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문화는 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바뀌고 싶어지는 환경을 설계할 때 움직인다
사일로 문화가 심한 조직에 합류한다는 건 처음부터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그동안 이 조직은 지난 3년간 워터폴 방식에 익숙했고, 부서 간 소통과 협업보다는 각자의 업무 경계선을 분명히 긋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습니다. 나는 이 조직에 '원팀으로서의 협업'이라는 애자일 경험을 심어보고자 결심하고 합류했습니다.
‘애자일은 프로세스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나는 명확하게 나 자신의 애자일을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의 일과 남의 일을 구분짓지 않는 것, 나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것, 바텀업을 해서 상사나 다른 팀의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으로 더 나은 방안을 찾는 것,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모였을 때 애자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바꾸는 방법도 알고 있었고 전략이 있었습니다. 주기적 1on1을 통해 구성원의 생각을 이해하고 라포와 신뢰를 형성합니다. 그 뒤에 극도의 솔직함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는 가운데 점점 더 나은 “한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방향은 물론 위의 애자일에 대한 생각의 싱크를 맞추는 것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변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일부 팀에서는 의미 있는 작은 성과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 역시 회사의 오랜 문화에 익숙해 있었으나 점차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습니다.
“받은 만큼만 일을 하는게 아니라 먼저 보여주면 그 이상의 인정과 보상을 기대할 수 있다”
“바텀업은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모든 구성원의 자질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회사가 원하는 일을 찾아 싱크를 맞추는게 동기부여의 시작이다”
등등, 여러가지 피드백을 주고받았습니다. 조금씩 그들의 마음가짐에 조금씩 울림을 줄 수 있었고 그들은 본인과 회사를 위해 자발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전체 조직의 변화는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백엔드와 프론트엔드 개발팀은 같은 기술 조직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각자가 맡은 일이 다르고 태스크 형태로 할당되는 워터폴 방식에서 각자 맡은 업무 외에 협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나의 꾸준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간극은 쉽게 좁혀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각자의 방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일로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명확하게 해야 할 일을 리더가 정해 주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믿으며, 다른 팀과 협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걸 발견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맡은 업무 이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소통 낭비라고 생각했습니다. 개발팀은 개발만 잘해주면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오버커뮤니케이션, 잦은 공유, 잦은 소통, 커다란 원팀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 생각에 틀린 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무렵 저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에서 더해 “환경에 익숙해진 사람도 변화하기 어렵다” 는 결론을 하나 더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한 명의 구성원이 옳고 나쁨을 떠나 환경에 길들여진 사람의 태도가 얼마나 일관적이며 다른 환경과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지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회사의 경영 악화가 심해졌고, 이 상황이 1년 이상 지속될 무렵 결국 나는 조직을 떠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중차대한 위기가 발생한 것입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습니다. 그 순간 조직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자발적인 문제 제기와 해결방안 탐구, 회사 전체를 대상으로 한 잦은 소통이 갑자기 되기 시작했습니다. 위기를 마주한 개발팀은 처음으로 함께 문제 해결에 몰두했습니다. 백엔드와 프론트엔드 개발자들이 긴급 워룸에서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로그를 분석하고,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빠르게 배포하는 협업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내가 그렇게 원했던 소통과 협업이 나의 퇴사 결정 이후에야 비로소 스스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했지만, 동시에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평소에는 각자의 울타리 안에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낍니다. 다른 팀과 엮이면 일은 복잡해지고 책임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입니다. 사일로 문화는 이 ‘편안한 안전지대’를 보장해 주는 구조였습니다. 즉 변화가 필요없는 편안한 상태가 지속된 것입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술조직 전체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더 이상 개인의 울타리 안에 숨어 있을 수 없습니다. 회사의 평판과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서로 단절된 상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고, 그제야 사람들은 안전지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게 됩니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기의식이 행동 변화를 촉구했습니다. 우리는 협업은 평소에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은 공허한 구호로 남기 쉽습니다. “우리 함께 협업합시다”라는 말은 달력에 적힌 목표처럼 잊히기 쉽지만, ‘심각한 위기’라는 긴급한 현실 속 문제는 사람들을 실제로 움직이고 변화하게 만듭니다. 더 이상 협업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필수가 됩니다. 어떤 조직은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변하지 않지만, 외부 환경이 변화를 강제로 요구할 때, 사람들은 스스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 깊이 체감했습니다.
리더는 조직의 완충지대가 되어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완충지대 때문에 조직이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기도 합니다. ‘리더가 해결해 주겠지’라는 암묵적인 기대는 개인의 책임감을 마비시키고, 행동의 동기를 빼앗아 갑니다. 하지만 리더가 떠난 뒤 위기가 찾아오면,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자발성이 싹트는 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오면 바뀐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더불어 이 경험은 아래와 같은 몇가지 생각해볼 고민을 안겨주었습니다.
Q.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변하지 않아서 변하지 않는 것 아닐까?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할 이유와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환경이 ‘변화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제공하고 있다면, 사람은 그대로 머무릅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해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면,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행동을 바꿉니다.
그렇다면 조직 문화는 결국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스스로 바뀌고 싶어지는 환경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애자일, 협업, 자발성, 문제 해결 중심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본질적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조직 문화 개선을 시도할 때, 강제로 변화를 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 아닐까?
애자일은 사람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질문은 다시 조직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돌아옵니다. 강제로 변화를 줄 수 있는 환경은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협업을 해야만 하는, 타팀과 소통해야만 하는 구조적인 환경의 변화입니다.
사람은 변화 자체를 본능적으로 두려워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을 편하게 생각합니다. 특히 사일로 문화처럼 경계가 명확한 환경에서는 ‘내가 할 일’과 ‘내 책임 영역’이 분명해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방식으로 협업하고, 타 팀과 얽히며, 피곤하게 변화를 시도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번 경험으로 위기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꾼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해서 변한 것이 아닙니다. 변하지 않으면 조직이 위험해지고, 자신의 책임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에 행동을 바꾼 것입니다.
즉, 큰 위기는 사람들의 우선순위를 ‘편안함 → 문제 해결’로 전환시킵니다. 이것이 ‘강제로 변화를 줄 수 있는 환경’이 주는 힘입니다.
그러면 애자일은 ‘사람의 마음가짐’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과 변화를 ‘해야만 하는 시스템과 프로세스’로 만들어야 현실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러기 위해 업무 프로세스 자체를 협업을 요구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배포/테스트/운영 등 개발 과정에 타 팀의 승인·리뷰가 필수인 체계 도입하고 기획부터 참여하는 회의 문화를 독려합니다. 무엇보다 고객 피드백 기반으로 우선순위를 바꾸는 과정에 전 팀이 참여하도록 규칙화하거나 360 리뷰를 통해 타팀 간 서로 평가를 하는 시스템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리더십의 역할은 끝까지 붙잡고 바꾸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설계하고 떠나는 것이 더 나을 때도 있는 것 아닐까?
처음에는 리더의 역할이란 끝까지 붙잡고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조직 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은 리더인 내가 더 열심히 설득하고, 더 오래 버티며, 더 많은 책임을 짊어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그 믿음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조직 안에서 리더의 존재는 때로 완충지대가 되기도 합니다. 위기가 다가와도, 사람들은 “리더가 어떻게든 해결해주겠지”라는 기대 속에 머물며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결국 ‘변화’는 리더가 주도해야 하는 일이라는 암묵적 규칙이 조직 전체에 깔려버리고, 리더는 그 기대를 끝없이 감당해야 합니다.
그들은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서로 소통하지 않던 개발팀이 긴급 워룸을 만들어 실시간으로 협업했고,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논의하고 책임을 나누며 대응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끝까지 붙잡고 바꾸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사람들이 스스로 바뀌고 싶어지도록 환경을 설계해 놓고 떠나는 것이 더 나은 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리더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Q. 협업이 안 되던 조직이 협업을 시작했을 때, 이를 지속 가능한 문화로 전환하기 위해 어떤 장치를 남길 수 있을까?
위기가 끝나고 나면 협업이 자발적으로 지속될까요, 그렇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갈까요? 관성이 어느정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협업이 지속 가능한 문화로 자리잡으려면 협업이 ‘좋은 일’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협업이 필요 없는 구조에서는 협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업무 목표 달성을 위해 타 팀과의 협의가 필수적인 워크플로우를 설계하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협업이 ‘선택’이 아닌 ‘업무의 기본’이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또한 조직은 결국 보상과 평가가 기준이 됩니다. 협업의 지속성을 확보하려면 협업의 결과와 기여가 평가와 보상에 연결되어야 합니다. 스프린트 리뷰 및 회고에서 협업 기여도를 가시화해 공유하거나 성과 평가에 개인 목표와 팀 목표를 함께 반영해, 타 팀과의 협업을 통한 성과가 인정받도록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변화했을 때의 작은 성공 사례를 의도적으로 확산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습니다. 협업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사람들에게 남으면, 협업은 단순한 수고가 아니라 ‘효율적인 방법’으로 인식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조직은 작은 협업 성공 사례를 지속적으로 발굴하여 내부 뉴스레터, 회의, 슬랙 채널 등을 통해 확산해야 합니다.
기존에는 사람의 가치관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구성원이 오랫동안 경험해 온 조직의 환경은 바꾸기 어렵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조건이 맞으면 사람도, 조직도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조직 문화를 고민할 때,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사람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변하고 싶어지게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는 명확한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조직 문화를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바꾸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가짐을 바꿀 수 있다면, 조직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리더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험은 제게 다른 시선을 열어 주었습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으며, 특히 오랫동안 익숙해진 환경 속에서는 변할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환경이 변해야만 하는 이유가 주어졌을 때,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위기라는 강력한 현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와 스스로 해결책을 찾고, 서로 협업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조직 문화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스스로 바뀌고 싶어지는 환경을 설계할 때, 조직 문화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리더의 역할은 끝까지 붙잡고 변화시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움직이고 싶어지도록 환경과 시스템을 설계해 놓고, 언젠가는 그 자리에서 한 발 물러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 때도 있습니다.
협업이 일어나지 않던 조직이 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마음가짐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협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현실이 찾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현실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교육이자, 가장 빠른 변화의 도화선이었습니다.
앞으로의 나는, 사람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사람들이 스스로 변하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조직 문화를 바꾸는 길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