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닥타닥 제주에서 1주 차
토스트 한 조각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오늘도 뜨겁다. 햇볕도 뜨겁고, 공기도 뜨겁다. 아니, 오늘이 더 뜨겁다. 아침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어제의 한낮처럼 뜨겁다. 북상 중인 4호 태풍 '에어리'가 몰고 온 뜨거움인가 보다.(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4호 태풍 '에어리'가 소멸하고 없다. 오해 마시라.)
태풍이 몰고 오는 건 뜨거운 공기만이 아니다. 태풍은 구름을 몰고 다닌다. 태풍이 다가올 때 제주 하늘의 구름은 경이롭다. 거센 바람에 밀려 하늘에 펼쳐진 구름을 올려다보며, 우리는 황홀해했다. 하루 종일 그랬다. 구름이 너무 멋져서 석양을 보러 가야겠다 생각했다. 서쪽하늘이 훤히 보이는 바닷가에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오늘도 아침 산책을 나갔다. 숙소에서 보통의 걸음으로 약 20분이면 도착하는 신창 해안도로에는 풍차가 돌아간다. 바닷가와 바닷물 위에 서 있는 19개의 육중하고 거대한 터빈이 파란 하늘과 바다, 흰 구름과 어우러진 모습만으로도 아름답다. 정말이지, 제주의 바다는 '아름답다'는 단어 본래 뜻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으로 보기에 즐거움을 주는 상태에 있다', 아름답다.
낮동안에는 해야 할 일이 있어, 머리 위에서 에어컨 냉기가 쏟아져 내려오는 카페를 찾았다.
에메랄드 빛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창문을 마주하고 있자니,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런 경치를 눈앞에 두고 일을 해야 하다니. 어린 시절 친구들이 대문 밖에서 같이 놀자고 기다리고 있는데, 엄마한테 붙잡혀 숙제를 하는 기분이랄까.
OO야~ 놀~자~~!
대문 밖에서 자꾸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다.
늦은 오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림공원에 들렀다.
16년 전이나 지금이나 제주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든다. 제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하루방의 모습이 조금 이상하다.
어깨가 너무 뒤로, 그리고 위로 붙은 게 아닌가? 심지어 어떤 하루방은 어깨가 귀 뒤에 붙었다. 본의 아니게 발견해 버렸다. 하루방의 콤플렉스를.
담장을 뒤덮고 있는 덩굴이 마음에 들어 그 아래에서 사진을 찍기로 했다. 건너편 벤치에 휴대전화를 고정해 놓고 타이머 기능을 켰다.
촬촬촬촬촬촬촬촬촬촬!
타이머를 사용한 사진 촬영은 왜 항상 연속으로 10장을 찍어대는지, 나는 궁금하다. 잘 찍힌 건가?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을 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제가 다시 찍어드릴까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넙죽 휴대전화를 맡기고...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한참을 걸어가다가 문득, 그제야, 여자가 혼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이 한편으로는 '사진 좀 찍어주실래요?'로 이해가 되었던 건 그때였다. 뒤늦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여자가 근처에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다가가 '사진 찍어드릴까요?'라고 물었다. 여자가 반가워했다.
"어디서 찍을까요?"
사진 찍을 곳을 찾아 여자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가로등 높이 만한 야자수가 늘어선 길 한복판에 섰다.
"찍을게요. 하나, 둘, 셋!"
여자가 환희 웃었다. 엄마에게 사진을 보낼 거라 했다.
진작 찍어준다고 할 걸, 아까 그 예쁜 담장 아래에서 찍어줄 걸.
어쩐지 미안한 마음으로 여자와 인사를 나누고, 다시 각자의 발걸음이 닿는 대로 멀어졌다.
그러다 얼마 후, 사진 찍기에 너무 예쁜 곳을 발견해 버렸다.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여자가 저만큼 걸어오고 있었다. 여자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저요?'라고 묻는 듯 여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네, 당신이요.'라는 듯 나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여자가 다가왔다.
아까 사진 배경이 아쉬워서, 여기서 한 장 더 찍어드려도 되느냐 물었다. 오지랖이지. 나이를 먹으니 조금은 뻔뻔해지고 오지랖이 많아졌다. 다행히 여자가 흔쾌히 동의했다. 여자가 포즈를 잡는 동안, 혹여 민망하진 않을까 싶어 한 마디를 더 건넸다.
"혼자 여행하면 다 괜찮은데, 이런 게(사진) 아쉽죠?"
"네! 외로워요!"
격하게 공감하던 여자가 웃었다.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 여자의 어머니도 흐뭇해하시면 좋겠다. 제주의 여행자들끼리 나눈 짧은 오지랖이었다.
아침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숙소 마당에 고양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아침에도 있더니... 매일 오려는 모양이네. 여기가 자기 구역인가?
배가 고픈지 자꾸 뭘 달라는 듯 현관문 앞까지 따라와 야옹거린다. 부엌을 뒤져보지만, 고양이가 먹을만한 게 없다. 뭘 주지? 귤 한 알을 잘라서 코앞에 갖다 대니, 고개를 훽 돌린다.
그럼, 없어. 너 먹을 거 없다. 매정하게 숙소로 들어가 버린 나와 달리, 그는 마당에서 한참을 고양이와 놀았다. '놀아주었다'라고 표현했지만, 팔과 손 여기저기를 할퀴어 돌아왔다. 어째 고양이 호구가 된 것 같다.
매일 아침 고양이를 보게 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먹을 게 없다는 걸 알았는지 이후로 나타나지 않는다.
쳇! 매정한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