 USDC와 같은 스테이블코인을 블랙록의 플랫폼에 예치한다.
* AI 분석 및 제안: 알라딘-X는 고객의 투자 성향(안정 추구, 공격적 투자 등)과 현재 시장 상황을 AI로 분석하여, 최적의 RWA 포트폴리오를 자동으로 구성해 제안한다. 이 포트폴리오에는 토큰화된 미국 국채, 우량 회사채, 글로벌 부동산 펀드 등이 포함된다.
* 원클릭 투자 집행: 고객이 제안을 승인하면, 시스템은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즉시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하여 해당 RWA 토큰들을 매입한다. 모든 과정은 블록체인 상에 투명하게 기록된다.
* 실시간 리밸런싱: 시장 상황이 변하면, 알라딘-X는 이를 감지하고 포트폴리오 리스크를 최소화하거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자산 재조정(리밸런싱)을 제안하고, 승인 시 자동으로 실행한다.
블랙록의 사례는 AI(알라딘)가 투자 전략이라는 '의사결정'을 내리고, 스테이블코인이 '가치 이전'을 수행하며, RWA가 '투자 대상'을 제공하는 완벽한 융합 모델이다. 이는 더 이상 인간 펀드매니저의 감이나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기반의 차세대 자산 관리 서비스의 탄생을 의미한다.


사례 10: 로빈후드(Robinhood)의 AI-Powered Wallet - 개인을 위한 금융 OS


블랙록이 기관 투자자를 위한 거대한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면, 미국의 대표적인 소매 투자 플랫폼 로빈후드는 이와 유사한 경험을 개인 투자자들에게 제공하려 하고 있다. 2025년 출시된 '로빈후드 AI 월렛(Robinhood AI Wallet)'은 이러한 비전을 구체화한 결과물이다.
이 지갑은 단순한 암호화폐 보관 기능을 넘어선다.
* 통합 금융 허브: USDC 기반의 간편 결제 기능, 주식/ETF/암호화폐 투자, RWA(토큰화된 실물자산) 조각 투자 참여 기능을 하나의 앱에 통합했다.
* AI 기반 자산 관리: 가장 혁신적인 기능은 챗GPT 스타일의 대화형 AI 인터페이스다. 사용자는 복잡한 금융 용어나 차트를 몰라도 된다. 대신, 자연어로 AI에게 명령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내 포트폴리오를 다음 분기 경기 침체에 대비해 리스크가 낮은 자산 중심으로 조정해 줘"라고 입력하면, AI가 이 요청을 해석하여 구체적인 자산 리밸런싱 방안(예: 기술주 비중 축소, 토큰화된 단기 국채 및 금 관련 RWA 비중 확대)을 제시하고, 사용자의 확인 한 번으로 이를 실행한다.
* Web3 경험의 단순화: 사용자는 자신이 솔라나(Solana) 블록체인 위에서 RWA를 구매하는지, 이더리움(Ethereum) 레이어 2에서 디파이(DeFi) 상품에 참여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AI가 백그라운드에서 가장 효율적인 프로토콜을 찾아 복잡한 기술적 과정을 모두 처리해 준다.
로빈후드의 전략은 AI를 통해 Web3와 전통 금융의 복잡성을 완전히 추상화하고, 사용자에게는 직관적이고 쉬운 통합 금융 경험만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금융 서비스가 상품(Product)에서 개인화된 운영체제(OS)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례 11: 비자(Visa)와 솔라나(Solana)의 Web3 연동 결제망 - 정산의 혁신


AI와 스테이블코인의 융합은 투자 영역뿐만 아니라, 가장 전통적인 금융 영역인 결제 및 정산에서도 혁신을 일으키고 있다. 글로벌 결제 네트워크의 공룡 비자(Visa)는 고속 블록체인인 솔라나(Solana) 네트워크 위에서 USDC를 활용한 실시간 가맹점 정산 서비스를 시범 도입했다.
전통적인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결제 시점'과 '정산 시점'의 불일치다. 고객이 상점에서 카드를 긁는 순간 결제는 승인되지만, 실제로 그 돈이 상점 주인의 계좌에 입금되기까지는 여러 중개기관(카드사, 은행, PG사 등)을 거치며 수일(D+2 또는 D+3)이 소요된다. 이는 소상공인에게는 현금 흐름의 압박을, 시스템 전체에는 복잡성과 비용을 야기한다.
비자와 솔라나, 서클의 협력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한다. 고객이 카드로 결제하면, 비자 네트워크는 이 거래 정보를 솔라나 블록체인으로 전달하고, 스마트 컨트랙트를 통해 즉시 USDC가 가맹점의 디지털 지갑으로 이체된다. 수일이 걸리던 정산이 단 몇 초 만에 완료되는 'D+0 실시간 정산'이 실현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AI는 사기 거래 탐지(FDS) 시스템을 고도화하여 실시간 거래의 안정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4부 시사점: 거대한 경제 운영체제의 등장


블랙록, 로빈후드, 비자의 사례는 각기 다른 영역(자산관리, 소매금융, 결제)에 속해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방향을 가리킨다. 바로 AI, 스테이블코인, RWA, Web3 기술이 더 이상 독립적인 솔루션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작동하는 하나의 거대한 경제 운영체계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 AI: 지능과 판단력을 제공하는 'CPU'
* 블록체인/Web3: 신뢰와 투명성을 보장하는 '네트워크 프로토콜'
* 스테이블코인: 시스템의 혈액이자 연료인 '가치 전송 수단'
* RWA: 시스템이 다루는 '데이터이자 자산'
이 새로운 운영체계 위에서 금융과 상거래는 더욱 빠르고, 저렴하며, 투명하고, 자동화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인프라를 설계하고 선점하는 기업과 국가가 다가오는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새로운 규칙 제정자(Rule-setter)가 될 것이다.


5부. 시나리오 기반 미래 전망 및 결론: 인프라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지금까지의 분석을 종합해 볼 때, AI와 스테이블코인의 융합이 만들어낼 미래는 몇 가지 핵심 시나리오로 압축할 수 있다. 이 시나리오들은 상호 배타적이지 않으며, 복합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시나리오 A: 미국, 스테이블코인을 '사실상의 디지털 달러'로 공식화
* 가능성: 높음. 미국 의회에서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예: 과거의 '지니어스-루미스 법안'과 유사한 형태)이 통과되고, 서클(Circle)과 같은 주요 발행사가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하며 제도권 금융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시나리오다.
* 결과: 미국은 정부가 직접 CBDC를 발행하는 대신, 규제받는 민간 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을 '디지털 달러'의 실체로 인정하게 된다. 이는 중국의 국가 주도 디지털 위안(e-CNY)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견제 수단이 된다. 전 세계 블록체인 기반 금융의 표준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이 장악하게 되며, 이는 미국 국채와 달러의 글로벌 수요를 영구적으로 고착화시킨다. G2(미국-중국)의 디지털 화폐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게 되며, 글로벌 금융 질서는 미국 중심의 프로토콜 경제로 재편된다.


시나리오 B: 한국, '공공 스테이블코인'으로 행정 투명성 선도


* 가능성: 중간. 한국 정부와 한국은행이 현재의 CBDC 및 예금 토큰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를 복지, 재난지원금, R&D 예산 등 공공 재정 집행 시스템에 전면 도입하는 시나리오다.
* 결과: 한국은 '투명하고 효율적인 디지털 행정 국가'라는 독보적인 포지셔닝에 성공할 수 있다. 프로그래머블 머니를 통해 예산 누수를 막고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는 모델은 다른 국가에 수출할 수 있는 훌륭한 '행정 인프라' 상품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의 혁신과 글로벌 시장 진출이 위축될 리스크가 존재한다. '통제된 혁신'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민간 부문의 투기적 수요는 차단하되 건전한 기술 개발과 글로벌 비즈니스 확장을 장려하는 균형 잡힌 정책이 필수적이다.


시나리오 C: RWA, 글로벌 자산 유동성의 핵심 플랫폼으로 정착


* 가능성: 매우 높음. 블랙록, 시티, HSBC 등 글로벌 초대형 금융 기관들이 모두 RWA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기 때문이다.



* 결과: 주식, 채권, 부동산, 미술품, 사모펀드 등 세상의 모든 가치 있는 자산이 블록체인 위에서 토큰 형태로 24시간 거래되는 시대가 열린다. 이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막대한 유동성을 창출하고, 자본 시장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 거대한 RWA 시장의 모든 거래는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결제되고 청산된다. 결과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은 RWA라는 실물 경제와 블록체인 세계를 잇는 필수불가결한 '연결고리(Bridge)'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하게 된다.
최종 결론: 스테이블코인은 화폐가 아니라 '인프라'다
우리는 지금 '디지털 국경(Digital Border)'이 새롭게 그어지는 시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과거의 국경이 영토와 자원을 중심으로 설정되었다면, 미래의 국경은 프로토콜과 데이터를 중심으로 설정될 것이다. 금융과 경제의 주 무대는 더 이상 물리적인 은행 지점이나 증권 거래소가 아닌, 보이지 않는 블록체인 프로토콜 위에서 펼쳐진다.
그리고 이 새로운 프로토콜 경제를 구동하는 두 개의 핵심 엔진은 바로 AI와 스테이블코인이다. AI가 지능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두뇌'라면, 스테이블코인은 그 결정에 따라 국경 없이 가치를 실어 나르는 '혈액'이다. 이 둘의 융합을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 기업, 개인은 다가올 디지털 질서에서 주변부로 밀려나거나, 남들이 설계한 인프라에 종속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이라는 디지털 갑옷으로 달러 패권을 재무장하고 있다.
* 한국은 공공 영역의 AI와 블록체인 도입으로 행정 효율성을 재편하려 시도하고 있다.
* 글로벌 금융계는 RWA를 통해 세상 모든 자산의 경계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어떤 화폐나 자산을 가질 것인가?"라는 단기적인 질문을 넘어, "우리는 어떤 규칙과 표준을 따르는 인프라 위에서 살아갈 것이며, 그 인프라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것인가?"라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질문에 답해야 할 때다. AI와 스테이블코인이 융합된 이 새로운 인프라 위에서, 미래의 부와 권력이 재분배될 것이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투자 정보. Sol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