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닥타닥 제주에서 3주 차
간간이 비 예보가 있는 날, 아침부터 하늘이 시커멓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다가도 다시 구름 사이로 햇볕이 나기를 반복했다. 습도가 무척 높고, 공기는 후덥지근하고, 바람이 없어 숨이 탁탁 막히는 날이다.
딱 날씨만큼, 날씨를 닮은 일련의 일들이 일어났던 15일 차. '불쾌지수 한도 초과의 날'이라 명명한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며 겨우 가라앉힌 마음이... 오후에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가, 일정이 꼬이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는... 그런 날이었다.
이런 날도 있지, 뭐. 제주에서도 마냥 좋은 날만 있으라는 법은 없지.
하늘에서 큰 비가 내렸다.
'무명 서점'에 이어, 제주에서 두 번째 서점에 다녀왔다. '책방 소리 소문'이다. 책방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포인트가 많다.
책방을 억지로 따라온 남자는 아니나, (먼저 서점에 가자고 말한 남자다), 지갑을 숙소에 두고 나온 것도 모른 채 서점에 따라온 남자 때문에 책값으로 나름의 거금을 써야 했다.
제주만의 책을 찾다가 구입한 '오름'에 관한 작은 책 덕분에, 혹은 '때문에',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발견한 '저지오름' 입구에 차를 세웠다. 하루 종일 비가 예보되었던 것과 다르게 비가 그친 것 같았다. 비가 다시 오더라도 금방 다녀올 테니 괜찮겠지 싶어 오름을 올랐다. 실수였다. 잠시 소강상태였을 뿐, 더 큰 비가 몰려오고 있었다.
오름을 절반 즈음 올랐을 때, 비가 오기 시작했다. 휴대전화를 열어 레이더 영상을 찾아보았다.
"괜찮아, 금방 지나가겠네."
걱정하는 남자를 달래며 오름을 계속 올랐다.
금방 지나가기는 개뿔... 강수 에코는 점점 크게, 빨갛게, 발달하면서 다가왔다.
오름 정상에 오르자,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 모양이었다. 분화구로 내려가는 계단은 우거진 수풀 때문에 한참을 내려가도 분화구가 보이지 않았다. 온몸을 감싸는 거미줄에 걸려, 더 내려가기를 포기했다. 남자를 돌아봤다. 안경에 빗방울이 엉겨 붙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몰골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남자에게 미안했다. 그렇지 않아도 습하고 비 맞는 걸 질색하는 남자인데.
"망했다. 얼른 돌아가자."
내려가는 길은 위험했다. 돌이 많고, 낙엽이 쌓여 있고, 그 모든 것이 비에 젖어 있었다. 가장 무서웠던 건 그 세찬 빗줄기를 뚫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모기와 모기들. 으악.
비탈면에서 남자와 손을 꼭 잡았다. 둘 중 누구든, 넘어지려는 자를 넘어지지 않은 자가 붙잡아주기 위해서. 우리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여전히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맞잡은 손이 빗물로 미끄러웠다. 미끄러울수록 더 꼭 잡았다. 어쩐지... 좋다. 오름에 오르길 잘했다.
남자가 말한다.
브런치가 어째 단순한 제주 일지가 되어가는 것 같다고. 깊이가 너무 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주신다.
맞다. 이번 '타닥타닥 제주에서'는 가벼운 일지다. 깊이는 얕다. 깊으면 빠진다. 그러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