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쁘다, 이쁘다, 이쁘다니깐

디자이너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피드백을 받는다면

by 먹구름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니깐

UI/UX 디자이너에게 독이 든 성배는 '디자인 너무 예뻐요!'라는 말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예쁘다'는 말을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만, 디자이너가 가장 위험하고 경계해야 하는 말이라고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시각/산업 디자인이 아닌 의류학을 전공한 나는 졸업 작품을 해야만 했다. 물론 졸업 작품은 예상 가듯 패션쇼 런웨이에 설 의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막연하게 패션 디자이너는 절대 직업으로 삼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나지만, 졸업 작품을 시작하면서 크게 와닿았던 교수님의 말씀이 있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가 뭔지 아니? 바로 예술은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드는 것이지만 디자인은 '타인을 위한 작업물'을 만드는 것이란다.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학생들은 디자인을 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라."

그렇다. 디자인과 예술은 전혀 다른 선상에 있다. 예술을 하는 예술가와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는 다른 사람이다. 어떤 분야이건 '디자인'을 하는 사람은 당연하게 '나'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되고 '타인'의 관점에서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디자인에는 '이유'가 필요하다는 것도.




정말 아무런 경력이 없어 경력을 쌓기 위해 시작했던 디자인 업무 관련 아르바이트와 인턴 시절. 사실 이때의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시기의 디자이너는 당연히 디자인을 못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본인은 그걸 자각하기 어렵다. 나름 어딘가에서 레퍼런스도 많이 찾아보고, 따라 해 보았다고는 하지만 모방과 실무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병아리 디자이너 시절, 디자인 방향을 정확히 잡아주고 피드백을 해줄 수 있는 경험 많은 디자이너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디자이너가 부족해 마냥 어떤 디자인을 하던지 '예쁘다'는 말만 해주던 아르바이트생 시절과 '인턴 주제에 뭘 하려고? 차라리 내가 수정할게!'라고 업무를 침범하던 수많은 마케터들을 경험했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더불어 자괴감에 들었다. 내가 비전공자라서 그런 건가? 점점 소심해지고 작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사회 초년생 디자이너더라도, 좋은 멘토를 만나 수많은 디자인 크리틱과 피드백을 받으면 충분히 성장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걸 몰랐던 나는 좌절하고 슬퍼하고 우울해하며 나 자신을 탓하곤 했다. 그러던 중 나는 구원의 손길을 찾아 헤맸고, 다행히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 훌륭한 멘토를 알게 되었다. 멘토는 나에게 단 한 번도 '디자인이 예쁘네?'라는 말을 해 주지 않았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이건 그룹핑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훨씬 좋네.", "타깃을 고려하면 이렇게 화려한 색상은 오히려 집중력을 감소시킬 것 같다.", "모바일 중심으로 가는 디자인이라 카드 UI 형식으로 바꾼 게 훨씬 좋은 디자인이야. 잘 바꿨어."

좋은 멘토를 만나고 나서 수많은 디자인 크리틱과 피드백을 받아가며 나의 디자인 실력이 어느 순간 가파르게 성장했음을 주니어 디자이너가 되고 나서 인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경험은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예쁜 디자인이네.", "색을 잘 썼네", "글씨가 왜 작아?" 이처럼 이유 없는 디자인 평가는 디자이너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디자이너에게 좋은 피드백이란, 어떠한 관점에서 어떠하기에 디자인이 좋다/불편하다 등의 언어로 표현되어야 한다.




디자이너가 좋은 멘토를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얘기를 하면 혹자는 '그럼 신입 디자이너는 에이전시가 좋아요? 인하우스가 좋아요? 아님 스타트업?'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에이전시라고 좋은 멘토가 있는 것도 아니며 작은 스타트업이어도 좋은 멘토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도 천천히 풀어보고자 한다.

최근 들어 영양가 없는 피드백을 듣다 보면 좋은 멘토를 만나 진짜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만난 좋은 멘토가 그립기도 하다. 그러면서 그 멘토를 만나지 못한 채 갓 입사한 인턴 시절, 자존감 낮아지는 가스라이팅 같은 피드백이 반복되었던 시기를 떠올려보면 그 시절의 내가 가엽다는 생각이 이따금 든다. 그러면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환경에서 묵묵하게 꿈 하나 이루자고 노력하고 지치지 않은 어린 나 자신이 부럽기도 하다.

이제는 시니어 디자이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디자인에 책임감을 가지고 일하면서 타인을 설득할 수 있는 시각을 지녀야 할 때가 오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디자이너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피드백이 아닌 "이유 없는 예쁨과 예쁘지 않음" 혹은 "내 마음에 들거나 들지 않음"과 같은 평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무수히 많은 학습과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젠 그 배움을 실천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