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말보다 자극이 통하는 사회, 소통의 붕괴

『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열 세번째 글

by 멘토K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많은 말을 하는데, 왜 서로를 더 이해하지 못할까?

뉴스를 열어도, SNS를 보아도, 세상은 말로 가득 차 있다. 댓글이 쏟아지고, 의견이 넘치고, 누군가는 하루에도 수십 번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말이 많아질수록 이해는 줄어든다. 대화는 늘어났지만 소통은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말이 넘치는 시대가 아니라 자극이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말을 오래 했다. 생각을 설명하고, 서로의 입장을 듣고, 천천히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화는 다르다. 설명은 길고 지루한 것이 되었고, 짧고 강한 문장이 더 빨리 퍼진다. 맥락보다 감정이 먼저 전달되고 논리보다 분노가 더 많은 공감을 얻는다.


이렇게 자극이 대화를 대신하기 시작하면 소통은 자연스럽게 붕괴한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인간의 말과 마음이 어디에서 균형을 잃는지를 설명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 (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를 중(中)이라 하고 그 감정이 드러나되 절도에 맞을 때 화(和)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이 문장을 곱씹어 보면 소통의 본질이 보인다. 대화는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지만 그 감정이 절도를 잃지 않을 때 비로소 관계는 조화를 이룬다.


지금 우리의 말은 절도를 잃은 감정에 더 가깝다. 사람들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감정을 던진다.

누군가는 분노를 올리고 누군가는 조롱을 던지고 누군가는 상대를 규정해 버린다. 그 순간 대화는 끝난다.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는 과정이 아니라 누가 더 강하게 말하는지를 겨루는 싸움이 된다.

이것이 바로 말보다 자극이 통하는 사회의 모습이다.


나는 강의를 다니며 이런 장면을 자주 본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금세 집중력을 잃는다. 하지만 누군가 강하게 문제를 비판하거나 감정을 실어 말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살아난다.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집중한 것이 아니라 자극에 반응한 것이다. 이때 대화의 방향은 이미 바뀐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가 아니라 누가 더 강한 메시지를 던지는지의 경쟁이 된다.


공자는 이런 상황을 오래전에 경계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소인은 겉으로 같아 보여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오늘날의 소통 문제를 정확히 보여준다.


진짜 소통은 생각이 같아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면서도 관계를 유지하는 태도에서 생긴다. 그러나 자극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다름이 곧 갈등이 된다. 사람들은 서로의 말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편을 확인하려 한다. 대화는 의견 교환이 아니라 진영 확인이 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맥락이다.


맥락이 사라지면 말은 오해를 낳는다.

그리고 오해는 다시 더 강한 자극을 낳는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소통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중용』의 첫 구절은 인간 관계의 출발점을 이렇게 말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教 (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


사람의 본성에는 서로를 이해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야기를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며 관계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자극이 소통을 대신하기 시작하면 이 본성은 점점 약해진다. 사람들은 설명하기보다 반응하게 되고 생각하기보다 즉각 판단하게 된다.

그 결과 대화는 점점 짧아지고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우리는 언제부터 대화를 이렇게 어려워하게 되었을까? 사람을 설득하는 것보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 더 쉬워진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논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더 빠른 순간부터였을지도 모른다. 그때부터 대화는 생각의 교환이 아니라 감정의 확산이 되었다.

『중용』은 또 이렇게 말한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 (성자 천지도야 사성자 인지도야).”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며 그 성실을 지키려 애쓰는 것이 인간의 도라는 뜻이다.


소통에서도 이 성(誠)이 중요하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진심으로 말하려는 태도. 이기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 말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있을 때 대화는 다시 살아난다.

지금 사회는 빠르게 말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주목을 준다.


그러나 진짜 소통은 빠른 말에서 나오지 않는다.

천천히 듣는 태도에서 나온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사람만이 대화를 이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중용』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말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지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中)과 화(和)가 이루어질 때 세상은 제자리를 찾고 만물이 자란다는 뜻이다. 소통도 마찬가지다. 말의 중심이 바로 서고 감정의 절도가 지켜질 때 비로소 대화는 다시 자라난다.

자극이 지배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더 조용한 언어가 필요하다.

큰 목소리가 아니라 깊은 말. 빠른 반응이 아니라 천천히 이해하려는 태도.

그곳에서 다시 소통은 시작된다.


- 멘토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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