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상인의 말로

『낭만?전통시장,골목상권 생존 조건』 오십 네번째 글

by 멘토K

나는 시장을 다니다 보면 비슷한 말을 자주 듣는다.
“예전엔 잘됐는데 요즘은 안 돼요.”
그 말 속엔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섞여 있다.
상인은 매일 변화를 체감하지만, 동시에 그 변화가 두렵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는 사람만이 결국 남는다.


십수 년 전만 해도 손님은 시장에 ‘와야’ 살 수 있었다.
물건을 고르려면 직접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았다.
그때 상인은 ‘물건을 가진 사람’이자 ‘정보를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고객은 스마트폰으로 상품 비교를 하고, 리뷰를 보고, 배송까지 클릭 한 번이면 끝낸다.
이제 상인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고객의 선택을 돕는 사람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면, 시장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밀린다.


몇 해 전 나는 한 시장 상인회를 자문한 적이 있다.
회의 중에 한 어르신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뭘 더 바꿔요. 여태 이렇게 해왔는데.”
그 말이 회의실 안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그 말이 고집이라고 했지만, 나는 달리 들렸다.
그건 ‘두려움의 다른 이름’이었다.
바꾸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라서 멈춰 있는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의 한 전통시장에는 오랫동안 떡집을 운영하던 상인이 있었다.
그는 “우리 떡이 제일 맛있다”며 20년 넘게 같은 방식으로 영업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인근에 ‘수제 떡카페’가 생겼다.
메뉴는 비슷했지만, 포장과 디스플레이, 사진 촬영이 달랐다.
젊은 손님들은 카페로 향했고,
그는 점점 “요즘 사람들은 눈으로만 산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그 한탄은 현실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그는 가게를 정리했다.
그는 맛은 변하지 않았지만, 손님이 변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시장은 변했지만, 상인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상인은 열심히 일한다.
새벽부터 나와 물건을 받고, 진열하고, 손님을 맞이한다.
하지만 ‘열심히’와 ‘잘한다’는 다르다.
예전 방식의 열심은 더 이상 경쟁력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새로운 방식으로 꾸준히 시도하는 사람’이 이긴다.


변화에 적응한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고,
간판을 바꾸고, 결제 시스템을 개선하고,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이런 사소한 변화가 점포의 미래를 바꾼다.
‘젊은 세대가 시장에 안 온다’고 한탄하기 전에,
그들이 시장을 왜 찾아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시장에 없는 건 고객이 아니라 이유다.


나는 전국의 여러 시장을 다니며 희망의 사례도 많이 봤다.
부산의 한 어묵가게는 온라인 판매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주문이 하루 두세 건이었지만,
꾸준히 포장 개선과 후기 관리를 하면서 지금은 전국 배송을 한다.
그 상인은 이렇게 말했다.
“나도 나이 들었지만, 손님은 더 빨리 변하잖아요.”
그 말이 정답이었다.
변화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따라잡으려는 의지가 있는 한, 시장도 늙지 않는다.

312.png


나는 ‘상인의 생존력’은 결국 배움의 속도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걸 배우고, 낯선 걸 시도하고,
그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 말이다.
시장은 여전히 배울 것이 많은 현장이다.
다만 그 배움의 방향이 이제 ‘고객 중심’으로 옮겨가야 한다.


최근 나는 한 시장 상인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은 장사보다 공부가 더 힘들어요.”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변화가 빠르다는 뜻이고,
그 속도를 따라가려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예전에는 ‘노력’이 생존의 조건이었다면,
지금은 ‘적응’이 생존의 조건이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상인은 결국 시장의 풍경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적응하는 상인은 새로운 시장을 만든다.
그 차이는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유연함에서 시작된다.
“내가 30년 장사했는데, 이제 와서 새로 배워야 하나?”
그럴수록 배워야 한다.
지금의 고객은 30년 전 손님이 아니다.
그들은 ‘정’보다 ‘효율’을, ‘싸다’보다 ‘편하다’를 선택한다.


시장은 여전히 살아 있다.
단지 그 생명력은 ‘익숙함’이 아니라 ‘변화 속의 생존력’에서 나온다.
앞으로 시장의 미래는 어떤 시스템이나 기술이 아닌,
변화를 받아들이는 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태도에 달려 있다.


나는 오늘도 현장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변화는 두렵지만, 변하지 않는 건 더 두렵습니다.”
시장은 늘 변해왔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다.
그 흐름을 막을 수 없다면,
그 안에서 배우고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한다.


- 멘토 K -

이전 23화#53. 시장형 이커머스, 왜 실패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