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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면 우린 리퀴드폴리탄 의성을 만들어왔던 걸지도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과 청년이 행복해질 수 없을까?

"언니, 이번 트렌드코리아 2024에 로컬이 올해 트렌드로 꼽혔더라. 로컬 뭔데?!!"


작년 말, 3년째 나와 함께 의성 청년마을을 운영하고 있는 내 동료 쫑이 신기해하며 말했다. 듣자마자 나도 책을 열어봤다. 처음에는 '로컬'이 없어서 잘못 본건가 했다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리퀴드폴리탄'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어? 이거 우리가 지금껏 계속 로컬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으로 외쳐왔던 건데? 싶었다.


'리퀴드폴리탄'은 현대의 도시와 지역이 액체처럼 유연하고, 서로 연결되며, 다양한 변화를 보이는 가변체라는 점을 강조한 명명이라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주인구'만을 인구로 생각하며 '주소지를 이전하는 인구'를 모집하는 게 지자체들의 주요 과제였었는데, 이제는 '관계인구'를 넘어 '생활인구'라는 개념까지 확장되며 인구에 대한 관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책에서는 리퀴드폴리탄 시대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들이 정주하는 고정된 도시에서 다양한 구성원들이 어우러지는 유연한 도시로 도시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도시는 멈춰있지 않다. 지역만의 콘텐츠가 흐르고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사람들이 이동하며, 그들이 서로 교류하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축적하는 새로운 변화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제 도시개발은 대규모로 '짓는'것이 아닌, 창의적인 주체들을 '잇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고 한다. 가장 와닿았던 말은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은 단순히 인구 소멸 지역을 살리는 것에서 나아가 가능성을 끊임없이 실현하며 다양성과 창의성 측면에서 성장판이 열린 도시를 만드는 일'이라는 거였다.


책을 읽으며, 지난 4년 동안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변화들이 떠올랐다. 책에서 제시한 리퀴드폴리탄을 위한 네 가지 주체는 시그니처 스토어, 지역 사업가, 도시 기획자, 지역 커뮤니티. 아마도 이 개념은 의성보다는 좀 더 큰 규모의, 기왕이면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는 지역에 더욱 적합하겠지만, 그래도 어떻게 연결시켜보자면 우리는 성장판이 열린 의성을 위한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어온 것이 아닐까. 외지 청년들과 지역 청년/주민들을 연결해 지역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들을 만들고, 가능성을 보고 도전하는 지역 내 주체들을 발굴해 연결하고, 지역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으니까. 어쩐지 조금 뿌듯해졌다. 




지역에서 일을 하지만, 지역보다는 청년을 생각합니다


"무슨 일 하세요?"


라는 질문을 들으면 늘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게 된다. 한 문장으로 나의 일을 설명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나의 동료들도, 심지어 대표님도 그렇다. 그나마 요즘은 최대한 짧게 줄이는 데에 성공해 이렇게 말하곤 한다. "한국은 너무 서울 중심적이고, 대기업이나 전문직이 유일한 행복의 길인 것 처럼 이야기되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경북 의성에서 대학생들이 두세달 살면서 자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청년들이 진로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다행히 이정도로 이야기하면 잘 이해되는 것 같다.


'청년들의 진로다양성 확보'. 내가 생각하기엔, 이게 우리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지역소멸문제가 워낙 대두되다 보니, 지역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지역소멸을 막기 위한 일을 한다고 많이들 생각하신다. 당연히 지역에 대해서도 늘 고민하고 있기에 영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포인트는 조금 다르다. 멘토리는 공부가 재능이 아닌 농산어촌의 청소년들이 자신의 동네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한 조직이고, 지금은 로컬에 관심이 있는 초기 청년들이 안전하게 로컬을 경험해보고 보다 자신에게 맞는 일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하냐고 한다면 그건 정말 명확하게 청년이다. 


이 관점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의 공감을 얻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대학', '학교'라는 말은 아예 쓰지도 말라고 하셔서 '로컬 임팩트 캠퍼스'라는 기존 이름을 두고 '나만의성', '로컬러닝랩'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진행을 했고, "대학생은 활동 끝나면 다 학교로 돌아가는 거 아니냐. 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냐"는 타박 섞인 질문도 많이 들었다. 지역에 정착하는 인원을 만들기에는 대학생, 20대라는 타겟이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우리의 고집을 지켜온 결과 지금은 행안부에서도 대학과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고, 의성군에서도 우리의 방향성을 많이 받아들여주셨다. 시간이 쌓이며 좋은 참가자와 좋은 파트너를 만나 조금씩 조금씩 결과들이 나온 덕분이다. 혼자였다면 버티기 어려웠을텐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실험'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우리를 많이 방어해주신 담당 계장님과 주무관님들이 계셔서 도움을 받았다.


로컬임팩트캠퍼스를 소개하는 한 마디, "Z세대를 위한 로컬의 관문"


물론 우리는 여전히 마이너다. '프로그램을 통해 몇 명이 정착했는지'는 아직도 지역살이를 운영하는 기관들의 성과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지표고, '대학생 데리고 뭘 할 수 있는데'라는 말도 아직 종종 듣는다. 그래도 비슷한 가치를 공유하며 함께 나아가는 파트너들이 생겼고, 우리가 하는 일에 공감하며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졌다. 게다가 정부의 기조도 우리에게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요 몇년 사이 정말 빠르게 '정주인구'에서 '관계인구', '생활인구'로 전환되며 지역의 인구를 보는 관점이 많이 확장됐다. 이제는 "대학생은 다 돌아가잖아"라는 말에 "저희는 관계인구, 생활인구 만들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됐달까.


이러한 시간들을 통해 나는 한 직장에서 3년은 있어봐야 한다는 말이 왜 있는지를 이해하게 됐다. 가장 무서운건 시간이 쌓이는 거구나. 아무 자원도 없이, 연고 없는 의성에서 맨 땅에 헤딩을 하며 시작했던 우리가 어느덧 이만큼 왔다. 협력해주시는 지역 파트너분들도 늘어났고, 협력 대학/기업도 늘었고, 연계하는 사업도 늘어났다. 계속해서 더 큰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때의 나의 수고가 헛수고가 아님을 증명해주는 일들이 생기곤 할 때, 미래를 기대하게 될 때, 불쑥 찾아오는 감격을 동력 삼아 오늘도 일을 해나간다.




지역과 청년이 서로를 소진시키지 않도록

 

외지 청년과 지역 주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때 늘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외지 청년은 지역 주민들이 자신을 배척한다고 하고, 지역 주민은 외지 청년들이 자신들의 것을 빼앗아간다고(또는, 왜 외지 청년들에게만 혜택을 주냐고) 한다. 외지 청년과 지자체와의 관계도 비슷하다. 지자체 지원사업을 통해 지역에 온 외지 청년들은 지자체가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고 하고, 지자체는 외지 청년들이 책임감 없이 받기만 하고 떠난다고 한다. 외지 청년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역에 3년째 살면서, 나보다 지역에 오래 살아오신 지역 주민과, 나보다 짧은 시간 지역을 경험한 외지 청년을 잇는 일을 해온 나에게는, 양쪽 모두 각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타당한 주장이라고 느껴졌다. 한평생 자신의 지역을 지키며 살아오신 지역 주민분과, 디지털 노마드로 지역을 옮기며 살고 싶은 청년이 어떻게 서로를 단번에 이해하겠는가. 이건 문화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어긋남이지, 가해자와 피해자 구도로 보아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그래서 우리는 '잇는 자'로서 제3의 관점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며, 우리 나름의 해결방안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해오는 시간을 가졌다. 누구 하나의 일방적인 희생이 요구되는 게 아니라, 둘 다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내기 위해서.

로컬임팩트캠퍼스의 비전


이 도표는 우리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목표 중 하나다. 여기서 우선 검증해야 할 우리의 가설은 '청년은 지역에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이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변화를 보면 지역 역시 변화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두 가지였다. 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청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지역 만들기', 그리고 '청년의 성장 과정과 청년이 만들어낸 변화를 지역 주민들에게 와닿을 수 있도록 보여주기'였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가지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과제는 성과를 기대하지 않고 '먼저 주기'를 있는 지역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기적인 성과가 중요한 지자체들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든 요소였다.


다행히 의성은 그럴 수 있는 지역이었다. 멘토리는 왜 의성을 선택했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는데, 대표님이 의성에 터를 잡아야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크게 보면 이거 하나였다. 먼저 주기를 할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 2014년부터 소멸위험지역 1위에 연속으로 선정되며 다양한 청년정책을 이미 많이 시도해봤고, 과정에서 다양한 청년들이 오가며 여러 가지 사례를 마주한 경험이 쌓인 곳이다보니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실행력도 굉장히 빨라서 지자체와 함께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정말 흔치 않은 지역이기도 했고 말이다.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변화를 만들어온 과정은 이러했다. 

2020년 말, 의성군에서 교육장과 숙소 공간 제공을 약속
2021년 7-8월, 로컬임팩트캠퍼스 1기 진행으로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 발굴하고 해결책 제안 (딴짓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지역 내 가게인 향촌당, 무원칙주의양조장의 도움을 받음)
2021년 말, 교육장 및 숙소 공간 완성
2022년 1-2월, 로컬임팩트캠퍼스 2기 진행으로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 문제 발굴하고 해결책 제안
2022년 3월 초, 로임캠 2기의 사례를 보고 의성노인복지관과 의성군자원봉사센터에서 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심
로임캠 1기, 여름철 버스정류소의 더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프로젝트 모습
로임캠 2기, 보청기 산업 구조상의 문제로 이동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가자들의 프로젝트 모습
2022년 3월, 의성 청년 커뮤니티 '타임라인' 시작
2022년 4월, 청년마을 선정
2022년 7월~ '로컬쿠폰 가맹점'으로 5~8개 식당과 제휴를 맺어 참가자들의 점심 해결
2022년 7-8월, 로컬러닝랩 1기 진행 (프로젝트 멘토기업으로 향촌당, 호피홀리데이와 함께 진행)
2022년 8월, 로임캠 1기 참가자들이 제안한 내용을 바탕으로 안계면의 버스정류소가 정비됨
&로임캠 2기 참가자들이 제안한 내용을 바탕으로 의성읍 주민자치회의 주민총회에서 이동식 보청기 수리소가 주민제안정책으로 선정됨
2022년 9-11월, 로컬러닝랩 2기 진행 (프로젝트 멘토기업으로 호피홀리데이와 함께 진행, 위양2리 마을 어르신들의 과제 수행)
로컬러닝랩 2기 기묘한도주 팀에게 호피홀리데이 김예지대표님이 맥주 양조를 알려주고 계시는 모습
로컬러닝랩 2기 유채유채유 팀과 위양2리 이장님, 사무장님이 프로젝트에 관해 논의하고 있는 모습
2022년 12월, 용주밥상과 로컬러닝랩 참가자들이 함께 의성 청년들을 위한 월드컵 단체관람 행사 개최
2023년 3월, 의성 청년 커뮤니티 '마카다실험실'로 리브랜딩 하여 시작
2023년 7-8월, 로컬러닝랩 3기 진행 (지역 단체 의성읍 주민자치회, 지역 기업 의성마늘황토메기영어조합법인, 솔나라, 빅토리팜과 협업)
2023년 9-11월, 로컬러닝랩 4기 진행 (지역 기관 의성로컬푸드직매장, 지역 기업 빅토리팜, 소우당과 협업)
로컬러닝랩 3기 메끼chef 팀과 의성마늘황토메기영어 김명섭 대표님의 프로젝트 모습
로컬러닝랩 4기 팜파레 팀이 빅토리팜에서 농촌체험프로그램의 프로토타입을 진행하는 모습
2024년 3월, 로컬러닝랩 5-6기 협업 농가 모집을 위한 설명회 진행, 15개 농가 참여
2024년 7-11월, 로컬러닝랩 5-6기 프로젝트로 지역 농가 8개와 협업 예정
로컬러닝랩 협업농가 설명회


중요한 포인트는, 청년이 만들어낸 변화를 보고 지역의 주민, 기업, 농가분들이 정말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주신 곳도 있었고, 우리의 협업 요청에 흔쾌히 응해주신 곳도 있었다. 사례가 생기다 보니, 올해는 설명회를 열었는데 13개 농가의 대표님들이 먼저 신청을 해주셨다. 모르는 기업에 하나하나 콜드컨택을 하던 작년과 비교했을 때, 정말 괄목할 성과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청년의 성장을 지원하고자 하는 동기 대표님들이 많이 계셨다는 것. 지역 내에 청년의 성장을 지원하는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우리의 목표가 현실화되는 이다. 


여가 측면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나는 한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을 묻는 질문에 늘 월드컵 단체관람 행사를 꼽곤 했는데, 이 역시 우리가 쌓은 시간이 모여 새로운 협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후에 다룰 예정이지만, 의성에 연고가 없던 우리는 참가자들이 왔을 때 의성 친구를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우리도 친구가 필요하다는 마음으로 의성 청년 커뮤니티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 예산도 없이 맨땅에 헤딩하며, 전단지를 돌리며 시작했던 모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용주밥상의 고동욱 대표님이 지타운에서 월드컵 단체관람 행사를 열자고 제안했고, 그 때 당시 프로그램 이후에도 남아있었던 참가자들과 함께 행사를 열었다. 동욱님이 "아무래도 내가 멘토리를 더 챙겨야겠다."고 말한 이후였다. 총 3회차를 했는데, 회차마다 50여명의 의성 청년들이 모였다. 가게 하시는 청년 사장님들의 협찬도 받았다. 그 모습을 보는데 얼마나 감격스럽던지. 우리가 전단지를 돌리며 한명두명 모아 시작했던 커뮤니티가 이제는 우리가 손대지 않아도 이렇게 크게 모일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지역민의 텃세'를 경험해본 적 없다. 그 이유는 세 가지 정도 될 거라 추정 중이다. 첫번째는 아마 우리 참가자들의 연령대가 20대 초중반으로 많이 어려서 이해관계가 얽힐 일이 없다는 것. 두번째는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가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이고, 참가자들이 정말 진심으로 주민분들께 도움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하고, 실질적으로 정말 도움이 되곤 한다는 것. 마지막은 의성에서는 이미 청년 관련 사업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청년들의 활동에 대해 주민들의 마음이 열려있었다는 것.


그 덕에 우리는 여러가지 실험을 해올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의 가설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청년의 성장을 응원하는 분위기는 생길 수 있고, 청년은 그 안에서 충분히 성장하며, 성장하는 청년들을 지켜보며 지역 역시 변화할 수 있다는 것.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지역과 청년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은 분명 있다. 전혀 달라보이지만 맞추기만 하면 하나가 있는 테트리스 블록처럼, 서로가 가진 것과 부족한 것을 파악해 정확하게 포인트를 맞출 있다면 지역 주민과 외지 청년은 누구보다 강력한 시너지를 내는 파트너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어긋나있는 두 블록이 잘 맞춰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리가 하는 역할이지 않을까?




선례가 없는 일을 만드는 일


입사한 지 4개월 차, 인턴 업무들을 마무리하고 청년마을 지원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때 당시 입사동기였던 나보다 한살 많은 동기 언니와 나, 그리고 대표님, 이렇게 세명이서 매일 회의를 하며 사업계획서를 쓰던 시기였다. 막막함에 몸서리치는 나에게 대표님이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멘토리는 작년에 하던 거를 올해 또 한 적이 없어"



한번도 가보지 않은 의성이라는 지역에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걸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된 사회초년생 두명이 한다니. 이전에 멘토리가 해왔던 일들은 청소년과 관련된 일뿐이라 청년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었고, 기존에 있던 지역살이 프로그램은 대부분 지역 체험 또는 창업지원사업 뿐이라 참고할 만한 기존 사례도 없었다. "대표님, 진짜 이게 된다고요? 진짜 누가 이런걸 하러 올까요?"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온갖 잡기들을 동원하여 겨우겨우 프로그램을 짰다. 말도 안되긴 했지만, 솔직히 재미도 있었다. 누가 시키는 일을 의문 없이(납득되지 않은 채로) 하는 게 어려운 나의 성향상, 백지 위에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과정이 꽤나 즐거웠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 멘토리에 있을 수 있던 게 아닐까?


지금은 여전히 사회초년생 동료들과 함께 선례가 없는 일을 만들어가는 동시에, 매년 새로 들어오는 동료들을 데리고 '작년에 한 걸 올해 더 잘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청년마을 3년차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만들어온 임팩트를 잘 정리해야 하는 시기이기에 더욱 그 부담이 크다. 그래도,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올 한해를 마무리하며 뒤를 돌아보았을 때 분명 잘 해왔다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는 내가 되지 않을까? 지금껏 그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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