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닥타닥 제주에서 1주 차
점심을 먹고, 감귤청 담그기 체험을 하러 갔다.
청이라면... 엄마가 담근 유자청, 매실청, 모과청을 먹고 살아왔다. 레몬청을 몇 번 직접 담근 적이 있고, 얼마 전에는 호기심에 체리청도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제주에 와서 새삼스럽게 청 담그기 체험을 하러 간다고? 갔다. 그냥, 제주에 왔으니까 제주 감귤로 청을 하나 만들어가면 좋겠단 생각에 '무릉외갓집(무릉외갓집은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마을 기업이다)' 체험장을 찾았다.
카라향(제주 귤의 종류) 7~8개가 가지런히 담긴 볼을 앞에 두고, 잠시 제주 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귤의 종류가 60가지가 넘으며, 종에 따라 제철이 언제인지, 식감과 맛이 어떻게 다른 지 알게 되었다. 모든 귤의 뿌리가 '탱자'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제주도의 숨은 맛집과, 남방돌고래를 볼 수 있는 장소 등의 정보는 덤으로 얻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본격적인 청 담그기가 시작되었다.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귤을 넣고 두 손으로 하나씩 잘 문질러 씻는다. 깨끗한 물을 받아 한 번 더 귤들을 박박 씻는다. 손가락이 얼얼해졌다. 마지막으로 식초 몇 방울을 떨어트린 물에 2~3분 동안 귤을 담가놓는다. 귤 표면이 골고루 살균되도록 물 안에서 살살 굴려준다. 이제 귤 표면에 묻은 물기를 종이타월로 깨끗하게 닦는다. 도마 위에 귤을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슬라이스 한다. 양쪽 꼭지는 살짝 잘라 버린다. 썰어놓은 귤과 설탕을 1:1 비율로 볼에 담고서 숟가락을 이용해 골고루 잘 버무린다. 버무려진 귤 조각들을 열탕 처리한 유리병 안에 차곡차곡 넣는다. 유리병 겉면 쪽으로 잘려진 귤의 단면이 보이도록 하면 더 예쁘다. 마지막으로 밀봉한다. 완성!
귤 색이 이토록 예뻤던가? 새삼 감탄하며, 어서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린다.
담가진 감귤청은 상온에서 10일 동안 맛이 우러나는 시간을 보낸 후, 냉장보관을 한단다.
'맛이 우러나는 시간'이라....
불과 한 달 전, 체리와 청귤을 섞어 청을 담근 적이 있다. '맛이 우러나는 시간'을 알지 못해... 청을 담그자마자 냉장고로 보내버렸다. 그러고서 고작 3일이 지나 맛을 보는데,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체리 맛이 다 사라졌네? 향도 없어. 꿀 때문인가? 애꿎은 꿀 탓을 했다.
남편과 함께 기다리던 일이 있었다.
오늘이 바로 그 결과가 발표되는 날. 두 달 전부터 준비하고 기다리던 결과를, 오늘은 아침부터 더 격렬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반나절을 기다린 후에 맞닥뜨린 결과는 우리의 기대와 달랐다. 가장 상심할 사람은 남편일 테니, 나라도 애써 담담한 척을 했다. 아마도 우리보다 더 간절한 누군가에게 기회가 갔나 보다 얘기했지만, 우리도 간절했기에...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나보다 더 강했다. 금방 털어버리고 다음을 준비한다.
아침 산책길에 바다를 향해 앉아 계시는 해녀 한 분을 보았다. 다음 날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바다를 향해 앉아 계셨다. 그 뒷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끌려, 허락도 없이 카메라에 담았다. 무엇을 생각하시는 걸까? 무엇을 기다리시는 걸까?
기다림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의 기다림에 대해 상상했다. 사랑하는 이의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거나,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거나, 소울메이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거나, 자식들의 전화 한 통을 기다리거나, 시험 성적을 기다리거나, 적금 만기를 기다리거나... 크고 작은,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기다림들에 대해.
우리는 기다리는 중이다.
감귤청의 맛이 우러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다시 기다리는 중이다.
바라고 소망하는 것들이 가장 좋은 때에 바른 결과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시간.
"너의 진가를 나는 알기에, 나는 변함없이 너를 응원한다."
제주에 오고서 매일 아침 한 시간~한 시간 반을 걸었다. 어떤 날은 8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8,000걸음을 걷기도 했다. 근데 말이지, 왜 살이 안 빠질까? 묻는 딸의 카톡에 엄마가 답장을 보내왔다.
그거 좀 했다고 살이 그렇게 쉽게 빠지겠어?
아, 그런가? 원래 살 빼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나? 나이 탓인가?
아마도... 기다리는 시간은 삶의 모든 곳에서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