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리더십의 부재, 책임이 사라진 자리

『진정한 중용의 길_1부_극단의 시대』열 한번째 글

by 멘토K


요즘 사회를 바라보다 보면 묘한 공허함이 느껴진다.

사건은 끊임없이 터지는데, 그 사건을 온전히 책임지는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전임자의 책임”이라고 선을 긋는다.

결국 남는 것은 분노와 허탈감,

그리고 “그래서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뿐이다.


리더십의 부재는 단지 지도자의 수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책임이 사라진 자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권한은 넘쳐나는데, 책임은 흩어지고

결정은 내려지는데, 그 결정의 무게를 짊어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마주한 리더십의 실체다.


공자(孔子)는 『중용(中庸)』에서

리더가 서야 할 자리를 분명하게 짚었다.

“君子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군자소기위이행, 불원호기외).”


군자는 자신의 자리에 맞게 행동하며, 그 자리를 벗어난 것을 탐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리더십이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의 책임을 끝까지 감당하는 태도라는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리더는 자리를 ‘권력’으로만 이해한다.

결정권은 빠르게 행사하지만,

그 결정이 낳은 결과에 대해서는 한 발 물러선다.


문제가 생기면 설명 대신 변명으로 대응하고,

실패가 드러나면 책임 대신 절차를 들이민다.

그 순간 리더십은 사라지고, 조직과 사회는 방향을 잃는다.


『중용』은 인간과 사회의 질서를 이렇게 설명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教(천명지위성, 솔성지위도, 수도지위교).”

하늘이 부여한 본성에 따라 사는 것이 도(道)이며, 그 도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는 뜻이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의 본성은 위에 서는 것이 아니라

아래를 책임지는 데 있다.

그 본성을 거스르면 조직은 곧바로 혼란에 빠진다.


나는 여러 조직을 컨설팅하며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았다.


회의실에서는 “우리 조직은 수평적입니다”라는 말이 반복되지만,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아무도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모두가 의견을 냈지만,

그 의견을 최종적으로 책임질 사람은 없다.

결국 문제는 미뤄지고,

현장은 더 큰 혼란을 떠안는다.


이것은 수평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실종이다.


공자는 감정과 행동의 절제를 강조했다.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 發而皆中節謂之和(희로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개중절 위지화).”

감정이 발하되 절도에 맞을 때 화(和)가 이루어진다.


리더십도 감정의 절제가 필요하다.

위기 앞에서 과도한 자신감도,

과도한 회피도 모두 문제다.

중용의 리더십이란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고,

필요한 만큼만 행동하며,

그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태도다.


오늘날 리더십이 흔들리는 또 다른 이유는

‘결정의 외주화’ 때문이다.


전문가에게 맡겼다,

위원회에서 논의했다,

법과 제도가 그렇게 되어 있다.


이 말들은 모두 필요하지만,

그 뒤에 숨으면 안 된다.

결정의 과정은 나눌 수 있어도

책임의 주체는 분명해야 한다.


중용은 애매함이 아니다.

중용은 중심을 분명히 세운 상태에서의 절제다.


『중용』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誠者, 天之道也; 思誠者, 人之道也(성자, 천지도야; 사성자, 인지도야).”

성(誠)은 하늘의 도요,

성실하려 애쓰는 것은 인간의 도라는 말이다.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바로 이 성(誠)이다.

모든 것을 완벽히 알 수는 없지만,

모든 결과를 피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도망치지 않겠다는 진심.

그 진심이 있을 때,

사람들은 리더를 믿는다.


나는 한 번은 실패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조직의 리더를 본 적이 있다.


그는 변명하지 않았고,

부하에게 책임을 돌리지도 않았다.

“이 결정은 내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 한 문장에 조직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신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시 움직일 힘을 얻었다.


책임을 지는 순간,

리더십은 오히려 단단해졌다.


반대로 책임을 회피하는 리더 아래에서는

조직이 점점 조용해진다.


사람들은 말하지 않고,

문제를 숨기고,

결정을 미룬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안에서는 균열이 커진다.

이것이 바로 책임이 사라진 자리의 풍경이다.


『중용』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한다.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지중화, 천지위언, 만물육언).”

중(中)과 화(和)가 이루어질 때

천지(天地)가 제자리를 잡고

만물이 자란다는 뜻이다.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자신의 자리를 바로 세울 때,

조직은 안정되고

사람들은 성장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모든 답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고,

실패 앞에서 물러서지 않으며,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이 바로 중용의 리더십이다.


리더십의 부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책임을 조금씩 내려놓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불신과 분노로 채워진다.

이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원하고 있는가.


중용은 타협이 아니다.

중용은 중심이다.

그 중심에 책임이 놓일 때,

비로소 리더십은 다시 살아난다.


- 멘토 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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