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즈음에.
이제는 내 나이 만 50을 넘은지 한 달하고, 보름이 지났다. 한국남자 평균 기대수명이 80년 정도라고 하니, 짧으면 20년, 길면, 35년 정도의 삶이 남아 있는 셈이다.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은 삶이었다.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삶이었고,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얼마 전 한 목사님의 간증을 듣고.
청소년 사역을 하시는 한 분의 간증을 들었다. "청소년들은 머리나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듣는다." 맞다. 그렇다. 나의 아들이 중고등학생일 때, 나는 아들의 귀에 대고 떠들었었다. 너를 위하는 말이라고 했었다. 말 그대로, '개소리'였다. 나의 답답함을 마구 떠들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아들을 속였다. 무엇보다 나는 나를 속이고 있었다.
아들의 휴가.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는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입대를 했다. 머리를 깍고 입대한 날, 경황 없이 택시에서 내려 뛰어가던 아들의 뒷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렇게 나는 아들의 뒷모습을 봤다. 10개월이 지나고, 휴가를 나왔다. 소주 한잔을 하는 자리에서다.
"중고등학교 때 아빠는 '그 사람' 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야"
"...."
"그 때 나는 아빠에게 기대가 없었던 거 같아."
"...."
"근데, 이제는 아빠에게 기대가 있고, 잘 하리라 믿어."
그리고는 내 어깨에 팔을 얹는다. 맺힌 눈물을 훔쳐내는 아들의 숙인 고개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너무 늦은 깨달음에 마음 아프다. 그리고, 이렇게 잘 커준 아들에게 고맙다. 소주 한 잔이 달단다. 나도 그 한 잔 술이 참 달았다.
나의 뒷모습에.
사랑하는 아들에게 남을 나의 뒷모습을 가꾸고, 좋은 모습으로 이뤄내고, 지켜내야 한다. 아빠와 아들로, 남자대 남자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는 인간대 인간으로. 나의 뒷모습은 아들에게 지나가는 과거의 형상이 아니라, 그의 삶을 살아갈 토대가 될 것이다. 그게 내가 나의 뒷모습에 신경쓰는 이유다. 그리고 이 이유가 내 삶의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