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통의 경고등

: 속도를 멈추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목적지를 변경하시오.

by 이막내작가

변산반도에서 시작되어 군산까지 이어지는 새만금 방조제, 그 중간지점에는 10여 개의 유인도와 40여 개의 무인도가 모여 있는 고군산군도가 있다. 큼지막한 섬들의 경우 다리로 이어져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쭉 둘러볼 수 있다. 육지에서 20km는 족히 떨어진 탓에, 새만금 방조제와 섬들을 잇는 다리가 없던 시절에는 배를 타고 한참을 와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먼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들의 자태는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1월의 날씨치고는 기온이 따뜻하고 바람도 없는 날,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엄마의 등을 억지로 떠밀어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바닷가에 도착했다. 바다가, 모래사장이, 하늘이 깨끗했다. 주변은 한적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오길 너무 잘했다'는 엄마와 만족스러운 나들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자동차 연료통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근처에서 기름을 넣고 출발해야지. 내비게이션으로 주유소를 검색했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주유소까지의 거리가 26km였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선유도를 비롯해 고군산군도에는 주유소가 없었다. 새만금 방조제를 건너 변산반도까지 나가야 주유소가 있었다. 경고등이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고민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나오는 길에 섬 하나를 더 둘러보는 여유까지 부렸다.


잠시 후면 주유소에 도착할 터였다. 그런데 이때부터 뭔가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보통 연료통에 경고등이 들어온 후에도 자동차는 약 40km의 주행이 가능하다. 물론 차 종류와 운행속도, 도로환경, 에어컨의 사용 유무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평균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그렇다.

새만금 방조제를 넘어오면서 이미 26km를 달렸을 때였다. 목적지인 주유소를 코앞에 두고서 첫 번째 문제가 일어났다. 내비게이션이 새로 난 도로를 인식하지 못한 탓에 길을 헤매느라 6km를 더 달렸고, 그렇게 도착한 주유소에는 사람이 없었다. '배달 중'이란 표지판만 문에 걸려 있었다. 언제 올 지 알 수 없었다.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었다. 남은 (가능한) 주행 거리는 대략 8km. 다시 주유소를 검색하고 4.9km 거리에 있는 주유소를 다음 목적지로 정했다. '수협 직영점'이라 표시된 걸 보니, 왠지 이곳에는 수협 직원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도착한 두 번째 주유소에서 이곳은 면세유만 판매하는 곳이라 일반 차량은 주유를 할 수 없다는, 직원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제 갈 수 있는 거리는 약 3km. 이러다가 전라북도 부안의 어느 해안도로에서 차가 주저앉을지도 몰랐다. 다시 검색, 3.7km 거리에 세 번째 주유소가 있었다. 주행거리는 아슬아슬했고, 마음은 조마조마했다. 아마도 내가 갈 수 있는 마지막 곳이었다. 다행히 목적지에 도착했다. 경적 소리를 듣고 건물 옆에서 한 남자분이 나타났다. 안도감이 밀려왔다. 주유를 마치고 영수증을 건네받으면서, 목청껏, 감사합니다!

(고군산군도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은 꼭 미리 주유를 넉넉히 해 가시길...)


주유를 하고 출발하는데, 그때까지 옆에서 아무 말 없던 엄마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해서 아까 좋았던 건 어디로 다 날아가버렸다."

그랬다. 20여 분 동안 세 곳의 주유소를 돌면서 나도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고군산군도에서 느꼈던 기분 좋은 것들이 다 거짓말 같았다. 그날 저녁, 하루의 기억은 온통 자동차 기름이 떨어져 똥줄 타던 날로 덧씌워져 버렸다.


살다 보니, 경고등은 자동차 연료통에만 있는 것이 아니란 걸 종종 깨닫는다. 경고등의 종류는 저마다 각양각색이지만 대처방법은 똑같다. 나는 요즘, 또 다른 연료통에 경고등이 켜졌다.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경고등을 무시하고 이대로 계속 달리면 곧 길가에 주저앉아 버릴 게 분명하다.

똥줄 타던 그날을 떠올린다. 연료통에 경고등이 들어오면 신나게, 혹은 열심히 달리던 것을 멈춘다. 속도를 줄이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목적지를 잠시 변경한다. 당초 목적지가 어디였든 간에, 정해놓은 도착시각이 언제였던 간에, 연료통에 연료를 주입하는 일이 우선이다. 연료를 가득 채운 후, 가려던 목적지를 향해 다시 달리면 된다. 마음이 당황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좋았던 게 어디로 다 날아가버리지 않도록.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이왕이면 경고등이 울리기 전에 미리 알아차리기를. 그래서 조금 더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또 언제고 켜질 수 있는 수많은 경고등 앞에서 나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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