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와 신체증상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격언이 있다. 이 어구는 몸과 마음이 별개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말해준다. 직관적으로 봐도 알 수 있다. 몸이 힘들면 다 귀찮고 짜증이 난다. 반대로 마음이 우울한 사람들은 다들 무기력하다. 우울해서 치료받는 사람에게 운동하라고 하면 욕을 먹기는 하는데,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하다. 운동을 통해서 신체가 달라지면 마음도 달라진다.
몸과 마음은 연결고리가 확실하게 있다. 바로 자율신경계이다. 자율신경계는 온몸에 퍼져있고, 우리가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도 몸의 신진대사가 일어날 수 있도록 알아서 조절해 준다. 의지의 말을 안 듣는다고 해서 자율신경계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율신경계에 전달되어서 몸의 여러 곳에 문제가 생긴다. 병원에 가서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나서 종종 듣게 되는 '신경성인 것 같네요'라는 말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자율신경계의 이상이 왔고 그 결과 이런 신체증상이 생겼다'는 말로 번역이 된다.
이 자율신경계는 두 가지가 있다. 위기 상태일 때 몸의 에너지를 동원해서 위기 탈출을 하게 하는 교감신경계와 평화 시에 에너지를 비축해서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부교감신경계이다.
대체로 하루 중에서 활동이 필요한 낮에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해서 내일을 대비해야 하는 밤에는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교감신경계는 각성을, 부교감신경계는 이완을 시켜준다. 그래서 간혹 밤늦게 격렬한 운동을 하면 몸은 피곤한데 운동으로 인해 교감심경계가 흥분이 되어서 잠이 안 오는 역설적인 현상이 생긴다.
교감신경계는 생쥐가 고양이를 만났을 때, 도망을 가든가(flight), 막다른 길이면 한번 싸워보고 죽자(fight)는 달갑지 않은 양자택일을 하게 하는 신경이다. 최근에는 여기에 f가 하나 더 추가되어 얼어붙는 현상(freeze)도 얘기한다. 싸우거나 도망칠 수도 없을 때는 얼어붙어서 죽은 척하는 마지막 수단을 동원하게 된다.
교감신경계는 불안해지면(편도체라는 불안증추가 흥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자극을 받아 흥분된다. 경보장치가 울리면 저절로 천정에서 물이 떨어지고 방화벽이 닫히는 식이다 그래서 발표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몇 시간 전부터 땀이 나면서 한숨이 나온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앞둔 연인은 전날밤부터 가슴이 두근거린다.
편도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듯) => 자율신경계.
딱따구리는 불안중추, 나무는 자율신경계이다.
조금 더 추가하면, 대표적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지럼증이 온다. 그 외에도 근육에는 힘이 들어가서 두통이나 어깨 통증이 오고, 위장은 멈춰 서서 속이 더부룩해진다. 그 외에도 열이 후끈거리면서 숨이 답답해질 수도 있다.
이런 교감신경계 흥분 증상은 쉬면서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진정을 시켜줘야 한다. 그런데 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처럼 낮에 일상에서 겪었던 스트레스 사건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면 쉴 수가 없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 지속이 되면, 즉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쉬지 못하면 결국 자율신경계의 균형이 무너져서 여러 가지 신경성 증상들이 생긴다. 두통, 만성피로, 위장병 등등 다들 달고 사는 걔네들이다.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이를 해소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식당에서도 단골이 오면 반찬 하나 더 주는 것처럼 불안중추(=편도체)와 교감신경계도 서로를 알아본다. 불안중추에 뭔가가 감지가 되면 교감신경계에서 반응을 하는데, 이 반응이 만성적으로 일어나면 식당에서 단골 대접하듯 더 빠르고 강한 반응이 오게 한다. 그래서 싫은 사람의 목소리만 들어도 머리털이 쭈뼛 서고, 주먹이 불끈 쥐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 사람의 싫은 짓은 지난 일인데도 지금 그 사람이 평범하게 옆사람과 얘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힘들어진다. 식당에서 단골 중에서도 vip는 더 대접을 하는 것처럼 편도체에 더 강하게 각인된 것들은 교감신경계에서는 더 특별히 취급한다. 만약 학교폭력이라는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싫은 정도가 아니라 훨씬 더 크게 반응을 한다.
(TMI; 이 부분은 '같이 놀다보면 엮이더라'는 의미의 'fire together, wire together'라는 개념이고 현대 신경과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어쩌면 모든 신경학적 현상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
싫은 사람이 자기 옆사람과 얘기를 하는 일은 평범한 일이다. 그 사람과 나쁜 관계가 없는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 안 좋은 경험 있으면 내게는 자동적으로 교감신경계가 흥분하는 반응이 일어난다. 다들 직장에 오면 머리가 아프고 답답해서 빨리 퇴근하고 싶어 하니까 큰 병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체질 같은 거라고 설명을 해주면 다들 편하게 받아들인다. 큰 병은 아니지만 나를 귀찮고 힘들게 하는 반응이며, 체질이란 게 거창한 수술이나 치료가 아니어도 노력을 하면 좋아질 수 있으니까 부담도 덜 하다. 그런데 실제로 다들 그렇게 좋아진다.
부교감신경계의 불안정의 주된 이유는 만성적인 스트레스이다. 요즘에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못지않게 트라우마가 중요하다. 트라우마를 입으면 자율신경계를 지속적으로 자극해서(악몽,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들)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진다. 증상은 여러분들이 매일 시달리는 수면 문제, 위장병, 만성피로,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 등등 다 알고 있는 증상들이다.
완벽주의자들은 만성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다. 즉 만성적으로 불안 중추인 편도체가 흥분되어 있고, 앞에서 설명한 대로 불안증추가 흥분되면 교감신경계가 같이 흥분해서 신체적인 반응을 불러온다. 교감신경은 온몸에 있어서 온몸에 증상이 오게 한다. 만성적으로 오면 이게 어쩌다 가끔 있는 상태(state)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는 특성(trait)이라고 한다. 잠시 머물다 가는 여행객 같은 상태는 며칠 휴식을 취하면 달라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내 곁에 머무는 특성은 휴직 혹은 퇴직을 해도 저절로는 낫지 않고 몇 달 이상 노력을 해야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율신경에 평화를 가져오려면?
우선 완벽주의가 주는 부담을 줄여야 한다.
일정도 조정하고, 쉬는 시간도 마련하고, 부담을 줄여준다. 하나 마나한 말인데, 부담 줄이기는 길게 다뤄질 내용이라 여기서는 이 정도로 정리.
그외에 운동, 취미생활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시간도 없지만, 무슨취미든 잘 못하면 상대를 안해주니 하고 싶어도 하기 힘들다. 취미를 갖고 재미를 느끼려면 한 1년은걸리는 것 같다. 자전거 타고 한 20,30km라도 가야 좀 탄다 싶을텐데, 현실은 토요일에 자전거 5km 타면 다음주 목요일까지 온몸이 쑤신다.
최근에 가장 관심을 받고 있는 방법이 명상과 요가이다. 제대로 배워서 하면 더 좋겠지만, 흉내먄 내도 좋아지는 것 같다. 그냥 편한 자세로, 유튜브에서 취향에 맞는 평화로운 음악 틀어놓고 호흡을 천천히 해주고(내쉬는 숨을 더 세게 하면 좋다), 근육 이완도 해준다. 근육이완은 힘을 빼는 건데, 먼저 시작은 근육에 힘을 꽉 준다. 오히려 힘을 줘야 힘이 들어간 상태와 그때부터 힘을 빼는 것의 차이가 느껴져서 힘을 뺄 수 있다. 대체로 만성적으로 근육이 긴장되어 있기 때문에 힘을 빼라고 하면 무슨 말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