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불평등의 엔진에 대한 심층 분석
제1부: 미국 경제의 기둥으로서의 401(k): 구조적 자금 순환
미국의 401(k) 제도는 단순히 개인의 은퇴 저축 수단을 넘어, 미국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거대한 금융 인프라로 자리 잡았다. 이 제도는 수십 조 달러의 자본을 동원하여 자본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현대 자산운용 산업의 성장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이 되었다. 본 1부에서는 401(k)이 어떻게 미국 경제의 구조적 자금 순환 시스템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게 되었는지, 그 거대한 규모와 작동 방식, 그리고 자본 시장 및 금융 산업과의 공생 관계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개인의 저축 행위가 거시 경제 활동의 원동력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고자 한다.
1.1: 9조 달러 시스템의 구조
401(k) 시장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압도적인 규모와 자금이 순환하는 복잡한 생태계를 파악해야 한다. 401(k)은 단순한 고용주-근로자 간의 계약이 아닌,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힌 거대한 산업 그 자체이다.
시스템의 규모와 범위
401(k) 제도의 영향력은 그 규모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2024년 3분기 기준, 401(k) 플랜은 약 71만 5,000개 이상의 플랜을 통해 약 7,000만 명의 현직 가입자와 수백만 명의 전직 근로자 및 은퇴자를 대신하여 약 8조 9,0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미국 가계 자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규모이며,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함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401(k)은 또 다른 거대 은퇴 자산 시장인 개인 은퇴 계좌(IRA)의 주요 자금 공급원 역할을 한다. 2024년 9월 말 기준 15조 2,000억 달러에 달하는 IRA 자산의 약 절반이 401(k)나 다른 고용주 후원 퇴직연금으로부터 이체(rollover)된 자금이다. 이처럼 401(k)는 특정 계층을 위한 금융 상품이 아니라, 미국 가계의 부(富)를 형성하고 이전하는 지배적인 경로로 기능하고 있다.
서비스 제공자 생태계
이 거대한 자본의 흐름은 복잡하게 구성된 생태계 내에서 관리된다. 이 시스템의 핵심에는 1974년 제정된 근로자 퇴직 소득 보장법(ERISA)에 따라 "가입자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행동할 법적 의무를 지는 플랜 수탁자(일반적으로 고용주)가 존재한다. 이 법적 프레임워크는 전체 시스템의 정당성과 신뢰성의 기반이 된다.
수탁자는 플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다양한 외부 전문 서비스 제공자와 계약을 맺으며, 이들의 활동은 노동부(DOL)와 국세청(IRS)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제공되는 핵심 서비스는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 관리 서비스 (Administrative Services): 플랜 및 가입자 기록 유지, 가입 절차 처리, 기여금 및 투자 선택 처리, 계좌 명세서 발급 등 기록 관리(Recordkeeping) 업무가 중심이다. 또한 가입자 계좌 내 증권 매매 처리와 같은 거래 처리, ERISA가 요구하는 신탁 자산의 안전한 보관을 위한 수탁 업무(Trustee Services)도 포함된다.
* 가입자 중심 서비스 (Participant-Focused Services): 가입자와의 소통(웹사이트, 콜센터), 투자 교육 및 자문 서비스, 개별 증권 직접 매매가 가능한 중개 창구(Brokerage Window) 제공, 대출 처리 및 분할 지급과 같은 급부 서비스 등이 있다.
* 규제 및 준법 서비스 (Regulatory & Compliance Services): 플랜 규약 문서 서비스, 차별 금지 규정 준수를 위한 테스트, 법률 자문 등 플랜이 법적 요구사항을 충족하도록 지원하는 서비스다.
이러한 구조는 401(k) 시스템의 본질적인 특성을 드러낸다. 과거 기업이 중앙에서 관리하던 확정급여형(DB) 연금에서 개인이 책임을 지는 확정기여형(DC) 연금으로의 전환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방대하고 복잡하며 비용이 많이 드는 서비스 제공자 생태계를 탄생시켰다. 즉, 시스템의 경제적 영향은 단순히 보유 자산 규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기업에서 개인에게 이전하는 과정에서 파생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관리 산업 자체에서도 발생한다. 가입자가 지불하는 수수료는 이 위험 이전의 직접적인 거래 비용인 셈이다.
자금의 흐름
자본의 흐름을 추적해 보면, 근로자의 급여에서 공제된 기여금은 종종 고용주의 매칭 기여금과 합쳐져 투자 상품으로 유입된다. 이 자금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는 뮤추얼 펀드로, 전체 401(k) 자산의 62%가 뮤추얼 펀드에 투자되어 있다. 이 과정은 노동 소득이 투자 자본으로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전환되는 경로를 형성하며, 미국 경제의 자본 순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1.2: 시장의 동력: 자본 형성과 안정성
401(k) 플랜에서 집계된 자본은 미국 자본 시장의 행태와 안정성에 직접적이고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제도는 시장에 꾸준한 자금을 공급하는 동시에, 그 자체의 설계 메커니즘을 통해 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자본의 원천
401(k)은 "연간 약 2,000억 달러에 달하는 꾸준한 자금 흐름"을 자본 시장에 공급하는 원천이다. 은퇴 저축이라는 본질적 특성에서 비롯된 이러한 장기 투자 성향은 시장 변동성을 줄이고 침체기 동안 시장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실제로 NBER(전미경제연구소)의 연구들은 이러한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기반한 저축이 자본 가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401(k)은 시장에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수요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장기적인 자본 형성에 기여한다.
가입자 행동의 역설
그러나 시스템 전체가 안정적인 자금 유입의 원천인 것과 달리, 개별 가입자의 행동은 때때로 불안정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25년 2분기와 같이 시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시기에는 401(k) 계좌 내 거래 활동이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주식에서 채권 및 안정 가치 펀드(Stable Value Fund)로 자금이 순 유출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부 투자자들의 이러한 순환 동조적(pro-cyclical)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은 401(k)이 시장 안정에 기여한다는 일반적인 통념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하지만 이러한 공황적 매도는 전체 가입자의 행동을 대변하지 않는다. 뱅가드(Vanguard)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한 해 동안 뱅가드의 401(k) 가입자 중 무려 97%가 전혀 거래를 하지 않았다". 이는 가입자 행동에 있어 심각한 양극화가 존재함을 보여준다. 소수의 적극적인 투자자들은 시장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반면, 대다수의 가입자들은 시장 상황과 무관하게 기존의 투자 상태를 유지한다.
보이지 않는 안정 장치: 설계된 관성
결론적으로, 자본 시장의 전반적인 안정성은 7,000만 명에 달하는 가입자들의 집단적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가입자들의 수동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된 플랜 디자인의 부수적 효과에 가깝다. 자동 가입(auto-enrollment) 제도의 확산과 목표 시점 펀드(Target-Date Fund, TDF)가 적격 기본 투자 대안(QDIA)으로 널리 채택되면서, 대다수의 가입자들은 사실상 '자동 운항' 모드에 놓이게 된다. 이들의 자금은 전문가에 의해 자동으로 리밸런싱 되며, 기여금은 시장 분위기와 상관없이 꾸준히 납입된다.
이러한 구조적 배경을 고려할 때, 시장 안정에 기여하는 진정한 힘은 개별 투자자가 아니라 '기본값(default option)' 그 자체임을 알 수 있다. 소수 적극적 투자자들의 공황 매도는 TDF나 관리 계좌에 기본적으로 가입되어 있는 대다수 가입자들의 구조적 수동성에 의해 흡수된다. NBER의 연구는 기본값으로 주식형 상품에 배정된 투자자들이 대부분 주식 투자를 유지한다는 점을 보여주며, 이는 마찰 비용과 관성이 투자 결정의 지배적인 요인임을 시사한다. 즉, 401(k) 시스템의 안정성은 투자자들의 행동 편향(관성, 현상 유지 편향)을 플랜 설계를 통해 활용하여 대규모 공황을 방지하는, 정교하게 설계된 공학적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1.3: 401(k)와 현대 자산운용업의 공생적 부상
401(k) 제도는 단순히 자산운용 산업의 고객이었던 것을 넘어, 그 상품과 비즈니스 모델, 그리고 시장의 지배적 플레이어를 형성한 핵심적인 동력이었다. 둘의 관계는 상호 발전을 이끈 공생 관계에 가깝다.
산업 거인의 촉매제
과거 은행과 보험사가 주로 관리하던 확정급여형(DB) 연금에서 확정기여형(DC) 연금으로의 전환은 뮤추얼 펀드 산업이 완벽하게 포착할 수 있는 거대한 신규 시장을 창출했다. 이는 피델리티(Fidelity)와 뱅가드(Vanguard) 같은 기업들의 폭발적인 성장을 견인하는 연료가 되었다. 이들 기업은 개인 투자자 중심의 새로운 세금 우대 시장에 서비스를 제공하며 자신들의 제국을 건설했다.
저비용, 확장 가능한 상품의 확산
금융 전문성이 부족한 수백만 명의 가입자들에게 투자 옵션을 제공해야 하는 필요성은 단순하고, 분산 투자되어 있으며, 저렴한 상품에 대한 엄청난 수요를 낳았다.
* 인덱스 펀드 (Index Funds): 인덱스 펀드가 401(k)을 위해 발명된 것은 아니지만, 저비용의 수동적 분산 투자라는 그 철학은 401(k) 시장에 이상적으로 부합했다. 401(k) 시장은 인덱스 펀드의 주요 유통 채널이 되었고, 이는 패시브 펀드가 액티브 펀드의 총자산을 추월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 목표 시점 펀드 (Target-Date Funds, TDFs) TDF는 가히 401(k)의 본질을 담은 상품이라 할 수 있다. TDF는 가입자들이 겪는 가장 큰 두 가지 문제, 즉 자산 배분과 리밸런싱을 "설정하고 잊어버리는(set-it-and-forget-it)" 단일 펀드로 해결해 준다. 2006년 연금 보호법(Pension Protection Act) 이후 TDF가 주요 적격 기본 투자 대안(QDIA)으로 채택되면서 시장 지배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22년 말 기준, 전체 401(k) 가입자의 59%가 TDF에 투자하고 있으며, TDF는 순 유입 자금의 대부분을 흡수하고 있다.
진화하는 비즈니스 모델: 수수료에서 자산 확보로
초기에 서비스 제공자들은 관리 수수료와 펀드 운용보수(expense ratio)를 통해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과 수수료 인하 소송은 이러한 직접적인 수익을 지속적으로 감소시켰다. 맥킨지(McKinsey)의 분석에 따르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은 기록 관리 업무를 더 수익성 높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저마진의 진입점으로 취급한다. 이제 주요 수익 목표는 다음과 같다.
* 자산 관리 교차 판매 (Wealth Management Cross-Selling): 401(k) 플랫폼을 활용하여 가입자에게 중개 계좌나 자문 서비스 같은 다른 금융 상품을 판매한다.
* IRA 롤오버 자산 확보 (IRA Rollover Capture) 궁극적인 목표는 가입자가 퇴직하거나 이직할 때 그들의 401(k) 자산 전체를 자사의 개인 은퇴 계좌(IRA)로 유치하는 것이다. IRA는 일반적으로 수수료가 더 높고 수탁자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 이 수익원은 2023년에 45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러한 변화는 강력한 피드백 루프를 형성했다. 401(k)은 단순하고 저렴한 상품을 요구했고, 이는 인덱스 펀드와 TDF의 부상을 촉진했다. 이들 상품의 성공과 규모의 경제는 다시 수수료를 더욱 낮추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이는 그들의 시장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이로 인해 뱅가드, 피델리티, 블랙록(BlackRock) 등 소수의 기업이 TDF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극심한 시장 집중 현상이 나타났다. 2022년 말 기준, 상위 5개 자산운용사가 TDF 시장의 약 80%를 관리하고 있다. 결국, 401(k)가 요구한 단순성과 규모의 경제는 단순히 새로운 상품을 탄생시킨 것을 넘어, 자산운용 산업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편하여 미국인의 주요 은퇴 저축 수단에 대한 과점적 지배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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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1: 401(k) 자산과 투자 상품의 동반 진화
구분
1990년
2000년
2010년
2023년
2024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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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401(k) 자산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7.4 조
$8.9 조
뮤추얼 펀드 비중
9%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65%
62%
TDF 투자 가입자 비중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데이터 없음
59% (2022년)
데이터 없음
주식형 펀드 평균 운용보수
데이터 없음
0.77%
데이터 없음
0.31%
0.26%
출처
주: 연도별 데이터 가용성에 따라 일부 항목은 비어 있을 수 있음.
이 표는 1부의 핵심 내용을 시각적으로 요약한다. 401(k) 총자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안, 그 구성은 TDF와 같은 저비용 상품 중심으로 극적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401(k) 시스템의 성장이 그것이 육성한 상품 및 강제한 수수료 인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명확하게 증명한다.
제2부: 구조적 결함과 사회적 적자
1부에서 401(k)이 미국 경제의 자본 순환에 기여하는 거시경제적 순기능을 살펴보았다면, 2부에서는 그 이면에 존재하는 심각한 사회적 비용과 구조적 불평등 문제를 파헤친다. 401(k) 시스템은 그 설계상의 본질적인 결함으로 인해 대다수 미국인에게는 충분한 은퇴 안전망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부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본 2부에서는 자발적 참여, 역진적 세제 혜택, 이해상충 문제 등 시스템에 내재된 구조적 결함들이 어떻게 사회적 리스크를 증폭시키고 있는지 데이터에 기반하여 비판적으로 분석할 것이다.
2.1: 격차의 시스템: 적용 범위, 참여, 그리고 부의 분열
401(k) 시스템의 가장 큰 모순은 9조 달러라는 거시적 성공의 이면에 가려진 개인 수준의 처참한 실패에 있다. 데이터는 이 시스템이 대다수 국민에게 적절한 은퇴 보장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숫자로 보는 은퇴 저축 위기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수조 달러의 자산 규모와 달리, 미국인 개개인의 현실은 암울하다.
* 0달러의 중윗값 (The $0 Median): 가장 충격적인 통계는 모든 근로 연령 인구를 포함했을 때, 은퇴 계좌 잔고의 중윗값이 $0.00라는 사실이다. 이는 1억 명이 넘는 근로 연령 인구(전체의 57~59%)가 고용주 후원 플랜이나 IRA 등 어떠한 종류의 은퇴 계좌 자산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 턱없이 부족한 잔고: 저축을 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그 잔고는 위험할 정도로 낮다. 은퇴를 앞둔 연령대(55~64세)의 일반적인 근로자는 연소득의 1배 미만에 해당하는 저축액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은퇴를 앞둔 401(k) 가입자들은 평균적으로 은퇴 후 생활 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저축 목표액의 약 3분의 1만을 달성한 상태다.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동력
401(k) 시스템은 단순히 기존의 불평등을 반영하는 것을 넘어, 이를 적극적으로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 소득 격차: 플랜 참여율은 소득 수준과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보인다. 소득 하위 25% 계층의 참여율은 15.8%에 불과한 반면, 상위 25% 계층은 74.5%에 달한다. 생애 소득 상위 20%가 전체 은퇴 자산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하위 20%는 단 1%만을 보유하고 있다.
* 인종 및 민족 격차: 이 시스템은 인종 간 부의 격차를 더욱 악화시킨다. 근로 연령대의 백인 가구는 흑인 가구보다 3.5배 이상, 히스패닉 가구보다 거의 5.5배 더 많은 은퇴 저축액을 보유하고 있다. 흑인 가구의 거의 절반, 히스패닉 가구의 3분의 2가 은퇴 플랜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데, 이는 백인 가구의 4분의 1, 고소득 가구의 10분의 1 미만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러한 격차는 플랜을 제공하는 일자리에 대한 접근성 차이 등 구조적인 문제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세제 혜택의 역진성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정부의 핵심 보조금, 즉 기여금에 대한 소득 공제 혜택은 본질적으로 역진적(regressive)이다.
* 2019년 기준, 상위 20%의 고소득층이 전체 세제 혜택의 58%를 가져간 반면, 하위 20%는 단 1%의 혜택을 받는 데 그쳤다.
* 그 이유는 간단하다. 소득 공제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사람에게 더 큰 가치를 제공하며, 연방 소득세를 내지 않는 저소득층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정부가 가장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들의 저축을 가장 많이 보조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데이터들을 종합해 볼 때, 401(k) 시스템은 국가적 은퇴 보장 제도라기보다는 중상류층 이상을 위한 세금 우대 자산 축적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음이 명백해진다. 9조 달러라는 '성공'의 이면에는 대다수를 위한 '실패한 실험'이 존재한다. 자발적 참여, 고용주의 선택, 역진적 세제 혜택에 의존하는 이 시스템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본래 고임금 임원들의 연금을 보완하기 위해 설계되었던 이 제도의 핵심 DNA는, 그것이 전 국민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불평등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아니라, 시스템의 설계도에 처음부터 각인되어 있던 필연적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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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2: 401(k) 자산 및 세제 혜택의 분배 구조
소득 분위
전체 은퇴 자산 점유율
연방 세제 혜택 점유율 (2019년)
계좌 보유자 중위 잔고
참여율
---
---
---
---
---
최하위 20%
1%
1%
데이터 없음
19%
하위 20-40%
데이터 없음
5%
데이터 없음
30%
중위 40-60%
데이터 없음
11%
데이터 없음
46%
상위 60-80%
데이터 없음
26%
데이터 없음
64%
최상위 20%
50%
58%
데이터 없음
77%
출처
주: 데이터 출처 및 연도에 따라 일부 항목의 정확한 수치는 상이할 수 있으나, 전반적인 경향성은 일관됨.
이 표는 2부의 핵심 주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산 분배, 세제 혜택 분배, 참여율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시스템의 혜택이 압도적으로 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있음을 명백히 드러낸다. 이는 401(k)이 사회적 불평등에 기여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2.2: 저축의 높은 비용: 수수료, 누수, 그리고 이해상충
401(k) 시스템 내에서 축적된 자산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잠식되며, 이는 특히 정보와 협상력이 부족한 일반 가입자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높은 수수료, 조기 인출로 인한 '누수', 그리고 시스템에 내재된 구조적 이해상충은 가입자의 최종 은퇴 자산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이다.
수수료의 부식 효과
평균 운용보수가 상당 폭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예: 주식형 펀드의 경우 2000년 0.76%에서 2024년 0.26%로 하락 ), 수수료는 여전히 장기 수익률에 심각한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단 1%의 수수료 차이가 35년 후 최종 은퇴 잔고를 28% 감소시킬 수 있다. 관리, 투자, 기록 관리 등 복잡하게 얽힌 수수료 구조는 가입자는 물론이고 심지어 플랜 후원자인 고용주조차 실제 총비용을 파악하기 어렵게 만든다.
은퇴 전 '누수(Leakage)' 현상
401(k)은 잠긴 상자가 아니다. 대출 및 긴급 재정 곤란 시 중도 인출(hardship withdrawal) 기능은 가입자들이 자금을 조기에 사용할 수 있게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자산 축적을 심각하게 저해한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계좌 보유자의 30%가 인출을 경험했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식료품비나 주거비와 같은 필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는 시스템의 치명적인 결함을 드러낸다. 많은 가입자들에게 401(k)은 유일하게 의미 있는 저축 자산 풀(pool)이기 때문에, 현재의 위기와 미래의 은퇴 사이에서 고통스러운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시스템적 이해상충 (Conflicts of Interest)
1.3절에서 논의된 서비스 제공자 비즈니스 모델의 진화는 시스템 내부에 깊은 이해상충 문제를 내재화했다.
* '협력적 경쟁(Co-opetition)'과 자체 상품: 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둔 기록 관리 회사는 자사의 자체(proprietary) 펀드를 플랜 라인업에 포함시키려는 유인을 갖는다. 종종 낮은 기록 관리 수수료를 미끼로 제공하기도 한다. 이것이 불법은 아니지만, 만약 자체 펀드의 성과가 부진할 경우 가입자에게는 최적이 아닌 투자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수익 공유 (Revenue Sharing): 자체 펀드가 없는 기록 관리 회사는 펀드 운용사와의 수익 공유 계약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 이는 펀드 성과와 무관하게 특정 펀드가 플랜 메뉴에 추가되거나 유지될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 롤오버를 둘러싼 이해상충: 가장 심각한 이해상충은 가입자가 은퇴 또는 이직 시 자산을 자사의 소매(retail) IRA로 롤오버 하도록 유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미국 회계감사원(GAO)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펀드로 고객을 유도하는 대가로 금전적 보상을 받는 것과 같은 이해상충은 평균적으로 더 낮은 수익률과 연관되어 있으며, 이는 투자자에게 수만 달러의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특히 IRA 시장은 ERISA의 엄격한 규제를 받는 401(k) 시장에 비해 수탁자 감독이 현저히 약하다.
이러한 구조는 서비스 제공자와 가입자 간의 근본적인 이해관계 불일치를 야기한다. ERISA는 플랜 후원자인 고용주에게 수탁자 의무를 부과하지만, 이들이 고용한 서비스 제공자들은 가입자의 최선의 이익과 상충될 수 있는 행위(예: 수수료가 높은 IRA로의 롤오버 유도)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는 비즈니스 모델 하에서 운영된다. 시스템의 복잡성과 불투명성은 이러한 이해상충을 최종 비용을 부담하는 수탁자와 가입자로부터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즉, 이해상충은 단순히 어떤 펀드를 선택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가입자의 생애주기에 내재된 구조적 문제이다. 자산운용 산업에 가장 수익성이 높은 이벤트인 IRA 롤오버가, 역설적으로 가입자가 가장 강력한 수탁자 보호를 상실하는 바로 그 순간에 발생하기 때문이다.
2.3: 재정적 불균형: 세금 지출과 국가 예산
이번에는 미국 정부의 관점에서 401(k) 시스템을 분석한다. 이 제도는 막대한 규모의 역진적이고 장기적인 재정 정책으로 볼 수 있으며, 국가 예산에 미치는 영향은 복합적이다.
막대하고 역진적인 조세 지출
미국 연방 정부는 은퇴 저축을 장려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현재 세수를 포기하고 있다. 2024년 한 해에만 그 규모가 4,16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1절에서 밝혔듯이, 이 보조금은 매우 역진적이어서 상위 20% 소득 계층이 전체 혜택의 58%를 가져가는 반면, 하위 20%는 1%만을 받는다.
장기 재정 전망
미 의회예산처(CBO)는 이러한 역학 관계가 향후 수십 년에 걸쳐 변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거대한 베이비붐 세대가 기여(세수 감소 요인) 단계에서 인출(과세 소득 창출 요인) 단계로 이동함에 따라, 예산에 미치는 순효과는 점차 긍정적으로 전환될 것이다. CBO는 이 효과로 인해 향후 75년간 GDP의 약 0.5%에 해당하는 연방 세수가 추가로 발생할 것이며, 그 증가분의 절반은 향후 25년 내에 나타날 것으로 추정한다.
재정적 역설
결론적으로, 401(k) 시스템은 주로 부유층에게 혜택을 주는 막대한 선불 비용(세금 지출)을 발생시키고, 그 대가로 장기에 걸쳐 완만하게 회수되는 후불 수익(미래 세수)을 기대하는 구조이다. 이러한 장기 재정 구조는 국가 부채가 급증하는 상황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 부채는 2034년까지 GDP 대비 122%, 2054년까지 166%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근본적인 정책적 질문을 제기한다. 401(k)의 세금 구조는 다년간에 걸친 재정적 도박과 같다. 정부는 사실상 고소득층에게 가장 큰 규모의 무이자 대출(세금 이연을 통해)을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미래 세금을 통한 이 '대출 상환'은 미래의 세율, 인출 행태, 시장 성과 등 수많은 변수에 따라 달라진다. 이 정책 선택은 막대한 기회비용을 수반한다. 매년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역진적 세금 지출은 사회보장제도(Social Security) 강화나 저소득층을 위한 '세이버스 매치(Saver's Match)' 확대와 같이 더 점진적이고 효과적인 은퇴 보장 해결책에 투입될 수도 있었다. 2부에서 살펴본 데이터는 현재의 방식이 비효율적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중위 소득자의 저축액이 0달러라는 사실은, 이 막대한 재원이 정작 인센티브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결국 401(k)의 재정 구조는 '광범위한 은퇴 보장'이라는 명시적 사회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부적합한 도구이지만, '고소득층을 위한 세금 우대 투자 계좌 제공'이라는 사실상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매우 효과적인 도구인 셈이다.
제3부: 나아갈 길: 개혁, 혁신, 그리고 글로벌 교훈
401(k) 시스템이 직면한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에서는 최근 중요한 입법적 변화가 이루어졌으며, 새로운 투자 방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본 3부에서는 이러한 개혁과 혁신의 방향을 분석하고, 특히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와의 비교를 통해 보다 균형 잡히고 공평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는 과거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고, 미래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책적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1: 입법적 개입: SECURE 법안과 '자동 은퇴'로의 전환
지난 10여 년간 가장 중요한 은퇴 개혁 법안으로 평가받는 SECURE 법안들은 401(k) 시스템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순수한 자발적, 개인 선택 모델의 한계를 인정하고, 구조화된 '자동'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SECURE 2.0 법안: 패러다임의 전환
2019년의 SECURE 법안을 계승한 2022년의 SECURE 2.0 법안은 시스템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한 광범위한 조치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개혁들은 순수하게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에 기반한 모델이 많은 사람들에게 실패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주요 변경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의무적 자동 가입 (Mandatory Auto-Enrollment): 2022년 12월 29일 이후 신설되는 플랜의 경우, 고용주는 적격 근로자를 최소 3%의 기여율로 자동 가입시켜야 하며, 기여율은 매년 자동으로 인상(auto-escalation)된다.
* 시간제 근로자 적용 범위 확대: 장기 시간제 근로자의 가입 자격 요건이 완화되어, 근속 요건이 3년에서 2년으로 단축되었다.
* 추가 납입 한도 상향: 60~63세의 가입자는 2025년부터 더 많은 금액을 '슈퍼 캐치업(super catch-up)'으로 추가 납입할 수 있게 된다.
* 세이버스 매치 (Saver's Match): 기존의 환급 불가능한 세이버스 크레디트(Saver's Credit)는 2027년부터 정부가 저소득 근로자의 계좌에 직접 매칭 기여금을 입금해 주는 '세이버스 매치'로 대체된다. 이는 소득세 납부 의무가 없는 저소득층에게도 실질적인 혜택을 제공한다.
* 학자금 대출 상환 매칭: 고용주가 근로자의 학자금 대출 상환액에 대해 401(k)에 매칭 기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부채 때문에 저축하지 못하는 젊은 층을 지원한다.
비판적 평가
이러한 변화들은 분명 긍정적인 진전이지만, 점진적인 개선에 그치며 상당한 허점을 안고 있다. 자동 가입 의무는 신규 플랜에만 적용되어 기존 플랜에 속한 수백만 명의 근로자들은 혜택을 받지 못한다. 세이버스 매치 역시 개선된 제도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체 은퇴 관련 세금 지출의 극히 일부(약 1%로 추정)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개혁들은 구멍 난 양동이의 구멍을 일부 때우는 수준일 뿐, 양동이 자체를 교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ECURE 법안들은 미국 은퇴 정책의 중요한 이념적 진화를 상징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라는 철학에서 행동경제학(넛지, 기본값 설정)을 활용하는 '구조화된 선택 설계'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대다수 일반 근로자들에게는 적극적인 재무 계획보다 관성이 더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을 정책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법안 통과를 위해 필요했던 정치적 타협(예: 기존 플랜에 대한 자동 가입 의무 면제)은 적용 범위 격차를 해소하는 데 있어 그 즉각적인 효과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즉, SECURE 법안들은 문제의 진단(자발적 모델의 실패)은 정확히 내렸지만, 그 처방을 너무 좁게 적용하여 단기간에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3.2: 새로운 개척지: 대체 자산과 수탁자의 도전
401(k) 투자 메뉴를 고위험, 저유동성 자산으로 확장하려는 논쟁은 시스템의 미래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잠재적 고수익의 기회와 동시에 새로운 차원의 리스크를 수반한다.
대체 자산 편입 논쟁
2025년에 발표된 행정명령은 401(k) 플랜에 사모펀드(Private Equity)나 암호화폐와 같은 대체 자산을 포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 찬성론: 사모펀드 및 암호화폐 업계를 중심으로 한 지지자들은 이것이 '금융의 민주화'이며, 이전에는 기관 투자자나 부유층에게만 허용되었던 잠재적 고수익에 일반 투자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한다.
* 반대론: 비평가들과 규제 당국은 극심한 변동성, 높고 복잡한 수수료, 유동성 부족, 그리고 일반 가입자(심지어 많은 플랜 후원자들조차)가 이러한 복잡한 투자를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없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제기한다.
노동부(DOL)의 신중한 입장
이 행정명령 이전에 노동부는 독립적인 투자 옵션이 아닌, 전문적으로 관리되는 분산 투자 펀드(예: TDF) 내의 일부 구성 요소로서 사모펀드를 허용하는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지침은 수탁자에게 운용사의 전문성, 펀드의 유동성 및 가치 평가 절차, 그리고 해당 플랜의 특정 가입자 인구 통계에 대한 적합성을 평가해야 하는 무거운 책임을 부과한다.
공급 주도의 추진
현재 이러한 상품에 대한 플랜 후원자나 가입자의 수요는 제한적이다. 이 움직임은 주로 아직 개척되지 않은 거대한 DC 플랜 자산 시장을 노리는 자산운용사들의 공급 측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 대체 자산 논쟁은 개인 근로자에게로의 지속적인 위험 전가의 과정에서 새롭고 위험한 국면을 예고한다. 만약 널리 채택된다면, 이는 401(k) 시스템을 더욱 양극화시킬 수 있다. 금융 이해도가 높은 소수의 가입자들은 더 높은 수익을 달성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상품으로 인해 재앙적인 손실에 노출될 수 있다. 이는 결국 이러한 수준의 복잡성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플랜 수탁자들을 상대로 한 새로운 소송의 물결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대체 자산으로의 확장은 ERISA의 수탁자 책임 프레임워크 자체를 위협하는 고위험 도박이며, 소수에게만 고위험-고수익 기회를 제공하고 다수에게는 새로운 잠재적 피해를 노출시킴으로써 시스템이 이미 만들어내고 있는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3.3: 비교적 관점: 한국의 DC/IRP 제도에서 얻는 교훈
미국의 401(k) 시스템을 한국의 확정기여형(DC) 및 개인형 퇴직연금(IRP) 제도와 비교 분석하는 것은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양국은 유사한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그 해결 방식과 제도의 발전 단계에서 차이를 보인다.
제도별 특징 직접 비교
미국 401(k)과 한국 DC/IRP 시스템의 주요 특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 기여금 및 매칭: 미국 401(k)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자산 축적에 강력한 동인이 되는 고용주 매칭 기여금이다. 반면, 한국의 IRP는 일반적으로 고용주 매칭 없이 개인이 납입하는 구조다.
* 인출 규칙: 미국은 59.5세부터 인출이 가능하며 조기 인출 시 10%의 페널티가 부과된다. 한국은 55세부터 가능하며, 역시 조기 인출 시 페널티가 있다.
* 디폴트 옵션 (Default Option): 이는 양국 제도의 핵심적인 차이점이다. 미국은 2006년 연금보호법 이후 단일 TDF 시리즈와 같은 진정한 '옵트아웃(opt-out)' 방식의 디폴트 옵션으로 발전했다. 반면, 한국의 제도는 가입자가 지정된 여러 디폴트 옵션 상품 목록 중에서 하나를 직접 선택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더 약한 형태의 '넛지'이며, 여전히 가입자의 결정 마비를 유발할 수 있다.
* 적용 범위 및 성과: 양국 모두 민간 부문 근로자의 약 절반 정도만 참여하는 등 유사한 적용 범위의 한계를 겪고 있다. 미국의 DC 플랜은 장기적으로 연평균 5.6%(2000~2019년)의 견조한 수익률을 기록하며 DB 플랜을 소폭 상회했다.
공유된 도전, 다른 해법
양국 시스템 모두 비정규직 근로자로의 적용 범위 확대와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장수 리스크 관리라는 공통된 과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개혁 논의는 자동 가입과 세금 공제 설계에 더 초점을 맞추는 반면, 한국의 논의는 투자 선택의 메커니즘과 연금화(annuitization)에 더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한국의 퇴직연금 제도가 디폴트 옵션과 관련하여 미국이 15~20년 전에 겪었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디폴트 옵션 메뉴' 방식 은 미국이 초기에 겪었던 '선택 과부하(choice overload)'의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 미국 경험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대다수의 무관심한 저축자들에게는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보다, 잘 설계된 단일 저비용 TDF를 진정한 옵트아웃 방식의 기본값으로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미국의 연금보호법과 그 이후 TDF의 지배적 성공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 이러한 발전 단계를 뛰어넘을 기회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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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3: 비교 분석: 미국 401(k) 대 한국 DC/IRP
주요 특징
미국 401(k) 시스템
한국 DC/IRP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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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 방식
신규 플랜은 자동 가입 의무화 (옵트아웃 방식)
자발적 가입이 원칙
디폴트 옵션
단일 적격기본투자대안(주로 TDF)으로 자동 지정
가입자가 여러 상품 목록에서 직접 선택
고용주 기여
일반적인 매칭 기여금 제도 존재 (강력한 인센티브)
DC형은 의무, IRP는 일반적으로 없음
기여 한도
연간 $23,000 (2024년 기준) + 추가 납입
IRP는 세액공제 한도(연 700만 원) 내에서 실효성
세제 혜택
기여금 소득공제 (역진적) / Roth 방식 선택 가능
세액공제 방식 (상대적으로 덜 역진적)
인출 규칙
59.5세 이후, 조기 인출 시 10% 페널티
55세 이후, 조기 인출 시 페널티
수탁자 책임
ERISA에 따른 강력한 수탁자 의무 (고용주)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따른 책임
주요 과제
적용 범위 격차, 불평등 심화, 이해상충
낮은 수익률, 가입자 무관심, 연금화 부족
출처
이 표는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에게 핵심적인 비교 정보를 제공한다. 유사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보여줌으로써, 미국 모델이 잠재적인 로드맵 또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는 특정 영역을 부각한다.
3.4: 보다 균형 잡힌 시스템을 위한 전략적 제언
본 보고서의 분석 결과를 종합하여, 미국과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각각의 퇴직연금 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이고 공평하게 발전시키기 위한 전략적 권고 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미국을 위한 제언
* 적용 범위 격차 해소: 신규 플랜에만 국한된 자동 가입 의무를 넘어, 고용주 플랜에 가입되지 않은 모든 근로자를 위한 보편적 자동 IRA(Auto-IRA)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이는 적용 범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다.
* 세제 혜택 개혁: 역진적인 조세 지출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고소득층에 대한 소득 공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그 재원을 활용하여 저소득 및 중산층 근로자에게 강력한 저축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세이버스 매치'를 대폭 확대하고 환급 가능한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
* 수탁자 보호 강화: IRA 롤오버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탁자 공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롤오버 관련 자문 및 IRA 시장 내에서의 투자 조언에 대해 ERISA와 유사한 수준의 강력한 수탁자 기준을 적용하고, 이해상충에 대한 투명성과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한국을 위한 제언
* 미국 플랜 설계 진화 과정 학습: 현재의 '디폴트 옵션 메뉴' 시스템을 재평가해야 한다. 대다수 가입자의 관성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단일의 저비용, 연령 적합형 TDF를 진정한 옵트아웃 방식의 기본값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는 미국의 성공과 실패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 고용주 기여 인센티브 강화: 자산 축적의 강력한 동력인 미국의 고용주 매칭 시스템을 연구하고, 기업들이 DC/IRP 플랜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강력한 세제 혜택이나 기타 정책적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
* 선제적인 수탁자 책임 및 수수료 규제: 미국 시장처럼 복잡하고 이해상충 문제가 만연해지기 전에, 강력한 수탁자 기준과 수수료 투명성 규제를 선제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미국의 소송 및 규제 분쟁 사례를 학습하여 처음부터 더 견고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 세금 처리 명확화: 미국과 한국 양국에 거주하거나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양국 간 퇴직연금 소득에 대한 세금 처리를 명확히 하여 이중과세나 예상치 못한 납세 부담을 방지해야 한다. 이는 실제 가입자들이 겪는 중요한 문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