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술의 양극단, 효율과 인간소외의 갈림길

『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열 번째 글

by 멘토K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편이었다.
더 빨리 이동하고, 더 정확히 계산하며,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기 위해 우리는 기술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술 앞에서 사람이 작아지는 느낌을 받는다.
업무는 빨라졌지만 마음은 바빠졌고,
편리해졌지만 고립감은 깊어졌다.
효율은 극대화되었지만, 인간은 점점 소외되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기술은 어디까지가 진보이고, 어디서부터 위험이 되는가.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인간이 길을 잃는 순간을 정확히 짚어낸다.
“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 民鮮久矣(중용지위덕야, 기지의호, 민선구의).”
중용의 덕은 지극하지만, 사람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 잃어버렸다는 탄식이다.
기술의 발전 역시 이 중용을 잃는 순간,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밀어내는 구조가 된다.


요즘 우리는 ‘효율’이라는 말에 쉽게 설득된다.
더 빠른 처리, 더 낮은 비용, 더 높은 생산성.
모든 판단의 기준이 숫자로 환산된다.
그러나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
사람의 감정, 관계의 온기, 실패 속에서 배우는 느린 성장 같은 것들이다.
기술은 이 영역을 잘 다루지 못한다.
그래서 효율이 절대 기준이 되는 순간, 인간은 자연스럽게 주변부로 밀려난다.


『중용』의 첫 문장은 인간과 세상의 질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教(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이 도(道)이며,
그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인간의 본성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의미를 찾으며,
스스로를 성찰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기술이 이 본성을 거스르기 시작할 때,
우리는 편리함 속에서 길을 잃는다.


나는 어느 회사의 자동화 프로젝트를 자문한 적이 있다.
보고서에는 분명히 ‘성과’가 찍혀 있었다.
인력은 줄었고, 처리 속도는 빨라졌으며, 비용도 절감되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은 달랐다.
서로 대화가 줄었고, 자신의 역할이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퍼져 있었다.
기술은 성공했지만, 조직의 온도는 급격히 낮아졌다.
이것이 바로 효율의 극단이 만들어낸 인간소외의 풍경이었다.

011803.png


『중용』은 감정의 균형을 이렇게 말한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감정이 드러나되 절도에 맞을 때 화(和)가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쓰임이 드러나되 절도가 있어야 조화가 생긴다.
과도한 자동화, 무분별한 감시, 인간을 배제한 결정 시스템은
중(中)을 잃은 기술이다.
그 결과는 언제나 불균형이다.


요즘 인공지능, 알고리즘,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분명 필요한 기술이고, 잘 쓰면 사회를 더 안전하고 공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이 판단의 주체가 될 때다.
사람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확률과 패턴만으로 결정을 내리면
누군가는 설명할 수 없는 불이익을 감당하게 된다.
이때 기술은 중립이 아니라, 책임 없는 권력이 된다.


공자는 인간 사회의 기준을 이렇게 말했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성자, 천지도야; 사성자, 인지도야).”
성실함은 하늘의 도요,
그 성실을 지키려 애쓰는 것이 인간의 도라는 뜻이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이 성(誠)이 더 중요해진다.
모든 것을 기술 탓으로 돌리지 않고,
기술을 어떻게 쓰기로 결정한 인간이 책임을 지는 태도.
그 책임의식이 사라지면,
아무리 정교한 기술도 사회를 병들게 만든다.


중용은 기술을 거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중용은 언제나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묻는다.
느림과 빠름 사이,
효율과 배려 사이,
자동화와 인간의 개입 사이에서
중심을 찾는 일.
그 중심이 바로 인간이다.


나는 기술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기술은 계산할 수 있지만,
공감할 수는 없고,
책임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마지막 판단의 자리에 사람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 자리가 바로 중용의 자리다.


『중용』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지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과 화가 이루어지면
천지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는 말이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중심을 잃지 않을 때,
기술은 인간을 키운다.
그러나 중심을 잃는 순간,
기술은 인간을 밀어낸다.


지금 우리는 갈림길에 서 있다.
효율의 끝으로 달려갈 것인가,
아니면 인간을 중심에 두는 속도를 선택할 것인가.
중용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빠르되 무정하지 않고,
똑똑하되 차갑지 않은 길.
기술이 다시 인간의 손에 놓일 때,
비로소 진정한 진보는 시작된다.


- 멘토 K -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11화#11. 리더십의 부재, 책임이 사라진 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