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도 / 타닥타닥 제주

: 타닥타닥 제주에서 1주 차

by 이막내작가

1일, 입도


2006년 7월 1일 자 서귀포기상대 발령을 받아 제주도에 들어갔다. 정확히 543일 뒤인 2007년 12월, 자동차에 짐을 바리바리 실었다. 조수석까지 한가득 짐이 실린 차를 배에 싣고서 제주도를 나왔다. 이후 2010년, 2011년, 2012년도에 여행 삼아 제주를 찾긴 했지만, 짐가방 하나 들고 비행기를 이용했다. 그러니 자동차에 짐을 다시 바리바리 싣고서 제주에 들어가는 건, 참 오랜만이다. 인천에서 광주를 거쳐 완도로, 완도항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입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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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미라클 모닝과 떠돌이 개


입도 첫날밤, 늦은 시간 잠을 청하면서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걱정했다.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다음날 새벽 5시에 눈을 떴다. 5시 반 경에 숙소를 나섰다. 이른 시각인데도 공기가 후덥지근했다. 역시 제주의 여름이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온 동네가 시끌시끌하다. 풍경은 낯설고, 낯설어서 더 아름답다. 어떤 강제성도 없이 스스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 본 게 얼마만일까. 제주의 아침은 미라클 모닝, 말 그대로 기적의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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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입구에서 고양이를 만났다. 인사를 하려는 건가? 다가오는 녀석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가까이 와서는 냅다 드러눕는다. 눈인사 정도를 상상했다가 당황했다. 사람 좋아하는 제주 고양이는 얼굴이 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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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마음으로 숙소를 나선 지 한 시간 반 만에... 다급한 마음으로 도망치듯 돌아왔다.

해안도로에서 만난 떠돌이 개 한 마리 때문이었다. 해안도로를 걷고 있을 때, 저 멀리 하얀 개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는 것을 보았다. 느낌이 쎄- 했다.

떠돌이 개들이 보이는 특징이 있다. 동네에 사는 개들은 대체로 행동이 안정적이다. 느리고 여유로운 걸음걸이와 눈빛에서 제 구역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어떤 자신감 같은 것이 보인다. 반면, 떠도는 개들은 어딘지 모르게 행동이 산만하다. 여기저기 자주 두리번거린다. 두려움인지 호기심인지 모를 조급함 같은 것이 눈빛에 비친다. '버려진 개 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개와 내가 서로를 마주하며 점점 가까워졌다.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시선을 주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걸어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곧 적지 않게 당황했다. 개가 나를 향해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다. 더위 때문이었겠지. 공기는 덥고 습한 탓에 숨이 차서 그랬겠지. 헥헥 거리며 벌어진 입 사이로 크고 날카로운 이빨이 보였다. 헥헥! 그리고 점프! 앞발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해 점프!

뒷발로 일어선 개의 키는 내 가슴 높이 즈음되었고, 앞발은 젖어 있었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왔는지 몸의 털도 젖어 있었다. 나를 주인으로 착각했을까? 내가 이전 주인과 닮았던 걸까? 고맙게도 녀석이 나를 물진 않았다. 반가움에 뛰어든 듯한 모습이었지만, 나는 녀석의 주인이 아니었다. 나는 녀석을 처음 보았고,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 알지 못했기에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애써 태연한 척을 해야 했다.

덤덤하게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개는 방향을 바꾸어 나와 같은 방향을 향해 앞서 걷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좌측에 보이는 골목길을 향해 급히 방향을 틀었다. 헥헥헥헥! 개가 뒤따라 왔다. 버려진 개가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km가 넘는 길을 따라... 개가 따라왔다. 그 길 위, 어느 펜션 앞을 지나갈 때는 개가 열린 마당으로 뛰어 들어갔다. 사냥을 하려는 듯 햇볕을 쬐고 있던 고양이를 공격했다. 고양이가 화들짝 놀라 도망갔고, 개가 쫓아갔고, 펜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놀란 눈을 하고서 나타났다. 남자의 눈이 나를 향했다. 마치, 너의 개 좀 어떻게 해보라는 원망의 눈빛이었으나, 개는 나의 개가 아니었기에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해 줄 수 있는 게 없는 건, 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했다. 사정이 딱한 건 알겠는데... 나는 제주에 살지 않고, 너를 육지에 데려갈 수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육지에 있는, 내가 사는 집은 너를 키울만한 환경이 되지 못한다고, 나를 따라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화가 났다. 누가 너를 버렸을까. 언제부터 이렇게 떠돌고 있었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떠돌게 될까. 제주에 개를 데리고 들어와, 버리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년 가을, 일 때문에 제주에 하루 내려왔을 때 어느 마을 사거리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떠돌이 개들을 잡아갈 예정이니 집에서 키우는 개가 잡혀가는 일이 없도록 목줄을 꼭 채우라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10일 차, 떠돌이 개를 두 마리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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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제주에 감춰진 씁쓸함이, 너구나. 나는 너를 모른 체하고, 네가 잠시 딴청을 피우는 동안 서둘러 숙소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왔다.



3일, 타닥타닥 제주


며칠 째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거칠 것 없는 제주의 햇볕이 타닥타닥 타들어갈 것처럼 내리 쪼았다.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따갑다. 무척 따갑다. 가만히 있어도 뜨거운 날인데... 벌겋게 익어버리기로 작정을 했다. 나, 오늘 마라도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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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 전, AWS(Automated Weather Station, 자동기상관측장비)를 점검하러 가는 고산기상대 직원들을 따라 마라도에 들어갔다. 섬 위에서 어디를 둘러봐도 바다가 보이는 마라도가 신기했더랬다.

16년 만에 다시 찾는 마라도는 어떤 모습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마라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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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건, 여름의 마라도는 그늘 하나 없이 무섭게 덥다는 것.

변해버린 건, 16년 전에는 두 개뿐이던 짜장면 집이 지금은 아주 많아졌다는 것. 편의점도 생기고 카페도 여럿 생겼다는 점. 내가 기억하는 마라도가 아니었다. 그저 가게들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관광지였다.

내리쬐는 햇볕을 피해 잠시 들른 정자에서 한 아저씨를 만났다. 그가 인사를 건네 왔다.

"왜 구경 안 하세요?"

"너무 더워서 잠깐 햇볕 좀 피하려고요."

그와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마라도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늘어난 식당들과 카페에서 내놓는 쓰레기 양에 대해서. 마라도의 쓰레기 문제는 늘어난 관광객이 아닌, 정작 마라도 가게들이 원인이라는 이야기. 모든 식재료를 외부에서 들여오고, 마라도에는 쓰레기만 쌓인다는 이야기. 그럼에도 관광객들이 점심시간에 맞춰 배를 타고 들어와 줄을 서서 짜장면을 먹고 간다는 이야기.

"맛도 없어요. 웬만하면 짜장면은 여기서 드시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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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마라도 짜장면은 안 먹을 거야.

무엇이 마라도를 이렇게 만들고 있을까. 제주의 씁쓸함이 여기 또 있었구나.

내일은 제주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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