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아이디어는 처음부터 근사해 보일까?
그렇지 않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처음 떠올렸을 때부터 근사한 경우는 많지 않다. 물론 “유레카!” 하면서 모두 감탄할 때도 있겠지만, 처음엔 대부분 미심쩍게 보인다. ‘에이,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이 생기는 경우도 많다.
애플의 아이폰이 대표적인 예다. 많은 사람이 스티브 잡스라는 크리에이티브한 기업가가 아이폰이라는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아이폰은 개발자인 토니 퍼델과 엔지니어 직원들이 고집스럽게 주장한 제품이었고, 잡스는 오히려 개발을 끈질기게 반대한 쪽이었다.
잡스는 자신의 화려한 복귀작인 아이팟이 아이폰 때문에 부진해지는 걸 원치 않았다. 당시 잡스에게 아이팟이 얼마나 특별한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보면 금방 수긍할 수 있다. 자신을 쫓아냈던 애플에 절치부심하면서 복귀한 그가 ‘봤지?’라고 통쾌한 한 방을 먹인 제품이 바로 아이팟이다.
그리고 그때만 하더라도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기에 아이폰 개발에 더 부정적이었을 것이다. 아이폰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잡스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우리에겐 이미 근사한
아이팟과 맥북이 있는데,
무엇하러 시시한
전화기를 만들어야 해?’
잡스는 심지어 아이폰을 반대하는 이유를 목록으로 만들기도 했다. 잡스의 신경질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의 팀들은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심리학자 애덤 그랜트가 2021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을 보면 팀들이 잡스의 마음을 돌리려고 얼마나 애썼는지가 나온다.(Harvard Business Review, ‘Persuading the unpersuadable’, Adam Grant, 2021년 3월), https://hbr.org/2021/03/persuading-the-unpersuadable)
“애플이 모바일 폰을 만든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할까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언젠가는 모바일 폰을 만들지 않겠어요?”
심지어 비밀리에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제작해 보여주며, 그의 마 음을 돌렸다고 한다. 아이폰을 만들기로 한 후에도 길고 긴 설득 과정이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뒤흔들 새로운 기기가 나왔고, 그 덕에 우리는 엄청나게 달라진 세상에서 살게 됐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적인 기업가의 아이콘이 됐다.
멋진 아이디어도 초기에는 대부분 볼품이 없다.
성공 여부가 미심쩍어 보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는 되어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는 초기의 냉소적인 반응과 베타 버전의 빈약함을 묵묵히 감수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아이디어를 성공시킨다.
처음에는 초라해 보이던 아이디어지만 시장 조사를 하다 보니 구성원들 사이에서 성공하겠다는 확신이 점점 굳어지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좀 더 바른 방향으로 보강되기도 한다. 또는 A 영역에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 덮어놨는데, 전혀 다른 B 영역에 딱 들어맞는다는 걸 발견해서 과감하게 피보팅(pivoting)*하기도 한다.
* 피보팅 : 기존 사업 아이템을 바탕으로 사업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출처: 시사상식사전)
처음에 아이디어를 들려줬을 때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하더라도 부디 쫄지 마시길. 시대를 바꾼 아이폰도 처음에는 스티브 잡스에게 면박당했다는 걸 잊지 마시라.
우리의 소중한 아이디어가 주변의 저항을 받아서 피어오르기도 전에 사그라지는 건 안 될 일이다. 하지만 멘탈이 개복치인 우리에게 초기 단계의 냉정한 반응은 무척이나 쓰라리고, 용기를 강낭콩만큼이나 줄어들게 한다. 담력 문제야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실무진에 유용할 두 가지 소소한 팁이라면 알고 있다.
의사 결정자들은 야심 찬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양가적 생각에 휩싸이게 된다. ‘기회가 될 좋은 아이디어일까, 아니면 황당한 헛소리일까?’ 미래는 뿌옇고 베팅할 수 있는 자원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결정을 하기 전에 제안자에게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시장 규모는 생각해봤습니까?”
“성공한 사례가 있어요? 지금까지 A, B, C 회사가 모두 실패했는데 우리가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뭐죠?”
“현실성이 없어 보이는데 할 수 있긴 한 건가요?”
“비용은 얼마나 듭니까?”
공격적으로 채근하는 모양새에 제안자는 당황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현장에서 경험하고 공부하고, 팀원 간에 치열하게 토론한 내용이 있지 않은가. 긴장한 목소리로 하나하나 대답한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에 꼬리를 물고 날 선 질문이 이어진다. 제안자는 몇 개는 잘 대답했지만, 몇 개는 형편없이 대응했다. ‘아, 망했구나’라고 생각하며 자포자기하려는 순간, 의외의 소리를 듣는다.
“생각해볼 만한 아이디어 같군요.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다음 회의에서 더 토론해봅시다.”
생각해볼 만한 아이디어라면서 아까 왜 그렇게 공격적으로 나온거람. 제안자는 황당한 마음을 속으로 삼킨다.
많은 의사 결정자가 보이는 이런 모순적인 태도는 제안자의 태도를 유심히 지켜보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이디어가 대박일지 헛짓거리일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경영진이라도. 그래서 제안자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조사를 했는가, 얼마나 확신이 있는가를 지켜본다.
그런데 물어보는 족족 빛의 속도로 태도를 바꿔대는 제안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자.
의사 결정자: 왜 이 크기를 2인용에 맞춰서 제작하겠다는 거죠? 기왕 하는 김에 4인용이 낫지 않나요?
제안자: 아…, 네. 그럼 4인용으로 하겠습니다.
의사 결정자: 왜 소재가 플라스틱이죠? 요즘은 플라스틱에 관한 인식이 안 좋지 않나요?
제안자: 그럼…, 친환경 소재로 바꾸겠습니다.
세상에! 당연히 탈락이다.
의사 결정자는 딱히 4인용을 좋아하거나 플라스틱 소재를 혐오하는 사람도 아니다. 제안자가 디테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을 뿐이다. 제안자가 디테일을 결정할 때 충분한 고민을 거쳤는지, 그만큼 내공이 쌓인 아이디어인 건지 검증하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제안자가 줏대도 없이 말 한마디에 의견을 확확 바꾼다면 어떻게 그의 손을 들어주겠는가(물론 고집불통으로 우기라는 말은 아니다. 적어도 선택에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것은 물건을 파는 것과 비슷하다. 돈을 쓸 사람은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 입장에서 설득하는 게 유리하다. 상대방은 어떤 경우에 마음이 흔들릴까? 대표적인 세 가지 키워드를 꼽아봤다.
아이디어가 상대방의 열망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어필하는 전략이다. 상대방(리더, 경영진, 클라이언트 등)이 꿈꿔오던 열망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맨 앞에 내세운다. 애플의 팀들은 스티브 잡스가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를 기조로 세상을 이끌고자 하는 열망이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속삭였다.
“애플이 모바일 폰을 만든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우아할까요?”
지금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아이디어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전략이다. 대한제분 곰표의 콜라보 프로젝트가 좋은 예다. 1952년에 설 립된 대한제분은 70년 역사의 건실한 회사로, 매출 90% 이상이 기업 거래였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를 타깃으로 브랜드를 홍보할 이유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곰표의 브랜드 전략 TF를 맡은 김익규 마케팅팀장은 개인 소비자 브랜드의 홍보 필요성과 대한제분의 위기를 연결했다. 다음은 콘텐츠 서비스 ‘폴인’ 매거진의 ‘콜라보는 어떻게 브랜드를 바꾸는가’ 시리즈를 통해 그가 밝힌 내용이다.
지금의 2030 소비자들이 곰표를 모른다면 먼 훗날 제과 제빵 기업들도 곰표 밀가루를 외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다 대한제분의 주력 사업에 미래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어, 대대적인 브랜드 정비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 폴인, “밀가루 브랜드 곰표, 맥주 회사와 콜라보 하는 이유”, 2020.8.11, https://www.folin.co/story/1087
어떤 아이디어가 해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라면 추진 동력이 빈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개인 소비자 브랜드의 홍보가 회사의 미래를 결정할 사업이라고 인식된다면, 중요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애플의 팀들 역시 우리가 모바일 폰을 안 하면 결국 경쟁사인 마이크로소프트가 할 것이라는 주장으로 스티브 잡스에게 위기감과 경쟁심을 불러일으켰다.
아이디어가 성공했을 때의 작은 조각을 미리 보여주는 전략이다. 영화에서 보면 바닷속 보물섬을 찾는 일에 후원자를 설득할 때도 비밀스러워 보이는 지도나 15세기 금화를 살짝 보여주지 않던가.
머릿속 상상만 서로 이야기하다 보면 몸을 움직여 추진하기까지 지지부진한 시간이 길어질 수 있다. 이럴 때 시제품이든 시범 사업이든, 결과의 일부를 보여주자. 처음 집을 꾸며보는 신혼부부에게 가구와 인테리어 카탈로그를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애플의 팀들은 아이폰 시제품을 만들어서 스티브 잡스에게 보여주었다. 대한제분 곰표는 주력 사업을 건드리는 대신 MZ세대에게 호응이 좋고 비용도 크게 들지 않는 굿즈를 하나씩 출범해서 시장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걸 눈으로 확인한 후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그게 되겠어요?”라고 미심쩍게 말하는 상대방이 있다면 “그럼 A를 작게 한번 해볼까요?”라고 가볍게 제안하자. 설사 실패해도 부담이 없는 선에서 말이다. A에서 검증된 성공의 작은 조각은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데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라도 처음부터 근사한 경우는 많지 않다. 시대를 바꾼 아이폰 아이디어도 처음에는 스티브 잡스에게 면박당했다.
• 처음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줬을 때 주변의 반응이 시큰둥해도 부디 쫄지 마시길.
• 누군가는 초기의 냉소적인 반응과 베타 버전의 빈약함을 묵묵히 감수하고 다음 단계로 나아감으로써 아이디어를 성공시킨다.
* 출처 : <일하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소연, 더퀘스트
* 책 정보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338522
지난 번 이벤트는 아주 성황리(?)에 끝났습니다. 응모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응모해주신 분들이라면 '역시 물 반 고기 반이 진짜였어!' 라고 생각하시며 메일을 슬쩍, 보낸 그 순간을 뿌듯해하실겁니다 ㅎㅎ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도 끝나고 이제 새로운 시작이라서 설레네요. 마침 저는 신간도 나온터라 조금 더 설레이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동안 집, 카페, 수퍼만 왔다갔다하던 생활에서 벗어나야겠네요. 사무공간에서 위에는 멀쩡한 셔츠, 아래는 츄리닝으로 온라인 강의하던 편리함은 약간 아쉬워질 것 같지만, 그래도 직접 얼굴을 보며 에너지를 얻는 즐거움 역시 크겠지요.
근사한 봄날, 다들 잘 누리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