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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소연 Apr 26. 2022

<유 퀴즈 온 더 블럭>보며 배우는 프로젝트 성공비밀

오래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는 무엇일까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예능 토크쇼 <유 퀴즈 온 더 블럭>


나의 최애 프로그램 중 하나가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다. 스토리가 이어지지 않고 한 번에 이야기가 완결되는 스타일을 좋아하는데, 여기에 부합하는 게 범죄 수사극 같은 CSI 시리즈나 예능 프로그램들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유재석과 조세호가 이끄는 토크쇼 형식의 예능인데, 요즘 가장 핫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사진 : 유퀴즈온더블럭 포스터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초반에는 방영 시간이 지금처럼 황금시간대가 아니었고, 시청률도 저조했다. 유재석이나 메인 PD가 서로 를 보면서 민망했을 수준인 1~2%대였다. 지금은 시청률이 2배 이상이고, 화제성으로 따지자면 훨씬 더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 됐다.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초반의 부진을 떨치고 잘나가는 프로그램이 됐을까? 


제작진의 감각이 좋았다, 유재석 덕분이다, 트렌드에 적합했다 등의 요인을 흔히 꼽는데, 대부분의 성공 사례 분석이 그렇듯이 ‘잘되니까 나중에서야 덧붙인 요인’이라는 느낌이다. 지금 감각이 좋은 제작진은 그전에도 여전히 감각이 좋았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유재석의 위상이 최근 1~2년 사이에 갑자기 올라간 것도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다들 열심히, 최선을 다했을 텐데
왜 결과가 달라졌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했을 테지만, 나는 프로젝트 실행 측면에서 흥미로운 점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성과가 지지부진하면 실행 방법을 과감하게 피보팅한다


스타트업에서 자주 쓰는 용어 중 하나가 피보팅인데, 사업의 방향을 신속하게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제작진은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만들 때 고객, 즉 시청자들의 열망을 아마도 이렇게 정의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유명인들의 이야기만 궁금해할까?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평범해 보여도, 다가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누구나 놀라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실행 방식으로는 유재석과 조세호라는 친근하고 유명한 예능인을 섭외한 후 길거리를 다니며 즉석에서 말을 걸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방식을 택했다. 무작위로 찾아가서 밥을 얻어먹는 <한끼줍쇼>를 벤치마킹한 걸까? 어쨌든 ‘우연성’에 기대다 보니 샤넬 미용실의 할머니들처럼 레전드 영상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반응이 미지근한 편이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로 촬영 상황이 어려워지자 기존의 방식대로 가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100일간의 정비 이후 큰 폭으로 방식을 바꾼다. 매회 콘셉트를 정하고, 거기에 해당하는 흥미로운 일반인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찾아가는 대신에.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변화였겠지만, 나는 이게 결정적인 호재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평범하지만 놀라운 이웃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라는 목표는 좋았지만,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즉흥적으로 말을 거는 기존의 실행 방법에는 목표를 가로막는 근본적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를 대상으로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루 대부분을 건물 안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은 일차적으로 제외되기 때문이다. 특히 연구소나 공장 같은 곳이라면 외부인의 즉석 방문 자체가 불가능하다. 연예인과 즉석 촬영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 역시 모두 제외된다. 


결국 ‘마침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거나 접근성이 좋은 가게에 있는’ 사람 중에서 ‘즉석 촬영을 승낙할 만큼 외향적인 성향’의 사람들만 남게 된다. 여기에서 유일한 장점은 ‘우연성에 의한 놀라움’인데, 이야기가 우연히 생겼다고 해서 과연 시청자들이 특별히 박수를 보낼지는 의문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제작진은 사람 여행이라는 근본적인 목표는 그대로 둔 채 실행 방법을 과감하게(또는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보팅했다. 다음은 그 이후 나온 특집들이다.


• 직업의 세계

• 문과 vs. 이과 특집

• 금손 특집

• 소방관 특집

• 돈 특집

• 살면서 안 만났으면 좋을 사람

• ○○에 진심인 사람들

• 국가 기밀 특집


특수청소 전문가,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의 진범을 잡은 형사, 씨 앗은행을 관리하는 사람들, 대구 지하철 참사를 진압한 소방관, 명품 택시기사, 햇반 또는 감자칩 만드는 연구원, 심장혈관 의사 같은 다양한 사람이 출연했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은 즉석 인터뷰를 거절했을 사람들이다. 낯가리는 조용한 성격들도 많았고, 직업 특성상 소속 기관의 허락 없이는 일 이야기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생각했던 ‘우연성’을 걷어내자 오히려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은 실력과 운이 함께한 경우이긴 하지만, 운을 잘 활용하여 기회로 만드는 것 역시 실력이다. 그러니 눈앞의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다면 잠시 멈춰서 생각해볼 일이다

.

‘분명히 사람들이
원하는 게 맞는데,
결과가 왜 이렇지?’

 

방향이 맞는다면 실행 방법이 문제일 수 있다. 지금의 실행 방법이 상대방의 열망을 정말 충족시키는지 고민해보자. 딱 맞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이라서 일단 하는 중이라는 결론이 나오면 실행 방법을 과감하게 피보팅해보자.





기회를 오래 주는 프로젝트를 하면 유리하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이 소위 뜬 것은 ‘시즌 3’이라고 불리는 2020년 3월부터다. 첫 방영이 2018년 8월이니 약 1년 반 만에 뜬 것이다. 중간에 휴식이 있는 시즌제 형식이라 정확히 1년 반이라고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프로그램이 잘됐다면 시즌제로 끊지도 않았을 테니 그다지 무리는 없는 표현인 것 같다(실제로 시즌 3부터는 1년 반 넘게 휴식 없이 쭉 진행되는 중이다).


다시 말하자면, 방송국 경영진은 성과가 지지부진한 상태였음에도 1년 반 가까이 기다려주었다. 이처럼 기회를 오랫동안 주는 일이 흔한 건 아니다. 특히 방송 업계처럼 수십 개의 프로그램이 빠르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곳이라면 말이다. 물론 기회를 오랫동안 줘도 못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해당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낼 만하다. 하지만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성공에는 ‘잘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준 시간’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궁금해진다.


왜 방송국 경영진은 이 프로그램에
오랫동안 기회를 줬을까?

방송가에 지인 하나 없는 나로서는 내막을 알 순 없지만, 경영진이 어떻게 의사 결정을 하는지 오랫동안 지켜본 바를 바탕으로 세 가지 이유를 짐작해본다.


첫 번째는 유재석이라는 S급 연예인이 있었다. 


워낙 잘하는 사람이니 기다려보면 언젠가는 터지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혹시 잘 안 되더라도 tvN의 다른 프로그램에 섭외할 수 있으니 유재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거다. 따라 서 심하게 반응이 없거나 혹평을 받지 않는 한, 출연자의 의지가 있다면 어느 정도 프로그램을 끌고 가보려는 생각 아니었을까.


둘째는 저비용 구조였다.


초기 프로그램 포맷을 보면 유재석과 조세호의 출연료를 제외하고는 비용이 딱히 많이 들지 않는 방식이었다. 길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니 세트장이 필요 없고, 유명인을 섭외하느라 비용을 지급하지도 않았다. 제작진 인건비를 제외하면 차비와 밥값, 그리고 가끔 퀴즈에 성공한 사람들에게 주는 상금 정도가 비용의 전부였을 것 같다.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이라면 지속 기준이 훨씬 깐깐했을 것이다.


셋째는 자극적이지 않은 토크쇼라는 장르였다. 


당시 tvN은 KBS, MBC, SBS에 비해 후발주자이지만, <신서유기> 같은 예능이나 <도깨비> 같은 드라마로 큰 성공을 잇는 중이었다. 어느 기업이든지 성공 궤도에 오르고 나면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긴다. 경제적 계산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시도해볼 여유 말이다. 그럴 때 가장 떠오르는 프로그램이 무엇일까?


‘우리도 시사 교양 같은 프로그램,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한 감동이 있는 프로그램을 하나쯤은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요즘 트렌드에 맞게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취지가 반영되면 더 좋고.’


내부적으로도, 그리고 외부에 보여주기에도 하나쯤은 꼭 있었으면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경영진은 좀 더 너그러운 잣대로 평가하고 기다려줬을 것이다.



우라에게 시사하는 의미


조직에서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어떤 일이든 성공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객과 시장이 해당 제품과 서비스에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걸리고, 부서원들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답을 찾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성공의 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조직에서 주는 기회가 끝나버려서 문이 닫히는 경우가 정말 많다. 그만 손을 털고 다른 프로젝트를 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우리에겐 옳은 답을 찾을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직에서는 무작정 기다려줄 수 없다. 그러니 만약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이고,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무사히 끌고 가고 싶다면 다음의 문장을 기억하길 바란다.


기회를 오래 주는
프로젝트로 만들자.


회사는 어떤 프로젝트를 오래 기다려줄까? <유 퀴즈 온 더 블럭>의 세 가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하’ 모멘트가 올 것이다.


첫째, 기회를 오래 줄 사람을 섭외한다. 


회사라면 의사 결정권이 있는 주요 임원이나 외부에서 영입한 업계의 슈퍼스타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부사장이 이끄는 프로젝트라면, 몇 달 안에 실적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쉽게 날려 보내지 않는다. 안 될 것 같으니 그만 접자고 말하기 전에 몇 번 더 기회를 준다. 긴 호흡으로 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면 처음부터 중요한 사람을 끌어들이자. 


둘째, 저비용 구조를 만든다. 


돈이 많이 들고 유지 부담이 큰 프로젝트라면 빠르게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따라서 시간을 길게 가지려면 어느 정도 성공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저렴한 비용으로 프로젝트를 꾸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애자일 방식으로 작게 프로젝트를 만들거나 기존에 있는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조직의 미래 어젠다와 연결한다. 


언젠가 가고 싶은 목적지의 프로젝트를 한다면 당장 성과는 안 나더라도 상대적으로 너그러운 잣대를 갖게 된다. 도전하고 배우는 기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하려는 프로젝트가 어떻게든 회사의 장기 어젠다와 연결되게 해야 유리하다.


예를 들어, 유통 기업에서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면, ‘빅데이터를 통한 배송 예측 분석 시스템으로 배송 비용과 시간을 절감’하는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하라. 회사가 꼭 가고 싶어 하는 방향과 연결되는 프로젝트라면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아도 기다려줄 것이다(물론 무한정 기다려주지는 않겠지만).




Key Point 

• 만약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경우이고,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무사히 끌고 가고 싶다면 기회를 오래 주는 프로젝트로 만들면 된다.

• 기회를 오래 줄 사람을 섭외한 후, 저비용 구조로 설계해서, 조직이 언젠가는 가고 싶어 하는 방향에 목적지를 맞춘다.

• 우리가 마침내 옳은 답을 찾을 때까지.”




* 출처 :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더퀘스트

* 책 정보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3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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