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열 세번째 글
요즘 일터를 들여다보면 묘한 긴장이 흐른다.
같은 팀인데도 서로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각자의 생존을 계산한다.
성과는 개인의 몫이 되고, 실패는 조직의 책임이 된다.
이제 협력은 미덕이 아니라, 여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사치’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은 말한다.
“경쟁이 있어야 성장한다”고.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경쟁 그 자체가 아니라 경쟁이 유일한 질서가 되어버렸다는 데 있다.경쟁이 기준이 되면 사람은 동료가 아니라 비교 대상이 되고, 함께 일하는 관계는 언제든 깨질 수 있는 임시 동맹이 된다. 그 순간 일터는 성과를 내는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전장이 된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했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군자는 조화를 이루되 같아지려 하지 않고,
소인은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문장은 오늘날의 조직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서로 같은 목표, 같은 KPI, 같은 기준을 공유하지만 정작 조화는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나는 여러 기업의 현장을 오가며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아왔다.
회의실에서는 “협업”을 말하지만, 평가 시즌이 다가오면 분위기가 달라진다.
정보는 공유되지 않고, 도움은 계산된 선택이 된다.
누군가를 돕는 순간 내 몫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불안이 자리 잡는다.
이 불안이 쌓이면 협력은 위험한 선택이 된다.
『중용』은 인간의 감정과 행동이 어디에서 균형을 잃는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감정이 드러나되 절도에 맞을 때 화(和)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성과 욕구, 인정받고 싶은 마음, 앞서고 싶은 감정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절도를 잃으면 관계는 깨지고 조직은 메말라간다.
지금의 일터는 절도를 잃은 경쟁에 더 가깝다.
성과는 숫자로 환원되고, 사람은 지표로 평가된다.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해냈는지가 모든 판단의 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관계의 맥락, 함께 만들어낸 과정, 서로를 지탱해 준 시간은 쉽게 사라진다.
협력은 보이지 않는 기여가 되고, 보이지 않는 기여는 평가에서 밀려난다.
『중용』의 첫 구절은 인간의 본성을 이렇게 말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教(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라고 했다.
인간의 성에는 홀로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부분이 없다.
사람은 본래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함께할 때 더 멀리 갈 수 있도록 태어났다.
그런데 일터가 이 본성을 거스르기 시작하면 사람은 점점 고립된다.
나는 한 조직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는 좋은 사람보다 일 잘하는 사람이 살아남아요.”
그 말 속에는 체념과 피로가 함께 담겨 있었다.
물론 일은 잘해야 한다. 그러나 그 말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질문을 멈춘다.
도와주지 않고, 함께 고민하지 않는다.
각자 살아남는 법만 익힌다. 이것은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조직의 패배다.
공자는 중용을 중간에 서는 태도로 오해하지 말라고 했다.
중용은 타협이 아니라 중심이다.
경쟁과 협력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경쟁을 없애자는 말이 아니다.
경쟁이 조직을 움직이는 유일한 힘이 될 때, 그 중심을 다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중용』은 또 이렇게 말한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성자, 천지도야; 사성자, 인지도야).”
성실함은 하늘의 도요, 성실하려 애쓰는 것은 인간의 도라고 했다.
일터에서의 협력은 바로 이 성(誠)에서 시작된다.
내가 잘되기 위해 남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되기 위해 서로를 신뢰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사라질 때 협력은 사치가 된다.
나는 성과가 뛰어난 조직보다
오래 버티는 조직이 더 인상 깊었다.
그 조직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경쟁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 경쟁이 사람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서로의 성과를 빼앗기보다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그들은 빠르지 않았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지금의 일터는 속도를 숭배한다.
그러나 중용의 관점에서 보면 속도는 방향을 잃을 때 가장 위험해진다.
빨리 가되, 함께 가는 길.
앞서되, 뒤처진 사람을 완전히 버리지 않는 태도.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조직은 잠시 성과를 낼 수는 있어도
결코 오래 지속되지는 못한다.
『중용』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지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과 화가 이루어지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는 뜻이다.
일터도 마찬가지다. 경쟁과 협력이 제자리를 찾을 때 사람은 성장하고 조직은 살아 움직인다.
협력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대다. 그러나 사실 협력은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이다.
경쟁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중용의 일터란 이기되 함께 이기는 길, 앞서되 함께 가는 길이다.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이 일터에서
나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와 함께 가고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중심을 잃지 않을 때,
경쟁은 파괴가 아니라 성장의 도구가 되고,
협력은 사치가 아니라
가장 인간다운 선택이 된다.
- 멘토 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